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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후의 것들

2026. 3. 10. · 9,202자 · 약 11분

다만, 이후의 것들 썸네일
17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새벽이었다. 수신함에 알림이 떴을 때 은수는 잠들어 있었다. 침대 옆 단말기의 파란 불빛이 천장에 작은 원을 그렸다. 은수는 눈을 떴다. 방이 어두웠다. 커튼 사이로 가로등 빛이 가늘게 들어오고 있었다. 단말기의 파란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프록시마 발신. 수신 지연: 4.24년. 은수의 심장이 빨라졌다. 손을 뻗어 단말기를 집었다. 화면이 밝아졌다. 발신자: 현우. 은수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현우. 4년 전에 보낸 메시지가 지금 도착한 것이었다.

은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물을 한 잔 마셨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물잔을 싱크대에 놓고 손등을 봤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단말기를 부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화면의 불빛이 테이블 표면에 반사됐다. 은수는 의자에 앉아 메시지를 열었다.

'은수야. 여기는 밤 11시야. 너한테는 2059년 어느 날 아침에 도착하겠지. 프록시마 시간으로 내가 이걸 쓰는 건 2055년 3월 14일이야. 네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받았어. 너무 오래 전에 보낸 거라서, 아마 지금의 너는 그때와 많이 다르겠지. 나도 많이 달라졌어. 여기 중력이 지구의 1.1배라서 처음에 무릎이 아팠는데, 이제는 익숙해. 네가 보내준 사진, 아직 갖고 있어. 다만. '

메시지가 거기서 끊겨 있었다. '다만' 뒤에 아무것도 없었다. 은수는 화면을 내렸다. 추가 데이터가 없었다. 전송 용량 제한에 걸려 잘린 것인지, 현우가 거기서 멈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은수는 '다만'이라는 두 글자를 봤다. 두 글자가 화면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글자의 획이 선명했다. 현우의 손가락이 4년 전 프록시마의 어떤 방에서 이 두 글자를 눌렀을 것이었다. 그 뒤에 무엇을 쓰려다 멈춘 것인지.

은수는 단말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새벽 4시의 하늘이 검푸른색이었다. 별이 보였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맨눈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어두운 별이었다. 4.24광년. 빛으로 4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현우가 있었다. 은수는 2051년에 현우를 마지막으로 봤다. 8년 전이었다. 이민선 탑승구 앞에서 현우의 손을 잡았다. 현우의 손이 따뜻했다. 은수의 손이 차가웠다. 현우가 말했다.

“기다려.”

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가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세 걸음 만에 돌아봤다. 은수를 봤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돌아서서 걸어갔다. 은수는 통로가 닫힐 때까지 서 있었다. 탑승구의 금속 문이 닫혔다. 기밀 밀봉음이 울렸다. 이민선의 엔진이 저음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뜨거워졌다. 바닥이 떨렸다. 은수의 발바닥으로 진동이 올라왔다. 은수의 손이 허공에 남았다. 손가락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지나갔다.

그 뒤 8년 동안 두 사람은 빛의 속도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성간 통신 인프라는 2040년대에 구축됐다. 프록시마 궤도에 중계 위성 3기가 배치돼 있었다. 텍스트와 저해상도 이미지만 전송 가능했다. 음성과 영상은 대역폭 한계로 불가능했다.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대도 중계 위성의 각도에 따라 제한돼 있었다. 지구 시간 기준으로 매월 1일부터 5일까지, 하루 2시간씩. 통신 창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송수신이 이뤄졌다. 은수는 매월 1일 새벽에 단말기를 켜고 수신함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달에 수신함은 비어 있었다. 편지가 도착하는 달은 예측할 수 없었다. 중계 위성의 궤도 위치에 따라 전송 지연이 수주씩 달라졌다. 편지가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새벽. 은수는 그 불확실성에 익숙해져야 했다. 편지라는 표현이 맞는지 은수는 모르겠었다. 보내는 데 4년, 받는 데 4년. 한 번의 왕복에 8년이 걸렸다. 은수가 현우에게 보낸 첫 편지는 이민선이 출발한 날 밤에 썼다.

