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칸 3번의 경보가 울린 것은 교대 시간이 지난 직후였다. 혜린은 산소 모니터링 콘솔에서 숫자가 흔들리는 것을 먼저 봤다. 탱크 압력 게이지가 2.3기압에서 1.8기압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혜린은 콘솔 위에 올려놓았던 머그컵을 밀어 두고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를 뛰었다. 슬리퍼가 철제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렸다. 선체의 산소 총량은 리터 단위로 관리됐다. 0.1리터의 오차도 누적되면 귀환 궤도에서 의미가 달라졌다.
화물칸 3번의 해치를 열자 냉기가 얼굴을 때렸다. 속눈썹에 즉시 서리가 끼었다. 제로늄 냉각 탱크의 외벽에 하얀 결정이 층층이 달라붙어 있었고, 서리 사이로 가는 금이 보였다. 길이 14센티미터. 금의 끝에서 액체산소가 안개처럼 기화하며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개가 바닥을 따라 퍼지며 발목을 감쌌다. 혜린은 비상 밀봉 패치를 벽면 비상함에서 떼어 금 위에 눌렀다. 패치가 외벽에 달라붙는 데 8초가 걸렸다. 기화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혜린은 장갑을 끼지 않은 손가락 끝으로 패치 가장자리를 눌러 밀착시켰다. 금속 표면의 냉기가 손끝을 태우듯 파고들었다. 5초 뒤 패치가 완전히 밀착됐다. 손을 떼고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엄지와 검지, 중지 끝의 감각이 사라져 있었다. 피부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탱크 내부 온도 영하 187도. 제로늄의 비활성화 임계점은 영하 170도.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방금 유출된 냉각용 산소의 양이 문제였다. 혜린은 화물칸 콘솔을 열고 유출량을 계산했다. 경보가 울린 시점부터 밀봉까지 약 4분. 그 사이에 빠져나간 액체산소는 약 23리터. 혜린은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멈췄다. 23리터. 머릿속에서 숫자가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귀환까지 버틸 한 사람의 숨. 혜린은 마른입술을 핥았다.
바닥에 핏자국이 보였다. 혜린은 그제야 화물칸 구석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세민이었다. 경보가 울렸을 때 정기 점검 중이었던 것이다. 탱크의 금이 터지면서 분출된 냉기에 몸이 밀려 고정 볼트에 부딪힌 듯했다. 혜린은 내선 단말을 집어 들었다.
“의료실. 화물칸 3번에 부상자.”
브릿지에 도착했을 때 기준이 항법 콘솔 앞에 서 있었다. 경보 로그를 이미 확인한 듯했다. 혜린이 숫자를 말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유출량.”
“23리터. 밀봉 완료. 추가 유출 없음.”
기준이 콘솔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항법 데이터가 떴다. 귀환까지 138시간. 궤도 변경 불가. 연료 잔량은 감속용으로 정확히 할당되어 있었다.
“선체 총 산소 잔량.”
“호흡용으로 580리터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5명이 138시간 동안 숨 쉬면 579.6리터가 필요하니, 이론상 마진은 0.4리터고요.”
“냉각용은.”
“별도 탱크. 340리터였는데 유출 후 317리터. 냉각에 필요한 최소량 318리터.”
혜린이 멈췄다.
“1리터 부족해요. 보충하려면 호흡용에서 가져와야 하고, 그러면 호흡 마진이 마이너스 0.6리터.”
“마이너스 0.6이면.”
“마지막 43분 동안 다섯 명 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계산이에요. 아니면… 한 명이 22시간 분량의 산소를 포기하면, 모두가 살고 냉각도 유지돼요.”
기준이 콘솔에서 손을 뗐다. 브릿지 천장의 환기구에서 나오는 공기가 그의 머리카락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전원 브릿지 소집. 15분.”
유라가 의료실에서 올라왔다. 손에 핏자국이 묻은 장갑을 벗고 있었다.
“세민이 어때.”
“갈비뼈 두 대 나가고, 오른쪽 폐가 쪼그라들었어.”
