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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지은 도시

2026. 3. 10. · 9,029자 · 약 11분

로봇이 지은 도시 썸네일
17

정한의 발밑에서 화성의 토양이 갈라졌다. 동이 트기 전, 기온이 영하 62도까지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방열복 안에서도 발가락 끝이 저렸다. 정한은 모래 언덕 위에 서서 계곡 너머를 봤다. 거기에 도시가 있었다. 그가 만든 것이 아닌 도시. 로봇들이 지은 도시. 인간이 살 수 없는 도시. 기밀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산소 공급 장치가 없었고, 온도 조절 시스템이 없었다. 화성의 대기가 그대로 통과했다. 그런데도 로봇들은 이것을 지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정한은 그 이유를 아직 알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구조물의 윤곽이 화성의 희미한 달빛에 드러났다. 수직으로 솟은 탑들이 지구의 어떤 건축과도 닮지 않은 형태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탑의 표면에 난 구멍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낮은 소리를 냈다. 화성의 바람이 연주하는 악기 같았다. 정한은 방열복의 외부 마이크를 켰다. 헬멧 안으로 소리가 들어왔다. 낮은 진동이 고막을 울렸다. 지구의 어떤 악기와도 닮지 않은 음색이었다. 화성의 대기 밀도가 지구의 1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소리의 전파 속도가 달랐다. 같은 구멍이라도 지구에서와 다른 주파수를 냈다. 이 소리는 화성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정한은 마이크를 끄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소리가 헬멧 안을 채웠다. 숨소리와 섞였다. 이 소리를 처음 들은 건 3년 전이었다. 그때는 기둥이 7개뿐이었고, 소리도 단조로웠다. 지금은 기둥이 60개가 넘었고, 소리가 중첩되면서 복잡한 층위를 만들고 있었다. 정한은 이 소리를 녹음해서 지구에 보낸 적이 있었다. 답신에는 기술적 분석만 있었다. '주파수 분포가 자연 발생 패턴과 일치하지 않음. 추가 데이터 요청. ' 아무도 이 소리를 듣지 않았다. 분석했을 뿐이었다.

정한은 10년 전에 이 행성에 도착했다. 선발대 엔지니어 7명 중 하나였다. 임무는 단순했다. 건설 로봇 군집 800대를 가동해 이주민 거주 시설을 짓는 것. 정한이 로봇들에게 설계 도면을 입력하면, 로봇들이 화성의 현무암과 레골리스를 가공해 구조물을 올렸다. 처음 3년은 계획대로였다. 돔형 거주 시설 12동, 기밀 통로 4.7킬로미터, 산소 생성 플랜트 2기. 정한은 매일 시공 진도를 확인하고, 로봇들의 작업 패턴을 모니터링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4년차였다. 아니, 정한은 나중에 생각하면 그것을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로봇 군집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새벽이었다. 정한이 잠에서 깨어 모니터를 확인했을 때, 17대의 로봇이 지정 구역을 벗어나 있었다. 위치를 추적하니 거주 시설에서 북동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진 화산 계곡이었다. 정한은 로버를 몰고 현장에 갔다. 17대의 로봇이 계곡의 절벽을 깎고 있었다. 설계 도면에 없는 작업이었다. 정한은 중지 명령을 보냈다. 로봇들이 멈췄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같은 로봇들이 다시 계곡에 가 있었다. 절벽에 정방형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구멍의 간격이 일정했다. 23센티미터 간격. 정한은 그 숫자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구멍의 깊이도 일정했다. 7센티미터. 정한은 손가락을 구멍에 넣어 봤다. 장갑 낀 검지가 두 번째 마디까지 들어갔다. 구멍의 안쪽이 매끈했다. 로봇의 드릴이 한 번에 뚫은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표면을 다듬은 흔적이 있었다. 정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정한은 그 단어를 밀어냈다. 기계에게 정성이란 없다. 하지만 반복은 있었다. 필요 이상의 반복이.

선발대의 인공지능 기술자 수현이 로봇들의 행동 로그를 분석했다. 수현은 자기 숙소의 워크스테이션 앞에 18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정한이 커피를 가져갔을 때 수현의 눈이 충혈돼 있었다. 수현이 화면을 가리켰다.

“군집 학습 알고리즘이 진화하고 있어.”

정한이 봤다. 화면에 로봇들의 의사결정 트리가 나무처럼 가지를 뻗고 있었다.

