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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빛나는 밤

2026. 3. 11. · 9,280자 · 약 11분

뼈가 빛나는 밤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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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가 자기 손목뼈에서 빛이 나는 것을 처음 본 것은 퇴직 후 23일째 되는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부엌에서 물을 마시다가,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왼쪽 손목 안쪽에 청백색 선이 드러나 있었다. 요골과 척골 사이, 피부 아래로 뼈의 윤곽이 비치고 있었다. 태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손목을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빛은 피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뼈 자체가 발광하고 있었다. 손목을 돌리자 빛의 각도가 달라졌다. 부엌 불을 켜자 보이지 않았다. 다시 끄자 돌아왔다. 태수는 물컵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한참 서 있었다.

오전에 퇴직자 건강검진 결과를 받으러 한성메디컬에 갔다. 접수창구에서 15분을 기다린 뒤 결과지를 받았다. 전 항목 정상. 혈액검사, 골밀도, 폐활량, 안저 촬영. 태수는 창구 직원에게 물었다.

“저기, 골수 검사 같은 건 안 합니까?”

직원은 태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김태수 님. 표준 퇴직 검진 패키지에는 해당 항목 없습니다.”

태수는 결과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병원을 나왔다.

퇴직 기념으로 받은 기관 로고가 박힌 머그컵이 싱크대 옆에 놓여 있었다. '스텔라 에너지 — 15년 근속 감사' 금색 글씨가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태수는 그 머그컵에 커피를 따르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밤에 본 것이 착각인지 확인하려면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일정표에 아무것도 없는 하루가 처음이었다. 15년 동안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셔틀을 타고, 소행성 광구의 채굴 라인에 들어가서, 12시간을 갱도 안에서 보내고, 다시 셔틀을 타고 돌아와 잠드는 순환이 태수의 시간이었다. 그 순환이 23일 전에 끊겼다. 태수는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봤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에 스텔라 에너지의 파란색 로고가 세 군데 보였다. 빌딩 옥상, 버스 정류장 광고판, 건너편 아파트 벽면. 태수가 캔 희토류가 저 로고 아래 전력망을 돌리고 있었다.

해가 지고 방의 불을 껐다. 커튼을 치고 어둠 속에서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빛이 있었다. 전날보다 선명했다. 요골과 척골의 윤곽이 피부 아래에서 또렷이 드러나 있었다. 태수는 오른손 검지로 빛나는 부위를 눌러 봤다. 통증은 없었다. 열감도 없었다. 뼈가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태수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플래시 없이. 화면에 손목의 청백색 선이 선명하게 잡혔다.

태수는 휴대폰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같은 광구에서 일했던 사람들. 김도현, 박재윤, 오승철. 태수보다 1년에서 3년 먼저 퇴직한 동료들이었다. 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만 울렸다. 재윤에게 걸었다. 같은 결과. 승철에게도 걸었다. 전원 꺼짐. 세 사람 모두 연락이 안 됐다. 태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발광하는 손목을 다시 봤다.

다음 날, 태수는 도현의 아파트로 갔다. 인천 남동구의 오래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문 아래 틈으로 우편물이 삐죽 나와 있었다. 태수는 우편물의 소인을 확인했다. 가장 오래된 것이 47일 전이었다. 47일. 태수가 아직 광구에 있을 때였다. 경비실로 내려갔다.

“3동 1204호 김도현 씨, 본 지 오래됐어요?”

경비원이 모니터를 슬쩍 보고 말했다.

“한 달 넘은 것 같은데. 이사 가셨나? 관리비 밀린 건 아니고.”

태수는 경비실을 나와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도현의 차가 지하 주차장에 그대로 있었다. 먼지가 쌓여 있었다. 와이퍼 아래에 주차 위반 딱지가 3장 끼워져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이 38일 전. 도현은 차를 두고 사라진 것이었다. 태수는 차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안을 들여다봤다. 뒷좌석에 스텔라 에너지 로고가 박힌 작업복이 접혀 있었다. 조수석에 빈 진통제 포장이 흩어져 있었다. 포장지가 바래 있었다. 5갑. 태수는 사진을 찍었다.