유라가 피 묻은 장갑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고정 볼트에 제대로 박았나 봐. 폐가 제 기능을 못 해.”
“산소 소비량은.”
유라가 혜린을 봤다.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저 상태로는 시간당 1.2리터는 써야 해. 정상 호흡량의 1.4배지. 여기서 공급을 줄인다고? 그럼 멀쩡한 폐까지 망가질걸.”
혜린은 계산을 다시 했다. 세민의 산소 소비가 정상보다 0.36리터 높으면 138시간 동안 추가 소비량은 약 50리터. 호흡용 마진은 이미 마이너스였다.
“인공 동면은.”
“장비가 없어. 이 선박은 화물선이야.”
유라의 말투는 단정적이었다. 닫힌 문 같았다.
혜린은 의료실 모니터를 열었다. 세민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산소 마스크가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있었고, 마스크 안쪽에 김이 서려 있었다. 호흡 한 번에 마스크가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 간격이 고르지 않았다.
15분 뒤 브릿지에 4명이 모였다. 세민은 올 수 없었다. 혜린이 콘솔 화면에 숫자를 띄웠다.
“호흡용 산소 580리터. 5명, 138시간. 세민의 소비량 증가 포함, 총 필요량 629리터. 부족분 49리터. 동시에 냉각용도 1리터 부족.”
동혁이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서 들었다.
“냉각 탱크에서 빌려오면 안 돼?”
“냉각 잔량 317리터. 필요 최소량 318리터. 빌려올 여유가 없어요.”
“결국 둘 다 부족하다는 거잖아. 산소를 어디서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어쩌자고?”
기준이 앉은 채 말했다.
“선택지를 정리해.”
“첫째, 제로늄 냉각을 중단. 72시간 내 비활성화. 3개 대륙 전력망에 영향. 호흡용은 부족분 49리터가 그대로라 전원 감축 호흡. 둘째, 1명의 호흡을 중단. 해당 인원의 138시간분 116리터가 확보돼서 호흡 부족분과 냉각 보충분 모두 해결.”
동혁이 벽에서 등을 떼며 말했다.
“그러니까. 누가 죽을지, 지구가 정전될지.”
“정전이 아니라 전력망 붕괴야.”
기준이 정정했다.
“양자 공명 발전소 3기의 연료가 제로늄이고, 비축분은 6개월치. 이 화물이 도착 못 하면 6개월 뒤에 3개 대륙이 꺼져. 인구 42억.”
브릿지가 조용해졌다. 환기구의 바람 소리만 흘렀다. 혜린은 문득 자기 호흡 소리를 의식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얼마짜리인지 계산하게 될 줄은 몰랐다.
혜린은 의자에 앉은 채 콘솔 화면을 다시 봤다. 629리터. 580리터. 두 숫자 사이의 간극이 49리터였다. 49리터는 한 사람이 58시간 동안 들이쉬고 내쉬는 양이었다. 2일하고 10시간. 혜린은 콘솔 아래 서랍에서 비상 식량 바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이 없었다. 목이 막혀 삼키기가 어려웠다. 물을 마셨다. 물은 재활용수였다. 선내의 모든 것은 순환하고 있었다. 산소만 빼고.
동혁이 복도에서 혜린을 잡았다. 기관실 쪽 복도와 화물칸 쪽 복도가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둘 중 하나라고 했잖아. 진짜 그것밖에 없어?”
“지금 확인하려고요.”
“뭘.”
“규격서에 빈틈이 있는지.”
동혁이 교차점의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풀었다. 손을 내려 허벅지 옆에 붙였다.
“세민이 내 옆 침대야. 코 고는 소리가 3데시벨은 돼. 매일 밤 귀마개를 끼고 자.”
동혁이 잠깐 말을 끊었다. 복도의 유도등이 그의 턱 아래를 비추고 있었다.
“그깟 숫자 맞추자고, 그 코 고는 소리를 없애버릴 순 없는 거잖아. 안 그래?”
