이주선 '겨울나무'가 중계 정거장에 접안한 날, 정거장 전체에 진동이 울렸다. 도킹 클램프가 선체를 물어쥐는 소리, 금속과 금속이 맞닿는 저음의 충격. 서윤은 검증실 창으로 이주선의 옆구리를 봤다. 4년간의 항해가 남긴 미세 충돌 흔적이 선체 표면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놓았다. 저 안에 320명이 타고 있었다. 바너드 항성계로 향하는 사람들. 서윤이 할 일은 그들의 신뢰 채권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신뢰 채권. 광년 단위의 거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출발 전에 기록하는 약속 묶음. 배우자가 기다리겠다는 서약, 고용주가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는 계약, 정착지가 주거를 제공하겠다는 확인. 모든 약속은 출발 시점에 생체 서명과 함께 봉인됐다. 이 약속들이 도착지에서 유효한지, 중계 정거장의 검증관이 확인했다. 문제는 약속을 한 사람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구에서 정거장까지 5.9광년. 지금 도착하는 정보는 5.9년 전의 것이었다.
서윤은 320명분의 신뢰 채권 파일을 열기 전에 수신함을 먼저 확인했다. 지구에서 온 정기 업데이트가 어젯밤 도착해 있었다. 사망 통보, 이혼 확정, 기업 파산, 계약 해지. 지구에서 5.9년 전에 일어난 일들의 목록. 서윤은 이 목록을 이주선 탑승객의 신뢰 채권과 대조해야 했다. 약속을 한 사람이 이미 죽었거나, 약속을 철회했거나, 약속을 이행할 능력을 상실한 경우, 채권은 무효가 됐다.
목록을 내리다가 서윤의 시선이 한 줄에 걸렸다. 사망 통보. 이름: 최도현. 사망 시점: 7.1년 전. 통보 발신: 5.9년 전. 서윤은 이 이름을 겨울나무의 탑승객 명단에서 검색했다. 일치하는 항목이 없었다. 하지만 신뢰 채권 발급자 목록에서는 일치했다. 최도현은 탑승객 한 명의 배우자 서약을 기록한 사람이었다. 탑승객 번호 187. 채권 내용: 바너드 항성계 도착 후 합류 예정, 주거 공동 보증, 정착 비용 분담 서약. 최도현이 이 채권을 기록한 것은 8년 전이었다. 그리고 7.1년 전에 죽었다.
탑승객 187번이 겨울나무에서 내려 정거장의 대기 구역으로 들어올 때, 서윤은 검증실 모니터로 그를 봤다. 큰 가방을 끌고, 옆에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는 아이.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대기 구역의 의자에 앉는 모습이 모니터에 잡혔다. 아이에게 뭔가를 말하고, 아이가 웃었다. 서윤은 모니터를 껐다.
서윤은 검증실 뒤편의 좁은 복도를 걸었다. 정거장 '솔개'는 태양계와 바너드 항성계 사이, 5.9광년 지점에 떠 있는 원통형 구조물이었다. 직경 200미터, 길이 800미터. 내부에 인공 중력을 만들기 위해 분당 2회 회전했다. 복도의 바닥이 미세하게 휘어 있었고, 멀리 걸으면 앞사람의 발이 천장 쪽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서윤은 이 휘어진 세계에서 6년을 살았다. 정거장의 회전이 만드는 원심력 때문에, 커피를 따르면 액체 표면이 미세하게 기울었다. 처음에는 어지러웠고, 두 번째 해에는 무감각해졌고, 세 번째 해부터는 이것이 정상이 됐다. 기울어진 커피가 정상. 5.9년 늦게 도착하는 소식이 정상.
복도 끝의 라운지에 정거장 의료 담당이 앉아 있었다. 모니터 두 개를 번갈아 보며 겨울나무 탑승객들의 건강 데이터를 검토하고 있었다. 서윤이 옆에 앉았다.
“187번 탑승객 배우자의 사망 통보가 왔어.”
의료 담당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언제 죽은 건데?”
서윤이 답했다.
“7.1년 전. 통보가 지구에서 출발한 건 5.9년 전이고, 어제 여기 도착했어.”