“잘 가. 도착하면 연락해.”

현우의 답장이 도착한 것은 4년 뒤였다.

“도착했어. 하늘이 빨개. 별이 크고 가까워.”

은수가 그 답장을 읽었을 때는 이미 현우가 프록시마에 도착한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은수가 답장을 보내면, 현우가 그것을 읽는 것은 또 4년 뒤. 은수가 답장을 쓸 때면, 현우가 원래 편지에서 물었던 질문이 이미 4년 전 질문이었다. 대답이 도착할 때쯤 질문은 8년 전의 것이 돼 있었다.

은수는 테이블 위의 단말기를 다시 들었다. 현우의 메시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네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받았어. 너무 오래 전에 보낸 거라서, 아마 지금의 너는 그때와 많이 다르겠지. ' 은수가 마지막으로 현우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2053년이었다. 6년 전. 그 편지에 은수는 뭘 썼을까. 은수는 보낸 편지함을 열었다. 2053년 7월 3일. '현우야. 요즘 비가 많이 와. 연구실에서 밤을 새는 날이 많아. 네가 없는 게 가끔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사진 하나 보낼게. 연구실 창에서 찍은 석양. 네가 좋아하던 색이야. '

은수는 화면을 내리고 천장을 봤다. 6년 전의 자기가 보낸 편지. 그 편지를 쓸 때 은수는 28살이었다. 지금은 34살. 6년 사이에 연구실을 옮겼고, 머리를 잘랐고, 현우가 아닌 사람과 2년을 보냈고, 그 사람과 헤어졌고, 다시 혼자가 됐다. 6년 전의 은수와 지금의 은수는 같은 사람인지. 현우가 읽은 것은 6년 전의 은수가 보낸 편지였다. 현우가 답장을 쓴 것은 4년 전이었다. 현우의 답장이 은수에게 도착하기까지 또 4년이 걸렸다. 지금 은수가 읽는 것은 4년 전의 현우가 6년 전의 은수에게 보내는 답장이었다.

은수는 부엌의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빡이며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어젯밤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가 있었다. 국물이 식어 기름막이 떠 있었다. 은수는 그것을 치우고 테이블을 닦았다. 행주가 축축했다. 손가락 사이로 물기가 느껴졌다. 은수는 단말기를 테이블 가운데에 놓고, 새 메시지 작성 화면을 열었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이 화면에 쓰는 글자 하나하나가 4.24광년을 날아간다. 빛이 되어 우주를 가로질러, 프록시마의 중계 위성에 닿고, 위성에서 지상 모듈로 내려가 현우의 단말기에 도착한다. 도착하는 것은 4년 뒤. 2063년. 현우는 그때 몇 살이 돼 있을까. 프록시마에서의 세월이 현우를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다만' 뒤에 오려 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은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은수는 단말기를 들고 거실로 갔다. 소파에 앉았다. 소파 쿠션이 오래돼 많이 눌렸다. 스프링이 등을 밀었다. 텔레비전 화면이 꺼져 있었다. 검은 화면에 은수의 얼굴이 비쳤다. 눈 밑이 어두웠다. 은수는 보낸 편지함을 다시 열었다. 첫 번째 편지부터 순서대로 읽었다. 2051년. 2052년. 2053년. 세 통이 전부였다. 현우에게서 온 편지도 세 통이었다. 8년간 총 여섯 통의 편지. 한 통에 4년. 은수는 현우의 첫 번째 답장을 다시 열었다.

“하늘이 빨개. 별이 크고 가까워.”

