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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홍채가 변하기 전에

2026. 3. 13. · 9,020자 · 약 11분

엄마의 홍채가 변하기 전에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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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가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창가에 서 있었다. 병실은 4인실이었지만 다른 침대는 비어 있었다. 바티셀라 융합 환자는 격리 병동에 배정됐다. 감염 우려가 아니었다. 다른 환자들이 청회색 피부를 무서워했다. 등을 보이고. 병원 가운의 등 부분이 열려 있어서 척추 양쪽의 피부가 보였다. 피부색이 달라져 있었다. 일주일 전에는 목 아래 5센티미터까지였던 청회색 변이가 견갑골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수아는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어머니가 돌아봤다.

“왔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억양도. 끝을 살짝 올리는 습관도. 수아는 비닐봉지를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귤 여섯 개.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 어머니가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수아 옆에. 어머니의 손이 수아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왼쪽 귀 뒤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하던 동작이었다. 수아는 그 손을 봤다. 손톱 아래 피부가 청회색이었다. 손가락 끝에서 두 번째 마디까지. 일주일 전에는 손톱 밑에만 있었다.

“융합률 확인했어?”

수아가 물었다. 어머니가 탁자 위의 태블릿을 집어 수아에게 건넸다. 화면에 숫자가 떠 있었다. 71.2퍼센트. 일주일 전 측정치가 68.4퍼센트였다. 7일 만에 2.8퍼센트. 하루 평균 0.4퍼센트. 수아는 숫자를 봤다. 74퍼센트까지 남은 것은 2.8퍼센트. 7일. 수아의 손가락이 태블릿 가장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이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7일이야.”

수아가 말했다. 어머니가 수아를 봤다. 눈이 어머니의 눈이었다. 아직. 홍채 색이 바뀌지 않았다. 의료진이 말한 것이 있었다. 홍채 색이 변하면 뇌 시냅스의 군체화가 시작된 것이다. 어머니의 홍채는 아직 진한 갈색이었다.

“알아.”

어머니가 말했다. 귤을 하나 집어 까기 시작했다. 껍질이 벗겨지면서 감귤 향이 났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귤 껍질 사이로 파고들었다. 청회색 손끝이 주황색 껍질 위에서 움직였다. 수아는 그 손을 봤다. 이 손이 수아의 머리카락을 넘기는 동작을 74퍼센트 이후에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이 같은 의미일까.

수아가 이 병원에 처음 온 것은 8개월 전이었다. 해양생명의학센터. 부산 기장군 해안가. 5층짜리 흰색 건물이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건물 앞에 방파제가 있었다. 방파제 너머로 파도가 보였다. 바람에 소금 냄새가 섞여 있었다. 로비에서 바다가 보였다. 어머니의 진단명은 조기 노인성 황반변성이었다. 54세. 왼쪽 눈의 시력이 6개월 만에 0.8에서 0.2로 떨어졌다. 오른쪽도 따라가고 있었다. 안과 세 군데를 돌았다. 세 군데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해양생명의학센터의 임상시험 공고를 찾은 것은 수아였다. 심해 열수구에서 발견된 미지의 세포 — 학명 바티셀라 이모르탈리스. 이 세포가 인간 세포와 융합하면 텔로미어를 복원한다. 노화로 손상된 조직을 재생한다. 황반변성, 관절 퇴행, 골밀도 감소. 임상 1상 결과가 공개되어 있었다. 12명의 참가자. 전원 시력 회복. 전원 관절 기능 개선. 부작용 항목에 '피부 색소 변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아는 그것을 읽었다. 피부 색소 변이. 수아는 그 다섯 글자의 의미를 가볍게 여겼다. 점이 생기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수아는 어머니에게 임상시험 참여를 권했다. 어머니의 시력이 매주 떨어지고 있었다. 1개월 뒤면 왼쪽 눈의 시력이 0.1 아래로 내려갈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가 동의서에 서명한 것은 수아가 옆에 앉아 있을 때였다. 어머니의 왼쪽 눈이 서명란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수아가 펜 끝을 서명란 위에 갖다 대 줬다. 어머니가 이름을 적었다. 강미영. 수아가 옆에서 봤다. 어머니의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눈만으로 서명란을 찾고 있었다. 이름을 쓰는 데 8초가 걸렸다. 세 글자. 펜이 종이 위에서 떨렸다. 수아는 그 떨림이 눈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묻지 않았다.

