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뿌리내리지 못한 터

2026. 3. 9. · 9,568자 · 약 11분

뿌리내리지 못한 터 썸네일
17

세라가 3구역 환기구의 필터를 교체하고 있을 때, 발밑의 토양이 흔들렸다. 진동이 아니라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무릎이 위로 밀렸다. 세라는 필터를 놓치고 환기구 가장자리를 잡았다. 진동은 4초 만에 멈췄다. 일곱 번째 지진. 오늘만. 케플러-438비는 하루에 평균 열두 번 흔들렸다. 2년 전에는 여덟 번이었다. 1년 전에는 열 번. 올해는 열두 번.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세라는 필터를 주워 먼지를 털고 다시 환기구에 끼웠다. 필터의 메시 표면에 황록색 침전물이 두껍게 끼어 있었다. 이틀 전에 교체한 것이었다. 이 행성에서 지진은 날씨 같은 것이었다.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놀라면 하루를 버틸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기예보 대신 진동 예보를 확인했다.

세라가 일하는 곳은 정착지 '터'였다. 정착민들은 이곳을 그렇게 불렀다. 뿌리내릴 땅이라는 뜻이었지만, 이 행성은 뿌리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케플러-438비의 적도 부근, 평균 기온 영하 7도, 대기 산소 농도 9퍼센트의 황무지에 세워진 반지하 구조물이었다. 지상은 짙은 황산 안개와 미세 규산염 먼지로 가득했고, 토양에서는 비주기적으로 유독 가스가 분출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왔다. 지구의 해안선이 무너지고, 식량 생산지의 절반이 사막이 된 뒤에 떠난 사람들이었다. 지구가 인간을 밀어내기 시작했을 때, 인간은 지구 아닌 곳을 찾았다. 그런데 217명이 살고 있었다. 정착지를 유지하는 핵심은 대기 정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핵심은 '군집'이었다.

군집. 케플러-438비의 지하 암반에서 발견된 실리콘 기반 미세 유기체의 분산 집합. 개체 하나의 크기는 0.04밀리미터. 수십억 개체가 암반 틈새에서 네트워크를 이루며 전기 신호를 주고받았다. 단독으로는 화학 반응만 했지만, 일정 밀도 이상이 되면 집단적 패턴이 나타났다. 14년 전, 정착지보다 먼저 이 행성에 도착한 탐사대가 군집을 발견했을 때, 군집은 암반의 틈에서 황화합물을 분해하고 있었다. 탐사대는 이 분해 능력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군집을 정착지의 환기 시스템에 배치하면, 유독 가스를 분해하고 산소 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군집은 도구가 됐다. 14년 동안 인간이 시키는 대로 독성 가스를 먹고 산소를 뱉었다.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었다.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라는 필터 교체를 마치고 3구역 관제 패널로 돌아갔다. 패널의 숫자가 이상했다. 환기구의 가스 분해 효율이 72퍼센트에서 41퍼센트로 떨어져 있었다. 세라는 필터를 잘못 끼웠나 싶어 다시 환기구로 갔다. 필터는 정상이었다. 군집의 밀도를 측정했다. 센서가 숫자를 보여줬다. 3구역 환기구 내부의 군집 개체 수: 280억. 어제는 610억이었다.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것이었다. 세라는 센서를 두 번 확인했다. 숫자가 바뀌지 않았다.

세라는 필터를 던져놓고 관제실로 뛰었다. 관제실은 정착지의 중심부, 지하 3층에 있었다. 암반을 파서 만든 공간으로, 천장이 낮고 벽에서 습기가 배어 나왔다. 모니터 12개가 벽면을 따라 배치돼 있었다. 세라가 들어갔을 때 정비 조장 도윤이 모니터 여러 개를 번갈아 보다가 일어섰다.

“3구역만 아니야.”

도윤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정착지 전체의 군집 밀도 지도가 떠 있었다. 3구역뿐 아니라 1구역, 5구역, 7구역에서도 군집 밀도가 급감하고 있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위험 구역이 네 곳. 세라가 모니터에 다가서며 물었다.

“어디로 간 거예요?”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환기 시스템 밖으로 나간 거야. 밀도 감소가 시작된 게 2시간 전이야. 지금은 전체 군집의 38퍼센트가 시스템 밖에 있어.”

세라는 모니터 앞에 앉아 군집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개체들이 환기관을 따라 이동한 뒤, 관의 접합부를 통해 토양 속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접합부는 밀봉돼 있었지만, 군집 개체 하나의 크기가 0.04밀리미터에 불과했다. 밀봉재의 미세 기공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수리 시기에 소량이 빠져나간 적은 있었지만, 전체의 38퍼센트는 처음이었다.

