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하가 옆구리의 덩어리를 처음 만진 것은 샤워실에서였다. 왼쪽 갈비뼈 아래. 손가락 끝에 둥근 것이 닿았다. 단단하지 않았다. 물렁했다. 피부 아래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준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눌렀다. 통증은 없었다. 통증이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 셀부스트 종양은 통증 신경을 우회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아프지 않은 암. 그것이 셀부스트의 핵심이었다. 아프면 선수가 경기를 할 수 없으므로. 통증 없이 자라고, 통증 없이 몸을 바꾸고, 통증 없이 능력을 올려주는 종양. 대신 위험 신호도 없었다. 종양이 장기를 누르기 시작해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으니까 멈출 이유가 없었다.
샤워기의 물이 준하의 어깨를 타고 흘렀다. 뜨거운 물. 준하는 덩어리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열이 느껴졌다. 종양 자체의 열. 세포 분열이 빨라지면 대사열이 올라간다. 3차 시술 때 팀 의사 한정민이 설명했던 내용.
“종양이 뜨거워지면 바로 와요.”
한정민의 목소리가 준하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준하는 손을 뗐다. 샤워를 끝냈다. 거울 앞에 섰다. 왼쪽 옆구리를 봤다. 피부가 약간 솟아 있었다. 2주 전에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보였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준하는 옷을 입었다. 유니폼이 아닌 사복. 경기일이 아니었다. 3일 뒤가 경기일이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 이번 경기의 타율이 3할 2푼을 넘기면 계약이 갱신된다. 넘기지 못하면 방출. 준하의 현재 시즌 타율은 3할 1푼 8리. 마지막 경기에서 3타수 1안타면 충분했다. 셀부스트가 작동하는 상태라면.
준하는 병원으로 갔다. 팀 전속 의료실. 지하 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에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의료실 문을 열었다. 한정민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준하를 보더니 의자를 돌렸다.
“종양이 커졌어요.”
준하가 말했다. 한정민이 일어났다.
“누워.”
준하가 진료 침대에 누웠다. 셔츠를 올렸다. 한정민이 초음파 기기를 들었다. 젤을 준하의 옆구리에 발랐다. 차가웠다. 한정민이 탐촉자를 피부에 대고 움직였다. 모니터에 영상이 나타났다. 회색과 검은색의 경계. 그 안에 둥근 형태가 보였다. 종양. 회색 덩어리가 화면 가운데에 있었다. 가장자리가 불규칙했다. 2주 전 초음파에서는 경계가 매끄러웠다. 지금은 울퉁불퉁했다. 종양이 주변 조직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돌기처럼. 한정민의 손이 멈췄다. 탐촉자가 종양 위에서 정지해 있었다. 한정민이 모니터의 수치를 봤다.
“4.2센티미터.”
한정민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준이 3센티미터예요. 1.2센티 초과. 즉시 절제해야 해요.”
준하는 천장을 봤다. 의료실 천장의 형광등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3일만 기다려 주세요.”
“3일이면 5센티미터 넘어요. 5센티미터가 되면 비장을 압박해요.”
한정민이 탐촉자를 내려놓았다. 모니터를 가리켰다. 종양 옆에 비장이 보였다. 종양과 비장 사이의 거리가 화면에 표시되어 있었다. 8밀리미터.
“8밀리미터밖에 안 남았어요. 종양이 비장을 누르면 비장 파열 위험이 있어요. 경기 중에 충격받으면.”
한정민이 말을 끊었다. 준하를 봤다.
“경기 중 사망 확률 17퍼센트.”
준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셔츠를 내렸다. 젤이 묻은 채로. 셔츠에 젤 자국이 번졌다.
“절제하면 언제 다시 시술받을 수 있어요?”
“6개월. 절제 후 조직이 안정되는 데 최소 6개월.”
“6개월이면 시즌이 끝나요.”
“네.”
준하는 한정민을 봤다. 한정민은 준하를 봤다.
“절제하면 타율이 떨어져요. 아시잖아요.”
한정민이 입을 다물었다. 알고 있었다. 셀부스트 종양이 만들어내는 근섬유 밀도 증가, 반사 신경 가속, 시야 확장. 종양을 잘라내면 그 모든 것이 48시간 안에 사라진다. 준하의 원래 타율은 2할 4푼. 셀부스트 없이는 3할을 넘길 수 없었다.