첫 번째 주입은 3개월 전이었다. 바티셀라 세포 배양액 12밀리리터. 정맥 투여. 어머니는 투여 후 24시간을 병실에서 보냈다. 수아가 옆에 있었다. 밤새 어머니의 체온이 올라갔다. 38.2도. 38.7도. 39.1도. 새벽 3시에 39.4도까지 올랐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37.8도. 어머니가 눈을 떴다. 수아를 봤다.

“잘 보여.”

어머니가 말했다.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오른쪽으로 수아를 봤다. 그다음 오른쪽을 가리고 왼쪽으로 봤다.

“왼쪽도 잘 보여.”

어머니가 웃었다. 수아도 웃었다.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으로 갔다. 바다를 봤다.

“파도가 보여. 물거품까지.”

어머니가 유리에 손을 대고 말했다. 6개월 만에 어머니가 먼 곳을 본 것이었다. 수아는 어머니의 등 뒤에 서서 같이 바다를 봤다. 어머니의 목 뒤에 아직 아무 변화도 없었다. 피부색이 정상이었다. 그때는 웃을 수 있었다.

융합률이 처음 측정된 것은 주입 2주 뒤였다. 14.3퍼센트. 바티셀라 세포가 어머니의 세포핵과 결합한 비율. 의료진이 수아에게 설명했다. 융합률이 올라갈수록 재생 효과가 강해진다. 동시에 바티셀라의 특성이 인체에 발현되기 시작한다. 바티셀라는 심해 열수구에서 군체를 이루어 사는 세포였다. 개별 세포가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군체 전체가 하나의 신경망처럼 작동했다. 융합률이 높아지면 인간의 신경계에도 군체형 신호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 개체 의식이 약화되고 군체 본능이 강해진다. 임계점은 74퍼센트. 그 이상이면 비가역적이다.

수아는 14.3퍼센트라는 숫자를 봤다. 74까지 먼 숫자였다. 어머니의 눈이 보이기 시작한 숫자였다. 수아는 그때 74라는 숫자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한 달 뒤 융합률 31퍼센트. 수아가 주말에 병원을 방문했다. 어머니의 무릎 통증이 사라졌다. 계단을 오를 때 더 이상 난간을 잡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 뒤에 청회색 점이 하나 나타났다. 동전 크기. 수아는 그것을 봤다. 어머니가 거울로 확인하며 말했다.

“점 하나쯤이야.”

두 달 뒤 융합률 49퍼센트.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검어지기 시작했다. 흰머리가 뿌리부터 검게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로 수아에게 말했다.

“미장원 안 가도 되겠다.”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렸다. 수아도 웃었다. 그때는 아직 웃을 수 있었다. 청회색 점은 손바닥 크기로 커져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끊을 때 수아는 웃고 있었지만, 전화기를 내려놓은 뒤 검색창을 열었다. 바티셀라 이모르탈리스 융합 부작용. 검색 결과 3건. 논문에는 임상 데이터가 있었다. 융합률 50퍼센트 이상에서 행동 변화 시작. 60퍼센트 이상에서 개체 인식 기능 저하. 74퍼센트 이상에서 비가역적 군체화. 수아는 논문의 표를 봤다. 융합률과 행동 변화의 상관 그래프. 곡선이 50퍼센트 이후 급격히 올라갔다. 수아는 화면을 껐다.