의료 담당이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저 사람은 모르는 거네. 이주선 출발이 4년 전이니까, 출발 시점에는 배우자가 죽은 지 3년이 지났는데, 사망 통보가 아직 이주선을 못 따라잡은 거야.”
서윤이 끄덕였다.
“탑승객은 배우자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어. 4년째.”
의료 담당이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알려야지.”
서윤이 봤다.
“알리면 신뢰 채권이 무효가 돼. 배우자 서약이 채권의 핵심이야. 주거 보증, 정착 비용, 합류 계획. 다 무효.”
의료 담당이 봤다.
“그래서?”
서윤이 말했다.
“바너드 정착지에서 신뢰 채권 없이 입주하면, 대기자 명단 뒤로 밀려. 아이가 있으니 우선순위가 올라가긴 하지만, 주거 배정까지 최소 14개월. 그 14개월을 정거장에서 대기해야 해.”
의료 담당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거장에는 장기 체류 시설이 없잖아.”
서윤이 끄덕였다. 솔개 정거장은 중계 시설이지 거주 시설이 아니었다. 이주선이 접안하면 탑승객의 서류를 검증하고, 보급을 마친 뒤 바너드로 보내는 곳이었다. 체류 한도는 30일. 채권이 무효가 된 탑승객은 바너드 정착지에 입주 자격을 잃고, 정거장에도 머물 수 없고, 지구로 돌아가려면 다음 귀환선을 기다려야 했다. 귀환선은 2년에 한 번 왔다.
서윤은 사망 통보의 발신 경로를 추적했다. 지구 부산의 주민 등록 시스템에서 생성, 대한민국 우주통신국을 거쳐 광역 송신. 발신 시점에 최도현의 사망은 이미 1.2년 전이었다. 사망 후 1.2년이 지나서야 통보가 성간 통신망에 올라간 것이었다. 지구에서조차 절차가 느렸다. 그리고 5.9년을 더 날아 여기까지 왔다. 총 7.1년의 지연.
검증실로 돌아와 서윤은 최도현이 기록한 신뢰 채권 영상을 재생했다. 8년 전의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서 남자가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먼저 가 있어. 2년 뒤에 나도 갈게. 집은 내가 구해놓을게. 윤서 데리고 잘 가.”
짧은 영상이었다. 29초. 이 29초짜리 약속이 탑승객 187번의 이주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리고 약속을 한 사람은 영상을 찍은 지 11개월 뒤에 죽었다.
서윤은 영상을 닫고 의자에 기대 천장을 봤다. 원통형 정거장의 천장은 반대편 바닥이었다. 저 위에서도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실루엣이 형광등 빛에 비쳤다. 8년 전에 녹화된 29초, 7.1년 전에 멈춘 심장, 4년 전에 출발한 이주선, 어제 도착한 통보. 탑승객 187번이 믿고 있는 현실은 가장 오래된 층이었다.
서윤은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를 처리한 적이 있었다. 3년 전, 이주선 '첫눈'의 탑승객 중 한 명의 고용 보증을 발급한 회사가 파산한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그때는 단순했다. 고용 보증이 무효가 돼도 다른 회사의 고용 제안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자 서약은 대체할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의 약속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는 없었다.
점심시간에 서윤은 대기 구역을 지나갔다. 187번 탑승객이 아이와 함께 식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있었다. 아이가 천장의 조명을 가리키며 뭔가를 물었고, 아버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서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눈이 마주칠 것 같았다. 식당을 지나 화물 구역의 빈 통로로 들어갔다. 금속 벽 사이의 좁은 공간. 환기 장치의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서윤은 벽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들숨이 짧고 날숨이 길었다. 손바닥을 벽에 대자 금속의 차가움이 전해졌고, 정거장이 회전하는 미세한 진동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서윤은 그 진동 속에서 자기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벽의 차가움이 이마까지 올라왔다. 눈을 감았다 떴다. 형광등의 흰 빛이 금속 벽에 반사돼 통로 전체를 차갑게 밝히고 있었다. 이 빛 아래서 서윤은 자기가 내려야 할 결정의 윤곽을 처음 느꼈다.
