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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폐막이 사라진 뒤

2026. 3. 10. · 9,047자 · 약 11분

차폐막이 사라진 뒤 썸네일
17

선체의 경고음이 울리기 전에 선장 유진의 왼쪽 팔뚝이 먼저 반응했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당기는 감각.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팔이 선체 벽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유진은 팔을 잡아당기며 계기판을 봤다. 자기차폐막 출력 37퍼센트. 12시간 전에는 82퍼센트였다. 차폐막이 죽어가고 있었다. 탐사선 '가람'은 목성 궤도를 지난 지 14개월째였다. 지구에서 7.8천문단위. 구조 요청을 보내도 신호가 도착하는 데 65분, 답신이 오는 데 65분. 실질적으로 혼자였다. 가람의 선체는 길이 94미터의 원통형이었다. 6명의 승무원이 이 금속 통 안에서 26개월째 살고 있었다. 자기차폐막은 선체 외부를 감싸는 초전도 코일이 만드는 자기장이었다. 이 자기장이 태양풍과 은하 우주선을 편향시켜 승무원을 보호했다. 차폐막이 사라지면 선체는 방사선에 벌거벗은 채로 노출됐다. 유진의 팔뚝이 당기는 것은 이미 방사선이 침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경고음이 울렸다. 3단계 방사선 경보. 선체 전체에 붉은 비상등이 켜졌다. 복도의 스피커에서 자동 음성이 흘러나왔다. '차폐막 출력 임계치 이하. 승무원은 방사선 보호 절차를 시행하십시오. ' 유진은 그 음성을 들으며 걸었다. 보호 절차. 가람에는 방사선 대피소가 없었다. 차폐막 자체가 대피소였다. 차폐막이 없으면 선체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었다.

유진은 의료실로 갔다. 복도의 조명이 비상 모드로 전환돼 바닥에 붉은 유도등만 켜져 있었다. 의료실 문을 열자 의료 담당 세하가 현미경 앞에 앉아 있었다. 세하의 손가락 끝이 보랏빛으로 변색돼 있었다. 세하가 고개를 들었다.

“내 손가락 좀 봐.”

세하가 왼손을 펼쳤다. 검지와 중지의 첫 번째 마디가 자줏빛이었다. 피부 아래에서 뼈의 윤곽이 비정상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마치 뼈가 팽창한 것처럼. 세하가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관절이 뻑뻑하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구부러질 때 미세한 소리가 났다. 뼈와 연골 사이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 정상적인 관절음이 아니었다.

“방사선 노출 후 48시간째야. 골수 세포가 이상 증식하고 있어. 근데.”

세하가 현미경의 모니터를 유진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 세포 조직의 확대 이미지가 떠 있었다. 뼈 조직의 결정 구조가 바뀌어 있었다. 일반적인 수산화인회석 구조가 아니었다. 결정 격자 사이에 철 원자가 끼어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유진이 물었다. 세하가 답했다.

“모르겠어. 방사선이 골수 세포의 미네랄 대사를 변형시킨 거야. 뼈가 철을 흡수하고 있어. 혈중 철 농도가 정상의 8분의 1로 떨어졌어.”

유진은 자기 팔뚝을 봤다. 소매를 걷었다. 피부 아래에서 뼈의 윤곽이 또렷했다. 세하의 손가락처럼 자줏빛은 아니었지만, 피부가 얇아진 것처럼 뼈가 가까이 느껴졌다. 팔을 선체 벽에 가까이 가져가면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유진의 뼈가 자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하가 유진의 팔에 센서를 갖다 댔다. 화면에 수치가 떴다. 골밀도는 정상 범위였지만, 조직 내 철 농도가 정상의 17배. 세하가 센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6명 전원이 같은 수준의 노출을 받았어. 차이는 개인별 철 대사 속도뿐이야.”

유진이 물었다.

“증상이 가장 빠른 사람은?”

세하가 자기 손가락을 봤다.

“나야.”

차폐막이 붕괴되면서 쏟아진 우주방사선이 뼈의 결정 구조를 바꾸고 있었다.

차폐막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유진이 엔지니어 태민과 함께 차폐막 발생 장치를 점검했을 때, 초전도 코일 3개 중 2개가 미세 균열로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태민이 코일의 단면을 보여줬다. 금속 표면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코일을 교체해야 하는데.”

