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가 딸의 검체를 분류대에서 발견한 것은 월요일 오전이었다. 질병관리청 역학조사과 3층 분석실. 분류대 위에 노란색 봉투 47개가 줄지어 있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각 보건소에서 올라오는 주간 검체. 정하는 첫 번째 봉투부터 바코드를 스캔했다. 스캐너가 삐 소리를 내며 검체 정보를 시스템에 올렸다. 정하는 7년간 매주 이 작업을 했다. 월요일 아침. 봉투를 들고, 스캐너에 대고, 삐 소리를 듣는다. 이름, 생년월일, 채취 일시, 채취 기관. 정하의 손이 17번째 봉투에서 멈췄다.
이름: 강수아. 생년월일: 2042년 3월 7일. 채취 기관: 도봉구 보건소. 채취 사유: 학교 정기 검진.
정하의 딸이었다. 열한 살. 정하의 입안이 말랐다. 물을 마시고 싶었다. 분석실의 정수기가 복도 쪽에 있었다. 정하는 일어나지 않았다. 봉투 안에 혈액 채취관 2개와 구강 상피 세포 채취 키트가 들어 있었다. 봉투의 밀봉 상태가 양호했다. 정하는 봉투를 들어올렸다. 무게가 다른 봉투들과 같았다. 가벼웠다. 혈액 5밀리리터와 면봉 하나의 무게.
정하는 봉투를 분류대에 다시 내려놓았다. 나머지 30개의 봉투를 스캔했다. 스캐너가 47번 소리를 냈다. 정하는 스캔이 끝난 뒤 모니터를 봤다. 47건의 검체가 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17번째 줄에 강수아의 이름이 있었다.
역학조사과에서 이 검체들을 분석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제2면역 반응 검출. 3년 전 인간 게놈의 비코딩 영역에서 고대 바이러스의 단백질 암호가 발견됐다. 게놈의 97퍼센트를 차지하는 비활성 영역.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서열이었다. 극심한 환경 스트레스 — 고농도 미세먼지, 저선량 방사선, 중금속 노출 — 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인구의 0.7퍼센트에서 이 서열이 활성화됐다. 활성화된 서열은 기존 면역계와 다른 단백질을 생산했다. 제2면역. 활성화된 사람은 대부분의 감염병에 면역이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 후속 변이에도 감염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제2면역 활성자의 타액과 호흡에서 미량의 면역 교란 단백질이 검출됐다. 이 단백질이 비활성자의 면역계를 교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교란의 정도는 미미했다. 비활성자의 백혈구 수치가 일시적으로 3퍼센트에서 7퍼센트 변동하는 수준이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아무 증상도 느끼지 못할 정도. 면역 저하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연구가 하나 있었다. 반박 논문이 3편 나왔다. 원저자는 추가 데이터를 내놓지 못했다. 그래도 법은 남았다.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인지는 논쟁 중이었다. 논쟁은 3년째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법은 먼저 만들어졌다. 제2면역 활성자는 격리 대상이었다. 격리 시설에 수용됐다. 시설은 전국에 14곳이었다. 수용 인원 총 2만 3,000명. 정하가 7년간 역학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양성 판정을 내린 사람이 417명이었다. 417명의 혈액을 분석했다. 417명의 이름을 보고서에 적었다. 417장의 격리 통보서에 서명했다. 처음 서명할 때는 펜을 잡은 손이 무거웠다. 100번째 즈음부터 무게가 사라졌다. 절차였으므로.
