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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이 닿지 않는 마을

2026. 3. 10. · 9,043자 · 약 11분

통신이 닿지 않는 마을 썸네일
17

차폐막의 경계면에서 공기가 달랐다. 바깥쪽은 건조하고 얇았다. 안쪽은 밀도가 있었다. 유진은 경계면 앞에 서서 장갑을 벗었다. 왼손의 손가락 끝이 검은 보라색이었다. 손톱 아래부터 첫째 마디까지. 자성 물질이 피부 아래에 침착된 흔적이었다. 3년간 차폐막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스며든 것이었다. 의료진은 제거 불가라고 했다. 자성 물질이 모세혈관벽과 결합해 분리하면 혈관이 파열된다고 했다. 유진은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감각은 정상이었다. 힘도 정상이었다. 의료진은 6개월마다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침착이 심장까지 퍼지면 문제가 된다고 했다. 아직 손가락과 손등까지였다. 유진은 손을 내리고 장갑을 다시 꼈다. 다만 강한 자기장 근처에서 손끝이 따끔거렸다. 그리고 비 오기 전 기압이 바뀔 때 손가락 관절이 욱신거렸다. 자성 물질이 기압 변화에 미세하게 팽창하는 것이었다. 차폐막의 경계면이 그런 곳이었다.

유진은 배낭의 끈을 조였다. 배낭 안에 정수 필터 2개, 압축 식량 7일치, 의료 키트 1개, 자외선 차폐복 예비 1벌이 들어 있었다. 허리에는 자기장 측정기와 통신기를 찼다. 측정기는 차폐막 건설 현장에서 쓰던 것이었다. 페로셀 입자의 밀도와 자기장 세기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장비였다. 무게 380그램. 손바닥 크기. 건설 현장에서 매일 들고 다니던 것이었다. 통신기의 유효 범위는 차폐막 경계에서 40킬로미터. 그 너머는 태양풍의 전자기 간섭으로 통신이 불가능했다. 동생 유라가 있는 가은 마을은 경계에서 52킬로미터였다. 마지막 통신이 끊긴 지 18일. 생존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차폐막 확장 공사가 가은 마을까지 도달하려면 최소 4개월이 필요했다.

차폐막 안쪽의 도시 인천이 유진의 등 뒤에 있었다. 인구 340만. 차폐막이 도시를 반구형으로 덮고 있었다. 직경 28킬로미터, 높이 12킬로미터. 차폐막의 물질은 페로셀이라는 이름의 합성 자성 소재였다. 나노 단위의 자성 입자가 겔 형태의 기질에 분산된 구조. 외부 태양풍의 하전 입자를 편향시키는 인공 자기장을 만들었다. 지구 자기장이 정상이던 시절에는 필요 없는 것이었다. 8년 전, 지구 자기쌍극자의 세기가 임계치 아래로 떨어졌다. 태양풍이 대기를 직접 때리기 시작했다. 오존층이 3년 만에 40퍼센트 감소했다. 자외선 지수가 상시 극위험 단계였다. 차폐막 밖에서는 피부가 15분 만에 화상을 입었다. 눈은 더 빨랐다. 보호 장비 없이 직사광선을 보면 10분 안에 각막이 손상됐다. 야외 활동은 새벽과 해질녘으로 제한됐다. 한낮에는 지하 또는 차폐 구조물 안에 있어야 했다.

유진은 차폐막을 통과했다. 경계면을 지나는 순간 왼손이 뜨거워졌다. 피부 아래의 자성 물질이 차폐막의 자기장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경계면의 자기장 밀도가 가장 높았다.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열감이 번졌다. 3초. 경계면을 벗어나자 열감이 사라졌다. 유진은 왼손을 봤다. 검은 보라색이 조금 더 짙어진 것 같았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침착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느린 과정이었다. 하루 사이에 눈에 보일 만큼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폐막을 통과할 때마다 진행이 가속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유진은 자외선 차폐복의 후드를 올리고 고글을 썼다. 차폐복은 은색 반사 코팅이 된 나일론 소재였다. 얼굴과 손을 제외한 전신을 덮었다. 장갑을 다시 꼈다.

