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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자격

2026. 3. 11. · 9,326자 · 약 11분

숨 쉴 자격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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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학 통지서는 규격 용지 한 장이었다. 석유빛 로고가 찍힌 교육부 공문. 석현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 말고 편지를 읽었다. '환경효율교육법 제14조 3항에 의거, 미편집 아동의 일반학급 재학은 2025학년도 2학기부터 불허합니다. 해당 학생 박하율(8세)은 산소 소비 등급 미달로 특수학급 이관 대상입니다. ' 석현은 편지를 두 번 읽었다. 현관의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두 번째 읽을 때 글자가 더 선명했다. '특수학급'이라는 단어 아래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특수학급은 환기량 조절이 가능한 별도 시설에서 운영됩니다. ' 별도 시설. 석현은 3년 전 뉴스에서 본 특수학급의 사진을 떠올렸다. 창문이 없는 교실. 아이들이 4명. 칸막이로 나뉜 책상. 공기청정기 두 대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석현은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손가락이 종이 모서리에 베였다. 피가 맺혔다. 석현은 피를 빨지 않고 그대로 현관문을 닫았다.

하율이가 식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연필을 쥔 손이 작았다. 종이 위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획이 삐뚤어질 때마다 지우개로 문지르고 다시 썼다. 석현은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따랐다. 물을 마시는 동안 하율이의 등을 봤다. 아이의 어깨가 숙제에 집중하느라 위로 올라가 있었다. 등 위로 척추뼈의 윤곽이 얇은 옷을 통해 드러났다. 편집된 아이들은 근육 효율이 높아서 같은 체중이어도 밀도가 다르다고 했다. 하율이는 또래보다 가벼웠다. 그것이 효율의 문제인지 체질의 문제인지 석현은 구별하지 않았다.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빠, 나 내일 체력 검사야.”

하율이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그래? 힘들었겠네.”

“윤서는 1,200미터 뛰었대. 나는 800미터에서 멈췄어.”

석현은 물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았다.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800미터나? 엄청 잘했어, 그거.”

하율이가 고개를 들었다. 동그래진 눈이 아빠를 향했다.

“진짜요?”

석현은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빠 딸인데.”

그제야 하율이가 안심한 듯 다시 숙제로 고개를 돌렸다. 연필 소리가 식탁 위에서 사각거렸다.

석현은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했다. 거품 사이로 하율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율이의 연필 잡는 손에 힘이 부족해서 글씨가 흐릿해지는 것을 봤다. 편집된 아이들은 손가락 근육의 효율도 높아서 같은 힘으로 두 배의 필압을 낸다고 했다. 하율이의 숙제 노트를 학부모 상담 때 본 적이 있었다. 담임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글씨가 너무 연해서 채점이 어렵다고. 다른 아이들의 노트와 나란히 놓았을 때 하율이의 글씨만 유독 희미했다. 석현은 연필을 4비로 바꿔 줬다. 진한 심. 그래도 편집 아이들의 2비보다 흐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석현은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다시 읽었다. '산소 소비 등급 미달. ' 등급. 하율이의 호흡 한 번이 편집된 아이의 호흡 두 번과 같은 양의 산소를 쓴다는 뜻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체육 시간에 달릴 때, 하율이가 숨을 헐떡이면 옆의 편집 아이는 고른 호흡을 유지한다. 같은 교실의 공기를 나눠 쓸 때, 하율이 한 명이 편집 아이 두 명분의 산소를 소비한다. 환경효율교육법은 이것을 '교육 환경에 대한 불균형 부담'이라고 불렀다.

