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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창에서 자라는 것

2026. 3. 10. · 9,039자 · 약 11분

화물창에서 자라는 것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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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창 3번 격벽의 진동 센서가 울렸다. 태호는 선교에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3번 격벽의 진동 주파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38헤르츠. 선체 공진 주파수와 4헤르츠 차이. 태호는 커피를 내려놓고 화물창 감시 카메라를 켰다. 화면이 어두웠다. 카메라 렌즈에 먼지가 끼었거나, 화물창 내부 조명이 꺼져 있었다. 태호는 조명 스위치를 원격으로 눌렀다. 켜지지 않았다. 두 번 더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태호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수송선 건곤호는 소행성 2187-에리스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중이었다. 소행성 채굴 기지에서 적재한 화물은 에리스석 84톤. 니켈-철 기반의 소행성 광물에 미량의 비정질 금속이 섞여 있는 소재였다. 지구의 항공우주 합금 제조사 3곳에 납품 계약이 잡혀 있었다. 계약 금액 2,400억 원. 건곤호의 14번째 왕복이었고, 태호가 화물 책임자로 탑승한 마지막 운항이었다. 지구 도착까지 23일 남았다. 선체 외벽에 '건곤'이라는 선명이 새겨져 있었다. 승무원은 3명이었다.

태호는 선교에서 내려가 화물창 통로를 걸었다. 통로의 바닥에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38헤르츠의 떨림이 뼈를 타고 무릎까지 전해졌다. 3번 격벽 앞에 섰다. 격벽 표면에 손을 대봤다. 따뜻했다. 화물창 격벽의 온도는 선체 외기와 같은 영하 120도 부근이어야 했다. 장갑 없이 만져도 동상이 오지 않았다. 태호는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격벽을 만졌다. 금속 표면이 매끄럽지 않았다. 미세한 돌기가 있었다. 사포처럼 거칠었다.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돌기가 격벽 표면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았다. 태호는 손을 떼고 헤드램프를 켰다. 불빛이 격벽 표면을 비췄다. 격벽의 원래 색상은 회색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회색 위에 검은 줄무늬가 번져 있었다. 줄무늬가 격벽의 용접선을 따라 퍼지고 있었다. 용접선이 가장 많은 곳에 줄무늬가 가장 짙었다.

태호는 통로에 서서 선내 통신을 열었다.

“세영 씨, 기관실이에요?”

3초 후 응답.

“네. 뭐예요?”

“3번 격벽 좀 와서 봐요. 표면에 이상이 있어요.”

5분 후 세영이 통로 끝에서 나타났다.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린 채였다. 세영이 격벽 앞에 서서 헤드램프를 비추고, 검은 줄무늬를 봤다. 손가락으로 줄무늬를 긁었다. 긁히지 않았다. 손톱이 미끄러졌다.

“이거 도장이 벗겨진 게 아니에요.”

세영이 말했다.

“표면 자체가 변한 거예요.”

세영이 주머니에서 휴대용 경도 측정기를 꺼내 격벽 표면에 대봤다. 숫자가 떴다. 세영의 눈이 커졌다.

“격벽 경도가 설계 사양의 1.7배예요.”

태호는 세영과 함께 3번 격벽 내부를 열었다. 볼트를 풀고 점검 패널을 떼어냈다. 내부가 보였다. 태호의 손이 멈췄다. 격벽의 내측 면과 화물 컨테이너의 외벽 사이에 무언가가 자라 있었다. 검은색 결정 구조. 격벽의 금속과 컨테이너의 금속 사이를 잇는 형태로 뻗어 있었다. 결정의 표면이 매끄러웠다. 빛을 비추면 미세한 무지개빛이 반사됐다. 태호는 결정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결정의 표면이 차갑지 않았다. 미지근했다.

“에리스석이 컨테이너 밖으로 나온 거예요?”

태호가 물었다. 세영이 고개를 저었다.

“컨테이너는 밀봉 상태예요. 이건 밖에서 자란 거예요. 격벽의 금속에서.”

세영이 결정의 기저부를 가리켰다. 결정이 격벽 표면에서 솟아나 있었다. 금속 표면과 결정 사이에 경계가 없었다. 금속이 결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경계 없이, 한쪽이 다른 쪽으로 서서히 녹아드는 형태.