바깥은 고요했다. 바람이 불었다. 건조한 바람이었다. 하늘이 평소와 달랐다. 차폐막 안에서는 하늘이 파란색이었다. 바깥의 하늘은 옅은 보라색이었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아지면서 산란 파장이 변한 것이었다. 유진은 고글의 자외선 필터를 확인하고 동쪽을 봤다. 도로가 보였다. 아스팔트 위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차량 통행이 끊긴 지 오래였다. 도로를 따라 걸었다. 발밑에서 먼지가 일었다. 먼지에서 마른 흙냄새가 났다. 도로변에 버려진 차량이 간간이 보였다. 타이어가 갈라져 있었다. 고무가 자외선에 분해된 것이었다. 도어 핸들의 플라스틱이 가루가 돼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금속 부분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녹이 슬어 붉은색이었다.

2시간 후 유진은 첫 번째 폐건물에 도착했다. 주유소였다. 지붕이 내려앉아 있었다. 자외선에 의한 소재 열화였다. 플라스틱과 고무가 가장 먼저 분해됐다. 주유소의 캐노피 지지대가 부러져 있었다. 유진은 그늘 아래에서 물을 마셨다. 물맛이 금속성이었다. 정수 필터를 거쳤지만, 차폐막 안의 수돗물과 달랐다. 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차폐복이 열을 가두고 있었다. 후드를 살짝 열어 목덜미에 바람을 넣었다. 자기장 측정기를 확인했다. 차폐막 경계에서 14킬로미터. 자기장 밀도 0.003가우스. 지구 자기장의 100분의 1 수준이었다. 통신기를 확인했다. 신호 강도가 2칸이었다. 유진은 통신기를 켰다.

“관제, 여기 유진. 경계 14킬로미터 통과. 이상 없음.”

잡음이 섞인 응답이 왔다.

“유진, 관제. 확인. 40킬로미터 지점에서 마지막 체크인 바람.”

유진은 통신기를 껐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유진은 걸었다. 도로 양쪽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다. 작물이 없었다. 토양이 갈라져 있었다. 자외선이 토양 미생물을 죽였다. 미생물이 없는 토양은 작물을 지탱할 수 없었다. 간간이 마른 나무가 서 있었다. 나뭇잎이 없었다. 껍질이 갈라져 있었다. 유진은 나무의 껍질을 만졌다. 건조했다. 부서졌다. 손가락 사이로 가루가 흘러내렸다. 나무가 살아 있을 때는 이 길에 그늘이 있었을 것이다. 유진은 나무줄기에 기대 잠깐 쉬었다. 줄기가 바스락거렸다.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40킬로미터 지점에서 마지막 체크인을 했다. 통신기의 신호가 1칸으로 떨어져 있었다.

“관제, 여기 유진. 40킬로미터 통과. 이후 통신 불가 예상. 가은 마을 도착 후 복귀 시 재연락.”

응답이 끊겼다가 돌아왔다.

“유진, 확인. 72시간 내 연락 없으면 수색팀 투입. 주의해.”

통신이 끊겼다. 잡음만 남았다. 유진은 통신기를 배낭에 넣었다. 여기서부터 혼자였다. 40킬로미터 뒤에 차폐막이 있고, 12킬로미터 앞에 가은 마을이 있었다. 어느 쪽에도 연락할 수 없었다.

12킬로미터를 더 걸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이 붉은 보라색이었다. 차폐막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색이었다. 아름답다고 느끼기에는 너무 위험한 하늘이었다. 유진은 도로 옆의 콘크리트 건물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창문이 없는 건물이었다. 콘크리트 벽이 40센티미터 두께였다. 벽이 두꺼웠다. 자외선과 야간의 온도 하강을 막을 수 있었다. 유진은 건물 안에 들어가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압축 식량 바를 꺼내 먹었다. 딱딱했다. 씹는 데 힘이 들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왼손을 봤다. 장갑을 벗자 손가락의 검은 보라색이 보였다. 낮에는 차폐복의 장갑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면 드러났다. 유진은 검지 끝을 눌러봤다. 통증은 없었다. 피부의 탄성도 정상이었다. 색만 달랐다.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피부 아래에서 미세하게 빛이 났다. 자성 물질이 잔류 자기장에 반응해 형광을 내는 것이었다. 유진은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형광이 깜빡였다.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이었다.