오후에 서윤은 정거장 운영 책임자를 찾아갔다. 도킹 베이 위층의 작은 사무실. 서윤보다 늦게 솔개에 왔지만, 행정 경력이 길어 이 자리에 앉게 된 사람이었다. 서윤이 상황을 설명하자 책임자가 의자를 뒤로 밀며 물었다.
“채권을 무효 처리하면 지구 귀환 대기 맞지?”
서윤이 끄덕였다.
“아이가 있다고 했지. 귀환선은 18개월 뒤야. 정거장에서 아이와 18개월. 현실적이지 않아.”
서윤이 봤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고 있어요.”
책임자가 규정집을 꺼냈다. 광년 지연 사회의 신뢰 채권법 제14조: 채권 발급자의 사망이 확인된 경우, 채권은 발급자 사망 시점에 소급하여 무효가 된다. 단, 제14조의 2: 채권 보유자가 사망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행 중인 경우, 검증관은 사실 통보 전 48시간의 유예를 두어야 한다. 서윤에게 48시간이 있었다. 제14조의 3: 검증관은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 유예 기간을 최대 6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단, 연장 기간 동안 채권 보유자에게 사실을 통보하지 않을 책임은 검증관 개인에게 귀속된다.
서윤은 바너드 정착지에 긴급 조회를 보냈다. 배우자 채권 없이 입주할 수 있는 예외 조건이 있는지. 바너드까지 약 0.1광년. 40일이면 답이 왔다. 하지만 48시간 안에는 불가능했다. 유예를 60일로 연장하면 바너드의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서윤은 결정했다. 연장 사유란에 적었다: 채권 보유자의 대체 입주 경로 확인 필요, 바너드 정착지 조회 왕복 약 40일 소요. 서명을 입력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한 박자 멈칫했다. 60일 동안 복도에서 187번을 마주칠 것이었다.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웃는 모습을 볼 것이었다. 그가 모르는 것을 서윤은 알고 있으면서.
유예 3일째. 서윤은 대기 구역에서 187번과 처음 대면했다. 검증 서류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면담을 잡은 것이었다. 그가 아이와 함께 검증실에 들어왔다. 아이가 콘솔의 불빛에 눈이 커졌다. 서윤이 말했다.
“기술 자격 인증 서류가 한 건 누락돼 있어서요. 보완 기간 동안 정거장에 체류하셔야 합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서윤이 봤다.
“40일에서 60일 사이입니다.”
그가 웃었다.
“그 정도면 괜찮아요. 도현이가 바너드에 집 구해놓는 동안 여기서 좀 쉬죠.”
서윤의 시선이 흔들렸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산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서윤은 시선을 콘솔로 내렸다.
아이가 검증실의 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별이 바너드야?”
서윤이 답했다.
“아니, 저건 다른 별이야. 바너드는 저쪽이야.”
서윤이 반대편 창을 가리켰다. 붉은빛이 도는 희미한 점이 보였다. 바너드 항성. 적색왜성의 빛이 창을 통해 아이의 볼 위에 내려앉았다. 아이의 눈이 그 점에 고정됐다. 아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윤서야, 저기 가면 아빠가 만든 집이 있어.”
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 준비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복도로 나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유예 12일째, 서윤은 정거장 복도에서 187번 탑승객과 마주쳤다. 아이가 서윤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서윤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아버지가 서윤에게 말했다.
“서류 언제쯤 될까요?”
서윤이 답했다.
“조금 더 걸립니다. 바너드 쪽 확인이 필요해서요.”
그가 끄덕이며 웃었다.
“천천히 하세요. 여기도 나쁘지 않네요. 윤서가 정거장이 돌아가는 게 재밌다고.”
서윤은 웃었다. 웃는 게 어려웠다.
유예 기간 동안 서윤은 나머지 319명의 신뢰 채권도 검증해야 했다. 배우자 서약 127건, 고용 계약 280건, 주거 보증 195건. 하나하나 대조하고, 서명을 확인하고, 지구에서 온 업데이트와 비교했다. 기계적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187번의 파일을 지나칠 때마다 손이 멈췄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유예 상태가 화면에서 깜빡였다. 나머지 319개의 초록색 사이에서 하나의 빨간색.