세 달 뒤 융합률 62퍼센트. 수아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2시간 18분. 기차 안에서 수아는 어머니의 혈액 검사 결과를 태블릿으로 봤다. 바티셀라 세포 밀도가 밀리리터당 4,200만 개. 한 달 전에는 2,800만 개였다. 세포가 어머니의 몸 안에서 증식하고 있었다. 수아가 주말에 병원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 수아가 들어가도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

수아가 불렀다. 3초 뒤에 어머니가 돌아봤다. 눈이 수아를 봤다. 하지만 시선이 수아의 얼굴에 바로 닿지 않았다. 먼저 수아의 어깨를 보고, 목을 보고, 턱을 보고, 그다음에 눈을 봤다. 전체를 훑는 방식이었다. 사람을 보는 방식이 아니었다. 대상을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수아야.”

어머니가 말했다.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이름이 입에서 나오기까지 3초가 걸렸다. 이전에는 수아가 문을 열기도 전에 발소리만 듣고 이름을 불렀다. 수아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귤을 꺼냈다. 어머니가 귤을 받아 들었다. 귤을 까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었다. 둥근 형태를 만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표면을 따라 움직였다. 과일의 형태를 읽는 것 같았다. 유기체를 탐색하는 동작. 수아는 그 동작을 본 적이 있었다. 해양생명의학센터 로비에 있던 다큐멘터리 영상. 심해 열수구의 바티셀라 군체가 새로운 물체를 만났을 때 표면을 감싸며 구조를 파악하는 장면. 어머니의 손가락이 귤 위에서 하는 동작이 그것과 같았다.

“맛있지?”

수아가 물었다. 어머니가 수아를 봤다.

“이것의 세포 구조가 규칙적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수아의 등이 차가워졌다. 수아는 귤을 하나 더 꺼내 까서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받아서 한 쪽을 입에 넣었다. 씹었다. 삼켰다.

“달아.”

어머니가 말했다. 맛을 느끼는 것은 아직 가능했다. 수아는 그 한마디에 매달렸다. 어머니는 귤을 '맛있는 것'이 아니라 '세포 구조가 규칙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수아가 담당 의사 한정우를 찾아간 것은 그날 오후였다. 한정우의 사무실은 3층에 있었다. 책상 위에 해양 세포 표본 슬라이드가 쌓여 있었다.

“융합률 62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건 예상된 범위입니까?”

수아가 물었다. 한정우가 모니터를 돌려 수아에게 보여줬다. 임상 데이터 그래프. 12명의 참가자 중 융합률 60퍼센트를 넘긴 사람은 3명이었다. 나머지 9명은 50퍼센트 이하에서 융합이 정체됐다.

“3명 모두 비슷한 행동 변화를 보였습니다.”

한정우가 말했다.

“대상 인식 방식의 변화, 반응 시간 지연, 감정 표현 감소. 60퍼센트 이상에서 군체형 신경 패턴이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한정우가 화면을 스크롤했다.

“74퍼센트를 넘기면 군체 신경망이 개체 신경망을 대체합니다. 이후에는 치료를 중단해도 융합이 자체적으로 진행돼요.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한정우가 잠시 말을 멈추고 수아를 봤다. 수아의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수아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아는 의자에 앉은 채 사무실 벽의 해양 생물 포스터를 봤다. 심해 열수구의 사진. 어둠 속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고, 그 주변에 세포 군체가 빛나고 있었다. 푸른 빛. 저것이 어머니의 몸 안에 있었다.

“치료를 중단하면 어떻게 됩니까?”

수아가 물었다.

“융합된 세포가 제거되지는 않습니다. 62퍼센트 상태로 고정됩니다. 재생 효과는 유지돼요. 시력, 관절, 골밀도. 다만 추가 회복은 없습니다.”

“행동 변화는요?”

“62퍼센트 수준의 변화가 유지됩니다. 개선되지 않습니다.”

수아는 병실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침대에 앉아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또. 바다를 보고 있었다. 수아가 들어가자 어머니가 돌아봤다. 이번에는 1초 만에. 수아의 얼굴을 바로 봤다.

