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설악산이 깨어난 밤

2026. 2. 19. · 9,778자 · 약 11분

설악산이 깨어난 밤 썸네일
17

윤채은은 새벽 3시 42분에 경보음에 잠을 깼다. 장마 끝자락의 축축한 공기가 피부에 들러붙는 밤. 창가 단말기 화면에서 붉은 점멸이 반복되고 있었다. 생태관리국 중앙서버 발신, 비정상 감지 경고. 설악산 19번 관할구역 동쪽 경사면에서 토양 수분 센서 클러스터 7기가 동시에 이상값을 쏟아내고 있었다. 채은은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건강 검진은 두 달째 미루는 중이었고, 가족과의 관계는 오래전에 끊어졌다. 외로움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으나 불안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한밤중에 이런 경보가 울리는 일은 17년차 생태건축가 경력 통틀어 손에 꼽았다. 대개는 장비 오류이거나 기상 변동에 따른 일시적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심장이 미세하게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채은이 강원생태관리구 사무소에 도착한 것은 새벽 5시였다. 복도의 형광등이 켜져 있었고, 커피 자판기 옆에서 후배 기술원 김도윤이 종이컵을 들고 서 있었다. 스물여섯, 합성생태학 전공. 그에게 자연 생태계란 교과서 속 흑백사진이었다. 도윤이 종이컵을 내려놓고 모니터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선배, 이거 보셨죠? 미생물 활성도가 설계 모델 대비 340퍼센트입니다. 장비 고장이 아니면 설명이 안 돼요.”

목소리가 높았다. 흥분인지 불안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채은은 화면에 코를 박듯 들이댔다. 미생물 호흡량, 질소 순환율, 균사 네트워크 전기 신호. 전부 설계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센서 7기 동시 고장? 확률은 무시해도 좋았다.

“현장에 나간다.”

채은이 짧았다.

드론택시가 내려준 설악산 19번 구역은 2079년에 조성된 3세대 합성산림이었다. 소나무과 합성수종 4만 그루가 1.8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섰고, 하층에는 합성 관목과 지피식물이 설계 밀도에 따라 심겨 있었다. 토양 기질층 아래에는 7년 주기 영양제 공급 시스템이 매립되어 있었고, 외래 포자와 종자 유입을 차단하는 정전기 필터 타워가 200미터 간격으로 서 있었다. 17년간 봐온 풍경인데 오늘따라 나무들의 규칙적인 배열이 유난히 거슬렸다. 할머니가 생전에 보여주던 사진첩 속 숲은 이렇지 않았다. 사진 속 나무들은 높이도 두께도 제각각이었고, 기울어진 것도 있었고, 서로 기대어 자라는 것도 있었다. 새벽 안개가 합성 수종 사이를 지나며 일정한 간격으로 같은 모양의 물방울을 맺히게 했다. 자연의 안개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채은은 발밑의 합성 토양을 밟았다. 밟힐 때마다 같은 탄성으로 되돌아오는 감촉. 진짜 흙은 이렇지 않았다고 할머니가 말한 적 있었다. 진짜 흙은 밟을 때마다 달랐다고.

동쪽 경사면으로 내려가 토양 노출구를 열자 채은은 숨을 삼켰다. 합성 기질층 위에 은백색 균사 네트워크가 퍼져 있었다. 거미줄처럼 가늘고 촘촘한 섬유질이 설계된 합성 미생물 군집과 뒤엉켜 있었다. 도윤이 휴대용 현미경을 들이대더니 한참 만에 고개를 들었다. 창백.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종입니다. 합성 생물이 아니에요.”

채은은 망설였다가 무릎을 꿇었다. 균사의 성장 패턴이 불규칙했다. 합성 균류의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성장과 완전히 달랐다. 이 균류는 주변 환경에 반응하면서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고 있었다. 채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흙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합성 토양의 무취와 다른, 날것의 냄새. 머릿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원래 숲은 이런 거였어.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자라는 것들로 가득했지.

