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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속의 이름

2026. 3. 26. · 9,059자 · 약 11분

간 속의 이름 썸네일
17

초음파 화면에 그것이 보였다. 간의 우엽. 검은 배경 위에 회색 점들이 모여 있었다.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느리게. 아메바처럼. 의사가 프로브를 유진의 배 위에서 움직였다. 젤이 차가웠다. 유진은 몸을 움찔했다. 의사가 사과했다. 젤을 데울 수 있는 장비가 고장 났다고. 유진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에 형광등이 있었다. 형광등 옆에 누런 얼룩이 있었다. 물이 샌 자국.

“여기 보이시죠.”

의사가 화면을 가리켰다. 유진은 고개를 돌려 화면을 봤다. 회색 점들. 불규칙한 덩어리. 유진의 간 안에 있는 것.

“이게 헤파토비온입니다.”

“헤파토비온.”

“네. 간 조직 안에 서식하는 독립 생물체예요. 인간 세포가 아닙니다. 독립된 유전체를 갖고 있고요. 인간 게놈과의 일치율이 0퍼센트입니다. 2068년에 발견됐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8퍼센트가 보유하고 있어요. 대부분은 무증상입니다. 일부는 간 기능이 오히려 좋아지기도 합니다.”

“저는 무증상이 아닌 거죠.”

“급속 증식 사례입니다. 보유자 중 0.4퍼센트에 해당합니다.”

유진은 화면을 봤다. 자기 몸 안에 인간이 아닌 것이 살고 있었다. 유진이 태어날 때부터 있었을 수도 있었다. 32년 동안 유진과 함께 있었을 수도 있었다. 유진은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것은 유진을 알고 있었을까. 화면 속에서 그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유진은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의사가 모니터를 돌려서 유진에게 보여줬다. 간 시퀀싱 결과. 그래프와 숫자들.

“헤파토비온 군락 크기가 3.2센티미터입니다. 6개월 전 검진에서는 1.8센티미터였어요.”

“자라고 있다는 거예요?”

“네. 증식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0.4퍼센트에 해당하는 급속 증식 사례로 분류됩니다.”

유진은 모니터의 숫자를 봤다. 1.8에서 3.2. 6개월 동안 거의 2배. 유진의 간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유진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근하는 동안. 그것도 먹고, 자라고, 퍼지고 있었다.

“제거해야 하나요?”

“권고 사항은 절제입니다. 간의 우엽 약 30퍼센트를 함께 제거해야 합니다.”

“30퍼센트.”

“간은 재생됩니다. 3개월이면 원래 크기로 돌아와요. 수술 자체는 복강경으로 진행합니다. 입원은 1주일 정도.”

“헤파토비온을 제거한 뒤에 재발하나요?”

“재발률은 낮습니다. 5퍼센트 미만. 하지만 완전히 0은 아닙니다.”

유진은 의자 팔걸이를 잡았다. 플라스틱이 매끈했다.

“수술 날짜를 잡으시겠습니까?”

“생각 좀 해볼게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병원을 나왔다. 접수 창구에서 다음 진료 예약을 잡았다. 2주 뒤. 접수 직원이 예약증을 출력해줬다. 유진은 예약증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5월이었다. 바깥이 밝았다. 햇살이 강했다. 유진은 눈을 찡그렸다. 병원 앞 벤치에 앉았다. 배 위에 아직 초음파 젤의 축축함이 남아 있었다. 유진은 셔츠를 만져봤다. 젖어 있었다. 유진은 오른쪽 옆구리에 손을 대봤다. 간이 있는 자리. 손바닥 아래에 간이 있었다. 간 안에 그것이 있었다. 유진은 손바닥을 누른 채 앉아 있었다. 햇살이 따뜻했다. 유진의 피부가 따뜻했다. 피부 아래의 간도 따뜻할 것이었다. 그 안의 그것도.

유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누나였다.

“검사 결과 나왔어?”

“응.”

“뭐래?”

“자라고 있대. 수술하래.”

“수술해. 빨리.”

“30퍼센트를 잘라야 한대.”

“잘라. 간은 다시 자라잖아.”