새벽 4시에 출발했다. 해가 뜨기 전이 자외선이 가장 약했다. 유진은 3시간을 걸었다. 가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구조물이 서 있었다. 유진은 발을 멈췄다.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구조물은 높이 5미터의 아치형이었다. 금속과 흙과 식물 줄기가 엮여 있었다. 아치 위에 은색 반사재가 덮여 있었다. 차폐복과 비슷한 소재. 하지만 산업용 제품이 아니었다. 알루미늄 캔을 펴서 이어 붙인 것이었다. 수백 개의 캔이 겹쳐져 반사면을 이루고 있었다. 구조물 아래를 지나가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었다. 유진은 구조물 아래로 들어갔다. 그늘이 시원했다. 차폐복 안의 온도가 2도 정도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치의 구조가 단순하지 않았다. 반사재 아래에 공기층이 있었다. 이중 구조로 단열과 반사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아치의 안쪽 면에 점토가 발라져 있었다. 점토 안에 작은 돌멩이들이 박혀 있었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유진은 돌멩이를 하나 만져봤다. 자기장 측정기가 반응했다. 자성이 있는 돌이었다. 자철석. 천연 자성 광물이었다. 누군가가 자철석을 규칙적으로 배열해 약한 자기장을 만든 것이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구조물이 더 많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반사 캐노피. 지하로 통하는 통로 입구. 벽면에 자철석이 박힌 점토층. 마을 전체가 자외선 차단과 자기장 보강을 위한 구조로 변해 있었다. 산업 기술이 아니었다. 수거한 재료와 천연 광물로 만든 것이었다.

골목에서 소리가 났다. 유진이 돌아봤다. 아이가 하나 서 있었다. 열 살쯤 되어 보였다. 얼굴에 흰색 페인트가 발라져 있었다. 산화아연이었다. 자외선 차단. 아이는 유진의 차폐복을 봤다. 유진의 얼굴을 봤다. 돌아서서 뛰어갔다. 맨발이었다. 발바닥이 갈라져 있었지만 달리는 속도가 빨랐다. 유진은 아이를 따라갔다. 골목의 벽면에도 자철석 점토가 발라져 있었다. 마을 전체가 느슨하지만 연결된 하나의 차폐 구조물이었다.

아이가 데려간 곳은 마을 중심의 지하 공간이었다. 원래는 지하 주차장이었던 곳. 천장에 환기구가 뚫려 있었다.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20명 가까이. 바닥에 매트와 이불이 깔려 있었다. 한쪽 벽에 물병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삽, 곡괭이, 가위, 칼. 모두 금속 제품이었다. 플라스틱 도구는 하나도 없었다. 유진은 입구에 섰다. 사람들이 유진을 봤다.

“차폐막에서 왔어?”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말했다. 마른 체형에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 어디 있어요?”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유라가 나왔다. 유진의 동생. 얼굴에 산화아연이 발라져 있었다. 피부가 검게 탔지만 건강해 보였다.

“언니.”

유라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유진이 유라를 안았다. 유라의 몸이 마르고 단단했다. 뼈가 만져졌다. 하지만 근육이 살아 있었다. 매일 흙을 파고, 물을 길고, 벽을 바른 사람의 몸이었다.

유진은 배낭을 열어 의료 키트와 정수 필터를 꺼냈다.

“차폐막 안으로 데려갈 수 있어. 인천까지 52킬로미터. 이틀이면 돼.”

유진이 말했다. 유라가 유진을 봤다. 유라의 눈이 유진의 왼손에 멈췄다. 장갑 위로 드러난 손가락 끝의 검은 보라색.

“언니 손 그거 뭐야?”

“페로셀 침착이야. 건설 현장에서.”

유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차폐막 안이 안전하다는 거, 알아. 근데 여기 사람들은 안 가.”

유진이 유라를 봤다.

“왜?”

“여기서 살 수 있으니까. 2년 동안 여기서 사는 법을 만들었어. 여기 사람들이 만든 거야. 이걸 버리고 차폐막 안에 가서 뭘 하겠어. 난민 수용소에 들어가? 차폐막 안에 수용 공간도 부족하잖아.”

유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다. 인천의 인구 밀도는 차폐막 건설 이후 3배로 늘어 있었다. 주거 공간이 부족했다. 외곽 지역 주민의 수용 계획은 있었지만, 실제로 배정되는 공간은 좁고 열악했다.