태수는 재윤의 주소를 찾아 수원까지 갔다. 결과는 같았다.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승철의 고양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 모두,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들처럼 사라져 있었다. 태수는 승철의 아파트 앞 차가운 계단에 주저앉았다. 담배를 꺼내 물었지만, 불을 붙이는 손이 미세하게 떨려 두 번 만에 겨우 불이 붙었다. 담배 연기가 복도의 형광등 빛에 흩어졌다. 15년 동안 같은 갱도에서 같은 먼지를 마시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셔틀에서 졸던 사람들이었다. 세 사람 모두 태수보다 먼저 광구를 떠났다. 세 사람 모두 사라졌다.

태수는 집으로 돌아와 서랍에서 퇴직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근로 계약서, 건강검진 동의서, 퇴직금 정산서. 건강검진 동의서 하단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본 검진은 스텔라 에너지 표준 프로토콜에 따르며, 검진 항목은 회사의 재량으로 조정될 수 있습니다. ' 태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골수 검사가 빠진 이유가 여기 있었다.

태수는 스텔라 에너지의 퇴직자 포털에 접속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자 건강 기록 탭이 있었다. 태수의 15년치 기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반기별 검진 결과 30건. 모두 '이상 없음. ' 태수는 첫 해 검진 결과와 마지막 해 검진 결과를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항목이 달랐다. 첫 해에는 28개 항목이었다. 마지막 해에는 19개. 9개 항목이 어느 시점에 빠져 있었다. 빠진 항목 중에 '골수 세포 분석'이 있었다. 4년 차까지는 있다가 5년 차부터 사라져 있었다. 태수는 화면을 캡처했다.

같은 광구 출신 퇴직자 커뮤니티를 검색했다. 비공개 게시판이 하나 있었다. 가입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태수는 밤마다 손목 사진을 찍었다. 3일째, 빛이 손목에서 전완부 쪽으로 2센티미터 확장됐다. 5일째, 반대쪽 손목에도 같은 빛이 나타났다.

커뮤니티 가입이 승인됐다. 게시글이 47건 있었다. 대부분 퇴직 수당이나 재취업 정보였다. 태수는 '조용한 빛'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발견했다. 3개월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퇴직 후 손목에서 빛이 납니다. 같은 증상 있는 분 계신가요. ' 댓글이 8개 있었다. 3명이 같은 증상을 보고했다. 나머지 5개는 '병원 가 보세요' 류의 반응이었다. 태수는 게시글 작성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만납시다. 을지로 3가역 2번 출구 앞. 내일 오후 3시. '

을지로의 낡은 인쇄소 건물 2층에 올라갔다. 문을 열자 좁은 사무실이었다. 접이식 테이블 하나와 의자 네 개. 벽에 소행성 광구의 단면도가 붙어 있었다. 스텔라 에너지의 내부 문서처럼 보였다. 테이블 앞에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짧은 머리, 왼쪽 귀 아래에 수술 흉터가 있었다. 그녀가 태수를 보자마자 물었다.

“몇 일째?”

“28일째.”

“어디까지?”

태수가 소매를 걷었다. 양쪽 손목과 전완부의 뼈가 어둠 없이도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낮인데도 보였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라. 나는 40일째에 거기까지 갔는데.”

그녀가 자기 소매를 걷었다. 양쪽 팔꿈치까지 뼈의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빛이 태수의 것보다 훨씬 밝았다.

“은정. 8번 광구. 12년.”

태수는 단면도를 봤다. 자기가 일한 광구와 같은 소행성이었다.

“나는 태수. 8번 광구. 15년.”

은정이 테이블 위의 노트북을 돌려 태수에게 보여줬다. 스프레드시트가 열려 있었다. 행이 23개였다. 이름, 근무 광구, 근속 연수, 퇴직일, 발광 시작일, 현재 발광 범위가 적혀 있었다. 23명 전원이 같은 소행성의 광구 출신이었다.태수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저처럼 뼈가 빛나는 겁니까?”

“전부.”

은정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보다시피, 다섯은 이제 연락도 안 돼.”