준하는 의료실을 나왔다. 복도. 엘리베이터. 1층 로비. 구단 건물 밖으로 나왔다. 3월의 공기가 차가웠다. 준하는 주차장으로 걸었다. 차에 탔다. 시동을 걸지 않았다. 핸들을 잡은 채 앞을 봤다. 주차장 벽. 콘크리트 벽에 금이 가 있었다. 준하는 금을 봤다. 벽의 금. 몸속의 종양. 둘 다 안에서 밀어내는 힘이 만든 것이었다.
준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감독님'이 떴다.
“준하야, 목요일 라인업 확정해야 하는데. 컨디션 어때?”
“괜찮습니다.”
“3할 2푼 넘겨야 해. 알지?”
“네.”
“몸 관리 잘하고.”
전화가 끊겼다. 준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 덩어리가 거기 있었다. 따뜻했다. 셔츠 위로도 열이 느껴졌다.
준하가 셀부스트를 처음 받은 것은 2년 전이었다.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온 직후. 타율이 2할 2푼이었다. 팀 동료가 말했다.
“셀부스트 안 하면 여기서 못 버텨.”
팀 선수 25명 중 19명이 셀부스트 시술을 받고 있었다. 리그 전체로는 78퍼센트. 시술을 받지 않은 선수는 기록이 뒤처졌다. 도핑 검사에 걸리지 않았다. 셀부스트 종양은 선수의 자기 세포에서 유래하므로 외부 약물이 아니었다. 규정상 합법. 스포츠윤리위원회가 3년간 논의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선수 자신의 세포를 이용한 신체 강화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
반대 의견은 있었다. 셀부스트를 받지 않은 선수들이 연합 성명을 냈다.
“자기 몸에 암을 키우는 것을 허용하는 스포츠가 스포츠인가.”
성명은 묻혔다. 기록이 올라가면 관중이 늘고, 관중이 늘면 중계권료가 오르고, 중계권료가 오르면 구단이 돈을 번다. 셀부스트는 돈이 되는 암이었다. 준하는 시술을 받았다. 1차 시술 후 타율이 2할 7푼으로 올랐다. 2차 시술 후 2할 9푼. 3차 시술 후 3할 1푼. 시술할 때마다 종양이 자랐다. 종양이 자랄수록 능력이 올랐다. 능력이 오를수록 종양에 의존하게 됐다.
3차 시술까지는 종양이 2.8센티미터에서 안정됐다. 기준 이하. 안전 범위. 준하는 안심했다. 하지만 4주 전부터 종양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시술을 추가한 것이 아니었다. 종양이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한정민이 말했다.
“3차 이상 시술 환자의 11퍼센트에서 자율 성장이 보고돼요. 종양이 시술자의 통제를 벗어나는 거예요.”
11퍼센트. 준하가 그 안에 들어갔다. 종양이 통제를 벗어난다는 것은 종양이 스스로 목적을 가진다는 뜻이었다. 성장. 분열. 확장. 준하의 몸 안에서 준하의 세포가 준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라고 있었다. 자기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닌 감각. 옆구리에서 뛰는 것이 심장인지 종양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준하는 차에서 내렸다. 집으로 가지 않았다. 실내 타격장으로 갔다. 야간 타격 연습. 타격장에 사람이 없었다. 조명이 절반만 켜져 있었다. 타격 케이지의 그물이 어둠 속에서 늘어져 있었다. 준하의 발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울렸다. 준하는 배팅 케이지에 들어갔다. 방망이를 잡았다. 왼손잡이. 방망이의 무게가 손에 실렸다. 890그램. 셀부스트 전에는 무겁게 느껴졌던 무게. 지금은 가벼웠다. 종양이 만들어낸 근섬유가 방망이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피칭 머신이 공을 던졌다. 시속 148킬로미터. 준하의 눈이 공을 따라갔다. 공이 느리게 보였다. 셀부스트의 시야 확장 효과. 시신경 주변의 미세 종양이 시각 정보 처리 속도를 높여줬다. 준하가 스윙했다. 방망이가 공에 맞았다. 타격음이 케이지 안에서 울렸다. 금속성. 깨끗한 소리. 공이 네트에 박혔다.