누나의 목소리가 빨랐다. 누나는 항상 빨랐다. 결정이 빨랐다. 유진은 느렸다.

“생각 좀 하려고.”

“뭘 생각해? 몸 안에 벌레가 있는데. 엄마가 살아 계시면 뭐라고 했을 것 같아? 당장 꺼내라 했을 거야.”

“벌레는 아니야.”

“벌레든 뭐든 네 거 아니잖아. 꺼내.”

유진은 전화를 끊었다. 누나는 부산에 있었다. 유진은 서울에 혼자 있었다. 부모님은 5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먼저, 어머니가 1년 뒤에. 유진에게는 누나밖에 없었다.

벌레. 누나는 벌레라고 했다. 의사는 독립 생물체라고 했다. 학술 논문에서는 '공생 가능 미기록 종'이라고 했다. 유진은 헤파토비온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이름이 있었다. 학명. 하지만 유진은 그것을 이름으로 부를 수 없었다. 이름을 부르면 관계가 생기는 것 같았다. 유진은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자기 간 안의 것과.

2주 뒤에 유진은 수술 전 정밀 검사를 받았다. 간 조직 생검. 바늘이 옆구리를 뚫고 들어갔다. 국소 마취를 했지만 압력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압력. 유진은 천장을 봤다. 이번에는 다른 천장이었다. 깨끗한 천장. 얼룩이 없었다. 바늘이 간에 닿는 순간 유진의 몸이 움찔했다. 마취가 되어 있었지만 압력은 느껴졌다. 무언가가 유진의 안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유진의 세포가 빠져나가는 것인지 그것의 세포가 빠져나가는 것인지 유진은 구분할 수 없었다.

생검 결과가 나왔다. 의사가 유진을 불렀다. 의사의 표정이 달랐다. 2주 전과 달랐다. 눈이 넓어져 있었다. 모니터를 유진에게 돌렸다.

“생검 결과에서 예상치 못한 것이 나왔습니다.”

유진은 모니터를 봤다. 현미경 사진이었다. 보라색과 분홍색으로 염색된 세포들. 유진은 세포를 구분할 수 없었다. 의사가 화면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 분홍색 세포가 헤파토비온입니다. 그리고 이 진한 보라색이 간세포입니다.”

“네.”

“이 불규칙한 세포가 보이시죠? 여기, 여기, 여기.”

의사가 세 곳을 짚었다.

“이것은 간세포암 세포입니다.”

유진의 등이 의자 등받이에서 떨어졌다.

“간암이요?”

“초기입니다. 1기. 크기 0.9센티미터.”

“간암이 있었어요? 헤파토비온 말고? 6개월 전 검진에서는 안 나왔잖아요.”

“네. 하지만 여기를 보세요.”

의사가 화면을 확대했다. 유진은 화면을 봤다. 분홍색 세포가 보라색 세포를 감싸고 있었다.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먹고 있었다. 분홍색 세포의 가장자리가 보라색 세포 안으로 파고들어가 있었다.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보라색이 분홍색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마치 물감이 번지듯이.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헤파토비온이 암세포를 포식하고 있습니다.”

유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기 몸 안에서 두 가지 생명이 싸우고 있었다. 하나는 유진의 것이 아닌 생명. 다른 하나는 유진을 죽이려는 생명. 그리고 유진의 것이 아닌 생명이 유진을 죽이려는 생명을 먹고 있었다.

“헤파토비온을 제거하면 암세포가 남습니다. 암 치료를 따로 해야 합니다.”

“안 제거하면요?”

“헤파토비온이 암을 계속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헤파토비온도 계속 자랍니다. 간 잠식이 진행됩니다.”

“그러면 간이.”

“네. 간 기능이 떨어집니다. 최악의 경우 간부전.”

“제거하면 암. 안 하면 간부전.”

유진은 의자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시간이 있나요? 결정할 시간.”

“암이 초기이므로 2-3주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 달을 넘기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유진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양쪽 다 간이었다. 양쪽 다 유진의 간이었다.