정하는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분석실 창 밖으로 서울의 아침이 보였다. 11월. 나무에 잎이 거의 없었다. 하늘이 회색이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었다. 정하는 창을 봤다가 분류대를 봤다. 17번째 봉투가 다른 봉투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노란색. 같은 색. 같은 크기. 정하는 그 봉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수아의 검체가 여기 올라온 것은 정상적인 절차였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정기 검진에 제2면역 검사가 포함됐다. 만 7세 이상 전원 대상. 법 개정이 올해 1월에 이루어졌다. 이전에는 성인만 검사 대상이었다. 아이들까지 확대된 것은 소아 활성자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소아 활성률이 성인의 1.4배. 환경 스트레스에 더 민감한 면역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보건소에서 채취한 검체가 질병관리청으로 올라온다. 역학조사과에서 분석한다. 양성이면 보건당국에 통보한다. 통보를 받은 보건당국이 해당자를 격리 시설로 이송한다. 정하가 그 과정의 첫 번째 단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검체를 받고, 분석하고, 결과를 올리는 사람.
정하는 봉투를 들고 분석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었다. 복도 끝에 냉장 보관실이 있었다. 정하는 보관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온도 4도. 선반에 이번 주 검체들이 정리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정하는 수아의 봉투를 선반에 올려놓았다. 다른 46개의 봉투와 함께. 손을 뗐다. 보관실을 나왔다. 문이 닫혔다.
정하는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를 봤다. 47건의 검체 목록. 분석은 내일 시작된다. 분석 장비 가동 시간이 내일 오전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오늘부터 내일 오전까지. 정하에게 시간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정하는 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 밖 계단에서. 신호음이 3번 울렸다.
“아빠.”
수아의 목소리. 밝았다.
“학교 끝났어?”
“응. 지금 집이야.”
“엄마는?”
“아직 안 왔어.”
정하는 계단 난간을 잡았다. 금속이 차가웠다.
“수아야, 지난주에 학교에서 검사 받았지? 피 뽑고 입안 긁은 거.”
“응. 아팠어.”
“아팠어?”
“피 뽑을 때. 근데 금방 끝났어.”
정하는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아야, 그거 결과는 아직 안 나왔어. 알지?”
“응. 선생님이 나중에 알려준대.”
“그래. 나중에 알려줄 거야.”
전화를 끊었다. 수아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아팠어. 피를 뽑을 때 아팠다고 했다. 보건소의 간호사가 수아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을 것이다. 수아가 눈을 감았을 것이다. 수아는 주사를 맞을 때 항상 눈을 감는다. 정하는 계단에 앉았다. 콘크리트가 차가웠다. 11월의 공기가 계단통으로 밀려 들어왔다.
정하는 수아가 태어난 해를 생각했다. 2042년. 서울의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가 처음으로 80마이크로그램을 넘은 해였다. 수아가 태어난 병원의 창문에 공기청정기가 4대 돌아가고 있었다. 신생아실에도. 수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오염된 공기를 마셨다. 정하도 마셨다. 정하의 아내 은미도.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이. 서울의 하늘이 파란 날이 1년에 90일이었다. 나머지 275일은 회색이거나 누런색이었다. 수아는 파란 하늘을 특별한 것으로 여겼다.
“아빠, 오늘 하늘 진짜 파란색이야!”
수아가 5살 때 한 말이 정하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파란 하늘이 특별한 도시에서 수아가 자랐다. 0.7퍼센트. 환경 스트레스에 반복 노출된 인구 중 제2면역이 활성화되는 비율. 정하는 그 숫자를 7년간 보고서에 써왔다. 숫자였다. 417명의 양성 판정 뒤에 있는 숫자. 지금 그 숫자가 수아 위에 놓여 있었다.
오후. 정하는 분석 장비의 시약 재고를 확인했다. 내일 47건을 분석하려면 시약이 충분해야 했다. 충분했다. 정하는 시약 목록을 체크하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검체 17번. 강수아. 분석 결과가 양성이면 어떻게 되는가. 결과가 시스템에 올라간다. 보건당국에 자동 통보된다. 통보 후 72시간 이내에 격리 이송 명령이 발동된다. 수아가 격리 시설로 간다. 전국 14곳 중 하나로. 시설의 수용 조건을 정하는 알고 있었다. 시설을 점검한 적이 있었다. 1인 1실. 면적 9.9제곱미터. 화장실 포함. 창문이 있지만 열리지 않는다. 외부 면회는 월 2회. 유리 칸막이 너머로. 수아가 그곳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 제2면역 활성이 비가역적이므로. 정하는 3번 시설을 점검한 적이 있었다. 경기도 포천. 건물 외벽이 회색이었다. 복도가 길었다. 방문을 열면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벽에 시계가 있었다. 창문으로 산이 보였다. 열리지 않는 창문. 수용자 중 한 명이 정하에게 물었다.