두 번째 공. 세 번째 공. 네 번째. 준하는 계속 쳤다. 공이 느리게 보였다. 방망이가 가벼웠다.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완벽했다. 이 몸이 완벽했다. 종양이 만든 몸이.
열두 번째 스윙에서 옆구리가 당겼다. 짧은 통증.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아팠다. 준하가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옆구리를 만졌다. 덩어리가 움직였다. 이전과 달랐다. 이전에는 눌러야 움직였다. 지금은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피부 아래에서 종양이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준하는 손을 뗐다. 셔츠를 올렸다. 거울이 없었다. 타격장이었으므로. 준하는 고개를 숙여 옆구리를 봤다. 피부 표면이 미세하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종양의 박동. 심장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준하는 타격장을 나왔다.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랑비. 준하의 머리카락이 젖었다. 차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갔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7층.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 소연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스포츠 뉴스. 준하의 팀이 나오고 있었다.
“밥 먹었어?”
소연이 물었다.
“아니.”
“데워줄까?”
“괜찮아.”
준하는 소파에 앉았다. 소연이 준하를 봤다. 준하의 셔츠에 초음파 젤 자국이 남아 있었다.
“병원 갔다 왔어?”
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봤다. 뉴스에서 다른 팀 선수의 셀부스트 관련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한 선수가 경기 중 쓰러졌다. 셀부스트 종양이 간을 압박해서. 경기장에서 실려 나갔다. 뉴스 자막: '셀부스트 사고, 올 시즌 4번째. ' 4번째 중 2명이 사망했다. 경기 중 비장 파열 1명. 간 압박으로 인한 내출혈 1명. 나머지 2명은 응급 절제 후 은퇴했다. 4명 모두 종양이 4센티미터를 넘긴 상태에서 경기에 나갔다. 준하의 종양은 4.2센티미터.
“준하야.”
소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낮아졌다.
“종양 얼마나 커졌어?”
준하는 소연을 봤다. 소연의 눈이 준하의 옆구리를 보고 있었다. 셔츠 위로 덩어리의 윤곽이 보였다.
“4.2.”
소연의 입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기준이 3이잖아.”
“알아.”
“절제해.”
“절제하면 방출이야.”
소연이 준하를 봤다. 3초. 소연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소연은 준하의 1차 시술 때 반대했다. 2차 때도 반대했다. 3차 때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을 알았으므로.
“방출이면 어때. 죽는 것보다 낫잖아.”
준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물을 꺼내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옆구리의 종양이 뛰고 있었다. 물을 삼킬 때마다 종양의 박동이 느껴졌다. 위장과 종양이 8밀리미터 사이에 나란히 있었다. 준하는 물병을 내려놓았다. 부엌 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아파트 단지. 가로등. 어딘가에서 야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종양이 없는 사람들. 준하는 창을 봤다. 유리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얼굴 아래, 유니폼 없는 몸. 셔츠 아래에서 종양이 뛰고 있었다. 준하는 자기 얼굴을 보다가 눈을 내렸다. 옆구리를 봤다. 셔츠 위로 박동이 보였다.
목요일. 경기 당일.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옆에 소연이 없었다. 거실에 나가니 소연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것 같았다. 눈 밑이 어두웠다. 식탁 위에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다. 한정민의 진단서. 소연이 의료실에 전화해서 받은 것이었다. 진단서 하단에 적혀 있었다. '경기 출전 시 비장 파열로 인한 사망 확률: 17퍼센트. '
소연이 말하지 않았다. 준하를 봤다. 소연의 손이 식탁 위에 있었다. 손가락이 진단서 모서리를 잡고 있었다. 손톱이 하얘질 만큼 힘을 주고 있었다. 준하는 식탁에 앉았다. 진단서를 읽었다. 17퍼센트. 100번 중 17번. 5.9번 중 1번. 준하는 진단서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소연의 손이 진단서 위에 올라갔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안 나가면 안 돼?”
“계약이야.”
“계약이 목숨보다 중요해?”
준하는 소연을 봤다. 대답하지 않았다. 준하가 대답하지 않은 것이 대답이었다.