세영이 기관실로 돌아가 성분 분석을 돌렸다. 20분 후 분석 결과가 선교 모니터에 떴다. 태호와 민지가 화면을 봤다. 결정의 주성분은 니켈-철 합금이었다. 격벽과 같은 소재. 하지만 결정격자의 구조가 달랐다. 격벽의 니켈-철은 면심입방 구조였다. 결정의 니켈-철은 지구에서 관찰된 적 없는 격자 배열을 하고 있었다. 비정질 금속이 니켈-철의 결정 구조를 재배열한 것이었다. 에리스석에 포함된 미량의 비정질 금속이 컨테이너를 통해 격벽의 금속과 접촉하고, 격벽의 원자 배열을 바꾸고 있었다.

“경도가 1.7배면.”

민지가 조종석에서 말했다.

“선체가 더 단단해진 거잖아요. 나쁜 건 아니지 않아요?”

태호가 민지를 봤다.

“문제는 방향이야. 지금 3번 격벽이면, 다음은 2번이고 그다음은 1번이야. 1번 격벽 너머가 뭔지 알아?”

민지가 입을 다물었다. 1번 격벽 너머는 기관실이었다. 기관실의 엔진 격벽은 열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작동하는 구조였다. 격벽의 경도가 올라가면 열팽창이 제한되고, 엔진의 연소실 압력이 분산되지 못한다. 압력이 임계치를 넘으면 엔진이 멈춘다.

태호는 세영에게 물었다.

“융합 속도가 어떻게 돼요?”

세영이 기관실에서 통신으로 답했다.

“3번 격벽의 변환 면적을 측정했어요. 8시간 전 점검 때는 없었어요. 지금 3번 격벽 면적의 14퍼센트가 변환됐어요. 시간당 약 1.7퍼센트.”

태호가 계산했다. 3번 격벽 완전 변환까지 약 50시간. 2번 격벽까지 합치면 100시간. 1번 격벽은 그 뒤. 엔진 격벽까지 도달하는 데 대략 170시간. 7일. 지구 도착까지 23일. 엔진이 멈추면 23일째에 도착할 수 없다. 관성으로 표류한다. 추진력 없이 태양계 외곽을 떠도는 것이다. 구조선이 올 때까지.

태호는 선교에서 지구 관제에 보고를 보냈다. 통신 지연은 편도 18분이었다.

“건곤호 화물 책임자 태호. 화물창 3번 격벽에서 에리스석 성분의 금속 변환 현상 발견. 시간당 1.7퍼센트 속도로 확산 중. 엔진 격벽 도달 예상 시점 7일 후. 대응 지시 요청.”

36분 후 관제 응답이 왔다.

“건곤호, 관제. 화물 방출은 마지막 수단으로만 시행할 것. 계약 위약금 1,200억 원. 화물 보전 우선. 변환 속도 억제 방안 자체 강구할 것.”

태호는 통신 패널을 끄고 의자에 앉았다. 위약금 1,200억 원. 건곤호의 운항 수익 3년치였다. 태호는 선장 겸 화물 책임자였다. 화물 손실의 1차 책임은 태호에게 있었다. 세영이 기관실 사다리를 올라왔다.

“억제 방안이요?”

세영이 태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태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격벽과 화물 사이에 절연재를 넣어볼 수 있겠지만, 이미 변환이 시작된 부분은 되돌릴 수 없어요.”

세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온도요. 비정질 금속의 원자 이동은 온도에 민감해요. 격벽 온도를 내리면 확산 속도가 줄어들 수 있어요.”

태호가 봤다.

“어떻게?”

“냉각 시스템의 냉매를 3번 격벽 쪽으로 우회시키면 돼요. 대신 기관실 냉각 용량이 30퍼센트 줄어요.”

기관실 냉각이 줄면 엔진 효율이 떨어진다. 추진력이 감소하고 도착이 늦어진다. 태호가 물었다.

“도착이 얼마나 늦어져요?”

세영이 계산했다.

“23일에서 31일로. 8일 추가.”

태호는 민지를 봤다.

“식량은?”

민지가 재고를 확인했다.

“25일치. 배급을 줄이면 30일. 31일은 부족해요.”

태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천장의 환기구에서 공기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태호는 눈을 감았다. 3초 후 눈을 떴다.