태민이 공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비 코일이 없어. 이 합금은 지구에서만 만들 수 있어. 니오븀-주석 초전도 합금.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야.”

태민의 손에 기름때와 냉각제가 섞여 묻어 있었다. 12시간 동안 차폐 장치 안에서 작업한 흔적이었다. 태민의 눈 밑에도 자줏빛 변색이 시작되고 있었다. 장치 내부에서 더 많은 방사선에 노출된 것이었다. 유진이 균열된 코일을 만졌다. 차가운 금속이 장갑 너머로 느껴졌다.

“이 합금의 핵심 성분이 뭐야?”

태민이 답했다.

“니오븀, 주석, 그리고 자성을 띠는 철 합금 매트릭스.”

유진의 손이 코일 위에서 멈췄다. 철 합금 매트릭스. 유진은 자기 팔뚝을 봤다. 뼈 안에서 철이 결정 구조를 바꾸고 있었다.

유진은 의료실로 돌아갔다. 세하에게 물었다.

“내 뼈에서 변이된 조직을 추출할 수 있어?”

세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3초간 침묵.

“뭐라고?”

“변이된 골조직. 철이 결합된 결정 구조. 이걸 추출해서 코일 수리에 쓸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세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유진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지만, 눈이 올려다보는 각도가 날카로웠다.

“네 뼈를 깎아서 선체에 붙이겠다고?”

유진이 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폐막 출력 수치를 태블릿에 띄워 세하 앞에 놓았다. 28퍼센트. 1시간 전보다 9퍼센트 떨어져 있었다.

“12시간 안에 차폐막이 완전히 꺼져. 꺼지면 선체가 방사선을 그대로 받아. 승무원 6명 전원이 72시간 안에 치사량에 도달해.”

세하가 태블릿을 봤다. 숫자를 봤다. 손가락의 자줏빛 변색을 봤다.

“추출은 가능해. 장골능에서 채취하면 한 번에 15그램 정도. 근데 유진, 그 조직이 초전도 합금을 대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유진이 말했다.

“태민한테 확인해볼게.”

태민의 분석은 4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차폐막 출력은 19퍼센트까지 떨어졌다. 태민이 결과를 가져왔을 때 손에 든 시료 용기 안에 세하의 손가락에서 채취한 변이 골조직 0.3그램이 들어 있었다. 태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자성이 있어. 그것도 강한 자성. 초전도 합금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코일의 균열 부위를 채우는 충전재로는 쓸 수 있어. 문제는 양이야.”

유진이 물었다.

“얼마나 필요해?”

“코일 2개를 수리하려면 최소 120그램. 한 사람에게서 채취할 수 있는 양이 15그램이면 8명분이 필요한데, 우리는 6명이야.”

유진이 계산했다. 6명에게서 각각 20그램씩 채취하면 120그램. 장골능 한 곳에서 15그램. 나머지 5그램은 다른 부위에서. 늑골. 또는 경골.

유진은 승무원을 모았다. 좁은 회의실에 6명이 앉았다. 유진, 세하, 태민, 항법사 도윤, 통신사 지아, 생명유지 기술자 하은. 유진이 상황을 설명했다. 차폐막 붕괴. 코일 균열. 방사선 노출로 변이된 골조직이 수리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환기 장치의 소리만 흘렀다. 6명의 얼굴에 비상 조명의 붉은빛이 걸려 있었다. 누구의 손등에도, 누구의 관자놀이에도, 자줏빛 변색이 시작돼 있었다. 변이는 이미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뼈를 깎아서 선체를 고치자는 거야?”

유진이 끄덕였다. 지아가 물었다.

“아프겠지?”

세하가 답했다.

“국소 마취 하에 진행하면 시술 중 통증은 최소화할 수 있어. 하지만 채취 후 해당 부위의 구조적 강도가 떨어져. 장골능에서 15그램을 채취하면 골반의 하중 지지 능력이 30퍼센트 감소해. 추가로 늑골에서 5그램을 채취하면 흉곽이 약해지고.”

하은이 말했다.

“전원이 다 내야 하는 거야?”

유진이 답했다.

“아니. 내가 먼저 하겠어.”

유진은 일어섰다.