경기장까지 차로 40분. 준하는 운전하면서 옆구리를 의식했다. 종양의 박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심장보다 빠른 박동. 분당 90회 이상.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준하의 체온이 정상보다 0.4도 높았다. 종양의 대사열. 핸들을 잡은 손에서 땀이 났다. 라디오에서 경기 전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해설자가 준하의 이름을 말했다.
“오늘 준하 선수가 3타수 1안타면 3할 2푼을 넘깁니다. 시즌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어요.”
준하는 라디오를 껐다.
라커룸.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 안쪽에 종양이 닿았다. 천이 눌리면서 종양의 형태가 유니폼 밖에서도 보였다. 준하는 거울을 봤다. 왼쪽 옆구리 부분이 약간 튀어나와 있었다. 준하는 이너 셔츠를 한 겹 더 입었다. 덩어리가 가려졌다. 라커룸의 다른 선수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1번 타자 민규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민규의 왼팔에 셀부스트 종양이 있었다. 이두근 부위. 팔을 구부리면 종양이 근육처럼 솟아올랐다. 민규의 종양은 2.4센티미터. 안전 범위. 민규가 준하를 봤다.
“옆구리 괜찮아?”
“괜찮아.”
민규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괜찮다는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인 세계였다. 선수들은 서로의 종양에 대해 묻지 않았다. 자기 몸에 무엇을 키우고 있는지는 각자의 문제였다.
한정민이 라커룸에 왔다. 준하 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말해요. 절제하면 살아요. 나가면 17퍼센트예요.”
준하는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왼손. 오른손. 글러브의 가죽이 손에 맞았다. 셀부스트 전에는 글러브가 헐렁했다. 지금은 딱 맞았다. 종양이 손가락의 근섬유까지 키웠으므로.
“나갈 거예요.”
한정민이 입을 다물었다. 돌아서 나갔다.
1회 초. 준하는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다. 상대 팀 투수가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시속 152킬로미터의 직구와 140킬로미터의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 셀부스트 없는 준하에게는 치기 어려운 투수. 셀부스트가 있는 준하에게는 칠 수 있는 투수.
2회 말. 준하의 타석이 왔다. 준하가 더그아웃에서 나왔다. 방망이를 들었다. 타석까지 걸었다. 경기장의 조명이 밝았다. 관중석에서 소리가 들렸다. 준하는 타석에 섰다. 발을 벌렸다. 방망이를 올렸다. 투수가 공을 던졌다. 직구. 시속 151킬로미터. 준하의 눈이 공을 따라갔다. 느리게 보였다. 공의 실밥이 보였다. 스윙. 방망이가 공에 맞았다. 타구음이 경기장에 울렸다. 공이 좌중간으로 날아갔다. 안타.
준하가 1루를 밟았다. 옆구리가 뛰고 있었다. 종양의 박동이 심장과 겹쳐서 울리고 있었다. 두 개의 심장. 하나는 준하를 살리는 심장. 하나는 준하를 죽일 수 있는 심장. 준하는 1루 위에 서서 숨을 골랐다. 심장이 분당 140회로 뛰고 있었다. 종양이 분당 95회로 뛰고 있었다. 두 박동이 겹칠 때마다 옆구리가 울렸다. 진동처럼. 유니폼 안에서 종양이 뜨거웠다. 땀이 유니폼을 적시고 있었다. 1루 코치가 준하를 봤다. 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5회 말. 두 번째 타석. 1사 주자 없음. 투수가 바뀌어 있었다. 좌완. 슬라이더가 좋은 투수. 준하는 타석에 섰다. 방망이를 올렸다. 옆구리가 당겼다. 종양이 움직이고 있었다. 비장 쪽으로. 준하는 느꼈다. 피부 아래에서 종양이 미끄러지는 감각. 따뜻하고 물렁한 것이 갈비뼈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첫 번째 공. 볼. 두 번째 공. 스트라이크. 슬라이더. 세 번째 공이 왔다. 직구. 시속 147킬로미터. 준하가 스윙했다. 방망이가 돌아가면서 몸통이 회전했다. 회전하는 순간 옆구리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감각이 왔다. 뜨거운 것이 퍼지는 느낌. 방망이가 공에 맞았다. 타구가 3루수 쪽으로 굴러갔다. 땅볼. 아웃. 준하는 1루로 뛰지 않았다. 타석에 서 있었다. 방망이를 잡은 채. 옆구리를 왼손으로 잡았다. 뜨거웠다. 유니폼 안쪽이 젖어 있었다. 땀인지 피인지 알 수 없었다.