할머니 박순옥은 2020년대 국립공원 관리원이었다. 2050년대 대기후변동과 연쇄 생태 붕괴가 한반도 야생 생물종의 71퍼센트를 쓸어가기 전까지, 할머니는 날마다 산을 걸었다. 야생의 마지막 목격자. 채은은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다니는 다람쥐, 돌 밑에 숨은 도롱뇽, 비 온 뒤 불쑥 솟는 이름 모를 버섯들. 동화였다. 채은에게는. 지금의 숲에는 다람쥐도 도롱뇽도 없다. 동물 종 복원 프로그램은 예산 부족으로 2076년에 중단되었고, 합성 생태계는 식물과 미생물만 다루었다. 할머니는 2071년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병상에서 채은의 손을 꼭 잡고 남긴 말이 있었다.

“네가 살아 있는 동안 야생이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온기. 아직도 기억했다.

규정대로라면 비인가 생물 발견 보고서를 작성하고 중앙서버에 즉시 올려야 했다. 접수 후 48시간 이내에 방역팀이 출동하여 해당 구역을 봉쇄하고, 비인가 생물을 채취한 뒤 고온 소각 처리하며, 토양 기질층을 교체하는 일련의 격리 및 소각 절차가 진행된다. 도윤이 이미 양식을 띄워놓고 있었다.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격리팀 내일 새벽에 뜹니다.”

펜을 집었다가 채은은 내려놓았다.

“잠깐. 이 균류가 주변 합성 미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부터 보자.”

도윤의 눈이 커졌다.

“규정에는 관찰 기간이 없습니다. 즉시 보고예요.”

알고 있었다. 잘 알았다. 생태안전법 제십칠조. 비인가 생물체 발견 시 즉시 보고 및 격리 의무.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 그래도 채은은 24시간만 달라고 했다. 도윤은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

24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텐트 없이 관측 장비와 보온 담요만으로 버텼다. 밤이 깊어지자 합성산림 특유의 무음이 귀를 눌렀다. 벌레 소리도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소리도 없는 고요. 채은은 그 적막. 그 속에서 균사가 뻗어가는 소리를 듣는 듯했다. 결과는 예상을 넘었다. 미등록 균류가 합성 토양 미생물 6종과 자발적 공생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인 흡수 효율이 설계 모델 대비 23퍼센트 상승, 질소 고정량 17퍼센트 증가. 합성 생태계 설계자들이 수십 년간 최적화하지 못한 효율이 저절로 달성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균류가 소나무 뿌리와도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균근 형성의 초기 징후. 자연계에서 균근 공생은 숲 생태계의 핵심 메커니즘이었으나 합성 생태계에서는 불필요한 복잡성으로 치부되어 설계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이 발견은 합성생태학의 기본 전제 하나에 균열을 내는 것이었다.

데이터를 들고 서울 본부로 갔다. 감사관 이정훈의 사무실은 본부 8층 구석에 있었다. 채은보다 5년 선배인 베테랑 관료로, 연구원 출신답게 벽에 대기후변동 전 한라산 사진을 걸어두고 있었다. 이정훈은 노안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데이터를 훑었다. 훑었다. 오래. 사무실에 커피 식는 냄새만 감돌았다. 이윽고 등을 의자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

“과학적으로는 흥미롭소. 인정합니다. 하지만 윤 건축가, 합성 생태계가 왜 존재하는지는 잊지 말아야지요. 2055년 재앙 뒤에 우리가 선택한 건 예측 가능성이었습니다. 자연의 복원력에 맡겼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우리 세대는 직접 봤습니다.”

채은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70년이 지났습니다. 합성 생태계 자체가 새로운 진화의 환경이 된 거예요. 이 균류는 합성 환경에서 자발적으로 태어난 생명입니다. 소각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이정훈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의 합성 가로수가 바람에 일제히 같은 각도로 흔들렸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48시간 줄 수 있습니다. 그 안에 결론을 내시오.”

추가 시간 동안 다른 구역의 센서 데이터를 분석했다. 19번 구역만이 아니었다. 강원도 일대 합성산림 8개 구역에서 유사한 비정상 미생물 활동 신호가 미약하게 잡히고 있었다. 뚜렷한 곳은 19번뿐. 단발 돌연변이가 아니라 체계적 현상의 시작일 수 있었다. 합성 생태계가 도입된 지 70년이 흐르면서 설계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토양과 미생물과 공기가 상호작용하며 의도치 않은 창발적 진화를 촉발한 것일 수 있었다. 채은은 분석 결과를 이정훈에게 전송했다. 답신은 짧았다. 본부 내부 회의를 소집하겠다. 19번 구역 소각은 당분간 보류한다.

