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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중력

2026. 3. 10. · 9,062자 · 약 11분

부드러운 중력 썸네일
17

채굴선 '건곤'의 에어록이 열리자 공기가 달랐다. 영역 안쪽의 공기가 아니라, 중계소 도킹 베이의 정제된 공기. 정호는 헬멧을 벗으며 숨을 들이쉬었다. 폐가 거부했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이 금속 격자에 닿는 감각이 이상했다. 너무 단단했다. 아니, 손바닥이 너무 물렀다. 영역 안에서 6주를 보내는 동안 6주 동안 바뀐 손끝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도킹 베이의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영역 안쪽에는 이런 빛이 없었다. 거기서는 광자의 에너지 준위가 미세하게 달라서, 모든 빛이 붉은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6주 동안 붉은빛에 적응한 눈이 백색광을 견디지 못했다. 정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킹 베이의 벽면을 봤다. 금속 벽면이 형광등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반사광이 눈에 실핏줄 같은 통증을 남겼다. 영역 안에서는 빛이 물처럼 부드러웠다. 여기서는 칼날이었다. 정호는 눈을 비볐다. 눈물이 나왔다. 감정이 아니라 반사였다.

정호는 도킹 베이의 벽을 짚으며 걸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무겁다는 표현이 맞는지 몰랐다. 중계소의 인공 중력은 0.3지. 영역 안에서는 중력 상수 자체가 달라서 같은 0.3지여도 체감이 달랐다. 영역 안쪽의 중력은 부드러웠다. 뼈에 와닿는 힘이 점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의 중력은 날카로웠다. 뼈에 직접 찔리는 것 같았다. 정호는 체중계를 발견하고 올라갔다. 71.2킬로그램. 들어가기 전에는 73킬로그램이었다. 1.8킬로그램이 줄었다. 음식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영역 안에서는 근섬유의 단백질 접힘이 달라져서 근육이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소비했다. 밖에 나오면 근육이 원래의 접힘 방식을 찾지 못해 수축-이완 효율이 떨어졌다. 근육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근육의 작동 방식이 바뀐 것이었다.

도킹 베이를 나와 복도를 걸었다. 중계소 '경계'는 카이퍼 벨트 너머에 위치한 인류의 마지막 전초기지였다. 해왕성 궤도에서 30천문단위 떨어진 곳. 상주 인원 47명. 그중 채굴선 기사가 22명이었다. 반년 전에는 26명이었다. 4명이 줄었다. 2명은 계약 만료로 귀환했고, 1명은 영역 안에서 사고로 죽었고, 1명은 귀환 후 지구 대기에 적응하지 못해 이송 중 사망했다. 이름은 최영수. 5회차 입역자. 귀환선 안에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해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지 못했다. 복도의 게시판에 사망 통지서가 아직 붙어 있었다. 누구도 떼지 않았다. 종이가 습기에 눌어붙어 있었다. 복도의 바닥이 쇠격자여서 발소리가 울렸다. 정호의 발소리가 예전과 달랐다. 가벼웠다. 발바닥에서 격자를 미는 힘이 약해진 것이었다.

정호는 검진실 앞에 멈춰 섰다. 문에 '입역 후 귀환 의무 검진'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의사 나현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나현이 정호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정호의 얼굴을 훑었다. 시선이 정호의 눈에서 멈췄다.

“동공 색이 변했네.”

정호가 거울을 찾았다. 나현이 탁자 위의 작은 거울을 건넸다. 정호가 거울을 들여다봤다. 홍채가 원래 갈색이었다. 지금은 갈색 안에 붉은 점이 흩어져 있었다. 홍채의 멜라닌 구조가 변한 것이었다. 영역 안쪽에서는 분자 결합의 에너지 준위가 다르기 때문에, 색소 단백질의 접힘 구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밖으로 나오면 원래대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나현이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주사 바늘이 정맥을 뚫을 때 통증이 컸다. 영역 안에서는 통증 수용체의 역치가 높아져 있었다. 밖에서는 역치가 원래대로 돌아와야 했지만, 피부가 바늘에 찔리는 순간 정호는 이를 악물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에 반응하지 않았다. 역치가 낮아져 있었다. 돌아간 게 아니라 반대로 변한 것이었다.

