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가 3블록 리액터의 출력 이상을 발견한 것은 목요일 야간 근무 중이었다. 모니터에 경고등이 떴다. 노란색. 빨간색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지난달 12블록에서 빨간색이 떴을 때, 공급원이 심정지로 사망했다. 리액터가 멈추고 12블록 전체가 4시간 동안 정전됐다. 냉장고가 멈추고 엘리베이터가 섰다. 민원이 3,400건 들어왔다. 관리 기술자가 시말서를 썼다. 죽은 건 공급원이었는데 시말서를 쓴 건 기술자였다. 빨간색은 공급원 사망을 의미했다. 노란색은 출력 변동. 진우는 커피를 내려놓고 콘솔을 확인했다. 3블록 담당 리액터 7호기. 출력이 14퍼센트 상승해 있었다. 종양 성장률이 예측치를 초과한 것이었다.
리액터 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출력이 10퍼센트 이상 변동하면 공급원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진우는 7호기의 공급원 정보 탭을 열었다. 공급원 번호, 종양 위치, 계약 기간, 월 임대료. 개인정보는 보통 마스킹 처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출력 이상 시에는 관리자 권한으로 열람이 가능했다. 진우는 공급원 신원 조회 버튼을 눌렀다.
이름: 박순자. 생년: 1971년. 종양 위치: 좌측 폐. 병기: 4기. 계약 시작일: 2054년 3월 12일. 월 임대료: 280만 원.
진우의 손이 콘솔 위에서 굳었다. 박순자. 1971년생.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봤지만, 글자는 돌처럼 박혀 있었다. 박순자. 좌측 폐. 4기.
진우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관제실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앉았다. 화면을 봤다. 박순자. 여전히 박순자였다. 진우는 전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누르다 멈췄다. 새벽 2시였다. 어머니는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종양은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3블록. 아파트 4,200세대. 상가 320개. 가로등 1,800개. 어머니의 폐에서 자라는 암세포가 그 모든 것에 불을 켜고 있었다.
진우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커피를 마셨다. 식어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진우는 교대 근무를 마치고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 버스를 탔다. 3블록을 지나갔다. 버스 창밖으로 가로등이 보였다. 신호등이 보였다.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전부 켜져 있었다. 전부 어머니의 폐에서 나오는 전력으로. 진우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손에 땀이 나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등이 예전보다 구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국자를 들어 간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소금을 조금 더 넣었다.
“밥 먹었어?”
“네.”
“거짓말. 얼굴에 써 있어.”
어머니가 돌아봤다. 웃고 있었다. 볼에 주름이 깊었다. 입술이 말라 있었다. 얼굴색이 병적으로 누르스름했다. 왜 이걸 이제야 봤을까. 황달. 암이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신호였다.
“엄마.”
“왜. 앉아. 지금 다 돼.”
진우는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가 찌개를 식탁에 놓았다. 밥을 퍼 왔다. 반찬을 꺼냈다. 김치, 멸치볶음, 콩나물. 평범한 아침 식사. 어머니가 맞은편에 앉았다. 앉을 때 기침을 한 번 했다. 짧은 기침이었다.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을 내렸을 때 손바닥에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아직은. 밥을 한 숟갈 떴다. 입에 넣었다. 씹었다. 삼켰다. 진우는 어머니의 목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음식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봤다. 어머니의 폐 안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그 종양에서 나노 튜브가 미토콘드리아에 연결되어 있었다. 암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에너지가 추출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떠먹는 이 순간에도. 3블록의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저기, 엄마... 제가 어제 7호기 점검을 했는데요.”
어머니의 숟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찌개를 한 숟갈 더 떴다.
“그래?”
“공급원 신원 조회했어.”
어머니는 찌개를 마저 삼키고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진우를 똑바로 봤다.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올 것이 왔다는 듯한 눈이었다.
“언제 알았어?”
“어젯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컵을 탁자에 놓았다.
“네가 그 발전소에서 일하니까, 언젠가는 알 줄 알았지.”
“왜... 왜 저한테 말을 안 하셨어요.”
“그걸 꼭 물어야겠니? 말하면 네가 이렇게 난리 칠 게 뻔하잖아.”
진우의 입이 닫혔다. 맞는 말이었다. 어머니가 밥을 다시 떠먹었다. 평범하게. 아침을 먹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폐에 4기 암이 있는 사람의 동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4기 암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암이 돈을 벌고 있었다.
“임대료가 280만 원이던데.”
“맞아.”
어머니가 멸치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처음에는 200이었는데, 종양이 커지니까 올라갔어. 3개월 전에 280으로.”