“수아야.”

어머니가 말했다. 지체 없이. 어머니의 손이 침대 위로 뻗어 수아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청회색 피부의 온도. 하지만 손을 잡는 힘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수아의 손을 감싸는 방식이 어머니의 것이었다.

“엄마가 할 말이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수아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어머니가 수아의 머리카락을 다시 쓸어넘겼다. 왼쪽 귀 뒤로. 청회색 손끝이 수아의 귓볼을 스쳤다. 차가웠다.

“나 요즘 바다가 불러. 설명하기 어려운데, 바다 쪽에서 뭔가가 와. 소리는 아니야. 진동 같은 거야. 여기로.”

어머니가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처음에는 무서웠어. 잠을 못 잤어. 밤에 진동이 더 강해져. 파도가 치는 시간이랑 맞아. 근데 지금은 안 무서워. 편해. 바다가 부르는 게 아니라, 바다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아.”

수아의 입이 마르고 있었다.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 어머니가 계속했다.

“근데 너를 볼 때는 달라. 바다 쪽에서 오는 그 진동이 멈춰. 네 얼굴을 보면 멈춰. 네가 누군지 아는 동안은 멈추는 것 같아.”

수아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어머니의 손이 차가웠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 치료 중단하자.”

수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62퍼센트에서 멈추면 눈도 유지되고, 무릎도 괜찮대.”

어머니가 수아를 봤다. 3초. 어머니의 눈이 수아의 눈 위에 머물렀다. 진한 갈색 홍채. 아직 어머니의 눈.

“수아야.”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네가 누군지 아는 동안 멈추고 싶어. 근데 그게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어.”

수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병원이 해안가에 있었다. 바다가 가까웠다. 어머니가 바다를 보는 시간이 늘고 있었다.

수아는 그날 밤 병원 로비에 앉아 있었다. 자판기 커피가 식어 가고 있었다. 로비에 사람이 없었다. 밤 10시. 해안가의 바람 소리가 건물 유리를 통해 들려왔다. 수아는 커피를 두 손으로 감쌌다. 종이컵의 온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종이컵의 표면에 습기가 맺혀 있었다. 수아는 태블릿을 열었다. 어머니의 융합률 그래프. 14.3에서 시작해 71.2까지 올라온 곡선. 곡선의 기울기가 일정했다. 멈출 기미가 없었다. 치료를 중단해도 62퍼센트에서 고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71.2퍼센트였다. 중단하면 71.2에서 고정되는 것인지 62로 내려가는 것인지 수아는 확인하지 않았다. 수아는 한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71퍼센트에서 중단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정우가 2초 동안 침묵했다.

“71에서 중단하면 71로 고정됩니다. 내려가지 않아요.”

“71이면 74까지 3퍼센트잖아요. 자체 진행 가능성은?”

“71에서 자체 진행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70 이상의 데이터 자체가 3건뿐이에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수아는 전화를 끊었다. 종이컵의 커피를 마셨다. 식어 있었다. 쓴맛이 혀 뒤쪽에 남았다.

다음 날 아침 7시. 수아는 병원 로비의 소파에서 잤다. 목이 뻣뻣했다. 세수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4층. 병실 복도에 간호사가 지나갔다. 수아가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가 창가에 서 있었다. 바다를 보고 있었다. 수아가 문을 닫았다. 어머니가 돌아봤다. 수아를 봤다. 수아의 어깨를 봤다. 목을. 턱을. 눈을. 전체를 훑었다.

“개체.”

어머니가 말했다.

수아의 발이 멈췄다. 침대와 창 사이의 2미터 거리에서. 어머니가 수아를 '개체'라고 불렀다. 이름이 아니라.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수아의 고막을 때렸다. 수아는 움직이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입안이 텁텁했다. 심장이 갈비뼈 안쪽에서 벽을 치고 있었다. 어머니가 수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수아를 개체로 분류한 것이었다. 군체의 언어였다. 바티셀라가 다른 유기체를 지칭하는 방식이었다.