혜린은 대답하지 않고 화물칸 쪽으로 걸어갔다. 동혁의 발걸음 소리가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기관실을 지나갈 때 안을 들여다봤다. 동혁이 파이프라인 위에 올라앉아 태블릿을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에 배관 도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산화탄소 제거 시스템의 라인을 냉각 탱크에 우회 연결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 같았다. 혜린이 해치 앞에서 멈추자 동혁이 고개를 들었다.
“이산화탄소 출력의 일부를 냉각에 돌리면 어떨까 싶어서. 순도가 문제긴 한데.”
“제로늄 냉각에는 순수 산소만 써야 해요. 이산화탄소가 섞이면 탱크 내벽에 탄산 피막이 생겨요.”
동혁이 태블릿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럼 다른 거라도 찾아봐. 나도 찾아볼게.”
혜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화물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물칸 3번. 밀봉 패치 이상 없음. 탱크 표면의 서리가 다시 균일하게 끼어 있었다. 혜린은 탱크 옆 벽면에 부착된 화물 명세 단말기를 켰다. 제로늄 운송 규격서. 출항 전에 3번 읽은 문서였다. 냉각 온도 영하 190도 이하 유지. 이탈 시 72시간 내 비활성화.
이번에는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기술 부록 142쪽 중 121쪽. '제로늄 결정 구조 상전이 도표. ' 혜린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영하 190도 이하: 알파 결정. 양자 공명 효율 100퍼센트.
영하 170도에서 영하 190도 사이: 베타 결정. 양자 공명 효율 78퍼센트.
영하 170도 이상: 비결정. 비활성.
베타 결정. 78퍼센트. 규격서 본문의 '비활성화'는 영하 170도 이상만 해당됐다. 영하 170도에서 190도 사이에서는 결정 구조가 변하지만 양자 공명 자체는 가능했다. 누군가 이 구간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규격서를 쓴 사람이 100퍼센트가 아니면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혜린은 부록의 참고문헌 목록을 확인했다. 상전이 도표의 출처는 2068년 유럽 결정학 학회 논문이었다. 규격서 본문을 작성한 시점은 2071년. 3년의 시차. 본문을 쓴 사람이 부록의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은 것인지,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지는 규격서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영하 175도. 제로늄은 죽지 않는다. 효율이 떨어질 뿐. 혜린은 화면 위에서 떨리던 손가락으로 그 줄을 꾹 눌렀다. 데이터가 희미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냉각 산소 소비량을 다시 계산했다. 영하 190도 유지에 시간당 2.3리터. 영하 175도로 낮추면 시간당 1.4리터. 138시간 동안의 차이는 124리터. 호흡 부족분 50리터를 메우고도 74리터가 남았다.
혜린은 단말기 화면을 캡처했다. 동상이 걸린 손가락 세 개가 화면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브릿지로 돌아갔을 때 기준이 혼자 앉아 있었다. 혜린이 단말기 화면을 내밀었다.
“규격서 121쪽. 베타 결정 상태에서도 양자 공명이 가능해요. 효율 78퍼센트.”
기준이 화면을 봤다. 읽는 데 30초가 걸렸다.
“운송 규격 위반이야.”
“규격서에 있는 데이터예요.”
“본문이 아니라 부록이야. 운송 계약은 영하 190도 유지를 명시하고 있어.”
“그래도 발전소는 돌아가잖아요? 멈추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본사에서 반려하면? 지구에서 그걸 다시 식힐 방법이 있을 것 같나? 베타에서 알파로 되돌릴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지?”
혜린이 입을 다물었다. 부록에는 재전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없어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야. 발전소 3기의 출력이 22퍼센트 감소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병원, 정수 시설, 식량 저장고가 순서대로 멈춰. 추산 피해 인구 8,000만에서 1억 2,000만.”
혜린의 등이 차가워졌다. 의자에 앉았다.
“한 가지 더 있어요.”
기준이 고개를 돌렸다.