그때 은수는 이 문장을 받고 울었다. 현우가 살아 있다는 것, 프록시마에 도착했다는 것, 하늘을 보고 있다는 것. 그 모든 사실이 4년이나 지난 것이었지만, 은수에게는 그 순간에 처음 실재가 됐다. 은수는 그 편지를 받은 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현우의 목소리를 떠올리려 했다. 기억 속의 목소리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톤은 기억나는데 억양이 희미했다. 4년은 목소리를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 편지는 2053년에 도착했다. '연구소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식물 배양이 잘 안 돼서 고생 중이야. 여기 토양의 미네랄 조성이 예상과 달라. 밤에는 프록시마가 지평선 위에 크게 떠 있어. 붉은 빛이야. 지구의 석양이 생각나. 네가 보내준 석양 사진은 아직 못 받았어. 아마 1년 뒤에 도착하겠지. ' 현우가 이 편지를 쓸 때 은수가 보낸 석양 사진은 아직 우주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었다. 은수는 그 편지를 읽으며 현우의 일상을 상상했다. 프록시마 정착지의 거주 모듈. 창문 너머의 붉은 하늘. 토양 분석 장비 앞에 앉아 있는 현우. 안경을 쓰고 있을까. 출발 전에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고 했었다. 렌즈를 닦는 버릇이 있었다. 셔츠 끝으로 렌즈를 닦으면서 고개를 약간 기울이는 동작. 은수는 그 동작을 좋아했다. 프록시마의 약한 빛이 눈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은수는 단말기를 내려놓고 창을 봤다. 빛은 빠르지만, 4.24광년은 빛에게도 긴 거리였다. 은수가 찍은 석양이 현우에게 도착했을 때, 지구의 그 석양은 이미 5년 전의 빛이었다.

은수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동이 트고 있었다. 하늘의 검푸른색이 짙은 남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주황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은수는 단말기를 들어 창밖을 찍었다. 석양이 아니라 일출이었다. 사진을 저장하고 메시지 작성 화면으로 돌아갔다. 커서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은수는 창틀에 이마를 기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눈을 감으면 이민선 탑승구에서 현우의 손을 잡았던 감각이 돌아왔다. 손가락 사이의 온기. 손바닥의 압력. 8년이 지났는데 그 감각만은 선명했다. 은수는 눈을 떴다.

은수는 쓰기 시작했다. '현우야. 네 편지 받았어. 다만 뒤에 뭘 쓰려고 했어? ' 은수는 멈추고 문장을 삭제했다. 다시 썼다. '현우야. 4년 전의 너에게 보내는 건지, 지금의 너에게 보내는 건지 모르겠어. ' 삭제했다. 다시 썼다. '현우야. ' 거기서 멈췄다. 은수는 손을 무릎 위에 내렸다. 창밖에서 새가 울었다. 한 마리. 짧은 울음이었다. 은수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쓰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 말들이 현우에게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쓸모없어질 말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써야 했다. 쓰지 않으면 침묵만 남았다. 침묵도 빛의 속도로 전달됐다. 은수의 6년간의 침묵이 현우에게 도착한 것이 2년 전이었다. 현우가 그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은수는 단말기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창밖의 빛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은수는 2055년에 다른 사람을 만났다. 이름은 지호였다. 지호는 같은 연구소에서 일했다. 점심을 같이 먹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호의 웃음은 소리가 컸고, 손은 크고 따뜻했다. 지호와 처음 손을 잡았을 때 은수는 현우의 손과 비교하지 않으려 했다. 비교하지 않으려 할 수록 비교가 됐다. 지호의 손가락은 현우보다 굵었고, 손바닥은 넓었다. 다른 손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은수는 그 다름에 기댔다. 은수는 지호와 함께 있을 때 현우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편안했다. 4.24광년 너머의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편안했다. 지호와 2년을 보냈다. 2057년에 헤어졌다. 지호가 말했다.

“너는 여기 있는데 여기 없어.”

은수가 물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건데.”

지호가 은수의 눈을 봤다.

“잘못한 게 아니야. 너는 가끔 창밖을 봐. 별을 보는 게 아니라 거리를 재는 것 같은 눈으로.”