어머니의 손이 올라왔다. 수아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왼쪽 귀 뒤로. 청회색 손끝이 수아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차가웠다. 동작은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수천 번 반복된 동작. 수아는 그 손을 봤다. 이 손동작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하지만 수아를 '개체'라고 부른 입은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홍채 가장자리에 청회색 테가 생겨 있었다. 갈색 홍채를 둘러싼 얇은 고리. 수아는 그것을 봤다. 의료진이 말한 것. 홍채 색이 변하면 뇌 시냅스의 군체화가 시작된 것이다. 수아의 무릎이 풀렸다. 침대 가장자리를 잡았다. 시트가 손아귀에서 구겨졌다.

어머니의 손이 수아의 머리카락 위에 있었다. 쓸어넘기는 동작이 끝나고도 손이 머물러 있었다. 수아의 머리 위에. 어머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수아.”

어머니가 말했다. '개체' 뒤에, 3초 뒤에, 수아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달랐다. '개체'를 말할 때의 편평한 톤이 아니었다. '수아'를 말할 때는 끝이 올라갔다. 어머니의 억양이었다.

수아는 어머니를 안았다. 어머니의 몸이 차가웠다. 병원 가운 너머로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청회색 피부의 온도. 하지만 어머니의 팔이 수아의 등을 감쌌다. 감싸는 힘이 있었다. 수아는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어머니의 가운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소금과 해조류. 이전에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라벤더 향. 수아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냄새였다. 그 냄새가 사라지고 바다가 들어와 있었다. 수아의 눈에서 물이 흘렀다. 어머니의 가운에 떨어졌다. 어머니의 팔이 수아를 더 꽉 안았다.

수아는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엄마, 오늘 중단해.”

어머니의 팔이 수아의 등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등을 쓸었다. 위에서 아래로. 어렸을 때 수아가 울면 어머니가 하던 동작.

“그래.”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의 손이 수아의 등을 한 번 더 쓸었다.

“미안해.”

어머니가 말했다. 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의 눈에 물기가 있었다. 청회색 테두리가 둘린 갈색 홍채 위에 투명한 물이 고여 있었다.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수아의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바다만큼이나 차가운 감각이었다.

한정우가 병실에 온 것은 오후 2시였다. 치료 중단 동의서를 가져왔다. 2쪽. 어머니가 서명했다. 강미영. 펜이 떨리지 않았다. 8개월 전과 달랐다. 수아도 보호자 서명을 했다. 한정우가 동의서를 가져가기 전에 어머니의 홍채를 확인했다. 펜라이트로. 어머니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한정우가 펜라이트를 껐다.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수아에게 말했다.

“최종 융합률 측정은 내일 오전입니다. 중단 후 48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해요.”

한정우가 동의서를 들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병실에 두 사람이 남았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링거 줄이 어머니의 팔에서 제거되어 있었다. 바티셀라 배양액 투여가 중단된 것이었다. 빈 링거대가 창가에 서 있었다. 어머니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수아가 옆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 바다가 보였다. 오후의 빛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바다를 보고 있었다. 수아도 바다를 봤다.

“진동이 와.”

어머니가 말했다.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근데 지금은 약해.”

어머니가 수아를 봤다. 수아의 눈을 봤다. 전체를 훑지 않았다. 바로 눈을.

“네가 옆에 있으면 약해져.”

수아는 어머니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손에서 시작된 미세한 떨림이 수아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바다가 오후의 빛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 수아의 손 안에서 차가웠다. 차가웠지만 잡고 있었다. 내일 아침의 숫자가 71.2에 멈출지, 아니면 0.4만큼 더 나아갈지 알 수 없었다. 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창가로 걸어가 블라인드 줄을 당겼다. 플라스틱 날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내려와 바다를 지웠다. 병실이 어두워졌다. 어머니의 청회색 손끝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동작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랑인가 세포의 잔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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