“나에게서 먼저 채취하고, 그 조직으로 시험 수리를 해. 효과가 확인되면 그때 자원을 받겠어.”

세하가 유진의 장골능에서 골조직을 채취하는 데 47분이 걸렸다. 국소 마취를 했지만, 드릴이 뼈에 닿는 진동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유진은 천장을 봤다. 의료실의 조명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진동이 멈췄을 때, 세하의 장갑에 붉은색과 자줏빛이 섞인 것이 묻어 있었다. 추출된 골조직이 시료 용기에 담겼다. 유진은 일어나려 했다. 왼쪽 골반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날카롭지 않았다. 깊고 둔한 통증. 뼈가 빠진 자리에서 올라오는 공허함 같은 것이었다. 유진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태민이 추출된 조직을 코일의 균열 부위에 충전했다. 유진은 태민 옆에 서서 작업을 지켜봤다. 왼쪽 다리에 체중을 실으면 골반에서 통증이 왔다. 오른쪽 다리로 무게를 옮겼다. 태민이 충전재를 가열해 균열에 녹여 넣었다. 가열된 골조직에서 냄새가 났다. 뼈가 타는 냄새. 유진의 뼈가 타는 냄새. 단백질이 열에 분해되면서 나는 냄새와 금속이 산화되면서 나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유진은 숨을 참았다. 입 안이 말랐다. 목구멍이 조였다. 태민이 냉각 후 코일의 전도율을 측정했다.

“작동해.”

태민이 말했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차폐막 출력을 63퍼센트까지 올릴 수 있어. 두 번째 코일까지 수리하면 80퍼센트 이상.”

63퍼센트면 치사량 이하. 살 수 있었다. 유진은 태민의 보고를 듣고 의료 침대 위에서 고개를 돌렸다. 통증이 골반에서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차폐막이 살아나고 있었다. 유진의 뼈가 선체를 지키고 있었다.

나머지 승무원들이 자원했다. 도윤이 먼저 왔다. 세하가 채취하는 동안 도윤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시술 후 의료실을 나갈 때 벽에 손을 짚었다.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지아는 시술 중에 울었다. 소리 없이.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 하은은 시술 전에 유진에게 물었다.

“이게 끝이야? 한 번이면 되는 거야?”

유진은 답하지 못했다. 코일의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유진은 하은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창밖을 봤다. 통로 끝의 작은 관측창으로 별이 보였다. 별이 깜빡이지 않았다. 대기가 없으니까. 빛이 직선으로 왔다. 굴절 없이. 차갑고 정확한 빛. 유진은 그 빛을 보면서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을 떠올렸다. 딸이 유진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딸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졌다. 3살의 몸무게. 지금은 13살이 됐을 딸의 무게를 유진은 알지 못했다. 유진은 그 기억을 밀어내고 자기 몸속에서 뼈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뼈가 광물이 되고 있었다. 인간의 뼈가 선체의 재료가 되고 있었다. 유진은 창에서 시선을 떼고 하은을 봤다.

“최선을 다할게.”

두 번째 코일 수리가 끝났을 때 차폐막 출력이 78퍼센트로 올라갔다. 승무원 6명 전원이 골조직을 제공한 뒤였다. 유진은 자기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장골능에서 15그램, 오른쪽 11번 늑골에서 7그램. 총 22그램의 뼈가 빠져 있었다. 왼쪽 골반에 체중을 실으면 깊은 통증이 올라왔고, 오른쪽 흉곽을 만지면 갈비뼈 사이에 함몰된 부분이 느껴졌다. 세하가 유진의 골밀도를 측정했다. 채취 부위의 골밀도가 정상의 40퍼센트. 강한 충격을 받으면 골절될 수 있는 수치.

3일 후, 차폐막 출력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충전재로 사용한 골조직이 코일의 극저온 환경에서 미세 수축을 일으켰다. 생체 조직이 영하 269도의 극저온에서 수축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예비 재료가 없었다. 균열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출력 71퍼센트. 68퍼센트. 하루에 3퍼센트씩 떨어졌다. 태민이 계산했다.

“10일 뒤에 다시 위험 수준이야. 추가 충전이 필요해.”

유진이 물었다.

“얼마나?”

“60그램.”