태호는 냉각 우회를 결정했다. 세영이 기관실에서 냉매 배관 밸브를 수동으로 전환했다. 3번 격벽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영상 8도에서 영하 30도로. 12시간 후 3번 격벽의 변환 속도를 다시 측정했다. 시간당 1.7퍼센트에서 0.8퍼센트로 줄었다. 절반 이하. 태호는 숫자를 보고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멈춘 것은 아니었다. 느려졌을 뿐이었다. 0.8퍼센트면 3번 격벽 완전 변환까지 107시간. 엔진 격벽 도달까지 약 350시간. 14일. 도착 예정일은 31일. 간신히 맞았다.

3일째 되는 날, 태호는 3번 격벽을 점검하러 갔다. 통로를 걸으면서 발밑의 진동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38헤르츠였던 진동이 34헤르츠로 내려가 있었다. 선체 공진 주파수와의 차이가 줄고 있었다. 격벽과 선체의 고유 진동수가 일치하기 시작하면 공진이 발생한다. 공진이 시작되면 선체 구조에 피로가 누적된다. 태호는 3번 격벽 앞에 서서 헤드램프를 비췄다. 검은 줄무늬가 격벽 전체로 퍼져 있었다. 용접선뿐 아니라 격벽 전면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표면의 돌기가 커져 있었다. 돌기들이 규칙적인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벌집 구조였다. 자연에서 응력 분산이 가장 효율적인 패턴이 금속 위에 저절로 새겨져 있었다.

태호는 점검 패널을 열었다. 내부의 결정 구조가 3일 전보다 확장돼 있었다. 격벽과 컨테이너를 잇는 결정이 이제 통로 바닥의 금속까지 뻗어 있었다. 태호가 서 있는 바닥이었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진동이 선명해졌다. 결정을 통해 진동이 직접 전달되고 있었다. 태호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봤다. 바닥의 금속 패널 가장자리에 미세한 검은 선이 나타나 있었다. 변환이 격벽을 넘어 바닥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세영에게 연락했다.

“3번 격벽에서 바닥으로 번졌어요. 2번 격벽 쪽은?”

세영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확인했어요. 2번 격벽에도 시작됐어요. 용접선 부위에서 변색이 보여요.”

태호의 입이 굳어졌다. 냉각으로 속도를 줄였지만,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전체 진행 속도는 오히려 빨라지고 있었다. 접촉면이 넓을수록 변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지점이 많아졌다. 속도를 줄인 것이 면적을 넓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었다.

태호는 선교로 돌아왔다. 세영과 민지를 불렀다. 세 사람이 선교에 모였다. 태호가 화면에 격벽 상태를 띄웠다. 태호가 상황을 정리했다.

“엔진 격벽까지 14일이 아니라 10일 안에 도달할 수 있어요. 도착까지 28일 남았어요. 엔진이 멈추면 표류해요. 구조선이 오려면 최소 40일.”

민지가 물었다.

“40일이면 식량이.”

“못 버텨요.”

태호가 말했다. 선교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의 숨소리와 환기구 소리만 들렸다.

세영이 입을 열었다.

“화물을 버리면요.”

태호가 세영을 봤다.

“화물을 방출하면 변환 원인이 제거되니까 진행이 멈추잖아요. 이미 변환된 부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엔진 격벽까지 도달하는 건 막을 수 있어요.”

태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3번 격벽이 이미 변환됐어요. 화물창 외벽을 절단해서 방출해야 하는데, 변환된 외벽을 자르면 균열이 생겨요. 원래 니켈-철이면 절단면이 깨끗하지만, 재배열된 결정 구조는 절단 시 응력이 예측 불가예요. 감압이 시작될 수 있어요.”

세영이 태호를 봤다.

“절단하지 않으면요?”

“외벽 볼트를 풀어서 패널째 분리하는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볼트가 변환됐으면 풀리지 않아요.”

태호는 3번 화물창 외벽의 볼트를 확인하러 갔다. 선외 활동복을 입고 에어록을 통해 선체 외부로 나갔다. 건곤호의 외벽이 헤드램프 불빛 아래 펼쳐졌다. 3번 화물창 외벽 패널의 볼트 24개. 태호는 첫 번째 볼트에 전동 렌치를 맞췄다. 돌렸다. 움직이지 않았다. 토크를 최대로 올렸다. 볼트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변환된 금속이 볼트와 프레임을 하나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태호는 24개 볼트를 하나씩 시도했다. 1번부터 18번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19번이 돌아갔다. 아직 변환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20번도 돌아갔다. 21번은 안 됐다. 22번, 돌아갔다. 23번, 안 됐다. 24번, 돌아갔다. 24개 중 6개만 풀 수 있었다. 나머지 18개는 선체와 한 몸이 돼 있었다.