“밖에 비 와요?”
비가 오고 있었다. 창문에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
“비 냄새가 맡고 싶은데.”
정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하는 시약 목록을 내려놓았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정하는 줍지 않았다. 한참 뒤에 주웠다. 종이가 구겨져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다시 쥐었다.
저녁. 정하는 집에 돌아왔다. 수아가 거실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수학. 분수의 나눗셈. 수아가 정하를 봤다.
“아빠, 4분의 3 나누기 2분의 1이 뭐야?”
“뒤집어서 곱해.”
“그러면 4분의 3 곱하기 1분의 2?”
“아니, 2분의 1을 뒤집으면?”
“1분의 2. 아, 2?”
“그래. 4분의 3 곱하기 2. 몇이야?”
“6분의. . 아니, 4분의 6.2분의 3?”
“맞아.”
수아가 웃었다. 연필을 잡은 손이 작았다. 정하는 수아의 손을 봤다. 이 손에서 혈액을 뽑았다. 지난주에. 보건소에서. 그 혈액이 냉장 보관실에 있다. 내일 분석기에 들어간다.
은미가 부엌에서 나왔다. 은미는 수아의 학교 검진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검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정하는 알 수 없었다. 은미는 정하의 직업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7년간 417명을 격리시킨 사람의 아내였다. 은미가 그 숫자에 대해 물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손에 접시를 들고 있었다.
“밥 먹어.”
은미의 목소리가 평온했다. 매일 저녁의 목소리.
정하가 식탁에 앉았다. 수아가 숙제를 덮고 옆에 앉았다. 은미가 밥을 떴다. 김치찌개가 식탁에 올라왔다. 수아가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후후 불며. 뜨거운 국물이 수아의 입술에 닿았다. 수아가 입을 벌리고 바람을 넣었다. 뜨거워하면서도 또 한 숟갈을 떴다. 정하는 수아를 봤다. 수아의 볼이 붉었다. 건강한 색.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아이. 지난겨울 같은 반 아이 14명이 독감으로 결석했을 때 수아는 학교에 갔다. 정하는 그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건강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면역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수아는 유치원 때도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았다. 소아과 의사가 건강한 아이라고 했다. 정하는 그 말을 들으며 기뻤다.
지금은 달랐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밤. 수아가 잠든 뒤 정하는 서재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질병관리청 시스템에 접속했다. 원격 접속. 정하의 계정으로. 분석 대기 목록을 열었다. 47건. 17번, 강수아. 화면에서 이름이 빛나고 있었다.
정하는 시스템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 7년간 이 시스템을 써왔다. 검체가 분석기에 들어가면 결과가 자동으로 시스템에 업로드된다. 양성이면 보건당국에 자동 통보된다. 자동. 정하가 끼어들 수 없다. 결과가 나온 뒤에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가능하다. 검체를 바꿀 수 있다. 수아의 봉투에서 혈액 채취관을 꺼내고, 다른 사람의 혈액을 넣을 수 있다. 음성인 사람의 혈액을. 바코드는 수아의 것으로 유지한 채 혈액만 바꾸면 된다. 분석기는 바코드를 읽고 혈액을 분석한다. 수아의 이름으로 음성 결과가 올라간다. 구강 상피 세포 키트도 바꿔야 한다. 키트의 세포와 혈액의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하므로.
정하는 노트북을 닫았다. 눈을 감았다. 서재의 시계가 소리를 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 11시 47분. 내일 오전 9시에 분석이 시작된다. 9시간 13분.