도윤이 세라 옆에 섰다.

“군집이 환기 시스템에서 이탈하면 대기 정화 능력이 떨어져. 지금 효율로는 48시간 안에 7구역의 산소 농도가 호흡 한계 이하로 내려가.”

세라가 도윤을 돌아보며 물었다.

“7구역에 몇 명이 있어요?”

도윤이 답했다.

“34명. 주거동이야. 아이가 6명 있어.”

세라는 환기관 내부의 센서 데이터를 더 세밀하게 분석했다. 군집이 빠져나간 시점과 지진의 시점이 겹쳤다. 오늘 일곱 번째 지진 직후에 이탈이 가속됐다. 세라는 3구역 환기구에서 느꼈던 것을 떠올렸다. 진동이 아니라 밀어내는 느낌. 지진이 아니라 행성이 무언가를 뱉어내는 것 같았다. 군집은 그 뱉어내는 움직임을 따라 토양 속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날 밤, 세라는 방호복의 야간 모드를 켜고 3구역 환기구 앞에서 측정을 시작했다. 정착지의 조명이 꺼진 뒤, 환기구에서 올라오는 바람만이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환기구 내벽에 남은 군집은 약 200억 개체. 센서 프로브를 내벽에 대자 군집의 전기 신호가 잡혔다. 평소와 달랐다. 보통은 분해 작업에 필요한 반복적 패턴이었다. 지금은 불규칙한 신호가 섞여 있었다. 길고 짧은 전압 변동이 일정한 간격 없이 이어졌다. 세라는 이 패턴을 기록하며 2시간을 앉아 있었다. 환기구에서 차가운 바람이 올라왔다. 케플러-438비의 밤은 영하 31도까지 내려갔다. 방호복의 난방 유닛이 최대 출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라의 손끝이 얼어 프로브를 쥐기 어려워졌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감각을 유지했다.

새벽 3시, 세라의 프로브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군집의 전기 신호가 세라의 프로브 주변에서 집중되고 있었다. 프로브를 옮기면 집중 지점도 따라 이동했다. 세라가 프로브를 환기구 밖으로 빼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환기구 안쪽에서 군집 개체들이 출구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라가 가까이 있으면 군집이 모이고, 멀어지면 흩어졌다. 세라는 기록을 저장하고 관제실로 돌아가 도윤에게 보고했다.

“군집이 제 프로브에 반응해요.”

도윤이 화면을 봤다.

“프로브에?”

세라가 고개를 저었다.

“프로브가 아니라 저한테요. 프로브를 빼도 환기구 입구 쪽으로 모여요. 제가 서 있는 방향으로.”

도윤이 데이터를 화면에 띄워 확인했다. 그래프를 확대하고 축소하기를 반복하다가 물었다.

“너만?”

세라가 끄덕였다.

“다른 정비 요원이 3구역에 있을 때는 밀도 변화가 없었어요. 제가 접근했을 때만 이런 반응이 나와요.”

도윤이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14년 동안 군집은 사람을 구분한 적이 없어. 우리한테 전부 같은 반응이었어.”

세라가 말했다.

“지금은 다른 것 같아요.”

다음 날, 세라는 실험을 했다. 정착지의 환기 시스템 구역을 돌면서 각 구역에서 군집의 반응을 측정했다. 결과는 어느 구역에서나 동일했다. 세라가 가까이 접근하면 군집의 밀도가 증가하고 전기 신호의 빈도가 올라갔다. 세라가 떠나면 밀도가 다시 감소했다. 7구역에서는 세라가 30분 동안 서 있자, 호흡 한계 이하로 내려가던 산소 농도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군집이 세라 주변에서 활발하게 가스를 분해했기 때문이었다.

세라는 밤새 모은 데이터를 아침에 관제실에서 도윤에게 보여줬다. 도윤의 표정이 복잡했다.

“이건 말이 안 돼. 군집은 개별 개체가 아냐. 분산 시스템이야. 특정 인간 한 명을 인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야.”

세라가 데이터를 화면에 띄우며 말했다.

“구조가 아니라 행동이에요. 이유는 모르지만 결과는 분명해요.”

도윤이 화면을 보며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이걸 이용할 수 있을까?”

세라가 도윤을 봤다.

“이용이요?”

도윤이 답했다.