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호가 일어나서 코트를 입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은수는 한참 동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사이 현우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2053년 이후로 6년 동안. 몇 번 단말기를 열었다. 메시지 작성 화면을 띄웠다. '현우야'까지 쓰고 지웠다. 지호와 함께 사는 동안에는 단말기를 서랍 안에 넣어 두었다. 서랍을 열 때마다 파란 불빛이 깜빡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현우의 새 편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안도하는 자신이 싫었다. 지호가 옆에서 자고 있는 밤에 서랍 속 단말기를 생각하는 것이 배신 같았다. 단말기를 확인하는 것도, 확인하지 않는 것도 배신이었다. 은수가 침묵한 6년 동안, 현우는 2053년의 은수가 보낸 편지를 받고 답장을 썼다. 그 답장이 오늘 도착한 것이었다. 현우는 은수의 침묵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은수의 마지막 편지가 현우에게 도착한 것은 2057년이었다. 지금 프록시마 시간으로 2059년이라면, 현우가 은수의 침묵을 인지한 것은 고작 2년 전이었다. 어쩌면 현우는 지금 은수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매월 1일에 단말기를 켜고 수신함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었다. 빈 수신함을 보고 단말기를 끄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있을 것이었다. 프록시마에서도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정착지의 인구는 2,400명이었다. 현우의 나이 또래가 충분히 있었다. 현우가 누군가와 밤하늘의 붉은 별을 같이 보고 있을 가능성을 은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은수는 보낸 편지함을 닫고, 받은 편지함을 열었다. 현우의 세 번째 편지. 오늘 도착한 것. '다만. ' 은수는 그 두 글자를 오래 봤다. 다만. 다만 뭐? 다만 나도 누군가를 만났어? 다만 너를 기다리는 게 힘들어? 다만 이 편지가 마지막이야? 은수는 알 수 없었다. 4년 전의 현우만이 알고 있었다. 지금의 현우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의 은수가 4년 전의 은수와 다른 것처럼. 은수는 단말기를 내려놓고 손등을 봤다. 손등의 핏줄이 6년 전보다 도드라져 있었다. 현우가 마지막으로 잡았던 손과 지금의 손은 같은 손이 아니었다. 은수가 보낸 편지도 도착하는 순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은수는 메시지 작성 화면으로 돌아갔다. '현우야. ' 커서가 그 뒤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은수는 이어 썼다. '네 편지 받았어.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네가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38살이야. 너와 마지막으로 손 잡은 게 12년 전이야. 그 사이에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헤어졌어. 네가 없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네가 없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무서웠어. ' 은수는 멈추지 않고 이어 썼다. '다만 뒤에 네가 뭘 쓰려고 했는지 궁금해. 이 편지가 도착하면 알려줘. 그때 네가 그걸 기억하고 있다면.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나도 4년 전의 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니까. '

'그런데 오늘 새벽에 네 편지를 받고 잠에서 깼어. 심장이 빨라졌어. 8년 전에 네 손을 잡았을 때랑 같았어. 나는 변했고, 너도 변했을 거야. 근데 네 이름이 화면에 뜨는 순간,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는 걸 알았어. 그게 뭔지 설명하려면 이 편지가 너한테 도착할 4년이 모자라. '

은수는 일출 사진을 첨부했다. 첨부 파일 크기: 2.3메가바이트. 전송 시 광년당 감쇄율을 고려하면, 사진이 프록시마에 도착할 때 해상도가 30퍼센트 떨어질 것이었다. 주황색이 흐려지고 구름의 윤곽이 뭉개질 것이었다. 현우가 보는 일출은 은수가 찍은 일출과 같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빛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은수는 그래도 보내기로 했다.

은수의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멈췄다. 이 편지가 현우에게 도착하는 것은 2063년이었다. 그때 현우는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 은수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다른 사람 옆에 있을까. 은수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전송 중' 표시가 떴다. 진행률이 올라갔다. 12퍼센트. 데이터가 지구 궤도의 송신 위성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34퍼센트. 위성에서 심우주 방향으로 빔이 발사될 것이었다. 67퍼센트. 빛의 속도로 4.24년. 100퍼센트. '전송 완료. 예상 도착: 2063년 5월경. ' 은수는 단말기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창밖의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주황빛이 진해졌다. 은수는 창가에 서서 하늘을 봤다.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빛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4.24년 전에 출발한 빛. 현우가 올려다본 붉은 별에서 반사된 빛이, 아마 지금 태양계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것이었다. 은수는 그 빛을 볼 수 없었다. 맨눈에 보이지 않는 별이었다. 하지만 빛은 오고 있었다.