태호는 에어록으로 돌아와 활동복을 벗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장갑 안의 손가락이 차가웠다. 선교로 올라가 세영에게 말했다.

“볼트 24개 중 18개가 고착됐어요. 패널 분리가 안 돼요.”

세영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절단밖에 없네요.”

태호가 세영을 봤다.

“절단하면 감압이 시작돼요.”

“감압 구역을 3번 화물창으로 격리하면 돼요. 3번 격벽 양쪽의 기밀 도어를 닫고, 화물창만 감압시키면 선체 나머지 구역은 유지돼요.”

태호가 생각했다. 가능했다. 3번 화물창을 포기하고, 그 안의 화물을 우주로 방출하는 것.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3번 격벽이 이미 변환됐잖아요. 기밀 도어의 실링이 변환된 금속과 접촉하면 밀봉이 유지될지 모르겠어요.”

세영이 잠시 생각했다.

“직접 확인해야 해요.”

태호와 세영이 3번 격벽의 기밀 도어를 점검했다. 도어 프레임의 실링 부분을 살폈다. 실링의 고무 패킹이 변환된 금속과 맞닿아 있었다. 고무가 변색돼 있었다. 검은 금속이 고무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세영이 고무의 경도를 측정했다. 정상보다 높았다. 고무의 탄성이 사라지고 있었다.

“실링이 경화되고 있어요.”

세영이 말했다.

“지금 절단하면 기밀이 유지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링이 완전히 굳어서 기밀 도어 자체가 닫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태호가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있어요?”

세영이 실링의 변색 범위를 봤다.

“12시간. 길어야 18시간.”

태호는 선교로 돌아갔다. 의자에 앉았다. 양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12시간 안에 결정해야 했다. 화물을 방출하면 에리스석 84톤이 사라진다. 계약 위약금 1,200억 원. 회사가 파산할 수 있다. 방출하지 않으면 10일 뒤 엔진이 멈추고 40일간 표류한다. 식량이 모자라다.

관제에 다시 보고했다.

“건곤호 태호. 화물 방출 외 대안 없음. 외벽 볼트 고착으로 패널 분리 불가. 절단 시 감압 발생하나 3번 격벽 기밀 도어로 격리 가능. 기밀 도어 실링 경화 진행 중, 잔여 시간 12시간 이내. 12시간 후에는 방출도 불가능. 결정 요청.”

36분 후 응답.

“건곤호, 관제. 화물 방출 승인 불가. 계약 이행 의무. 변환 속도 억제 방안을 추가 강구할 것. 엔진 격벽 도달 시 비상 정지 후 구조 대기.”

태호는 화면을 봤다. 구조 대기. 엔진이 멈추고 40일을 표류하라는 뜻이었다. 식량 30일치로 40일을 버티라는 뜻이었다. 태호는 통신 패널을 껐다.

민지가 조종석에서 말했다.

“태호 씨, 12시간이에요.”

태호가 민지를 봤다. 민지의 얼굴이 계기판 불빛에 반쯤 비쳐 있었다.

“관제가 안 된다고 했어요.”

민지가 태호를 봤다.

“관제가 여기 있어요?”

선교가 조용해졌다. 세영이 기관실 통신을 통해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호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통로를 걸어 3번 격벽 앞에 섰다. 격벽에 손을 댔다. 미지근했다. 결정 구조의 벌집 패턴이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졌다. 규칙적이고, 정밀하고, 아름다운 구조. 이 소재가 지구에 도착하면 항공우주 산업이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소재는 건곤호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태호는 손을 뗐다.

태호는 선외 활동복을 다시 입었다. 플라스마 절단기를 들고 에어록으로 갔다. 세영이 기관실에서 3번 격벽 기밀 도어를 닫았다. 도어가 닫히는 소리가 통로에 울렸다. 금속과 고무가 맞닿는 둔탁한 소리. 세영이 통신으로 말했다.

“기밀 확인. 실링 압력 정상 범위. 지금은 유지돼요.”

태호는 에어록 안에서 절단기를 점검했다. 민지가 선교에서 화물창 감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태호 씨, 관제 미승인 상태에서 방출하면 태호 씨 책임이에요.”

민지가 말했다. 태호가 에어록의 통신 패널을 눌렀다.

“알아요.”