“4번째 입역이지?”

나현이 물었다. 모니터에 정호의 채굴 기록이 떠 있었다.

“응.”

“3번째까지는 검진 수치가 복원됐는데. 이번엔.”

나현이 모니터를 정호 쪽으로 돌렸다. 혈액 내 헤모글로빈의 산소 결합 곡선이 표시돼 있었다. 정상 곡선과 정호의 곡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정호의 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산소 친화도가 올라간 것이었다. 영역 안에서는 산소 분자의 결합 에너지가 달라서,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더 쉽게 붙잡는 방향으로 적응했다. 밖에 나오면 반대가 돼야 했다. 하지만 정호의 헤모글로빈은 영역 안의 결합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구 대기압에서 이 곡선이면.”

나현이 말을 끊었다. 정호가 봤다.

“말해.”

“조직에 산소 공급이 안 돼. 세포가 산소를 못 받아.”

정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지구에 못 돌아간다는 거야?”

나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모니터를 봤다. 정호도 모니터를 봤다. 곡선이 화면에서 빛나고 있었다. 두 곡선 사이의 거리가 정호와 지구 사이의 거리였다. 밀리미터 단위의 그래프 위에서, 정호의 몸이 지구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정호는 검진실을 나와 화물 구역으로 갔다. 건곤에서 하역된 채굴물이 컨테이너에 담겨 있었다. 컨테이너의 관찰창을 통해 안을 봤다. 영역 안에서 캐낸 광석. 영역 내부에서는 자줏빛으로 빛나던 것이 여기서는 검은 돌덩이에 불과했다. 영역 안쪽에서 이 광석은 전도율이 구리의 340배였다. 상온 초전도체. 밖으로 가져오면 전도율이 일반 현무암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리 상수가 다른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소재. 그래서 영역 안에서 가공까지 끝내야 했고, 영역 안에서 오래 머물러야 했고, 오래 머물수록 몸이 바뀌었다. 영역 안에서의 채굴은 일종의 거래였다. 소재를 얻는 대신 몸을 내놓는 거래. 문제는 거래의 조건이 누적된다는 것이었다. 1회차에는 피부 색소가 바뀌고, 2회차에는 감각 역치가 이동하고, 3회차에는 체온 조절이 흔들리고, 4회차에는 혈액의 화학이 달라졌다. 5회차 이후의 기록은 중계소 의무실의 잠긴 서류함 안에 있었다. 정호는 그 서류함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열어본 적은 없었다. 열고 싶지 않았다.

정호는 화물 관리소의 데스크 앞에 섰다. 데스크 뒤에 관리원 석진이 앉아 있었다. 석진이 채굴물의 중량과 순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84킬로그램, 순도 92퍼센트.”

석진이 전표를 내밀었다.

“정산은 본사 송금 기준으로 14일 뒤에.”

정호가 전표를 받았다. 금액을 봤다. 기본급 포함 4,200만 원. 딸의 수술비가 1억 2,000만 원이었다. 3번의 입역으로 7,800만 원을 모았다. 이번 것을 합하면 1억 2,000만 원. 딱 맞았다. 정호의 손가락이 전표 위에서 멈췄다. 숫자를 다시 봤다. 1억 2,000만 원. 수술비. 딸.

정호는 숙소로 돌아갔다. 좁은 방이었다. 침대와 탁자. 탁자 위에 사진이 한 장 세워져 있었다. 딸 유나의 사진. 유나는 올해 9살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2년 전이었다. 출발 전날 병원 로비에서 유나의 손을 잡았다. 유나의 손이 작았다. 손가락이 가늘었다. 심장에 결손이 있는 아이는 손끝이 차가웠다. 정호는 유나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따뜻하게 만들어 줬다. 그때의 체온은 36.5도였다. 지금은 35.9도. 정호의 손이 유나의 손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선천성 심장 판막 결손. 지구의 전문 의료 시설에서만 가능한 수술이었다. 정호가 채굴선 기사가 된 이유. 정호는 사진을 들어 봤다. 유나의 얼굴이 또렷했다. 정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홍채의 붉은 점. 나현이 말한 산소 결합 곡선. 지구에 돌아가면 조직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몸.