유라가 유진을 데리고 마을을 돌았다. 지하 농장이 있었다. 지하 주차장의 2층에 만든 것이었다. 천장의 환기구로 빛이 들어왔다. 빛은 자외선 필터를 통과한 것이었다. 필터는 유리병에 물을 채워 만든 것이었다. 물이 자외선의 일부를 흡수했다. 필터 아래에서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상추, 무, 배추. 잎이 작았지만 색이 선명했다. 유진은 상추 잎을 하나 따서 봤다. 싱싱했다. 차폐막 안의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잎이 두꺼웠다. 토양은 마을 바깥에서 가져온 흙에 퇴비를 섞은 것이었다. 미생물이 살아 있는 토양이었다.

“바깥의 토양은 죽었잖아.”

유진이 말했다. 유라가 대답했다.

“우리가 살렸어. 퇴비를 만들어서 미생물을 배양했어. 2년 걸렸어.”

유라는 물 시스템도 보여줬다. 지하수를 퍼 올리는 수동 펌프. 모래와 숯과 자갈로 이루어진 정수 장치. 3단계 여과 구조. 물 저장소는 콘크리트 벽에 방수 점토를 바른 웅덩이였다. 모든 것이 산업 제품 없이 만들어져 있었다.

“통신이 끊긴 건?”

유진이 물었다.

“태양풍이 강했던 주가 있었어. 전자 장비가 다 타 버렸어. 통신기도.”

유라가 말했다.

“근데 살아남았잖아.”

유라가 유진을 봤다.

“지하에 있었으니까. 자철석 벽이 좀 막아 줬어. 산업용 차폐막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서 사는 법을 배운 거야.”

유진은 밤에 지하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잤다. 천장의 환기구로 밤하늘이 보였다. 별이 선명했다. 은하수가 보였다. 차폐막 안에서는 자기장이 대기 중 하전 입자를 편향시키면서 미세한 빛 왜곡이 생겼다. 별이 흐릿하고,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이 하늘을 차폐막 건설 이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 8년 전이었다. 유진은 왼손을 들어 별빛 아래에서 봤다. 손가락 끝의 형광이 미세하게 빛났다. 옆에 누운 유라가 유진의 손을 잡았다.

“언니 손에서 빛이 나.”

“자성 물질이야. 자기장에 반응해.”

“아파?”

“아니. 감각은 정상이야.”

다음 날 아침, 유진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철석 벽을 보수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점토를 반죽하고, 자철석 조각을 배열하고, 벽면에 바르는 작업이었다. 유진은 배낭에서 자기장 측정기를 꺼내 자철석의 배열을 확인했다. 측정기의 화면에 숫자가 떴다. 배열이 균일하지 않았다. 간격이 불규칙했다. 유진이 측정기를 들어 벽면을 스캔했다.

“여기 간격을 3센티미터로 줄이면 자기장 밀도가 2배 가까이 올라가요.”

유진이 말했다. 작업하던 사람이 유진을 봤다.

“그걸 어떻게 알아?”

“차폐막 건설 엔지니어였어요. 자성 물질 배열이 제 전문이에요.”

사람들이 유진에게 자리를 내줬다. 유진은 무릎을 꿇고 벽면 앞에 앉았다. 유진은 측정기를 보면서 자철석의 간격과 방향을 조정했다. 벽 하나를 다시 배열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끝난 뒤 측정기를 확인했다. 자기장 밀도가 0.008가우스에서 0.014가우스로 올라가 있었다. 여전히 약했지만, 이전보다 나았다. 태양풍이 강한 날에 지하로 대피하지 않아도 이 벽 안에서 30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유진은 작업 결과를 확인하고 일어섰다. 무릎에 점토가 묻어 있었다.

점심때 유라가 유진에게 물었다.

“차폐막 확장 공사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려?”

“4개월.”

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4개월이면 여기서 버틸 수 있어.”

“내가 가져온 자기장 측정기랑 배열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어. 자철석 벽의 효율을 올리면 태양풍이 강한 날에도 지하에서 버틸 수 있을 거야.”

유라가 유진을 봤다.

“그 대신 우리가 알려줄 게 있어.”

“뭐?”

“이 토양 살리는 법. 차폐막 안에서도 토양이 죽어가고 있잖아.”

유진은 유라를 봤다. 사실이었다. 차폐막이 태양풍은 막았지만, 차폐막의 자기장이 토양 미생물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차폐막 안의 농경지에서 수확량이 매년 줄고 있었다. 차폐막 건설팀은 자기장이 토양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유진 자신도 그 문제를 모른 채 3년간 차폐막을 지었다.