“네가 각 구역을 순회하면 군집이 따라오잖아. 그러면 대기 정화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임시방편이라도.”

세라가 생각했다. 정착지에는 9개 구역이 있었다. 각 구역에서 30분씩 서 있으면 4시간 30분. 하루에 두 번 순회하면 9시간.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군집이 다시 토양 속으로 빠져나갔다. 세라가 쉬는 동안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세라가 돌아오면 올라갔다. 세라의 존재 자체가 대기 정화 시스템의 핵심 부품이 되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부품.

세라는 다음 날 아침부터 순회를 시작했다. 첫째 날은 견딜 만했다. 걷는 것이니까. 둘째 날 새벽, 숙소 침대에 누웠을 때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수면이 5시간으로 줄었다. 무릎과 발목이 뻣뻣하게 굳어서 일어설 때마다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셋째 날, 양쪽 다리가 부었다. 방호복 안쪽에서 종아리를 누르면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세라는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멈췄다. 눈 아래가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동료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데 3초가 걸렸다. 넷째 날 밤, 세라는 5구역 환기구 앞에서 서 있다가 무릎이 풀리면서 벽에 기대 잠이 들었다. 바닥이 차가운 것도 몰랐다. 몇 시간 뒤 깨어났을 때 프로브의 센서가 이상한 숫자를 보여줬다. 세라가 잠든 동안, 군집이 5구역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더 정확히는, 세라가 잠든 위치 반경 2미터 안에 군집이 최고 밀도로 모여 있었다. 세라의 체온이 닿는 범위. 환기구 내벽의 온도가 세라 쪽에서 0.7도 높게 측정됐다. 군집의 전기 신호가 세라의 심박 주기와 비슷한 간격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초당 1.1회. 세라가 잠든 상태에서의 안정 심박수와 같았다.

세라는 벽에서 등을 떼고 프로브의 기록을 되감았다. 군집이 세라의 심박에 동기화한 것은 세라가 잠든 지 14분 뒤부터였다. 동기화가 시작된 이후 군집의 가스 분해 효율이 93퍼센트까지 올라가 있었다. 환기 시스템에 배치됐을 때보다 높은 수치였다. 시스템의 격자 구조보다 세라의 피부 표면이 더 좋은 작업 환경이라는 뜻이었다. 군집은 세라 옆에서 더 잘 작동하고 있었다.

세라가 다음 날 오후에 관제실에 데이터를 가져갔을 때, 도윤의 반응은 달랐다.

“지진 빈도가 올라가고 있어.”

도윤이 말했다.

“오늘 열네 번. 어제 열둘. 지반의 황화수소 분출량도 증가하고 있어. 정착지 서쪽 3킬로미터 지점에 새 분출구가 생겼어. 직경 4미터. 매시간 커지고 있어.”

세라가 물었다.

“군집 이탈과 관련이 있어요?”

도윤이 끄덕였다.

“군집은 원래 지하 암반에 살았어. 14년 전에 우리가 꺼내서 환기 시스템에 넣은 거야. 지금 이 행성이 불안정해지면서, 군집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거야. 우리 시스템보다 암반의 균열을 메우는 게 군집한테는 더 급한 거야.”

세라가 물었다.

“그러면 군집이 환기 시스템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도윤이 답했다.

“대기 정화가 멈춰. 3주 안에 정착지 전체의 산소 농도가 호흡 한계 아래로 떨어져.”

세라는 그날 밤 순회를 하면서 생각했다. 7구역 환기구 앞에 서 있었다. 군집이 환기구 안에서 세라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벽면에 군집 개체들이 밀집하면서 희미한 열이 났다. 세라는 장갑을 천천히 벗고 벽에 손을 대봤다. 따뜻했다. 체온보다 조금 낮은 온도였다. 수십억 개체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열. 군집의 전기 신호가 세라의 손바닥 아래에서 잔잔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세라는 손바닥에 남은 열기를 주먹 안에 쥐었다. 쥔 손을 펴면 열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군집이 세라에게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라가 자리를 뜨면 군집도 떠났다. 환기 시스템보다는 세라 곁에 오래 머물렀지만, 바닥이 흔들리면 결국 토양 속으로 돌아갔다. 세라가 잡을 수 없는 것이 세라를 잡고 있었다.

1주일 뒤, 정착지 회의가 열렸다.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황을 보고했다.

“군집 이탈률이 64퍼센트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대기 정화 효율은 세라의 순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세라가 순회를 멈추면 3구역과 7구역은 24시간 안에 호흡 위험 수준에 진입합니다.”