태수의 시선이 시트 위를 훑었다. 김도현, 박재윤, 오승철. 세 이름이 있었다. 현재 발광 범위 칸에 '전신'이라고 적혀 있었고, 옆에 빨간 글씨로 '연락 두절'이 붙어 있었다.

“내 동료들이에요.”

태수가 말했다.

“알아.”

은정이 노트북 옆에 있던 파일 폴더를 열었다. 스텔라 에너지의 사내 문서가 들어 있었다. 사무실에서 빼온 것이었다. 은정이 한 장을 꺼냈다. '희토류 셀 부산물 방사선 피폭 평가 보고서. 분류: 사외비. ' 날짜는 11년 전이었다.

“이게 뭐예요?”

“우리가 캔 희토류를 에너지 셀로 가공할 때 미세 방사선이 나와. 파장이 기존 방사선 분류에 없어서 측정 장비에 안 잡혀. 스텔라는 이걸 알고 있었어. 11년 전부터.”

태수가 문서를 받아 읽었다. 기술 용어가 빽빽했지만 핵심은 명확했다. 희토류 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방사선이 골수 세포의 결정 구조를 변형시킨다. 변형된 세포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결정 패턴을 형성한다. 보고서의 권고 사항란에 '해당 방사선에 대한 장기 피폭 영향 평가를 위해 광부 대상 골수 검사를 의무화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권고 사항 옆에 손으로 쓴 메모가 있었다. '비용 대비 효과 미미. 항목 삭제. ' 서명은 없었지만 스텔라 에너지 의료안전팀장의 결재란에 도장이 찍혀 있었다. 보고서의 다음 페이지에는 피폭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있었다. 5년 피폭 시 골수 세포 변형률 12퍼센트. 10년 시 34퍼센트. 15년 시 67퍼센트. 변형된 세포는 기존 결정 구조와 다른 육방정계 격자를 형성하며, 이 격자가 특정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고 적혀 있었다. '조용한 빛'의 정체였다. 그래프 아래에 빨간 펜으로 누군가 적어 놓은 메모가 있었다. '발광은 비가역적. 진행 속도는 피폭 총량에 비례. ' 태수는 15년이라는 숫자를 다시 봤다. 67퍼센트.

태수는 문서를 테이블 위로 밀어냈다. 종이에 손끝이 스치는 감각조차 불쾌했다.

“그래서… 5년 차부터 골수 검사를 없앤 거군요. 어차피 이상이 나올 테니까.”

“검사를 하면 이상이 나오니까 검사를 없앤 거지. 그리고 퇴직자 검진에서도 뺐어.”

은정이 파일 폴더를 닫았다.

“스텔라는 '깨끗한 에너지'를 파는 회사야. 광부들 뼈가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에너지 셀의 안전성에 의문이 생겨. 지금 전 세계 전력의 38퍼센트가 이 셀이거든.”

태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사무실 천장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인쇄소 건물이 오래되어 전기 배선이 불안정한 것이었다. 형광등이 꺼진 순간, 태수의 양쪽 전완부와 은정의 양쪽 팔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두 사람의 뼈가 좁은 사무실을 청백색으로 물들였다.

“사라진 5명이 어디 갔는지 알아요?”

“모르지. 스텔라가 데려간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 숨은 것일 수도 있어.”

은정이 노트북에서 다른 파일을 열었다. 연락 두절된 5명의 마지막 활동 기록이었다. 통신사 기록, 카드 사용 내역. 은정이 직접 조사한 것이었다. 5명 전원의 마지막 카드 사용처가 같았다. '한성메디컬 건강검진센터. ' 퇴직자 검진을 받으러 간 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카드 사용도, 통화 기록도, 위치 데이터도 없었다.

“검진 받으러 가서 돌아오지 않은 거예요?”

태수가 물었다.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메디컬은 스텔라 에너지의 자회사야.”

태수는 자기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살짝 물렸다. 23일 전, 자기도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스스로 숨을 이유가 있어요?”

은정이 태수를 봤다. 눈 아래에 그늘이 있었다.

“전신이 빛나면 숨길 수가 없으니까. 밤에 밖을 걸으면 사람들이 봐. 엑스레이 없이도 뼈가 다 보이는 사람을.”