유진은 가은 마을에 3일을 머물렀다. 첫째 날은 자철석 벽의 배열을 최적화했다. 마을의 주요 구조물 7곳의 자기장 밀도를 측정하고, 배열을 수정하고, 결과를 기록했다. 기록을 마을 사람들에게 넘겼다. 자철석의 최적 간격, 방향, 층 두께. 측정기 없이도 적용할 수 있도록 손가락 너비 기준으로 환산해서 알려줬다. 둘째 날은 유라에게서 퇴비 제조법과 미생물 배양법을 배웠다. 재료 목록, 온도 조건, 배양 기간, 토양에 투입하는 비율과 시기. 유진은 모든 것을 수첩에 적었다. 퇴비의 온도를 손으로 확인하는 법. 미생물이 활성화되면 퇴비 내부가 60도까지 올라간다. 손을 넣어서 5초를 버틸 수 없으면 적정 온도라는 것. 산업 장비 없이 감각으로 판단하는 기술이었다. 셋째 날은 유라에게 자기장 측정기를 줬다.

“이건 내가 쓰던 건데.”

유라가 말했다.

“괜찮아?”

“차폐막 안에는 측정기가 더 있어. 여기엔 이게 유일해.”

유라가 측정기를 받았다. 측정기의 화면을 켜봤다. 화면에 자기장 밀도가 표시됐다. 유라가 벽면에 대 봤다. 숫자가 변했다. 유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출발 아침, 유진은 배낭을 멨다. 가벼워져 있었다. 의료 키트와 정수 필터와 압축 식량의 절반을 마을에 남기고 왔다. 측정기도 없었다. 유진의 왼손이 마을 입구의 자철석 아치 앞에서 따끔거렸다. 손가락 끝의 자성 물질이 아치의 자기장에 반응하고 있었다. 유라가 유진의 앞에 서 있었다.

“4개월 뒤에 차폐막이 오면.”

유라가 말했다.

“그때까지 여기 있을 거야.”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를 안았다. 유라의 어깨에서 흙냄새가 났다. 살아 있는 토양의 냄새. 차폐막 안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유진은 걸었다. 52킬로미터.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도로 위의 먼지가 발밑에서 일었다.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지평선 위로 빛이 퍼졌다. 보라색 하늘이 밝아졌다. 유진은 고글을 내리고 차폐복의 후드를 조였다. 차폐복의 반사 코팅이 빛을 튕겼다. 왼손의 장갑 안에서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돌아갈 때 경계면을 통과하면 또 열감이 올 것이었다. 자성 물질이 조금 더 퍼질 것이었다. 유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왼손의 따끔거림이 걸을수록 강해졌다. 차폐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경계면의 자기장이 멀리서도 손끝의 자성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20킬로미터. 10킬로미터. 따끔거림이 욱신거림으로 바뀌었다. 배낭에 유라가 적어 준 퇴비 배양법이 들어 있었다. 수첩의 종이가 배낭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그 안에 유라의 글씨가 있었다. 유진은 왼손을 쥐었다 폈다. 손가락 끝의 형광이 대낮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 있었다. 유진은 알고 있었다. 경계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기가 달라지는 지점. 안쪽의 밀도 있는 공기와 바깥의 얇은 공기의 경계. 유진은 멈추지 않고 경계면으로 걸어 들어갔다. 왼손이 뜨거워졌다. 열감이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올라왔다. 이전보다 범위가 넓었다. 유진은 이를 악물고 걸었다. 5초. 경계면을 통과했다. 열감이 사라졌다. 차폐막 안의 공기가 폐를 채웠다. 유진은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왼손의 장갑을 벗었다. 검은 보라색이 손가락에서 손등까지 퍼져 있었다. 출발 전에는 손가락 끝까지였다. 유진은 장갑을 다시 꼈다. 손등의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신경에 영향이 시작된 것인지, 장갑의 압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은 손을 쥐었다 폈다. 주먹이 쥐어졌다. 아직 움직였다. 배낭 안에서 수첩이 바스락거렸다.

차폐막이 만드는 안전과 차폐막 바깥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생존 기술 중, 인류가 장기적으로 의지해야 할 것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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