“부록의 도표는 순수 제로늄 기준이에요. 우리 화물은 2071-테티스산이고 불순물 함량 3.2퍼센트예요. 티타늄 산화물이 결정 격자를 안정화시키면 베타 상태에서도 효율이 78보다 높을 수 있어요. 샘플 1그램으로 공명 테스트를 돌리면 4시간이면 결과가 나와요.”
기준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통신 패널 앞에서 멈췄다. 지구 방향 통신은 편도 4시간이었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본사에 보내. 승인이 올 때까지 냉각은 영하 190도 유지. 지금부터 전원 호흡량 20퍼센트 감축. 시간당 0.67리터.”
“세민은요. 폐 허탈 상태에서—”
“유라한테 최소 유지량을 확인해.”
혜린은 브릿지를 나왔다. 복도의 조명이 비상 모드로 전환되어 바닥의 유도등만 켜져 있었다.
화물칸 3번에서 제로늄 샘플 1.2그램을 추출했다. 소형 진공 챔버에 넣고 온도를 영하 175도로 설정했다. 챔버의 냉각 모듈이 낮은 소리를 내며 가동됐다. 4시간. 혜린은 챔버 옆 바닥에 앉았다. 등을 탱크 외벽에 기댔다. 냉기가 등 전체로 스며들었다. 세민이 넘어진 자리에 핏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닦으려 한 흔적이 있었지만 볼트 나사 홈 사이에 갈색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유라가 화물칸에 내려왔다. 손에 보온 패드를 들고 있었다.
“손 좀 보여.”
혜린이 손을 내밀었다. 동상이 생긴 손가락 세 개가 붉게 부어 있었다. 유라가 패드를 감았다. 손끝에서 열이 돌기 시작했다. 따끔거렸다.
“세민은.”
“호흡량을 0.95리터로 제한했어. 선장 지시. 혈중 산소 포화도 89퍼센트. 90 이하가 위험 범위야.”
유라가 바닥에 앉았다. 혜린 옆에. 두 사람 사이에 챔버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혜린은 보온 패드를 벗기고 손가락을 구부려 봤다. 중지가 반박자 늦게 따라왔다.
“이봐, 혜린. 다들 산소 20퍼센트 줄이고 138시간을 버티면, 마지막 하루는 전부 흐느적거리는 시체나 마찬가지일 거야. 누가 감속 기동을 할 건데?”
“자동 시퀀스가 있어요.”
“자동 시퀀스가 실패하면?”
챔버의 온도 게이지가 영하 175.2도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혜린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구강 점막에 철 맛이 번졌다.
유라가 일어서며 말했다.
“동상 손가락, 12시간 뒤에 다시 봐야 해. 혈류가 안 돌면 조직이 괴사할 수 있어.”
“알겠어요.”
유라가 사다리를 올라갔다. 혜린은 혼자 남았다. 챔버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화물칸의 금속 벽면에 반사되어 울렸다. 세민의 핏자국 옆에 유라가 놓고 간 보온 패드 포장지가 떨어져 있었다. 혜린은 그것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3시간 47분 뒤 챔버에서 결과가 나왔다. 혜린은 화면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2071-테티스산 제로늄. 영하 175도. 베타 결정 상태. 양자 공명 효율 91퍼센트.
78이 아니라 91이었다. 불순물의 티타늄 산화물이 격자 구조를 안정화시킨 것이었다. 혜린은 결과를 저장하고 브릿지로 뛰어올라갔다.
기준이 결과를 확인했다. 얼굴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본사에 전송해.”
“전송하면 회신까지 8시간이에요. 그 사이에 세민이—”
“전송해.”
혜린은 데이터를 전송했다. 전파가 지구를 향해 날아갔다. 편도 4시간. 검토. 회신. 합계 8시간.
혜린은 의료실 모니터를 열었다. 세민의 혈중 산소 포화도가 88퍼센트에서 87퍼센트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스크 안쪽의 김이 서리는 간격이 느려지고 있었다.
혜린은 화물칸 3번으로 내려갔다. 냉각 시스템의 제어판을 열었다. 목표 온도를 영하 190도에서 영하 175도로 변경했다. 확인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경고창이 떴다. '운송 규격 이탈. 계속하시겠습니까. ' 혜린은 확인을 눌렀다.