심판이 준하를 봤다. 1루 코치가 달려왔다. 준하는 서 있었다. 서 있을 수 있었다. 아직. 종양이 비장을 누르고 있었다. 터지지는 않았다. 17퍼센트의 바깥에 있었다. 아직은.
7회 말. 세 번째 타석. 2사 2루. 안타를 치면 타율이 3할 2푼 1리가 된다. 계약이 갱신된다. 준하는 더그아웃에서 일어났다. 옆구리가 아팠다. 통증이 있었다. 셀부스트 종양은 통증을 우회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근육통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것이 안에서부터 살을 찌르는 감각이었다. 준하는 방망이를 잡았다. 타석으로 걸었다. 걸음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왼쪽으로. 종양 쪽으로. 더그아웃에서 한정민이 준하를 보고 있었다. 한정민의 손에 주사기가 있었다. 응급 절제용 마취제. 준하가 쓰러지면 바로 투여하기 위한 것. 준하는 한정민을 보지 않았다.
타석에 섰다. 투수가 공을 던졌다. 직구. 시속 149킬로미터. 준하의 눈이 공을 따라갔다. 느리게 보였다. 아직 느리게 보였다. 종양이 아직 일하고 있었다. 시야는 유리처럼 투명했지만, 몸의 경계는 안개처럼 흐려지고 있었다. 준하가 스윙했다. 몸통이 돌았다. 옆구리에서 열이 치밀어 올랐다. 방망이가 공을 맞혔다. 타구음. 공이 우중간으로 날아갔다. 높이 떴다. 외야수가 뒤로 뛰었다. 공이 외야수의 글러브 위를 넘어갔다. 2루타.
준하가 1루를 돌았다. 뛰었다. 옆구리가 뜨거웠다. 뜨거운 것이 몸 안에서 퍼지고 있었다. 2루에 도착했다. 슬라이딩하지 않았다. 서서 도착했다. 2루 베이스 위에 섰다. 숨을 쉬었다. 관중이 환호하고 있었다. 준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전광판에
“2루타”
가 떴다. 숨이 가빴다. 옆구리를 만졌다. 덩어리가 커져 있었다. 스윙할 때마다 종양에 충격이 가해졌다. 스윙의 충격이 종양을 깨운 듯, 덩어리가 부풀며 갈비뼈를 밀어냈다.
전광판에 준하의 타율이 떴다. 3할 2푼 1리. 계약 갱신 기준 충족. 준하는 전광판을 봤다. 숫자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준하의 옆구리에서 종양이 뛰고 있었다. 전광판의 숫자보다 빠르게.
8회 초. 수비. 준하가 외야로 나갔다. 잔디를 밟았다. 잔디가 젖어 있었다. 이슬. 준하는 수비 위치에 섰다. 옆구리의 열이 유니폼을 통해 밤공기에 닿고 있었다. 종양에서 나오는 열이 유니폼 바깥으로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하얀 김. 준하의 몸에서 나오는 김. 3루 쪽에서 동료 선수가 준하를 봤다. 준하의 옆구리에서 김이 나는 것을 봤을 것이었다. 관중석에서도 보였을 것이었다. 야간 경기. 조명 아래에서 선수의 몸에서 김이 오르는 것. 웅성거리던 관중석에 섬뜩한 정적이 흘렀다. 선수에게서 피어나는 저것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준하는 관중석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소연이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소연이 김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준하의 몸에서 나는 김을.
준하는 글러브를 고쳐 쥐었다. 그때 마지막 타자가 친 공이 그의 머리 위로 솟구쳤다. 공을 잡으려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종양이 안에서 비틀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공이 글러브에 박히는 건조한 소리와 함께 경기 종료 사이렌이 울렸다. 준하는 동료들에게 등을 돌린 채 관중석의 한 점을 응시했다. 조명 빛이 그의 어깨 위로 피어오른 아지랑이 속에서 부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