정착지 관리자 은수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물었다.

“세라 한 명이 언제까지 순회할 수 있어요?”

도윤이 세라를 봤다.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7일 동안 하루 9시간 순회. 수면 부족으로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은수가 다시 물었다.

“대안은요?”

도윤이 답했다.

“정착지를 축소하는 겁니다. 9개 구역 중 4개를 폐쇄하고 인원을 나머지 5개에 집중시키면, 세라의 순회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은수가 말했다.

“4개 구역의 장비와 연구 시설을 포기하는 거잖아요.”

도윤이 끄덕였다.

“아니면 정착지 전체를 포기하든지요.”

회의 후, 세라는 텅 빈 관제실에 남아 있었다. 군집의 밀도 지도가 모니터에 떠 있었다. 빨간색 구역이 늘어나고 있었다. 세라는 모니터를 끄고 혼자 3구역 환기구로 걸어갔다. 복도에 사람이 없었다. 모두 회의 결과를 소화하느라 각자의 구역에 있었다. 환기구 안에 남은 군집에 프로브를 대봤다. 전기 신호가 잡혔다. 평소의 불규칙한 패턴이 아니었다. 느리고 긴 파형이 반복되고 있었다. 세라가 프로브의 위치를 바꿔도 같은 패턴이 잡혔다. 환기구 안의 모든 군집이 같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세라는 그 패턴을 기록 장치에 저장했다. 14년치 군집 신호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없는 파형이었다.

세라는 관제실에 가지 않고 현장에서 기록된 패턴을 분석했다. 0.8초 주기의 느린 맥동. 그 안에 짧은 고주파 펄스가 3회. 반복. 세라는 이 패턴을 군집의 기존 신호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했다. 일치하는 항목이 없었다. 새로운 신호였다. 세라가 프로브를 환기구 밖으로 빼자, 군집이 출구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라가 프로브를 다시 넣자, 이동이 멈췄다. 세라가 손을 환기구 안에 넣자, 군집의 밀도가 세라의 손 주변에서 급격히 올라갔다. 신호의 진폭이 커졌다. 0.8초 주기는 유지하면서, 고주파 펄스가 3회에서 5회로 늘었다.

세라는 손을 넣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군집이 만드는 열이 장갑 없는 손바닥의 피부로 직접 전해졌다. 따뜻했다. 그 따뜻함 속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군집 개체들이 세라의 피부 표면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간지럽지는 않았다. 압력도 없었다. 다만 존재한다는 것이 손바닥의 신경 하나하나로 전해졌다. 수십억 개의 미세한 존재가 세라의 손바닥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도윤이 관제실에서 내려왔다.

“뭐 해?”

세라가 손을 빼지 않고 답했다.

“군집이 새로운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도윤이 프로브의 화면을 봤다.

“뭔데?”

세라가 말했다.

“몰라요.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이에요. 제가 손을 넣으면 신호가 강해져요.”

도윤이 세라를 봤다.

“손을 빼.”

세라가 도윤을 올려다봤다.

“왜요?”

도윤이 답했다.

“군집은 도구야. 14년 동안 도구였어. 지금 네 손을 잡고 있는 게 아냐. 화학 반응을 하고 있는 거야.”

세라는 천천히 손을 뺐다. 환기구 안에서 군집의 밀도가 급격히 감소했다. 60초 만에 절반이 빠져나갔다. 세라가 다시 손을 넣자 감소가 즉각 멈추고 밀도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라가 손을 빼면 떠나고, 넣으면 돌아왔다. 세라는 손을 뺐다 넣기를 천천히 세 번 반복했다. 세 번 모두 같은 결과였다. 군집은 세라의 손이 있는 곳에 머물고 싶어 했다.

그날 밤, 세라는 숙소에서 잠을 자려다 포기하고 5구역 환기구로 갔다. 환기구 안에 손을 넣고 벽에 기대 앉았다. 군집이 모여들었다. 신호가 0.8초 주기로 맥동했다. 세라는 눈을 감았다. 수십억 개체의 미세한 열이 손목까지 올라왔다. 세라의 눈꺼풀이 내려가면서 심박이 느려졌다. 군집의 맥동도 세라를 따라 함께 느려졌다.

새벽에 도윤이 세라를 찾아왔다. 5구역 환기구 앞에서 잠들어 있는 세라를 발견했다.

“세라.”

세라가 눈을 떴다. 손이 여전히 환기구 안에 있었다. 도윤이 말했다.