유진은 승무원들의 상태를 봤다. 6명 모두가 첫 번째 채취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도윤은 왼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지아는 깊은 숨을 쉬면 흉곽에서 통증이 와서 얕은 호흡만 하고 있었다. 지아의 흉곽에서 채취한 늑골 조각이 지금 코일 안에서 자기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아가 숨 쉴 때마다 아파하는 이유가 선체 밖에서 방사선을 막고 있었다. 하은은 의자에 앉을 때 골반을 감싸며 천천히 내려앉았다.

유진은 세하에게 갔다.

“나한테서 더 채취해.”

세하가 유진을 봤다. 세하의 눈 밑에 그늘이 져 있었다.

“어디서?”

“왼쪽 경골. 그리고 오른쪽 장골능에서 2차 채취.”

세하의 손이 기구 위에서 멈췄다.

“경골에서 채취하면 걸을 수 없게 돼.”

“알아.”

“왼쪽 다리를 잃는 거야.”

“다리 하나 잃고 6명이 사는 거야.”

유진의 목소리가 평탄했다. 평탄함을 유지하기 위해 턱에 힘을 줘야 했다. 세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진의 얼굴을 봤다. 유진의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세하가 마취제를 꺼냈다. 유진은 의료 침대에 누우며 천장을 봤다. 의료실의 천장에는 환기 덕트의 그릴이 보였다. 공기가 순환하는 소리가 났다. 선체 안에서 유일하게 멈추지 않는 소리. 유진은 바지를 걷었다. 왼쪽 정강이가 드러났다. 피부 아래 경골의 윤곽이 뚜렷했다. 자줏빛이 이미 올라와 있었다. 변이가 진행 중인 뼈. 유진은 자기 다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봤다. 이 다리로 걸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세하가 마취 부위를 소독했다. 소독액이 차가웠다. 유진은 천장의 환기 그릴을 세기 시작했다. 7개. 7개의 그릴 사이로 공기가 흘렀다. 이 공기를 순환시키는 시스템도, 이 선체를 지키는 차폐막도, 자기 뼈로 만드는 것이었다. 유진은 세기를 멈추고 눈을 감았다. 마취가 퍼지기 시작했다. 왼쪽 다리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졌다.

경골 채취에 1시간 23분이 걸렸다. 유진은 시술 중에 천장의 조명을 봤다. 조명이 흐려졌다 밝아졌다. 의식이 오갔다. 드릴의 진동이 무릎을 지나 대퇴부까지 전해졌다. 뼈가 깎이는 소리가 몸 안에서 울렸다.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몸속에서 나는 소리. 진동이 두개골까지 올라왔다. 유진은 눈을 떴다. 천장의 조명 사이로 세하의 얼굴이 보였다. 세하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유진은 이를 깨물었다. 잇몸에서 피가 났다. 철 맛이 혀에 번졌다. 시술이 끝났을 때 유진은 왼쪽 다리를 움직여 봤다. 발가락은 움직였다. 하지만 무릎 아래에서 지지력이 사라져 있었다. 다리를 들어올릴 수는 있었지만, 체중을 실을 수 없었다.

태민이 추가 충전재를 코일에 적용하는 동안, 유진은 의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왼쪽 다리가 고정 장치에 묶여 있었다. 천장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얼굴이 달라 보였다. 눈 밑의 그늘이 깊었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뼈에서 철이 빠져나가면서 혈중 철 농도가 떨어진 탓이었다. 빈혈. 유진의 손톱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입술도 색이 빠져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유진이 아는 자기 얼굴과 달랐다. 도윤이 의료실에 들어왔다. 유진의 왼쪽 다리에 달린 보조 장치를 보고 멈칫했다.

“선장.”

도윤이 말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유진이 말했다.

“괜찮아. 작동은 해.”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빨갛게 되어 있었다. 유진은 도윤의 등을 봤다. 도윤도 절고 있었다. 둘 다 절면서 같은 선체 안을 걸었다. 유진은 도윤의 등이 멀어지는 것을 봤다. 도윤의 걸음이 불균형했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걸음. 유진도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뼈가 줄어든 사람들이 뼈로 수리한 선체 안을.

차폐막 출력이 83퍼센트로 올라갔다. 태민이 보고했다.