지구에 돌아가야 했다. 유나의 수술에 서명해야 했다. 보호자 동의서. 원격으로는 불가능했다. 직접 서명. 통신 지연이 6시간이 넘는 거리에서는 전자 서명의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정호가 직접 지구에 가야 했다. 하지만 정호의 몸은 이미 지구의 물리 법칙에 맞지 않았다. 정호는 탁자 위에 팔을 올려놓고 손등을 봤다. 핏줄의 색이 평소보다 어두웠다. 산소가 제대로 결합하지 않는 헤모글로빈이 피를 검게 만들고 있었다. 정호는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봤다. 손금이 또렷했다. 피부가 얇아진 탓이었다.

정호는 나현의 검진실로 다시 갔다. 야간이었다. 복도의 조명이 어두웠다. 검진실의 문이 잠겨 있었다. 정호가 노크했다. 나현이 열었다.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내 몸을 되돌릴 방법이 있어?”

나현이 문을 열어 정호를 들였다.

“앉아.”

정호가 앉았다. 나현이 모니터를 켰다. 이전 채굴 기사들의 데이터가 떠올랐다.

“3회 이하 입역자는 전원 복원됐어. 4회 입역자가 7명인데, 그중 4명이 복원 실패.”

정호가 물었다.

“나머지 3명은?”

“2명은 부분 복원. 1명은 완전 복원. 근데 완전 복원된 사람이 5회차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현이 말을 멈췄다.

“어떻게 됐어?”

“돌아오지 못했어. 영역 안에서 심정지. 구조했을 때 체내 전해질 농도가 지구 기준의 4배였어. 영역 안의 물리 상수에서는 정상이지만, 구조선이 영역 밖으로 끌어냈을 때 심장이 멈춘 거야.”

정호의 등이 의자에서 떨어졌다. 앞으로 기울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체온도 바뀌어 있었다. 영역 안에서의 체온은 35.8도. 밖에서는 36.5도로 돌아와야 했지만, 정호의 체온은 35.9도였다. 경계에 걸쳐 있었다. 두 개의 물리학 사이에 정호의 몸이 끼어 있었다.

“복원 시도는 할 수 있어.”

나현이 말했다.

“산소 챔버에서 혈액 내 헤모글로빈의 결합 구조를 강제로 재조정하는 방법이 있어. 성공률은 높지 않아. 40퍼센트.”

정호가 물었다.

“실패하면?”

“산소 과부하로 폐부종. 또는 혈관 내벽 손상.”

정호의 손이 무릎을 잡았다.

“유나가 기다리고 있어.”

정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현이 정호를 봤다. 나현의 입이 닫혀 있었다.

정호는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배관이 보였다. 배관을 따라 냉매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호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을 천장 쪽으로 펼쳤다. 손가락 사이로 형광등 빛이 새었다. 빛이 아팠다. 눈이 적응하지 못했다. 정호는 손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정호는 중계소의 관측 데크에 갔다. 데크의 강화 유리를 통해 바깥이 보였다. 카이퍼 벨트의 얼음 파편들이 느리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 너머에 영역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경계에 표식이 없었다. 어느 지점에서 물리 상수가 바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서서히 바뀌었다. 10만 킬로미터에 걸쳐 미세 상수가 연속적으로 변했다. 건너는 동안은 몸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6주 동안 영역 안에서 일하고 나서야, 밖에 나왔을 때 몸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

관측 데크에 기사 한 명이 더 있었다. 박은이었다. 건곤보다 먼저 귀환한 채굴선 '함덕'의 기사. 박은의 오른손 피부색이 왼손과 달랐다. 오른손이 회백색이었다. 영역 안에서 오른손을 가공 장비에 오래 노출한 탓이라고 했다. 박은이 정호를 보고 말했다.

“5회차 가?”

정호가 고개를 저었다.

“돈이 됐어.”

박은이 유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6회차야.”

정호가 박은의 오른손을 봤다. 회백색 피부 아래로 핏줄이 보이지 않았다.

“손은?”

“안 돌아와. 감각도 없어. 근데 영역 안에서는 정상이야. 안에서만 살면 아무 문제 없어.”