진우는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가 멸치를 씹고 있었다. 진우의 월급은 310만 원이었다. 여동생 수진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했다. 수진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말했을 리 없었다. 수진은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전화를 걸면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진우는 몰랐다. 언니, 엄마 폐암이야. 그리고 그 폐암이 네 등록금을 내고 있어. 진우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어머니의 종양 임대료가 진우의 월급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그 돈으로 뭐 했어.”
“네 전세 보증금 보탰지. 그리고 네 여동생 학비.”
어머니가 김치를 집었다.
“나머지는 적금.”
진우의 숟가락이 탁자 위에 놓였다. 소리가 났다. 금속이 나무를 치는 소리.
“엄마. 그거 빼면 치료할 수 있어. 4기여도 나노셀 치료 병행하면—”
“치료비가 얼만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어머니가 수저를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1차 나노셀 시술이 4,800만 원이야. 2차까지 하면 8,000만 원이 넘어. 네 연봉의 2배야. 그리고 그래도 완치율이 34퍼센트야.”
어머니가 물을 마셨다.
“280만 원씩 18개월이면 5,040만 원이야. 네 전세금 나오고, 동생 학비 나오고, 적금도 쌓여. 확실한 돈이야.”
“엄마가 죽으면 그 돈이 무슨 소용이야.”
어머니가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진우야. 엄마가 치료받고 빚더미에 앉아서 34퍼센트 확률로 살아남는 거하고, 돈 벌면서 너희 둘 세워 놓고 가는 거하고, 어느 쪽이 나은 것 같아?”
진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에 뜨거운 덩어리가 걸린 것 같았다. 된장찌개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진우의 밥그릇에 찌개를 떠 넣었다.
“먹어. 식는다.”
어머니가 자기 그릇에 밥을 더 퍼 담았다.
“그리고 하나 더. 임대 계약에 사망 시 위로금 조항이 있어. 2,000만 원. 네 이름으로 나가게 해 놨어.”
어머니가 김치를 씹으며 말했다. 사망 위로금. 어머니가 자기 죽음의 값을 이미 계산해 놓은 것이었다. 진우의 위장이 조여왔다. 된장찌개의 냄새가 갑자기 비렸다.
진우는 어머니의 집을 나왔다. 현관문을 닫을 때 어머니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평범한 소리였다. 어머니의 폐 안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그 소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소리는 평범했다. 진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파트 로비의 조명이 켜져 있었다. 이 아파트는 3블록이 아니었다. 7블록이었다. 다른 리액터의 전력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종양이었다. 진우는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해가 떠 있었다. 3월의 햇살이 따뜻했다.
진우는 발전소로 돌아왔다. 야간 근무. 관제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니터 12대가 벽면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각 모니터에 리액터 번호와 출력 수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1호기부터 12호기. 나머지 12기는 2층 관제실에서 관리했다. 24기의 리액터. 24명의 공급원. 도시 전체 전력의 38퍼센트를 바이오리액터가 담당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태양광과 풍력. 2년 전만 해도 바이오리액터 비중은 12퍼센트였다. 공급원이 늘면서 비중이 3배로 뛰었다. 암 환자가 늘어서가 아니었다. 임대를 선택하는 환자가 늘어서였다. 진우는 7호기 화면을 봤다. 출력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종양 성장률 곡선. 우상향. 3개월 전보다 17퍼센트 성장. 현재 종양 무게 추정치 1.2킬로그램. 출력 환산 3.7메가와트. 소형 원자로 1기의 출력이 4메가와트. 어머니의 종양이 소형 원자로의 92퍼센트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종양 무게가 1.5킬로그램을 넘으면 공급원의 생존 가능 기간이 급격히 짧아진다. 1.2킬로그램. 1.5킬로그램까지 남은 시간. 진우는 계산했다. 현재 성장률 기준 4개월에서 6개월.
진우는 관제실 창밖을 봤다. 3블록의 불빛이 보였다. 아파트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 가로등의 주황색 빛. 편의점 간판의 흰 빛. 그 빛이 전부 어머니의 폐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암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저 불빛이 깜빡이지 않고 켜져 있었다.
진우의 옆자리에서 동료 재현이 과자를 먹고 있었다. 새우깡. 바삭거리는 소리가 관제실에 울렸다.
“야, 7호기 출력 좋다. 이번 달 성과급 나오겠는데.”
재현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진우는 대꾸 없이 화면만 노려봤다. 재현이 그런 진우를 힐끗 쳐다봤다.
“야, 너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안 좋냐?”
“신경 꺼.”
재현이 새우깡을 한 개 더 입에 넣었다.
“7호기 공급원 상태 좋은 거 맞지? 출력 14퍼센트 올랐으면 종양 성장이 활발한 거잖아. 좋은 거야. 우리 블록 전력 안정화되고.”
재현이 웃었다.
“공급원한테 보너스라도 줘야 하나.”
진우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무릎 위에서. 재현은 보지 못했다.
“재현아.”