유진은 집에 돌아왔다. 원룸이었다. 현관에 신발이 한 켤레 있었다. 유진의 운동화. 유진은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갔다.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여 있었다. 3일치. 컵라면 용기와 밥그릇이 섞여 있었다. 물이 차갑게 고여 있었다. 컵라면 용기 2개, 밥그릇 1개, 국그릇 1개. 유진은 설거지를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유진의 천장. 이사 온 지 3년 된 천장. 유진은 오른쪽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 간이 있는 자리. 그 안에 헤파토비온이 있었다. 그 안에 간암이 있었다. 유진은 32살이었다. 물류 회사에서 일했다. 매일 8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했다. 평범한 생활. 평범한 신체. 건강검진은 회사에서 매년 시켜줬다. 작년까지 정상이었다. 올해 헤파토비온이 나왔다. 유진은 자기 몸 안에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유진의 간. 유진의 암. 유진의 것이 아닌 생명.

누나에게 전화했다.

“간암이래.”

“뭐?”

“초기야. 1기.”

“아 진짜. 수술해. 당장.”

“그게. 헤파토비온이 암을 먹고 있대.”

“뭐? 먹어?”

“암세포를 잡아먹고 있대. 제거하면 암이 남고, 안 하면 간이 망가지고.”

누나가 3초간 말이 없었다. 누나가 3초간 말이 없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의사가 뭐래?”

“선택하래. 나한테.”

“미친. 의사가 왜 환자한테 선택을 시켜.”

“둘 다 위험하니까.”

누나가 숨을 내쉬었다. 전화기 너머로 숨소리가 들렸다.

“나 내려갈까? 서울로?”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생각 좀 하려고.”

“또 생각? 생각하다가 둘 다 커지면 어떡해.”

유진은 전화를 끊었다. 누나의 말이 맞았다. 시간이 지나면 둘 다 자랐다. 암도 자라고, 헤파토비온도 자랐다. 유진이 생각하는 동안 유진의 간 안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자라고 있었다.

밤이었다. 유진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옆구리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아픈 건지 신경이 예민해진 건지 모르겠었다. 헤파토비온은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런데도 아픈 것 같았다. 유진은 자기 몸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했다. 옆구리를 만졌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부 아래에 갈비뼈가 있었고, 갈비뼈 아래에 간이 있었고, 간 안에 그것들이 있었다. 유진은 느낄 수 없었다. 초음파로만 볼 수 있었다. 현미경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유진의 몸이면서 유진이 접근할 수 없는 곳.

유진은 인터넷을 검색했다. '헤파토비온 암세포 포식'. 논문이 3건 나왔다. 2068년 논문. 2069년 논문 2건. 가장 최근 논문의 제목: '헤파토비온의 간세포암 선택적 포식 메커니즘과 임상적 함의'. 유진은 논문을 읽었다. 읽을 수 있는 부분만. 초록. 결론. 중간의 그래프를 봤다. 헤파토비온 군락 크기와 간세포암 크기의 시간 경과 그래프. 두 선이 교차하고 있었다. 헤파토비온이 올라갈 때 간세포암이 내려갔다. 거울상이었다. 하나가 자라면 다른 하나가 줄었다. 유진의 간 안에서 시소가 돌고 있었다.

'헤파토비온은 간세포암 세포의 표면 단백질을 인식하고 선택적으로 포식한다. 정상 간세포에 대한 직접 공격은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헤파토비온 군락의 물리적 확장이 정상 간 조직을 압박하여 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헤파토비온의 항암 기능과 간 잠식 사이의 균형점은 환자마다 다르며, 현재로서는 예측 모델이 확립되지 않았다. '

균형점. 유진은 그 단어를 봤다. 환자마다 다르다. 예측할 수 없다. 유진의 간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3일 동안 유진은 일을 했다. 물류 회사. 택배 송장을 정리하고, 배송 경로를 확인하고, 반품 처리를 했다. 동료들은 유진이 병원에 다니는 것을 몰랐다. 유진이 말하지 않았다. 유진의 옆구리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유진은 점심에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된장찌개. 밥. 유진이 먹는 것이 위장으로 가고, 간으로 가고, 그것에게도 갔다. 유진은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그것도 먹고 있을까 생각했다.