석현은 편지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일을 15년 했다. 편집된 동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7년 전부터였다. 그들은 같은 시간에 더 오래 일했다. 쉬는 횟수가 적었다. 산소통을 교체하는 간격이 석현보다 두 배 길었다. 3년 전, 항만공사가 '고효율 노동자 우선 배치' 정책을 시행했을 때 석현의 작업 구역이 3구역에서 6구역으로 밀려났다. 6구역은 조명이 나빠서 컨테이너 번호를 읽기 어려웠다. 석현은 항의하지 않았다. 6구역에서 일하는 동안 산소통 교체 시간이 2시간에서 1시간 40분으로 줄었다. 효율이 높은 동료들은 4시간에 한 번 교체했다. 석현이 산소통을 바꾸러 갈 때마다 동료들의 시선이 따라왔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시선이 말을 대신했다. 석현은 산소통 교체 시간을 줄이려고 호흡을 느리게 하는 연습을 했다. 효과가 없었다. 폐가 원하는 양의 산소는 의지로 바꿀 수 없었다.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율이를 재우고 석현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3년 전에 나갔다. 편집을 하자고 했다. 하율이라도. 석현이 거부했다. 아내가 떠났다. 아내는 편집을 하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고 들었다. 편집된 사람끼리의 커뮤니티가 있다고 했다. 같은 호흡 리듬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혼 서류에 사인할 때 아내가 말했다.

“하율이가 커서 뭐가 되겠어. 원본인 채로.”

석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내의 말이 3년 동안 석현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원본인 채로. 석현은 원본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편집되지 않은 인간을 부르는 말. 원본. 마치 고쳐야 할 초안 같은 이름. 석현은 자기 몸이 초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율이의 몸도. 지금도 대답할 수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았다. 결번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석현은 하율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하율이가 교복을 입고 현관에 서 있었다.

“아빠, 늦어.”

“오늘은 안 가도 돼.”

하율이의 눈이 커졌다.

“왜?”

석현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하율이가 석현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석현은 아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 조금 쉬어도 된대.”

하율이가 교복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석현의 목소리가 너무 빨리 나왔다.

“아무것도 잘못 안 했어.”

하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현은 아이가 현관에서 돌아서는 것을 봤다. 아이의 뒷모습이 작았다. 교복을 벗지 않고 거실로 갔다. 리모컨을 찾다가 소파 쿠션 사이에서 꺼내 만화를 틀었다. 화면에서 편집된 슈퍼히어로가 날고 있었다. 산소 없이도 우주에서 활동하는 캐릭터. 하율이가 화면을 보면서 무릎을 끌어안았다. 석현은 부엌에서 아이를 봤다. 아이가 화면 속 캐릭터처럼 숨을 참아 보는 것을 봤다. 뺨이 부풀었다가 터지듯 숨을 내쉬었다. 석현은 싱크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소리가 부엌을 채웠다. 석현은 현관에 서서 아이의 등을 봤다. 교복이 어깨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옷이 큰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작은 것이었다.

점심에 석현은 하율이에게 라면을 끓여 줬다. 하율이가 젓가락으로 면을 감다가 손에서 젓가락이 미끄러졌다. 면이 국물 속으로 떨어지면서 석현의 손등에 국물이 튀었다. 뜨거웠다. 석현은 손등을 닦으면서 하율이를 봤다. 아이가 미안한 얼굴로 석현을 올려다봤다.

“괜찮아. 먹어.”

하율이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젓가락을 감싸 쥐고 천천히 면을 감았다. 석현은 하율이가 라면을 다 먹을 때까지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하율이가 국물을 마시고 입을 닦았다. 석현은 그릇을 치우고 하율이의 이마에 손을 대 봤다. 열은 없었다. 석현은 항만으로 출근했다. 6구역의 컨테이너 사이를 걸으면서 동료에게 물었다. 쉬는 시간에 동료에게 물었다. 편집 시술. 합법적인 것은 아이 기준 1억 4천만 원. 석현의 연봉 4년치. 동료가 말했다.

“합법 말고 다른 데가 있어.”

석현이 동료를 봤다. 동료가 컨테이너 넘버를 스캔하면서 말했다.

“인천 쪽에. 시술비 800만 원. 내 처남이 거기서 했어.”

“…성공은 한대?”

동료가 스캐너를 내리고 석현을 힐끗 봤다.

“우리 처남은 됐지. 아주 쌩쌩해. 세포 에너지 효율 1.7배. 말이 되냐?”