냉각 모듈의 출력이 낮아지면서 소리가 변했다. 높은 웅웅거림이 한 옥타브 내려갔다. 탱크 표면의 서리가 가장자리부터 녹기 시작했다. 물방울이 탱크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절약된 산소가 호흡용 라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니터에서 호흡용 탱크 압력이 천천히 올라갔다.
의료실로 갔다. 세민의 산소 공급량을 시간당 1.2리터로 원래대로 돌렸다. 마스크 안의 김이 다시 고르게 서렸다. 세민의 가슴이 조금 더 깊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기준이 화물칸에 내려온 것은 20분 뒤였다. 탱크 표면에 서리 대신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고 혜린을 봤다.
“승인도 없이 바꿨군.”
기준의 말이었다. 진술이지 질문이 아니었다.
“네.”
“이유는.”
“세민의 산소 포화도가 87퍼센트로 떨어졌어요. 8시간을 기다리면 비가역적 뇌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기준이 탱크 옆에 섰다. 탱크 표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그의 부츠 옆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본사가 반려하면.”
“91퍼센트 효율이면 발전소 가동에 문제없습니다. 전력 감소는 9퍼센트 수준일 겁니다.”
“그걸 계산하는 건 본사지, 우리가 아니야.”
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준이 돌아서서 해치 쪽으로 걸어갔다. 사다리에 손을 올리고 멈췄다. 등을 보인 채 말했다.
“기록에는 내가 지시한 걸로 적어. 선장 권한으로 냉각 온도를 변경했다. 실험 결과에 근거해서. 산소 관리사의 독단이 아니라 선장 명령이었다. 그렇게 수정해.”
기준이 사다리를 올라갔다. 부츠가 금속 발판을 밟는 소리가 위로 멀어졌다. 혜린은 혼자 남은 화물칸에서 제어판의 로그를 열었다. '냉각 온도 변경 — 실행자: 산소 관리사 혜린. ' 혜린은 실행자 란을 수정했다. '선장 기준. ' 저장을 눌렀다.
통신 패널에서 수신 알림이 울린 것은 7시간 38분 뒤였다. 예상보다 빨랐다. 혜린은 브릿지로 올라갔다. 기준이 이미 메시지를 열고 있었다. 유라와 동혁도 그의 뒤에 서 있었다. 화면의 푸른 빛이 네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냉각 온도 변경 불허. 운송 규격 준수. 영하 190도 즉시 복원. 불이행 시 선장 직위 해제 및 전 선원 계약 해지. '
기준이 화면을 닫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브릿지에는 환기구의 바람 소리만 흘렀다. 동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개자식들.”
유라가 동혁의 팔을 잡았지만, 그는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기준은 의료실 쪽 복도를 잠시 보았다. 세민의 침대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다시 통신 패널로 돌아섰다.
“복원 안 해.”
혜린이 고개를 들었다. 기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이 주머니 안에서 제복 천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머니 바깥으로 힘줄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기준이 응답 필드에 타이핑을 시작했다. 혜린은 그의 어깨 너머로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를 읽었다. '실험 데이터 확인 결과 베타 결정 효율 91퍼센트. 선원 생명 보호를 위해 냉각 온도 변경을 유지함. 모든 책임은 선장에게 있음. '
기준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짧고 높은 전자음이 울렸다. 메시지가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기준이 브릿지를 나갔다. 그의 부츠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혜린은 혼자 남았다. 브릿지에는 고요가 흘렀다. 환기구의 낮은 소음과 제어판 내부에서 작게 떠는 계전기 소리뿐이었다. 혜린은 자신의 왼손을 들어 올렸다. 동상에 걸렸던 세 손가락 끝이 여전히 붉게 부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려, 항법 콘솔의 차가운 금속 표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감각이 무딘 피부 아래로 선체의 미세한 진동이 희미하게 전해져 왔다. 화면 위, 녹색으로 빛나는 산소 총량 숫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