박은이 유리에 오른손을 댔다. 차가운 유리에 피부가 닿았지만, 박은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밖에서는 죽은 손이고, 안에서는 살아 있는 손이야. 어디가 진짜지?”

박은이 손을 내리고 정호를 봤다.

“6회차 가는 이유가 뭐야?”

박은이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안에서가 더 편해. 밖에 나올 때마다 몸이 안 맞아. 거기가 더 나한테 맞는 것 같아.”

정호는 박은의 얼굴을 봤다. 피부에도 회백색 반점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목 옆, 관자놀이. 박은의 몸이 조금씩 다른 물리학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정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 너머를 봤다. 얼음 파편 하나가 느리게 회전하면서 빛을 반사했다. 빛이 붉은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영역이 가까운 곳이었다.

정호는 숙소로 돌아와 통신 단말을 켰다. 지구까지 편도 5.8시간. 메시지를 녹화했다.

“유나야. 아빠가 돈을 다 모았어. 수술 받을 수 있어.”

정호는 여기서 멈췄다. 다음 말을 해야 했다. 아빠가 돌아간다. 그 말을 해야 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돌아갈 수 있을지 몰랐다. 복원 치료 성공률 40퍼센트. 실패하면 폐부종. 정호는 녹화를 중단했다. 삭제하지 않았다. 반쯤 찍힌 메시지를 저장했다.

3일 뒤, 정호는 산소 챔버에 들어갔다. 나현이 외부에서 모니터링했다. 챔버는 유리와 금속으로 된 원통형 장치였다. 정호가 안에 누웠다. 챔버의 뚜껑이 닫혔다. 밀폐음이 울렸다. 산소 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21퍼센트, 30퍼센트, 45퍼센트. 정호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폐에 산소가 과량 유입되면서 폐포가 팽창했다. 갈비뼈 사이가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나현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들어왔다.

“심박 108. 혈중 산소 분압 상승 중. 어때?”

정호가 말했다.

“가슴이 뜨거워.”

산소 농도 60퍼센트. 정호의 시야가 하얘졌다. 시신경에 산소가 과잉 공급되면서 망막의 신호 처리가 왜곡됐다. 정호는 눈을 감았다. 감아도 하얬다. 눈꺼풀 너머로 빛이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망막 자체가 빛을 만들고 있었다. 심박이 귀에서 울렸다. 쿵. 점점 빨라졌다.

“심박 142. 폐포 압력 경계치. 정호 씨, 통증이 있으면 말해.”

정호의 손이 챔버 벽을 잡았다. 금속이 차가웠다. 이 감각. 지구에서 느끼던 감각인지, 영역에서 느끼던 감각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가슴 안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폐가 아니었다. 더 깊은 곳. 세포 하나하나가 두 가지 물리 법칙 사이에서 찢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호는 입을 열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목구멍의 근육이 수축하지 않았다. 산소 과잉 상태에서 성대 주변의 근육이 경직된 것이었다. 정호는 챔버 벽을 두 번 두드렸다. 약속된 신호. '중단해달라'는 뜻.

나현이 챔버를 열었다. 산소 농도를 내렸다. 정호가 기침했다. 피가 섞여 나왔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등이 구부러졌다. 횡격막이 경련하듯 수축했다. 나현이 정호의 등을 잡아 눕히고 입가를 닦았다. 거즈에 붉은색과 함께 검은색이 묻어 있었다. 검은색은 영역 안에서 변이된 혈액 성분이었다. 정호는 거즈에 묻은 검은색을 봤다.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기 몸이 만든 색이었다.

“중단해야 해.”

나현이 말했다.

“계속하면 폐가 못 버텨.”

정호가 누운 채 천장을 봤다. 챔버의 유리 너머로 검진실의 형광등이 보였다. 빛이 여전히 아팠다.

“결과는?”

나현이 모니터를 확인했다.

“부분 복원. 산소 결합 곡선이 약간 이동했어. 하지만 지구 정상 범위까지는 아직 멀어.”

정호는 챔버에서 나와 검진실 바닥에 앉았다. 등을 벽에 기댔다. 다리를 뻗었다. 바닥의 금속이 차가웠다. 나현이 정호 옆에 앉았다.