태수는 다시 스프레드시트를 봤다. 23명의 발광 시작일과 현재 범위를 비교했다. 패턴이 있었다. 근속 연수가 길수록 발광 진행이 빨랐다. 15년 근속인 태수는 28일 만에 전완부까지 진행됐다. 12년 근속인 은정은 40일 만에 같은 범위에 도달했다. 연락이 끊긴 5명은 전원 14년 이상 근속이었다. 발광 시작 후 평균 72일 만에 전신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72일. 태수에게 남은 시간을 역산하면 약 50일이었다. 은정이 자기 왼팔을 들어 올렸다. 팔꿈치 안쪽의 피부가 얇은 곳에서는 뼈의 결정 구조가 피부 표면에 미세한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육각형 패턴. 태수가 손을 뻗어 만져 봤다. 피부 아래에서 딱딱한 돌기가 느껴졌다. 뼈가 피부 쪽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아프지는 않아.”

은정이 말했다.

“근데 어제부터 팔꿈치가 덜 구부러져.”

그녀가 팔꿈치를 접어 보였다. 완전히 접히지 않았다. 각도가 30도 정도 남은 채 멈췄다.

태수가 물었다.

“이걸 어디에 알릴 거예요?”

은정이 고개를 저었다.

“알려서 뭘 바꿔? 피폭은 이미 됐어. 되돌릴 수 없어. 내가 하려는 건 기록이야. 이 문서들을 복사해서 여러 군데 보관해 두는 거야. 나중에 누군가 찾을 수 있게.”

“나중이요? 나중이 어디 있습니까!”

태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구 전력 38퍼센트예요. 그 전기를 만드는 사람들 뼈가 이렇게 빛나고 있는데, 이걸 그냥 묻어두자고요?”

은정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 그녀는 씹듯이 말했다.

“당신이 그걸 터뜨리면 스텔라가 박수라도 쳐줄 것 같아? 사라진 다섯 명. 그게 저놈들 대답이야. 잊었어?”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은정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수는 인쇄소 사무실을 나오면서 자기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확인했다. 손목의 발광 사진 7장, 검진 결과 캡처, 항목 비교 화면. 은정이 보여준 사내 문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은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태수는 을지로 골목을 걸으며 생각했다. 50일.

열흘이 지났다. 빛은 팔꿈치를 넘어 상완부에 도달했다. 밤에 반팔 셔츠를 입으면 양팔의 뼈가 완전히 드러났다. 낮에도 어두운 실내에서는 보였다. 태수는 긴팔 셔츠만 입기 시작했다. 8월이었다.

태수는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서를 한 부 더 복사해 주세요.”

“왜.”

“언론에 보낼 거예요.”

긴 침묵이 있었다. 은정이 말했다.

“후회할걸.”

“후회할 시간이 있으면 다행이죠.”

은정이 다음 날 을지로 사무실에서 문서 사본을 건넸다. 태수는 그 자리에서 사본의 모든 페이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26장. 은정은 태수가 찍는 동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건너편 건물 벽면에 스텔라 에너지의 광고가 붙어 있었다. '지구를 밝히는 깨끗한 에너지. ' 푸른 지구 위에 흰 빛줄기가 뻗어 있는 이미지였다. 은정이 돌아서며 말했다.

“사라지게 되면 연락이라도 해. 기록에 추가해야 하니까.”

태수는 사무실을 나와 우체국에 갔다. 사진 파일을 저장 매체에 담아 봉투 3개에 나눠 넣었다. 한 곳은 방송사, 한 곳은 신문사, 한 곳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보내기 전에 편지를 한 장 썼다. 간결하게. 이름, 근무 이력, 증상, 검진 항목 삭제 사실, 동료 실종. 마지막 줄에 적었다. '동봉된 문서는 스텔라 에너지 내부 보고서입니다. 진위 확인을 요청합니다. ' 봉투 세 개를 창구에 내밀었다.

“등기로요.”

접수원이 봉투를 받으며 태수의 손을 봤다. 손등의 중수골이 우체국 형광등 아래에서도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접수원이 잠깐 멈칫했지만 아무 말 없이 접수증을 내밀었다. 태수는 접수증 3장을 지갑에 넣었다.