그는 피식 웃으며 다음 컨테이너로 걸어갔다.

“물론 안 되는 사람도 있고. 미토콘드리아가 과열된다나. 그쪽 애들은 그걸 '점화'라고 부르더라고.”

“점화라고?”

석현의 손에서 스캐너가 툭, 떨어질 뻔했다. 컨테이너 표면의 차가운 결로가 손등에 와 닿았다.

“안에서부터 세포가 타는 거지. 열이 42도 넘게 치솟다가… 뭐, 끝장나는 거고.”

동료가 석현을 돌아봤다.

“왜, 하율이 때문에 그래?”

석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캐너를 들고 다음 컨테이너로 걸어갔다. 오후 3시에 산소통을 교체하러 갔다. 교체소에서 기록 장치에 이름을 찍었다. 화면에 석현의 산소 소비 기록이 떴다. 금일 누적 소비량 4,800리터. 옆에 편집 동료의 기록이 보였다. 2,100리터. 석현은 화면을 끄고 새 산소통을 메고 6구역으로 돌아갔다. 등에 산소통의 무게가 실렸다. 14킬로그램. 편집 동료의 산소통은 6킬로그램짜리였다. 절반도 안 되는 무게. 석현은 등의 무게를 느끼며 걸었다. 등에 멘 산소통의 냉기가 척추를 타고 머리까지 오르는 것 같았다. 이 무게가, 하율이의 무게였다.

퇴근 후 석현은 인천으로 갔다. 동료가 알려 준 주소. 동인천역에서 내려 골목을 걸었다. 좁은 골목이었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배관이 노출되어 있었다. 1층에 폐업한 세탁소가 있었다. 유리창에 먼지가 끼어 있었다. 간판이 없는 건물의 3층. 계단을 올라갔다. 철문에 초인종이 달려 있었다. 눌렀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안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안에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눈 위로 수술용 루페가 올려져 있었다. 석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까딱했다. 안은 원룸 크기의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에 의료용 침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모니터와 주사기가 정렬되어 있었다. 작업대 위에 유전체 분석기가 놓여 있었다. 모니터에 나선형 구조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반대쪽에는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문에 온도 기록지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영하 40도.

바닥에 비닐이 깔려 있었다. 비닐 위에 작은 얼룩이 있었다. 석현은 그 얼룩에서 눈을 떼고 남자를 봤다.

“누구 소개로?”

남자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마스크 너머로 단어가 뭉개져 나왔다.

“항만 동료. 처남이 여기서 했다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가 본인이야?”

“딸이요. 8살.”

남자의 눈이 루페 너머에서 가늘어졌다.

“애들은 까다로워. 성인보다 미토콘드리아 밀도가 낮아서 벡터가 고르게 안 퍼지거든.”

남자가 라텍스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특히 뇌. 애들 뇌는 아직 크는 중이라 회전율이 높잖아? 편집이 거기서 삑사리나면… 끝나는 거야.”

남자가 냉장고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성공률도 달라. 성인 87. 소아는 74.”

석현은 마른 침을 삼켰다. 목구멍에서 모래가 넘어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74퍼센트.”

“26퍼센트 실패. 실패하면 점화야. 체온이 올라가. 42도 넘으면 단백질 변성이 시작돼. 뇌부터.”

남자가 마스크를 내렸다. 입 주위에 수염이 자라 있었다.

“비용은 800만 원. 현금. 시술 시간 4시간. 결과는 48시간 안에 나와.”

석현은 침대를 봤다. 시트가 새것처럼 깨끗했다. 베개 옆에 바이트 가드가 놓여 있었다. 점화가 시작되면 경련이 온다고 했다. 이를 악물어 혀를 깨무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 석현은 그 바이트 가드를 봤다. 하율이의 작은 턱에 맞을 크기가 아니었다. 성인용이었다. 침대 옆에 체온계와 냉각 패드가 놓여 있었다. 냉각 패드는 점화가 시작됐을 때 쓰는 것이었다.