“정착지 서쪽의 분출구가 확대됐어. 황화수소 농도가 기준치의 8배야. 바람이 바뀌면 4시간 안에 정착지에 도달해.”

세라가 일어섰다. 손을 환기구에서 뺐다. 군집이 다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세라의 손에서 남은 열이 식어갔다.

“군집이 필요해요.”

세라가 말했다.

“환기 시스템이 아니라, 행성 자체가 군집을 필요로 하는 거예요. 분출구를 메우려고 토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군집을 환기 시스템에 가두고 있는 동안, 행성의 균열은 계속 커지고 있었던 거예요.”

도윤이 세라를 봤다.

“그럼 어떻게 해?”

세라가 답했다.

“놓아줘야 해요.”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군집을 놓으면 대기 정화가 멈춰.”

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바닥이 아직 따뜻했다. 군집이 남긴 열이었다. 세라가 환기 시스템을 열면 군집은 떠난다. 그러면 7구역의 아이 6명은 산소가 없는 방에 남는다. 세라가 환기 시스템을 닫아두면 군집은 갇힌다. 그러면 행성의 균열이 벌어지고, 분출구가 커지고, 결국 정착지 전체가 무너진다. 어느 쪽이든 217명은 여기 있을 수 없었다.

“알아요.”

세라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래도요.”

도윤이 세라의 얼굴을 봤다.

“울고 있어?”

세라가 손등으로 눈 아래를 문질렀다.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군집이 지하로 돌아가서 균열을 메우면, 분출이 줄어들 수 있어요.”

도윤이 물었다.

“장기가 얼마인데?”

세라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수십 년일 수도, 수백 년일 수도 있었다. 세라의 수명 안에는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었다.

세라는 공구함에서 렌치를 꺼내 모든 구역의 환기관 접합부를 열었다. 밀봉재를 하나씩 제거하고, 군집이 자유롭게 토양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세라가 9구역의 마지막 접합부를 열었을 때, 환기 시스템 전체에서 군집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모니터의 밀도 지도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고, 몇 분 뒤 노란색이 빨간색으로 물들어 갔다. 관제실에서 경보가 울렸다. 7구역에서 산소 농도 경고가 먼저 떴다. 이어서 3구역, 1구역 순서로 경보음이 겹쳤다.

2시간 뒤, 정착지 전체의 군집 밀도가 11퍼센트로 떨어졌다. 대기 정화 효율이 정상의 6분의 1이었다. 도윤이 관제실에서 비상 산소 공급 시스템의 밸브를 열었다. 비축분으로 2주를 버틸 수 있었다. 정확히 14일치. 15일째에는 산소가 바닥났다. 그 2주 안에 케플러-438비의 저궤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계선에 구조 요청을 보내고, 217명 전원을 탈출시켜야 했다. 중계선까지 전파 신호가 가는 데 6시간, 구조선이 착륙하는 데 8일. 빠듯하지만 가능한 시간이었다.

세라는 비상 절차가 진행되는 관제실의 소란을 등지고 3구역 환기구로 갔다. 환기구 안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군집의 잔류 개체가 수천만 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세라가 환기구에 손을 넣었다. 잔류 군집이 모였다. 열이 느껴졌다. 약했지만. 세라는 눈을 감지 않았다. 이번에는 보고 싶었다. 프로브 없이, 센서 없이, 피부로만. 군집이 세라의 손가락 위로 올라왔다. 손등을 지나 손목 쪽으로. 그리고 방향을 바꿨다. 환기구 바깥으로. 접합부를 통해 토양 속으로. 떠나는 중이었다. 세라의 손 위를 지나가면서, 군집의 전기 신호가 바뀌었다. 프로브 화면 없이도 알 수 있었다. 피부 아래에서 울리는 진동의 결이 달랐다. 이전의 맥동과 다른 것이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정한 압력. 세라의 심박도 맥동도 아닌, 군집 자신의 리듬이었다. 14년 동안 인간의 도구였던 것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열이 사라졌다. 세라는 손을 빼지 않았다. 환기구 안의 공기가 손가락 사이를 지나갔다. 세라는 빈 환기구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관제실에서 구조 요청 발신 완료를 알리는 경보음이 울렸다. 세라의 발밑에서 토양이 한 번 흔들렸다. 짧고 낮은 진동이었다. 밀어내는 느낌은 없었다.

도구가 사랑을 돌려줄 수 있다면, 도구를 놓아주는 것도 사랑인가?

이런 이야기는 어때요?

← 목록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터 | fic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