“응?”
“야. 공급원이 계약 해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재현이 과자 봉지를 내려놓았다.
“해지? 위약금 물지. 잔여 계약 기간의 임대료 50퍼센트. 그리고 리액터 분리 비용이 한 1,200만 원? 근데 왜?”
“그냥 궁금해서.”
재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과자를 다시 집었다. 바삭.
“아, 맞다. 7호기 공급원 보너스 건 진짜로 검토 중이래. 출력 상위 5퍼센트 공급원한테 월 30만 원 추가 지급. 회사에서도 좋은 공급원 유지하려고 하는 거지.”
재현이 웃었다. 진우는 웃지 않았다. 어머니의 종양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진우의 어머니가. 진우의 어머니의 암이.
진우는 계산을 했다. 잔여 계약 기간 6개월. 280만 원의 50퍼센트인 140만 원 곱하기 6.840만 원. 리액터 분리 비용 1,200만 원. 합계 2,040만 원. 거기에 치료비 4,800만 원. 총 6,840만 원. 진우의 통장 잔액은 430만 원이었다. 여동생 수진은 대학교 3학년이었다. 등록금이 학기당 420만 원. 수진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 월 80만 원. 나머지를 어머니의 임대료가 메우고 있었다. 진우가 치료비를 대출받으면 월 상환액이 최소 150만 원. 현재 월급에서 월세와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이 60만 원. 숫자가 맞지 않았다. 어디를 돌려도 맞지 않았다.
진우는 모니터를 봤다. 7호기 출력 그래프. 우상향. 어머니의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종양이 자랄수록 출력이 올랐다. 출력이 오를수록 진우의 성과급이 올랐다. 진우는 어머니의 암으로 성과급을 받고 있었다. 지난달 성과급이 42만 원이었다. 그중 7호기 기여분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7호기가 관내 최고 출력이었으므로 적지 않을 것이었다. 어머니의 종양이 진우의 통장에 돈을 넣어 주고 있었다. 진우의 위장이 뒤틀렸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참았다.
새벽 3시. 진우는 관제실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담배를 피웠다. 안 피우던 담배였다. 동료에게 하나 얻어 왔다. 연기가 폐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폐에는 종양이 있었다. 진우의 폐에는 담배 연기가 있었다. 옥상에서 3블록이 내려다보였다. 불빛이 빼곡했다. 새벽 3시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들. 편의점, 가로등, 비상구 표시등. 진우는 그 불빛을 보면서 담배를 피웠다. 옥상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3월의 새벽 바람이 차가웠다. 진우의 코끝이 빨개졌다. 담배 연기가 바람에 흩어졌다. 3블록 너머로 다른 블록들의 불빛이 보였다. 도시 전체가 빛나고 있었다. 이 불빛의 몇 퍼센트가 누군가의 종양에서 나오는 것인지 진우는 생각했다. 도시가 암으로 밝혀지고 있었다. 연기가 눈에 매웠다. 눈물이 난 것인지 연기 때문인지 진우는 구별하지 않았다.
다음 주 월요일. 진우는 발전소 소장실 앞에 서 있었다. 문을 두드렸다. 들어갔다. 소장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진우를 보고 안경을 올렸다.
“7호기 공급원 계약 해지를 요청하려고 합니다.”
소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7호기? 출력 제일 좋은 기긴데. 이유가 뭐야?”
“공급원이 제 어머니입니다.”
소장이 안경을 벗었다. 닦았다. 다시 쓰지 않았다. 안경을 책상 위에 놓았다. 진우를 봤다. 소장은 잠시 진우를 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서류함에서 파일을 하나 꺼냈다. 익숙한 동작이었다.
“공급원 의사는?”
“확인하겠습니다.”
“공급원 본인이 해지를 원하지 않으면, 관리자 권한으로 해지할 수 없어. 알지?”
소장이 안경을 다시 쓰며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7호기 지금 빼면 3블록 전력 수급에 구멍이 나. 대체 리액터 배치까지 최소 2주. 그 사이 전력 공급 불안정. 민원이 빗발칠 거야.”
소장이 진우를 봤다. 동정이 아니었다. 관리자의 시선이었다.
“네 사정은 이해하지만, 결정은 공급원 본인이 하는 거야.”
진우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해지를 원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280만 원. 전세 보증금. 여동생 학비. 적금. 확실한 돈.
진우는 소장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었다. 복도 벽에 바이오리액터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당신의 세포가 도시를 밝힙니다.”
웃고 있는 중년 여성의 사진.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었다. 진우는 포스터 앞에서 멈췄다. 사진 속 여성이 웃고 있었다. 연두색 병원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 바이오리액터 연결 포트가 보였다. 동그란 금속 장치. 피부 위에 붙어 있었다. 어머니의 가슴에도 저것이 있을 것이었다. 진우는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진우는 포스터에서 눈을 떼고 걸었다.