의료 담당이 저녁 식사 때 서윤에게 물었다.
“그 사람한테 아직 안 알렸어?”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바너드에서 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의료 담당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매일 그 사람 얼굴 보면서 버틸 수 있어?”
서윤이 잠시 멈췄다.
“버텨야지.”
의료 담당이 서윤을 봤다.
“너도 과거에 갇혀 있는 거야. 알고 있으면서 말 못 하는 과거.”
서윤은 답하지 않았다. 의료 담당의 말이 맞았다. 서윤도 과거에 갇혀 있었다. 다만 서윤의 과거는 자기가 선택한 것이었다.
밤에 서윤은 자기 숙소에서 잠을 청하지 못했다. 좁은 침대, 벽에 붙은 소형 화면, 접이식 책상. 서윤은 자기 개인 신뢰 채권 폴더를 열었다. 이주 전에 어머니가 녹화해준 영상이 있었다. 8년 전, 서윤이 솔개 정거장으로 떠나기 전날. 어머니의 얼굴이 화면에 떴다.
“건강해라. 매일 밥 챙겨 먹고.”
평범한 말이었다. 서윤은 이 영상을 처음 2년 동안 매주 봤고, 이후로는 점점 간격이 벌어졌다. 어머니가 지금 살아 있는지, 서윤은 5.9년 전의 안부 신호로만 추정할 수 있었다.
유예 37일째. 바너드에서 답이 왔다. 고용 계약만으로 임시 입주가 가능하다는 확인이었다. 배우자 채권 없이도 기술 인력은 고용주 보증으로 주거가 배정됐다. 서윤은 이 답을 받고 한참 모니터를 봤다. 길이 생긴 것이었다. 채권이 무효가 돼도 187번은 바너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이제 남은 것은 통보뿐이었다.
통보 전날 밤, 서윤은 다시 어머니의 영상 폴더를 열었다. 폴더를 닫으려다가 멈췄다. 파일이 하나 더 있었다. 서윤이 한 번도 열지 않은 파일. 파일명: 서윤에게_나중에. 생성 시각이 어머니의 영상보다 36시간 뒤였다. 서윤은 떠나기 전날 어머니의 영상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보지 않았다. 8년 동안 이 파일이 여기 있었다. 서윤은 파일을 열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서윤이 기억하는 것보다 낮고, 더 느린 목소리.
“서윤아. 엄마가 찍으라고 해서 찍는다. 나는 이런 거 잘 못하는 거 알지.”
기침 소리.
“네가 거기 가면 연락이 안 되잖아. 몇 년씩. 그래서 하나만 말해둔다. 네가 뭘 결정하든, 여기서 걱정은 하되 후회는 안 한다. 알겠지?”
영상이 끝났다. 18초.
서윤은 화면을 오래 봤다. 아버지가 이 영상을 찍은 것은 8년 전이었다. 지금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서윤은 5.9년 전의 안부 기록으로만 추정할 수 있었다. 5.9년 전에는 살아 있었다. 지금은 모른다. 이 영상 속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의 것인지, 187번 탑승객의 배우자처럼 이미 멈춘 사람의 것인지. 서윤은 영상을 한 번 더 재생했다.
“네가 뭘 결정하든, 여기서 걱정은 하되 후회는 안 한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작은 스피커를 통해 숙소에 퍼졌다. 8년 전의 기침이었다. 서윤은 그 기침 소리를 듣고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 187번 탑승객에게 진실을 말해야 했다. 29초짜리 영상 속 약속이 무효가 됐다는 것을. 서윤은 자기 아버지의 18초짜리 영상을 가슴에 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두 영상의 차이는 하나였다. 29초의 약속을 한 사람은 죽었고, 18초의 약속을 한 사람은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었다. 아직, 이라는 말이 성간 공간에서는 항상 조건부였다.
다음 날 아침. 서윤은 187번 탑승객을 검증실로 불렀다. 아이 없이. 그가 들어와 앉았다. 서윤이 말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가 서윤의 표정을 보고 웃음이 사라졌다.
“배우자분의 사망 통보가 도착했습니다. 사망 시점은 7.1년 전입니다.”