3일 뒤에 유진은 다시 병원에 갔다. 다른 의사를 만났다. 간장내과 전문의. 유진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의사. 안경을 쓰고 있었다. 유진의 검사 결과를 보고 있었다.

“의견을 들으러 왔습니다.”

“보셨겠지만, 드문 경우입니다. 헤파토비온 급속 증식과 간세포암 동시 진단. 국내 보고 사례가 7건입니다.”

“7건 중에 어떻게 한 사람들이 많아요?”

“3명이 헤파토비온 제거 후 암 치료를 했습니다. 2명이 경과 관찰을 선택했습니다. 2명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경과 관찰한 2명은요?”

의사가 유진을 봤다.

“1명은 헤파토비온이 암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8개월 걸렸습니다. 하지만 간의 41퍼센트가 헤파토비온으로 대체됐습니다. 간 기능이 정상의 55퍼센트입니다. 술을 못 마시고, 지방식은 제한하고, 약물 대사가 느려져서 감기약도 용량을 줄여야 합니다.”

“살아 있어요?”

“살아 있습니다. 식이 제한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1명은요?”

“헤파토비온이 암을 충분히 빠르게 먹지 못했습니다. 암이 전이됐습니다.”

유진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1명은 살았다. 간의 절반 가까이를 내주고. 1명은 졌다. 그것도 암에.

“제 경우에는요?”

“증식 속도로 보면 헤파토비온이 빠릅니다. 하지만 보장은 못 합니다.”

“보장.”

유진은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렸다. 보장. 아무도 보장하지 못했다. 유진의 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결과를.

“의학에서 보장이라는 단어는 쓰기 어렵습니다.”

유진은 병원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이 있었다. 유진의 얼굴이 비쳤다. 유진은 자기 얼굴을 봤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핏기가 좀 없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었다. 잠을 잘 못 자서. 거울 속의 유진이 유진을 봤다. 이 얼굴 아래에, 이 피부 아래에, 이 갈비뼈 아래에 전쟁이 있었다.

유진은 집에 돌아와서 컵라면을 끓였다. 뜨거운 물을 부었다. 3분을 기다렸다. 면을 먹었다. 국물을 마셨다. 국물이 위장으로 내려갔다. 위장 옆에 간이 있었다. 간에 그것이 있었다. 유진은 국물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이 국물의 영양분이 간으로 가면 그것도 먹는 걸까. 유진이 먹는 것을 그것도 먹는 걸까.

유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면이 남아 있었다. 식욕이 없었다. 간이 먹는 것을 처리해야 했다. 간이 온전하지 않으면 먹는 것도 온전하지 않았다. 유진은 컵라면 용기를 내려놓았다. 용기 안에 국물이 남아 있었다. 유진은 옆구리에 손을 대봤다. 따뜻했다. 국물 때문인지 체온 때문인지 모르겠었다.

일주일 동안 유진은 매일 밤 옆구리에 손을 대고 잤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손으로 헤파토비온을 느낄 수 없었다. 암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을 대고 있으면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유진은 잊고 싶지 않았다. 자기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일주일 뒤에 유진은 의사에게 말했다.

“기다려볼게요.”

의사가 유진을 봤다.

“경과 관찰이요?”

“네.”

“위험을 이해하고 계시죠?”

“네.”

“2주마다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유진은 동의서에 서명했다. 경과 관찰 동의서. 맨 아래에 적혀 있었다. '본 환자는 헤파토비온 제거 수술을 보류하고 경과 관찰을 선택합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환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유진은 펜을 들었다. 서명란 위에서 펜이 멈추지 않았다. 바로 서명했다.

유진은 기다렸다. 2주마다 병원에 갔다. 초음파를 찍었다. 헤파토비온: 3.6센티미터. 간암: 0.7센티미터. 암이 줄었다. 0.2센티미터. 그것이 먹은 것이었다. 유진은 초음파 화면을 봤다. 그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컸다. 더 많이 움직였다. 유진은 화면 속의 그것을 보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혐오도 아니고 감사도 아닌 것.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었다.