정하는 눈을 떴다. 서재 책장에 역학조사 매뉴얼이 꽂혀 있었다. 정하가 직접 작성에 참여한 매뉴얼. 137페이지에 검체 관리 규정이 있었다. 검체 교환, 오염, 훼손 시 보고 절차. 정하가 쓴 조항이었다. 검체를 무단으로 교환하거나 훼손한 경우, 해당 조사관은 직위 해제 및 형사 고발 대상이 된다. 정하의 문장이었다. 정하의 이름이 매뉴얼 표지에 공동 저자로 적혀 있었다.
화요일 새벽 5시. 정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서재에서 천장을 보다가 수아의 방 문 앞에 섰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수아가 자고 있었다. 이불을 가슴까지 올린 채. 숨을 쉬고 있었다. 가슴이 오르내렸다. 정하는 문 앞에 서서 수아의 호흡을 봤다. 30초. 문을 닫고 현관으로 갔다. 집을 나섰다. 지하철이 아직 운행 전이었다. 택시를 탔다. 질병관리청 건물에 도착한 것은 5시 38분. 건물 1층에 야간 경비가 있었다. 정하는 직원증을 찍었다. 출입 기록이 남았다. 5시 38분.
3층 분석실. 불이 꺼져 있었다. 정하가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빡이다 켜졌다. 냉장 보관실로 갔다. 문을 열었다. 4도의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선반에 47개의 봉투. 17번째 봉투를 찾았다. 강수아. 정하는 봉투를 꺼냈다. 손에 닿는 봉투가 차가웠다. 4도의 냉기가 종이를 통해 전해졌다. 정하의 손가락이 봉투를 쥐었다. 수아의 이름이 적힌 라벨이 정하의 엄지 아래에 있었다.
봉투를 들고 분석실로 돌아왔다. 분석대 위에 봉투를 놓았다. 밀봉을 뜯었다. 안에 혈액 채취관 2개와 구강 세포 키트. 혈액의 색이 어두운 적색이었다. 정상. 정하는 채취관을 들어 봤다. 바코드 라벨에 수아의 이름과 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정하는 가방에서 다른 봉투를 꺼냈다. 어제 저녁 자신의 혈액을 채취한 것이었다. 집에 있던 채혈 키트로. 정하의 혈액. 정하는 3년 전에 제2면역 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정하의 혈액을 수아의 채취관에 넣으면 음성 결과가 나온다. 구강 세포도 정하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 유전자형이 달라지지만, 현재 분석 프로토콜은 제2면역 활성 여부만 검사한다. 유전자형 대조는 하지 않는다. 정하가 그 프로토콜을 알고 있었다. 정하가 만든 프로토콜이었으므로. 3년 전 프로토콜을 작성할 때 정하는 효율성을 우선했다. 검체 수가 많으므로 유전자형 대조까지 하면 분석 시간이 3배로 늘어난다. 제2면역 활성 여부만 검사하면 충분하다. 정하가 보고서에 그렇게 적었다. 승인됐다. 그 효율성이 지금 정하에게 창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정하는 수아의 채취관을 분석대 위에 놓았다. 옆에 자신의 채취관을 놓았다. 두 개의 채취관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형광등 아래서 혈액의 색이 비슷해 보였다. 아버지와 딸의 혈액. 색으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정하는 두 채취관 사이에 손을 올렸다. 오른손. 417명의 양성 판정서에 서명한 손. 정하는 그 손을 봤다. 손등에 핏줄이 보였다. 그 핏줄 안에 정하의 혈액이 흐르고 있었다. 정하의 알부민. 정하의 면역계. 3년 전 음성이었다. 지금도 음성인지는 모른다. 정하도 서울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으므로.