“한 번 더 하면 위험해.”

정호가 고개를 돌려 나현을 봤다.

“지구에 가야 해. 서명해야 해.”

나현이 정호의 눈을 봤다. 홍채의 붉은 점.

“지구 도착까지 4개월이야. 그 사이에 체내 환경이 지구 대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착륙 후 48시간 안에 장기 부전이 와.”

정호의 입이 닫혔다.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정호는 벽에 기댄 채 천장을 봤다. 검진실의 천장은 백색이었다. 영역 안의 채굴선 천장은 항상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영역 안의 빛은 눈이 편했고, 중력은 부드러웠고, 통증은 덜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맞지 않았다. 정호의 몸은 이미 거기에 더 맞는 몸이 되어 있었다. 박은의 말이 떠올랐다. 안에서가 더 편해.

정호는 밤에 통신 단말을 다시 켰다. 저장해둔 녹화를 재생했다. 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유나야. 아빠가 돈을 다 모았어. 수술 받을 수 있어. ' 거기서 끊겨 있었다. 정호는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도 바뀌어 있었다. 성대의 진동 주파수가 달라져 있었다. 예전보다 낮고 거칠었다. 유나가 이 목소리를 아빠의 목소리로 알아들을지. 정호는 녹화를 이어 찍기 시작했다.

“아빠가 조금 늦을 수도 있어. 근데 꼭 갈게.”

정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녹화를 멈추고 다시 재생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삭제했다. 다시 찍었다.

“아빠가 갈게. 기다려.”

이번에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정호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5.8시간 뒤에 유나에게 도착할 것이었다.

정호는 그날 밤 석진을 찾아갔다. 화물 관리소의 불이 켜져 있었다. 석진이 다음 출하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산금을 유나 계좌로 직접 보낼 수 있어?”

석진이 정호를 봤다.

“원래 본인 계좌로 가는데.”

“딸 계좌로 바꿔줘. 수술비로 쓸 거야.”

석진이 서류를 꺼냈다. 정호가 서명했다. 펜을 잡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필압이 약해져 있었다. 영역에서 바뀐 근섬유의 수축력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정호는 펜을 더 세게 잡았다. 서명이 흔들렸다. 이 서명은 유효했다. 여기서는. 석진이 서류를 받으며 정호의 서명을 봤다.

“손이 왜 그래?”

정호가 손을 내렸다.

“추워서.”

석진이 더 묻지 않았다. 서류를 접어 서류함에 넣었다.

정호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관측 데크를 지나갔다. 멈추지 않으려 했다. 발이 멈췄다. 유리 너머 카이퍼 벨트의 어둠이 있었다. 그 너머에 영역. 박은이 말했다. 안에서는 살아 있는 손. 밖에서는 죽은 손. 정호는 유리에 손을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손가락 끝에서 감각이 왔다. 아직은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정호는 숙소에 돌아와 나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2차 복원 치료 신청합니다. ' 답이 3분 뒤에 왔다. '폐 출혈 위험이 높습니다. ' 정호가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 나현의 답이 한동안 오지 않았다. 7분 뒤에 왔다. '내일 0800. '

정호는 침대에 누워 유나의 사진을 봤다. 사진 속 유나가 웃고 있었다. 정호는 사진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사진의 무게가 느껴졌다. 가벼운 종이. 하지만 가슴 위에서 무겁게 눌렸다. 정호는 천장을 봤다. 배관의 냉매 소리가 흘렀다. 정호는 왼손을 들어 형광등 빛에 비춰 봤다. 손가락 사이로 빛이 새었다. 빛이 아직 아팠다. 정호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내일 아침 챔버에 다시 들어갈 것이었다. 폐가 버틸지 알 수 없었다. 버티면 지구로 갈 것이었다. 4개월의 귀환 비행 동안 몸이 지구에 맞게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돌아오지 않으면 착륙 후 48시간. 48시간 안에 유나의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었다. 정호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빛 사이로 손가락이 열렸다 닫혔다. 아직 움직였다.

돌아갈 수 없는 몸으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은, 사랑인가 자기 파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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