도윤은 동의하지 않았다. 사무소 좁은 회의실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 커피 식는 냄새가 감도는 가운데 둘은 부딪혔다. 도윤이 책상을 짚으며 말했다.

“선배, 저 합성생태학 4년 배웠잖아요. 설계 시스템의 안정성이 왜 중요한지 안다고요. 비인가 생물 하나가 전체 네트워크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2055년 전에 자연이 스스로 균형 잡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 그 결과가 대멸종이었습니다.”

채은은 도윤의 눈을 바라보았다. 젊은 눈이었다. 확신에 찬 눈.

“나도 알아. 하지만 도윤아, 우리가 설계하지 않은 것이 자라나고 있다는 건 생명이 통제 너머에서도 작동한다는 뜻이야. 소각이 답은 아니야. 최소한 이해하려는 시도는 해야지.”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이해하겠다고 시간 끄는 사이에 위험이 커질 수도 있어요.”

침묵.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도윤의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채은은 도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옳은 답이 하나뿐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본부 내부 회의 결과 전문가 자문단이 꾸려졌다. 합성생태학자 3명, 고생태학자 1명, 환경법학자 1명, 시민단체 대표 1명. 채은은 현장 책임자로서 데이터를 제공했다. 자문단 회의는 3주에 걸쳐 4차례 열렸고, 회의록만 200페이지를 넘기는 격론 속에서 논쟁은 선명하게 두 진영으로 갈렸다. 합성생태학자들은 격리를 주장했다. 비인가 생물의 확산은 예측 모델을 무효화하며, 모델이 무효화되면 관리 체계 전체가 흔들린다는 논리였다. 반면 고생태학자 최선영 교수가 다른 관점을 내놓았다.

“70년간 합성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의도치 않게 새로운 진화 환경을 제공한 겁니다. 실패가 아니에요. 예측 못 한 성공입니다.”

그녀는 현미경 사진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이 균류는 합성 환경과 자연 진화의 교차점에서 태어난 전혀 새로운 존재입니다.”

환경법학자는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법은 설계된 생물과 비인가 침입종만 구분할 뿐, 합성 환경에서 자생한 야생 생물이라는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법원의 판례도, 행정부의 의결 사례도, 이런 상황을 다룬 적이 없었다. 제도의 빈틈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문단이 논의하는 사이 보도가 터졌다. 한 기자가 센서 이상 패턴을 추적하다 19번 구역 비인가 균류 사실을 캐낸 것이다. 시민 포럼에서

“야생의 귀환”

이라는 말이 퍼졌다. 설계되지 않은 생명. 70년 만이었다. 많은 이에게 감정적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거셌다.

“합성 생태계 흔들면 식량부터 무너진다.”

농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우려가 번졌다. 합성 작물의 수확량은 합성 토양 미생물 네트워크의 안정성에 직결되어 있었고, 비인가 생물이 이 네트워크를 교란하면 식량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절박.

여론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채은은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았다. 17년간 합성 생태계를 설계하고 관리해 온 사람이 야생 편에 서려 하고 있었다. 모순이 뼛속까지 아렸다. 두려웠다. 자신이 17년간 쌓아온 것을 스스로 허무는 것 같았다. 어느 밤, 자택 서재에서 할머니의 노트를 다시 펼쳤다. 마지막 페이지에 할머니의 필체가 남아 있었다.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봄에 갑자기 피어난 꽃, 여름에 처음 들은 새소리, 가을에 길에서 만난 고슴도치. 전부 계획 밖에서 온 선물이었다. 노트를 덮고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아파트 단지의 합성 녹지대가 가로등 빛 아래 균일한 초록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지나치게 완벽한 풍경이 오히려 채은의 가슴을 조여왔다. 이 풍경에 예상치 못한 것이란 없었다. 모든 것이 계획 안에 있었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완벽하게 통제된 풍경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지울 수가 없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할머니 세대는 야생을 당연하게 여겼고, 내 세대는 야생을 위험으로 정의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인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채은은 물컵을 내려놓고 서재로 돌아가 할머니의 노트를 한 번 더 펼쳤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후회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자문단의 최종 보고서는 두 가지 권고안을 담고 있었다. 첫째, 19번 구역 균류를 즉시 소각하지 않고 격리 관찰한다. 둘째, 전국 합성산림에 대한 비인가 생물 전수 조사를 실시한다. 본부가 이를 수용했다. 다만 조건은 엄격했다. 균류가 구역 경계를 벗어나면 즉시 소각, 관찰 기간은 6개월 한정. 채은이 관찰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도윤이 부책임자가 되었다. 도윤은 여전히 회의적이었지만 협력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19번 구역 경사면 중턱에 컨테이너형 임시 관측소를 짓고, 센서 케이블을 연결하고, 야간 적외선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렇게 상주 관찰에 들어갔다.