그날 저녁, 진우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돈 마련할 수 있어. 치료비. 대출 받으면—”
“진우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왔다. 평온했다.
“엄마가 계산을 못 하는 사람이야?”
어머니가 잠깐 멈췄다. 숨소리가 들렸다. 전보다 거친 숨소리. 종양이 폐를 누르고 있었다.
“대출 받아서 치료하면, 34퍼센트 확률로 살고, 100퍼센트 확률로 빚이 남아. 너한테. 그 빚 갚느라 결혼도 못 하고, 집도 못 사고. 엄마가 왜 종양을 임대했겠어. 니들한테 짐 안 지려고 그런 거야.”
진우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는 이미 생각 다 했어. 너 아직 28이야. 앞으로 할 일이 많아. 엄마 치료비에 20대를 갖다 바치지 마.”
“엄마. 제발.”
진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된장찌개 맛있었지? 다음에 또 해 줄게. 끊어.”
전화가 끊겼다. 진우는 전화기를 내려다봤다. 통화 종료 화면. 어머니의 이름 옆에 하트 이모지가 있었다. 진우가 중학교 때 저장한 이모지. 16년 전. 그때 어머니는 건강했다. 폐에 종양이 없었다. 리액터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하트 이모지가 화면에서 빛나고 있었다. 화면에 통화 시간이 떠 있었다. 3분 42초. 그 시간 동안 어머니의 종양은 계속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3블록의 불이 켜져 있었다. 진우의 전세 보증금이 쌓이고 있었다. 여동생의 학비가 마련되고 있었다.
진우는 관제실로 돌아왔다. 모니터 앞에 앉았다. 7호기 출력 그래프. 우상향. 진우는 그래프를 봤다. 그래프의 기울기가 어머니의 남은 시간이었다.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출력이 높았다. 출력이 높을수록 어머니의 종양이 빠르게 자라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어머니가 빨리 죽는다는 뜻이었다.
진우는 콘솔의 7호기 제어 패널을 열었다. 출력 조절 슬라이더가 있었다. 리액터의 에너지 추출률을 조절하는 기능. 추출률을 낮추면 종양에 가해지는 부하가 줄어든다. 종양 성장이 느려진다. 어머니의 수명이 늘어날 수 있다. 대신 3블록의 전력 공급이 줄어든다. 매뉴얼에는 관리자 임의 조절이 금지되어 있었다.
진우는 슬라이더 위에 손을 올렸다. 슬라이더를 움직이지 않았다. 모니터에서 3블록의 전력 소비 현황이 실시간으로 흘렀다. 아파트 4,200세대. 그 안에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냉장고가 돌아가고 있었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야간 조명 아래에서 잠들어 있었다. 진우는 슬라이더에서 손을 뗐다. 손가락 끝이 축축했다. 땀이었다. 진우는 손을 바지에 닦았다. 슬라이더를 내리면 어머니의 수명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3블록의 전력이 불안정해진다. 민원이 들어온다. 진우가 시말서를 쓴다. 해고될 수 있다. 해고되면 월급이 없다. 어머니의 치료비를 댈 수 없다.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의자에 기대 천장을 봤다. 천장의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이 형광등의 전력도 어딘가의 리액터에서 오고 있었다. 어딘가의 누군가의 종양에서. 진우는 형광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발전소에 리액터가 24기 있었다. 24명의 공급원이 있었다. 24명의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이 종양을 임대하고 있었다. 진우의 어머니는 그중 한 명이었다.
진우는 모니터를 봤다. 7호기 출력. 안정적. 어머니의 종양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진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다. 혀를 데었다. 통증이 혀끝에서 번졌다. 진우는 컵을 내려놓고 모니터를 봤다. 내일 아침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일 것이었다. 어머니의 폐 안에서 종양이 자랄 것이었다. 3블록의 불이 켜져 있을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진우는 그저 모니터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7호기 출력 그래프의 기울기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0.3퍼센트. 어머니의 종양이 조금 더 자란 것이었다. 3블록의 불빛이 조금 더 밝아진 것이었다. 진우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이번에는 뜨겁지 않았다. 식어 있었다. 새벽 4시. 교대 시간까지 4시간. 진우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종양이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자기 직업이었다. 모니터 아래 키보드 옆에 어머니가 싸 준 김밥이 비닐에 싸여 있었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현관에서 건네준 것이었다. 진우는 김밥을 풀지 않았다. 비닐 너머로 김의 검은색과 밥의 흰색이 보였다. 어머니의 손이 만든 것이었다. 어머니의 폐가 전력을 만들고, 어머니의 손이 김밥을 만들었다. 진우는 김밥을 모니터 옆에 놓아 두었다. 먹지도 버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