은수는 부엌으로 돌아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원두를 갈았다. 그라인더의 모터 소리가 부엌에 울렸다. 분쇄된 원두에서 쓴 냄새가 올라왔다. 은수는 필터에 원두를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물이 원두를 적시며 부풀어 올랐다. 커피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은수는 컵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단말기 옆에. 화면은 꺼져 있었다. 은수는 커피를 따르며 시계를 봤다. 새벽 5시 12분. 출근까지 3시간. 은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단말기를 다시 들었다. 현우의 메시지를 한 번 더 열었다. '다만. ' 은수는 화면을 꺼지 않고 테이블 위에 세워 놓았다. 커피에서 김이 올라왔다. 김이 형광등 아래에서 가늘게 피어올랐다. 형광등 불빛이 단말기 화면에 비쳤다.

은수는 창가로 돌아갔다. 하늘이 완전히 밝아졌다. 태양이 아직 건물 뒤에 있었지만, 빛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은수는 문득 현우가 프록시마에서 보는 일출을 생각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적색왜성이었다. 현우의 아침은 붉을 것이었다. 지구의 아침은 주황색이었다. 서로 다른 색의 빛 아래에서, 서로 다른 시간 위에서, 같은 순간이란 없었다. 은수가 아침 커피를 마실 때 현우는 잠들어 있을 수 있었다. 은수가 잠들 때 현우는 토양 샘플을 분석하고 있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하루가 겹치는 시간은 없었다. 겹치지 않는 하루들이 쌓여 8년이 됐다. 2,920일의 어긋남. 은수가 편지를 보낸 순간과 현우가 그것을 읽는 순간 사이에 4.24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행성에서 각자의 하루를 살았다. 은수는 커피잔을 입에 가져갔다. 커피가 식어 있었다.

은수의 전화가 울렸다. 연구소의 아침 연락이었다. 은수는 전화를 받았다.

“네, 8시에 갈게요.”

전화를 끊고 단말기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기 전에 멈췄다. 가방 안의 단말기에 현우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4년 전의 현우가 보낸, 6년 전의 은수에게 보내는 답장. 은수는 문고리를 잡았다. 금속이 차가웠다.

4년 뒤에 현우가 은수의 편지를 열 것이었다. 프록시마의 붉은 빛 아래에서, 거주 모듈의 작은 방에서, 단말기의 파란 불빛을 보며. 그때 현우 옆에 누가 있을지, 현우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은수는 알 수 없었다. 은수는 문을 열었다. 복도의 공기가 차가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전화가 다시 울렸다. 모르는 번호. 은수는 받았다. 스피커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은수 씨? 프록시마 정착지 통신 관리국입니다. 전송 대기열에 추가 메시지가 있습니다. 수신자 주소가 은수 씨와 동일해서 확인 연락드렸습니다.”

은수의 손이 전화기 위에서 굳었다.

“발신자가 누구예요.”

“현우 씨입니다. 2057년 발신분이에요. 중계 위성 궤도 이탈로 2년간 대기열에 묶여 있었습니다. 금일 중 수신함에 배달됩니다.”

은수는 전화를 끊지 못했다. 2057년. 현우가 은수의 침묵을 인지한 직후. 은수의 입이 말랐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은수는 들어가지 않았다. 가방에서 단말기를 꺼냈다. 수신함을 열었다. 아직 비어 있었다. 은수는 단말기를 손에 쥔 채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복도가 조용해졌다. 은수는 단말기 화면을 봤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4년 뒤에야 도착하는 편지의 말은, 보내는 순간에 진실인가, 도착하는 순간에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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