석현은 냉장고의 온도 기록지를 봤다. 매일 같은 시각에 기록된 영하 40도. 편집 벡터를 보관하는 온도. 이 냉장고 안에 하율이의 미래가 될 수도 있고 하율이를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 들어 있었다.석현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생각 좀 해보고 오겠습니다.”

남자가 마스크를 다시 올렸다.

“연락처 안 남겨도 돼. 올 거면 와.”

석현은 계단을 내려왔다. 3층에서 1층까지 36계단. 내려오는 동안 소독약 냄새가 코에 남아 있었다. 골목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주황색 빛이 건물 벽에 반사되고 있었다. 석현은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퇴학 통지서를 꺼냈다. '산소 소비 등급 미달. ' 접었다 편 자리에 종이가 닳아 있었다. 석현은 편지를 다시 접어 넣었다. 동인천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하율이가 좋아하는 딸기맛 우유를 샀다. 계산대 뒤에 편집 시술 광고가 붙어 있었다. '편집은 선택이 아닌 책임입니다. 자녀에게 효율을 선물하세요. ' 석현은 우유를 가방에 넣고 편의점을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47분 동안 창밖을 봤다. 지하철 안의 공기가 답답했다. 석현이 들이마시는 숨 한 번이, 옆자리 편집된 사람의 숨 두 번과 같은 양의 산소를 소비하고 있었다. 석현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얕게 쉬었다. 얕은 숨으로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옆 좌석의 여자가 석현을 힐끗 봤다. 여자의 목에 편집 인증 칩이 피부 아래로 희미하게 보였다. 쇄골 바로 아래, 작은 사각형의 윤곽. 편집된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석현의 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가 시선을 돌렸다. 석현은 손잡이를 쥐고 서 있었다. 다음 역까지 3분.

집에 돌아오니 하율이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석현이 신발을 벗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빠, 학교 언제 가?”

하율이의 목소리에 조바심이 있었다. 아이는 학교를 좋아했다.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도서관을 좋아했다. 도서관에서는 누구도 산소 소비량을 따지지 않았다. 책은 공기를 쓰지 않으니까.

석현은 하율이 옆에 앉았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봤다. 운동장. 아이들이 뛰고 있었다. 그림 속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져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에 빨간색 볼이 칠해져 있었다. 숨이 찬 얼굴.

“이거 누구야?”

석현이 뒤처진 아이를 가리켰다.

“나.”

하율이가 말했다. 담담하게.

석현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율이가 다른 그림을 꺼내 보여줬다. 교실 그림이었다. 책상에 앉은 아이들. 한쪽 구석에 칸막이로 둘러싸인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 아이가 혼자 앉아 있었다.

“이건?”

석현이 물었다.

“우리 반. 그 칸막이는 미편집석이야. 올해부터 생겼어.”

하율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거기 앉으면 에어컨 바람이 직접 와. 내 산소를 다른 애들이 안 마시게.”

석현의 손이 멈췄다.

하율이가 말했다.

“아빠.”

아이가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석현을 올려다봤다.

“나는 왜 다른 애들이랑 달라요?”

아이의 목소리가 조용히 물었다.

“윤서가 그랬어요. 나는… 공기를 너무 많이 먹는 애래요.”

석현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다시 쥐었다. 공기를 너무 많이 먹는 애. 8살짜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들은 말. 석현은 자기 호흡을 의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석현과 하율이가 쓰는 산소는 이 집에 사는 편집된 가족의 두 배였다. 관리비 고지서에 '산소 할증'이라는 항목이 3개월 전부터 추가돼 있었다. 월 12만 원. 석현은 그 고지서를 냉장고에 붙이지 않았다. 서랍 안에 넣어 두었다. 하율이의 눈이 석현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석현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달라, 하율아.”

석현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다른 건 맞아. 근데 그게 잘못된 건 절대 아니야.”

하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크레파스를 집어 들었다. 운동장 그림 위에 하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파란색.