우체국을 나오자 해가 지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광장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구간을 지날 때, 태수의 양팔이 빛났다. 긴팔 셔츠 소매 위로 청백색 빛이 천을 투과해 스며 나왔다. 옆을 지나던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태수는 팔짱을 끼고 걸음을 빨리했다.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태수는 받지 않았다.

아파트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불을 켜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복도에 섰다. 거울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봤다. 양팔의 뼈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요골, 척골, 상완골. 관절의 연결 부위까지 또렷했다. 셔츠를 벗었다. 쇄골이 빛나고 있었다. 흉골 위쪽에도 희미한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수는 거울 앞에서 양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뼈 하나하나가 청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골, 중수골, 수근골. 해부학 교과서의 도해처럼. 태수는 손을 내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모르는 번호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대신 은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봉투 세 개 보냈어요. 등기. ' 은정의 답장이 왔다. '알았어. 조심해. '

태수는 전화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거실 바닥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자기 몸이 만드는 빛을 봤다. 양팔과 어깨, 쇄골. 흉골 위쪽까지 번지는 청백색 빛이 천장에 희미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50일에서 40일로 줄었다. 태수는 등을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빛이 보였다. 눈꺼풀 너머로 청백색이 번져 있었다. 자기 몸이 만드는 빛을 자기 눈이 감지하고 있었다.

새벽 3시에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태수는 눈을 떴다.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태수는 일어나 현관 도어스코프를 들여다봤다. 복도에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한 명이 귀에 통신기를 끼고 있었다. 태수는 뒤로 물러섰다. 도어스코프에서 눈을 뗐다. 심장이 귀 밑에서 뛰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제 빛을 내는 쇄골이 시야 구석에서 어른거렸다. 태수는 침실로 갔다. 침대 아래에서 배낭을 꺼냈다. 지갑, 여분의 옷, 은정에게 받은 문서 사본 원본. 봉투에 넣어 놓은 것이 아니라 별도로 한 부를 더 가지고 있었다. 은정이 준 것. 태수는 배낭을 메고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3층이었다. 아래에 에어컨 실외기 받침대가 보였다.

현관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두 번. 목소리가 들렸다.

“김태수 씨? 스텔라 에너지 직원복지팀입니다. 퇴직자 건강 관련 상담을 위해 방문했습니다.”

태수는 배낭 끈을 조이고 베란다 난간을 넘었다. 실외기 받침대에 발을 디뎠다. 아래로 내려가는 배관이 있었다. 태수는 배관을 잡고 2층 받침대로 내려갔다. 소매가 올라가면서 전완부의 빛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아파트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태수의 양팔이 청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1층까지 내려온 태수는 주차장 울타리를 넘어 골목으로 빠져나갔다.

새벽 거리는 비어 있었다. 태수는 걸었다. 가로등 사이의 어두운 구간을 지날 때마다 팔의 빛이 드러났다. 가로등 아래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았다. 빛에서 빛으로, 어둠에서 어둠으로. 태수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은정의 번호를 눌렀다. 4번째 신호음에서 받았다.

“나 지금 집 나왔어요. 사람들이 왔었어요.”

은정이 잠깐 침묵했다.

“봉투 때문일 거야.”

“어디로 가면 돼요?”

“지하철 타지 마. 택시도 타지 마. 걸어서 을지로로 와.”

태수는 전화를 끊고 걷기 시작했다. 길이 한산했다. 새벽 4시의 서울. 태수는 긴팔 셔츠 위에 배낭 끈을 두르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걸었다.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뼈가 빛나고 있었다. 천 너머로 빛이 새어 나왔다. 태수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빛나는 손을 내려뜨린 채 걸었다. 새벽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봉투는 이미 보냈다. 문서 사본은 배낭에 있었다. 태수는 을지로를 향해 걸었다. 양팔의 뼈가 소매를 투과해 새벽 공기 속에 빛을 흘리고 있었다.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빛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15년간 당신의 몸을 바꿔 놓은 사실을 숨긴 회사에 맞서 증거를 보냈지만, 이미 당신의 뼈는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 진실을 알리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둘 다를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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