“이번 충전재는 이전보다 안정적이야. 수축률이 낮아. 20일은 버틸 수 있어.”

20일. 유진은 계산했다. 지구까지 돌아가려면 11개월. 20일마다 충전이 필요하면 16번. 매번 60그램. 총 960그램. 6명에게서 나눠 채취하면 1인당 160그램. 유진은 자기 몸에서 이미 빠진 양을 더했다. 22그램 플러스 35그램. 57그램. 앞으로 103그램을 더 내야 했다. 경골, 비골, 늑골, 척추 가시돌기. 세하가 채취 가능한 부위 목록을 만들었다. 유진의 몸에서 뼈를 빼낼 수 있는 곳의 목록. 그 목록이 유진의 침대 옆 태블릿에 떠 있었다. 유진은 목록을 봤다. 자기 몸의 설계도를 보는 것 같았다. 어떤 부품을 빼도 기능이 유지되는지를 따지는 설계도. 세하가 목록 옆에 주석을 달아 놓았다. '경골 — 보행 불가', '비골 — 보행 가능, 불안정', '늑골 3-6번 — 흉곽 약화, 호흡 제한', '척추 가시돌기 — 자세 유지 기능 저하'. 각 부위 옆에 채취 가능 중량이 적혀 있었다. 유진은 그 숫자들을 더했다. 자기 몸에서 더 빼낼 수 있는 총량. 87그램. 그 뒤에는 더 이상 빼낼 곳이 없었다. 나머지는 다른 승무원들에게서 나와야 했다.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왼쪽 다리에 보조 장치를 달고 거울을 봤다. 보조 장치의 금속 프레임이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무릎부터 발목까지. 금속이 피부 위에 밀착돼 있었다. 어디까지가 장치이고 어디까지가 다리인지 경계가 흐릿했다. 유진은 복도를 걸었다. 다리가 금속 장치의 힘으로 움직였다. 자기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복도에서 하은을 마주쳤다. 하은이 유진의 다리를 보고 시선을 빠르게 올렸다. 유진의 얼굴을 봤다.

“선장, 식사하셨어요?”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하은이 무언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유진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금속 보조 장치가 바닥을 딛을 때마다 가벼운 소리가 났다. 탁. 유진의 발소리와 장치의 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통신실에 들어가 지구에 메시지를 보냈다. 상황 보고. 차폐막 수리 방법. 골조직 채취. 답신이 130분 뒤에 올 것이었다. 유진은 통신실의 창으로 바깥을 봤다. 목성이 이미 작아져 있었다. 앞에는 소행성대 너머의 어둠이 있었다. 지구는 그 어둠 뒤에 있었다. 11개월 뒤에. 유진은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통신실에 앉아 있었다. 답신을 기다리는 1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왼쪽 다리의 보조 장치가 의자 아래에서 금속 소리를 냈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작은 금속음이 났다. 유진은 자기 왼손을 펼쳤다. 손바닥에 파란 정맥이 보였다. 피부가 얇아져 있었다. 혈중 철 농도가 떨어지면서 혈색소가 줄었다. 피가 연해지고 있었다. 유진의 피가. 뼈에서 철이 빠져나가 선체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유진은 손을 쥐었다. 손가락 관절이 뻣뻣했다. 주먹이 완전히 쥐어지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에 틈이 남았다.

유진은 창에서 시선을 떼고 자기 왼손을 봤다. 손등의 뼈가 피부 밑에서 도드라져 있었다. 자줏빛이 손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변이가 퍼지고 있었다. 방사선은 차폐막이 83퍼센트까지 올라간 뒤에도 완전히 차단되지 않았다. 17퍼센트의 틈으로 여전히 방사선이 스며들고 있었다. 뼈는 계속 변하고 있었다. 채취할 수록 새 뼈가 변이된 상태로 재생됐다. 자성을 띤 뼈가 자라고, 그 뼈를 다시 깎아 선체에 넣고, 또 자라고, 또 깎는 것. 유진의 몸이 선체의 부품 공장이 되고 있었다. 유진은 손가락을 구부렸다. 관절이 뻣뻣했다. 뼈가 변하고 있었다. 유진이 다음에 선체에 줄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 몸을 해체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행위는 어디까지가 희생이고 어디서부터가 자기 파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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