침묵이 검증실을 채웠다. 콘솔의 냉각 팬 소리, 정거장이 회전하는 미세한 진동만 남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낮고, 끊기는 목소리.
“7년 전이요?”
서윤이 끄덕였다.
“통보가 지구에서 출발한 것은 5.9년 전이고, 이주선이 출발한 것은 4년 전이니까…”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떠날 때 이미 3년 전에 죽어 있었다는 거예요.”
서윤이 답하지 못했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오랜 침묵 뒤에 서윤이 말했다.
“바너드 정착지에서 고용 계약만으로 입주가 가능하다는 답이 왔습니다. 주거도 배정됩니다. 윤서와 함께 갈 수 있어요.”
그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물었다.
“그 집에 도현이는 없는 거죠.”
서윤은 답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내리고 창밖을 봤다. 바너드 항성의 붉은 점이 보였다. 그가 말했다.
“윤서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서윤이 끄덕였다. 그가 일어서서 문 쪽으로 갔다. 문 앞에서 멈춰 말했다.
“영상은 남아 있나요? 도현이가 찍은 거.”
서윤이 답했다.
“채권 파일에 보존돼 있습니다.”
그가 작게 끄덕이고 나갔다.
통보 다음 날, 187번 탑승객이 검증실에 다시 왔다. 눈이 부어 있었다. 서류에 서명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배우자 채권 무효 확인서, 고용 계약 기반 입주 신청서, 단독 보호자 확인서. 서윤이 서류를 하나씩 설명했다. 그가 서명할 때마다 펜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검증실에 울렸다. 마지막 서류에 서명한 뒤 그가 물었다.
“이 서류들은 바너드에 언제 도착해요?”
서윤이 답했다.
“이주선이 직접 가져갑니다. 40일이면 도착해요.”
그가 끄덕이며 말했다.
“빛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서류도 있군요.”
서윤은 웃지 못했다. 이주선이 빛보다 빠른 것이 아니었다. 거리가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농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서윤은 알았다.
출발 전날, 187번 탑승객이 서윤을 찾아왔다. 아이는 데려오지 않았다. 그가 서윤에게 말했다.
“윤서한테 말했어요. 아빠가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고.”
서윤이 봤다.
“잘 받아들였나요?”
그가 웃었다. 눈가에 아직 그림자가 남아 있었지만, 웃음이었다.
“모르겠어요. 여섯 살한테 7.1년 전에 죽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설명할 수가 없어서.”
서윤이 잠시 멈췄다.
“어른한테도 쉽지 않아요.”
그가 끄덕였다.
“채권 영상 복사본 받을 수 있을까요? 윤서가 크면 보여주고 싶어서.”
서윤이 답했다.
“내일 출발 전에 전달하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 서윤은 최도현의 29초짜리 영상을 복사 파일로 만들었다. 죽은 사람의 약속이 채권으로서는 무효가 됐지만, 기억으로서는 아직 유효했다.
겨울나무가 바너드를 향해 떠난 것은 유예 58일째였다. 187번 탑승객과 아이가 이주선에 다시 올랐다. 도킹 클램프가 풀리고, 선체가 정거장에서 떨어져 나가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서윤은 검증실 창으로 겨울나무가 멀어지는 것을 봤다. 선체의 반사광이 바너드의 붉은빛을 받아 잠깐 빛났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서윤은 콘솔로 돌아와 다음 수신함을 열었다. 지구에서 5.9년 전에 출발한 새 신호 묶음이 와 있었다. 사망 통보 7건, 이혼 확정 3건, 기업 파산 2건. 서윤은 첫 번째 사망 통보를 열었다. 다음 이주선이 오려면 8개월이 남아 있었다. 그 8개월 동안 서윤은 이 통보들을 들고 기다릴 것이었다. 과거가 보낸 편지를 현재가 열고, 미래에 건네는 일. 서윤은 파일을 열고 이름을 읽기 시작했다. 과거가 보낸 이름들을, 서윤은 하나씩 현재로 옮기고 있었다. 다음 이주선의 이름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 이주선에도 누군가의 29초가, 누군가의 18초가 실려 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