에어록 외부 해치가 열렸다. 태호는 선체 외벽을 따라 3번 화물창 쪽으로 이동했다. 자석 부츠가 선체에 달라붙는 소리와 안전줄이 레일을 따라 미끄러지는 소리가 헬멧 안에 울렸다. 3번 화물창 외벽 앞에 섰다. 플라스마 절단기를 켰다. 파란 불꽃이 진공 속에서 피어올랐다. 태호는 절단선을 정했다. 풀리지 않은 볼트 18개를 우회해서, 풀린 볼트 6개를 기준으로 패널의 일부를 잘라내는 경로. 절단 면적이 패널 전체의 40퍼센트. 에리스석 84톤 중 약 34톤이 이 구멍으로 나간다. 나머지 50톤은 컨테이너에 남는다. 전량 방출이 아니었다. 변환의 원인을 줄이는 것이었다. 태호는 절단기를 금속에 대봤다. 불꽃이 금속을 파고들었다. 변환된 금속이 절단됐다. 절단면에서 불꽃이 튀었다. 일반 니켈-철과 달랐다. 불꽃의 색이 붉지 않고 하얬다. 금속이 잘리는 소리가 활동복을 통해 전해졌다. 고음의 날카로운 진동. 이를 악물어야 견딜 수 있는 소리였다. 절단이 진행되면서 패널 가장자리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균열이 절단선을 따라 번졌다. 예측한 대로였다. 태호는 절단 속도를 높였다.

절단이 끝났다. 태호의 팔이 떨리고 있었다. 플라스마 절단기의 잔열이 장갑을 통해 전해졌다. 패널의 40퍼센트가 선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태호는 레일에 매달려 지켜봤다. 컨테이너의 일부가 구멍을 통해 우주로 밀려나갔다. 에리스석 덩어리가 검은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 헤드램프 불빛에 에리스석 조각이 반짝였다. 무지개빛이 번뜩이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2,400억 원어치의 빛이었다. 34톤의 에리스석이 건곤호에서 떨어져 나갔다. 절단면에서 공기가 새고 있었다. 화물창 내부의 잔류 공기가 우주로 빠져나가면서 얼음 결정이 형성됐다. 미세한 얼음 입자가 절단면 주위로 흩어졌다. 헤드램프 불빛에 얼음이 반짝였다. 태호의 바이저에 얼음이 달라붙었다. 장갑으로 닦았다.

태호는 에어록으로 돌아왔다. 활동복을 벗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장갑을 벗는 데 세 번 실패했다. 손가락에 힘이 없었다. 네 번째에 벗었다. 선교로 올라갔다. 민지가 감압 데이터를 보고 있었다.

“3번 화물창 감압 완료. 기밀 도어 실링 유지 중. 선체 나머지 구역 기압 정상.”

세영의 목소리가 기관실에서 올라왔다.

“3번 격벽 온도 측정. 변환 속도 시간당 0.3퍼센트로 감소. 접촉면이 줄었어요.”

태호는 숫자를 들었다. 0.3퍼센트. 아까의 0.8퍼센트에서 줄었다. 에리스석의 양이 줄면서 변환을 촉진하는 물질이 줄어든 것이었다.

태호는 관제에 보고를 보냈다.

“건곤호 태호. 3번 화물창 외벽 부분 절단. 에리스석 34톤 방출. 잔여 화물 50톤. 변환 속도 시간당 0.3퍼센트로 감소. 엔진 격벽 도달 추정 시간 재계산 중. 선체 기밀 유지 중.”

관제 응답이 올 때까지 36분. 태호는 응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계기판을 봤다. 연료 잔량, 산소 잔량, 식량 재고. 숫자들이 화면에 나열돼 있었다. 태호는 계기판의 숫자들에서 눈을 떼고 선교 창을 봤다. 건곤호의 뒤쪽으로 에리스석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반짝이는 점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점들 사이로 별빛이 보였다. 태호는 창에서 눈을 돌렸다. 세영의 통신이 다시 들려왔다.

“2번 격벽 변환 속도도 줄었어요. 0.4퍼센트.”

태호는 끄덕였다. 선교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끄덕였다. 발밑에서 진동이 올라왔다. 36헤르츠. 아직 공진 주파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선체가 떨리고 있었다. 태호는 진동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관제 응답은 아직 오지 않았다.

화물의 경제적 가치와 승무원의 생존이 충돌할 때, 현장 책임자가 본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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