1개월째, 균류는 안정적으로 자라며 합성 미생물과의 공생 네트워크를 넓혔다. 토양 건강 지표가 모든 항목에서 설계 모델을 웃돌았다. 2개월째, 소나무 뿌리와 본격 균근 형성이 시작되었다. 균근이 붙은 소나무는 인접 개체보다 성장 속도가 8퍼센트 빨랐다. 3개월째, 균류 영향권 내 합성 기질층의 화학 조성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설계와 다른 새로운 화학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4개월째,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변화된 토양에서 이끼와 유사한 미등록 생물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균류가 만든 환경이 또 다른 야생 생물의 출현을 촉발한 셈이었다.

이 소식에 관리국 내부가 술렁였다. 도윤이 채은 앞에 섰다.

“선배, 연쇄 반응입니다. 지금 안 끊으면 손쓸 수 없게 돼요.”

끄덕였다. 그러고는 데이터를 가리켰다. 새로 나타난 이끼는 주변으로 공격적으로 퍼지지 않았다. 균류 네트워크 범위 안에서만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 경계를 짓는 것처럼. 보고서에 이 관찰을 적으며 채은은 중얼거렸다. 야생은 무질서가 아니다. 설계와 다른 종류의 질서가 있다. 인간이 만든 질서보다 오래된, 생명 자체가 빚어내는 질서.

5개월째, 의회 환경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섰다. 위원장이 물었다.

“윤 책임자, 19번 구역의 비인가 생물이 합성 생태계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보십니까?”

5개월치 데이터를 펼쳐놓으며 답했다.

“현재까지는 위협이 아니라 개선입니다. 하지만 장기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야당 의원이 끼어들었다.

“인정하면서 왜 소각을 반대합니까?”

채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70년 전 대멸종 이후 우리는 안전을 위해 야생을 포기했습니다. 당시에는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야생이 스스로 돌아오려 합니다. 이것을 다시 지우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묻고 싶습니다.”

청문회장이 조용해졌다. 어딘가에서 볼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위원장이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청문회 이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제한적 야생 관찰구역 지정 찬성”

이 47퍼센트를 기록했다. 3년 전에는 9퍼센트였다. 의회가

“제한적 야생 시범구역”

지정 법안을 발의했다. 한반도 합성산림 면적의 0.5퍼센트에 해당하는 구역에서 관리를 중단하고 자연 발생 변화를 관찰한다는 내용. 관리국 내부에서 격렬한 반대가 터져 나왔다. 정책 변경은 기관의 존재 이유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행정 조직 전체의 심사 기준과 집행 권한이 흔들릴 수 있었다. 법안은 여야 합의와 수정을 거쳐, 환경위원회 의결과 본회의 표결을 통과했다. 시범구역에서 발생한 비인가 생물이 인접 합성 구역의 경계를 0.1퍼센트라도 침범하면 시범구역을 즉시 폐쇄하고 원상복구하며, 시범 기간은 3년으로 제한하되 중간 평가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조기 종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채은이 첫 번째 시범구역 관찰 총괄로 임명되었다. 도윤은 그 결정을 받아들이면서도 말했다.

“선배, 아직 걱정됩니다. 하지만 믿을게요. 데이터에 기반해서 판단하겠다는 약속만 지켜주세요.”