4주 뒤. 헤파토비온: 4.1센티미터. 간암: 0.4센티미터.

누나가 전화했다.

“어떻게 됐어?”

“암이 줄고 있어.”

“그 벌레가 먹고 있는 거야?”

“벌레 아니라니까.”

“이름이 뭐래?”

“헤파토비온.”

“헤파토. 뭐?”

“헤파토비온. 간 속의 생명이라는 뜻이야.”

“이름이 예쁘네. 벌레치고는.”

6주 뒤. 헤파토비온: 4.8센티미터. 간암: 흔적만 남음. 의사가 말했다.

“암세포가 거의 소실됐습니다.”

유진은 화면을 봤다. 암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이 먹어치운 것이었다. 유진의 것이 아닌 생명이 유진을 죽이려던 것을 먹어치웠다.

“하지만 헤파토비온 군락이 4.8센티미터입니다. 간의 약 2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암을 다 먹으면 증식이 멈출 수도 있고, 계속 자랄 수도 있습니다.”

“먹을 게 없어지면 멈추나요?”

“앞서 말씀드린 경과 관찰 환자 중 1명은 멈췄습니다. 41퍼센트에서. 다른 1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22퍼센트.”

“증식이 계속되면 간 기능에 영향이 옵니다.”

유진은 병원을 나와 벤치에 앉았다. 처음 진단받던 날과 같은 벤치. 5월이었던 것이 7월이 되어 있었다. 햇살이 더 강했다. 유진은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 4.8센티미터의 그것이 유진의 간 안에서 살고 있었다. 6주 전에는 3.2센티미터였다. 6주 동안 1.6센티미터를 자랐다. 유진이 병원에 다니고, 누나와 전화하고, 컵라면을 먹고, 잠을 못 자는 동안 그것은 꾸준히 자랐다. 그리고 유진의 암을 먹었다. 유진의 암을 먹고 자란 것이었다. 유진을 살리면서 유진을 잠식하고 있었다.

유진은 옆구리를 만졌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부. 그 아래 근육. 그 아래 갈비뼈. 그 아래 간. 그 안에 그것. 유진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 있었다. 살아 있었다. 유진을 구했고, 유진을 먹고 있었다. 유진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해가 유진의 손등을 비추고 있었다. 따뜻했다. 유진의 간 안에서도 무언가가 따뜻할 것이었다. 유진은 몰랐다. 그것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유진은 손을 올린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누나였다.

“결과 어때?”

“암이 거의 없어졌어.”

누나가 3초간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3초였다.

“진짜?”

“진짜.”

“그 벌레가 다 먹은 거야?”

“벌레 아니라니까.”

“이름이 뭐라고 했지. 헤파토.”

“헤파토비온.”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그거한테?”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옆구리 위의 손을 봤다. 고마운 건지 무서운 건지 유진은 몰랐다. 둘 다인 것 같았다.

“누나.”

“응.”

“나 괜찮아.”

누나가 숨을 내쉬었다. 전화기 너머 숨소리.

“그래. 괜찮으면 됐어.”

병원 앞 가로수에서 매미가 울었다. 7월의 매미. 유진은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옆구리 위의 손을 누르지 않았다. 가만히 올려놓고 있었다. 피부 아래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진의 간은 조용했다. 그 안의 그것도 조용했다. 유진은 그 조용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 검사는 2주 뒤였다. 그때 그것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 유진은 2주를 기다릴 것이었다. 기다리면서 밥을 먹고, 출근하고, 잠을 잘 것이었다. 유진의 간 안에서 그것도 같이 밥을 먹고, 자라고, 살 것이었다. 유진은 일어섰다. 벤치에서. 병원 앞 도로를 걸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초록불이 켜졌다. 유진은 건넜다. 유진의 간도 건넜다. 그것도 건넜다. 셋이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유진은 걸으면서 웃었다. 왜 웃는지 모르겠었다. 웃음이 나왔다. 자기 몸 안에 두 가지 전쟁이 있는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는 것이. 유진은 웃으면서 걸었다.

자기 몸 안에서 자기 것이 아닌 생명이 자기를 구하고 있을 때,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자기 보호인가 살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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