417명. 정하가 양성 판정을 내린 사람들. 그중 38명이 아이였다. 10세 미만. 부모가 울었다. 정하 앞에서. 정하는 결과를 전달했다. 절차에 따라. 매뉴얼에 따라. 양성입니다. 격리 시설로 이송됩니다. 면회는 월 2회 가능합니다. 부모들의 얼굴이 정하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남자 아이를 안고 울던 어머니. 딸의 손을 놓지 못하던 아버지. 7살짜리 남자아이가 정하의 바지를 잡고 놓지 않았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떼어내려 했다. 아이가 울었다. 정하의 바지에 아이의 손자국이 남았다. 정하는 그 바지를 버렸다. 세탁할 수 없었다. 정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절차입니다. 법에 의한 것입니다.
정하의 손이 수아의 채취관 위에 있었다. 수아의 혈액 5밀리리터. 이 안에 답이 있었다. 양성인지 음성인지. 정하는 아직 모른다. 검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수아가 양성일 수도 있고 음성일 수도 있다. 0.7퍼센트의 확률.
정하는 채취관을 집어 들었다. 수아의 채취관을. 혈액이 관 안에서 움직였다. 정하는 채취관을 봤다. 3초. 관을 내려놓았다.
정하는 자신의 채취관을 집어 들었다. 라벨이 붙어 있지 않았다. 정하는 수아의 채취관에서 라벨을 떼고 자신의 채취관에 붙이면 된다. 1분이면 끝나는 작업. 바코드 스캐너는 라벨만 읽는다. 관 안의 혈액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른다.
정하의 손이 라벨 위에 닿았다. 라벨의 모서리를 손톱으로 들어올렸다. 라벨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1밀리미터. 정하의 손이 멈췄다.
분석실의 시계가 6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직원이 출근하려면 2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하는 라벨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분석실의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일정한 빛을 내고 있었다. 정하의 그림자가 분석대 위에 떨어져 있었다.
정하는 손을 내렸다. 라벨은 1밀리미터 벗겨진 채 채취관에 붙어 있었다. 정하는 수아의 채취관을 집어 들었다. 자신의 채취관도 집어 들었다. 두 관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서 있었다. 왼손에 수아, 오른손에 자신. 분석실의 공기가 차가웠다. 난방이 아직 가동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하는 두 채취관을 분석대 위에 내려놓았다. 나란히. 수아의 채취관에서 라벨이 1밀리미터 떨어져 있었다. 정하는 그 틈을 봤다. 1밀리미터. 정하가 만든 틈. 정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수아의 사진이 배경화면이었다. 지난여름 바다에서 찍은 사진. 수아가 파도에 발을 담그고 웃고 있었다. 정하는 사진을 봤다. 화면의 빛이 분석대 위를 비췄다. 두 채취관 위로.
정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수아의 채취관을 집어 들었다. 라벨의 벗겨진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라벨이 다시 붙었다. 1밀리미터의 틈이 사라졌다. 정하는 수아의 채취관을 봉투에 넣었다. 자신의 채취관을 가방에 넣었다. 봉투를 밀봉했다. 냉장 보관실로 갔다. 봉투를 선반에 다시 올렸다. 17번째 자리에. 보관실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금속 소리. 육중한 금속음이 복도를 채웠다가, 이내 정하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정하는 분석실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를 켜지 않았다. 분석실의 시계가 6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출근 시간까지 1시간 37분. 정하는 의자에 앉아 창 밖을 봤다. 서울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늘이 회색에서 연한 주황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미세먼지 너머의 해. 빛이 분석실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먼지 낀 창으로 들어온 아침 빛이 사선으로 길게 뻗어, 정하의 무릎 위에 놓인 손등을 비췄다. 분석은 2시간 37분 후에 시작된다. 양성이든 음성이든, 결과는 나올 것이다. 빛이 바닥을 가로질러 그의 손등 위로 올라왔다. 그제야 정하는 보았다. 어젯밤에는 없던 붉은 반점 세 개가 자신의 손등에 피어난 것을. 복도 저편에서 첫 출근자의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