그날 밤, 석현은 하율이가 잠든 뒤 부엌 테이블에 앉았다.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합법 편집 시술 가격. 소아 기준 1억 4천만 원. 분할 납부 가능. 36개월. 월 390만 원. 석현의 월급이 280만 원이었다. 불가능한 숫자였다. 석현은 화면을 닫고 다른 것을 검색했다. 원본 아동 특수학급 현황. 전국에 47개. 서울에 3개. 가장 가까운 곳이 버스로 1시간 40분 거리였다. 학급당 인원 4명에서 6명. 교사 1명. 교육과정은 일반학급의 70퍼센트. 석현은 화면을 껐다. 70퍼센트의 교육. 70퍼센트의 미래.

석현은 통장을 확인했다. 잔액 1,120만 원. 시술비 800만 원을 내면 320만 원이 남는다. 다음 달 월세 85만 원. 하율이 약값 없음. 식비. 공과금. 석현은 계산기를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천장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윙윙거리고 있었다. 전기 요금도 다음 달이면 밀릴 것이었다.

74퍼센트. 석현은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다루며 확률을 계산하는 데 익숙했다. 크레인 고장 확률, 와이어 파단 확률, 낙하물 사고 확률. 모두 1퍼센트 이하의 숫자들이었다. 그것도 무서웠다. 26퍼센트는 그것의 26배. 석현은 하율이의 체온을 떠올렸다. 36.5도. 정상 체온. 점화가 시작되면 42도를 넘긴다. 5.5도의 간격. 그 사이에 아이의 뇌가 있었다.

4분의 3. 그보다 약간 낮은. 석현은 숫자를 머릿속에서 뒤집었다. 26퍼센트. 4번 중 1번. 점화. 42도. 뇌부터.

석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하율이의 방으로 갔다. 문을 열었다. 야간등의 푸른 불빛 아래에서 하율이가 자고 있었다. 이불을 발로 걷어차 놓고 있었다. 석현은 이불을 끌어올렸다. 하율이의 얼굴을 봤다. 숨을 쉬고 있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편집된 아이보다 두 배의 산소를 쓰며. 그 숨결이 제 폐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석현은 하율이의 호흡을 셌다. 분당 16회. 편집된 아이의 평균은 분당 9회. 하율이의 호흡은 거의 두 배였다. 그 호흡 하나하나가, 이 세계에서 비용이었다. 석현은 아이의 이마를 손등으로 짚었다. 36.4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 이 온도가 유지되는 것. 42도가 아닌 36.4도. 석현은 아이의 볼을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하율이가 잠결에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석현은 손을 거두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이 숨소리를 지키는 것과, 이 숨소리를 바꾸는 것. 석현은 아이의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석현은 방문을 닫고 현관으로 갔다. 신발을 신었다. 주머니에 통장과 신분증을 넣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4월의 밤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석현은 문 앞에 서서 복도를 봤다. 엘리베이터 방향. 인천까지 지하철로 47분.

석현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한 발이 복도에, 한 발이 현관에 있었다. 인천의 시술소. 침대 위의 깨끗한 시트. 바이트 가드. 냉각 패드. 74퍼센트. 하율이가 침대에 눕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의 팔에 주사 바늘이 꽂히는 장면. 4시간의 시술. 48시간의 대기. 그리고 26퍼센트의 확률로 아이의 체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장면. 석현은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워지지 않았다. 뒤에서 하율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얇은 벽을 통해 전해지는, 고르고 느린 호흡. 분당 16회. 세상이 비용이라 판정한, 작고 따뜻한 호흡. 그 호흡이 석현의 등 뒤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석현은 눈을 감았다. 손에 쥔 신분증의 모서리가 손바닥의 굳은살에 눌렸다. 15년 동안 컨테이너를 옮기며 만든 굳은살. 편집되지 않은 손. 원본의 손.

석현은 현관문을 닫았다. 안쪽에서. 복도의 형광등이 문틈 아래로 가늘게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벽 너머로 하율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졌다. 석현은 신발을 벗고 차가운 현관 타일에 이마를 기댔다. 어둠 속에서, 하율의 열일곱 번째 숨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쉬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아이를 지키는 것과 아이를 바꾸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큰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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