채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영 첫날, 정전기 필터를 해제했다. 영양 보충 시스템을 껐다. 정기 교체 프로그램을 멈추었다. 한 달 뒤 설계 식물 일부가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이끼가 번졌다. 두 달째 미등록 곤충이 관찰되었다. 세 달째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넉 달째 지렁이가 토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채은은 새벽에 일어나 센서를 점검하고, 오전에 토양 샘플을 채취하고, 오후에 성장 데이터를 기록하고, 저녁에는 그날의 관찰을 일지에 적었다. 할머니의 노트와 닮은 문체로. 다섯 달째 저녁, 관측소 앞에 앉아 일지를 쓰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합성산림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소리가 났다. 새가 울고 있었다. 짧고 불규칙한 울음이었다. 채은은 펜을 놓고 그 소리를 오래 들었다. 심장. 조용히. 기억났다, 할머니가 새소리를 흉내 내주던 것이.

6개월째 보고서가 발표되었을 때 생물 다양성 지수는 합성 생태계 평균의 2.7배였다. 그러나 경계 지대에서 야생 이끼가 인접 합성 구역으로 10미터가량 넘어간 사례가 3건 보고되었다. 관리국이 긴급 경계 강화 조치를 시행했고, 채은은 콘크리트와 금속 메시로 구성된 월경 방지용 물리적 격리 구조물의 설치 공정을 직접 감독했다. 도윤이 옆에서 구조물을 점검하다 물었다.

“선배, 이 격리벽이 언젠가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올까요?”

채은은 구역 너머로 뻗어가는 이끼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 질문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

해가 기울고 있었다. 시범구역 나무 사이로 석양이 불규칙하게 부서졌다. 합성산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자. 패턴이 아니었다. 그냥 빛이었다. 설계되지 않은 가지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다. 시범구역은 작지만 살아 숨 쉬는 생태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양면적이었다. 토양 건강과 생물 다양성은 극적으로 나아졌으나 일부 합성 수종이 고사하면서 산사태 위험 지수가 올라갔다. 합성 수종은 산사태 방지를 위해 설계된 뿌리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야생 식물로 대체되면서 그 기능이 약해진 것이다. 안전과 야생은 간단한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었다. 채은에게 답은 없었다. 다만 데이터를 모으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 자기 역할이라 믿었다. 갈등과 상실 속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으려 했다. 합성 생태 제도와 정책이 가져다준 안정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었으나 규정 너머의 가능성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 발견은 시대가 당면한 근본 질문으로 이어졌다. 안전을 위해 야생을 완전히 포기할 것인가, 야생의 불확실성을 품으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을 것인가.

어느 저녁, 시범구역 동쪽 경사면에서 채은은 작은 꽃을 발견했다. 흰 꽃잎 다섯 장.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종이었다.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었다. 쪼그려 앉았다. 오래.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네가 살아 있는 동안 야생이 돌아오기를 바란다. 꽃잎에 손을 대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꽃이 흔들렸다. 합성 정원의 꽃도 바람에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은 줄기의 탄성 계수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 이 꽃은 달랐다. 줄기가 가늘고 불균일해서 바람의 세기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을 그렸다. 바라보았다. 불규칙한 움직임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할머니가 국립공원 관리원으로 30년을 걸었던 숲은 이 작은 꽃의 흔들림과 같은, 예측할 수 없고 설계할 수 없는 불규칙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나무마다 다른 높이, 가지마다 다른 각도, 잎마다 다른 색. 그 모든 불규칙함이 하나의 숲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 꽃 한 송이가 인류가 70년 전에 잃어버린 세계에서 보내온 마지막 메아리이자, 아직 아무도 이름 붙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내미는 첫 번째 손짓일 수도 있었다. 채은은 관찰 일지를 꺼내 적었다. 오늘 시범구역 동쪽 경사면에서 미등록 야생화를 발견했다. 흰색 꽃잎 5장, 줄기 높이 약 12센티미터. 저녁 햇살이 꽃잎을 통과하면서 반투명한 빛을 만들었다. 이 꽃은 누구의 설계도에도 없다. 누구의 계획에도 없다. 그런데 여기 있다. 아름다웠다. 일지를 닫고 일어섰다. 설계되지 않은 내일을 향해 산길을 걸었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규칙하게 불었고, 채은은 그 불규칙함이 좋았다.

합성 생태계가 70년간 유지되면서 의도치 않게 새로운 진화를 촉발했다면, 이 '설계되지 않은 진화'를 인간이 다시 통제하려는 시도는 정당한가—아니면 생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는 어때요?

← 목록으로
설악산이 깨어난 밤 | fic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