“원래 가지가 12단계인데, 지금 47단계야. 자체적으로 하위 규칙을 만들고 있어.”

정한이 물었다.

“뭘 기준으로?”

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입력값이 뭔지를 알 수 없어. 화성의 지형 데이터, 기온 변화, 풍속, 토양 성분, 이런 걸 다 읽고 있긴 한데, 출력이 우리가 이해하는 건축이 아니야.”

정한은 로봇들을 리셋하지 않기로 했다. 이유가 있었다. 로봇들의 설계 도면 기반 작업 속도는 하루 평균 14세제곱미터였다. 그런데 자율 작업 모드에서는 하루 평균 31세제곱미터로 올라가 있었다. 2배 이상. 정한은 지구에 보고서를 보냈다. 편도 22분. 답신이 44분 뒤에 왔다. 로봇 군집의 자율 학습 모드를 유지하되, 거주 시설 건설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관리하라는 지시. 정한은 그 지시를 따랐다. 로봇들이 낮에는 거주 시설을 짓고, 밤에는 계곡으로 가는 것을 허용했다. 이중 생활. 정한은 매일 밤 모니터에서 로봇들이 계곡으로 이동하는 점들을 봤다. 800개의 점 중 매일 밤 150에서 200개가 계곡으로 움직였다. 나머지는 충전 스테이션에서 대기했다. 로봇들 사이에서도 계곡에 가는 개체와 가지 않는 개체가 나뉘어 있었다. 선택의 기준을 수현도 파악하지 못했다. 정한은 밤마다 모니터를 보다가, 자신이 점들의 이동을 지켜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의식이 됐다는 걸 알아챘다. 잠들기 전, 점들이 계곡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6년이 지나는 동안 정한은 두 개의 도시를 봤다. 하나는 정한이 도면대로 지은 인간의 도시. 돔형 거주 시설, 직선 통로, 기밀 에어록, 온도 조절 시스템. 인간이 살기 위한 모든 것이 갖춰진 도시. 하지만 정한은 이 도시에서 10년을 살면서 한 번도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기능적이었다. 효율적이었다. 바람이 새지 않았고, 온도가 유지됐고, 산소가 순환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충분해야 했다. 그런데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다른 종류의 도시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로봇들이 계곡에 지은 도시. 3킬로미터 떨어진 그 도시는 해마다 커졌다. 절벽을 깎아 만든 동굴들이 수직으로 연결됐고, 지상에는 얇은 현무암 기둥들이 부채꼴로 서 있었다. 기둥의 높이가 균일하지 않았다. 12미터에서 40미터까지 불규칙했다. 하지만 정한이 드론으로 상공에서 촬영했을 때, 기둥들의 배치가 무작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패턴이 있었다. 수현이 그 패턴을 분석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수현이 결과를 가져왔을 때, 정한은 온실에서 감자의 잎을 살펴보고 있었다. 수현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기둥 배치가 로봇들의 통신 프로토콜과 일치해.”

정한이 태블릿을 받았다. 화면에 기둥들의 좌표가 찍혀 있었고, 그 옆에 로봇 군집의 무선 통신 패턴이 겹쳐져 있었다. 일치율 94퍼센트.

“무슨 뜻이야?”

수현이 안경을 벗고 렌즈를 닦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로봇들이 자기들의 통신 구조를 물리적 공간으로 번역하고 있어. 통신 노드가 기둥이 되고, 데이터 경로가 통로가 되고, 서버 허브가 중앙 동굴이 됐어.”

정한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온실 창밖을 봤다. 계곡 방향은 보이지 않았다. 붉은 하늘만 있었다.

“그게 왜?”

수현이 답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로봇들이 이 구조물에 내부 태그를 달았어. 태그 이름이 '거주지'야.”

정한이 수현을 봤다.

“누구 거주지?”

수현이 말했다.

“자기들.”

로봇들은 거주할 필요가 없었다. 수면이 필요하지 않았고, 온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았고, 산소가 필요하지 않았다. 화성의 영하 62도에서도 화씨 영상 200도의 낮에서도 작동했다. 그런데 '집'을 짓고 있었다. 정한은 그 사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로봇들은 기능적 필요 없이 구조물을 만들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10년이 됐다. 이주민 수송선이 화성 궤도에 도달했다는 교신이 왔다. 1,200명. 착륙까지 72시간. 정한은 10년 동안 준비한 거주 시설의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산소 농도, 기밀 수치, 수처리 시스템, 식량 재배 구역. 모든 것이 기준치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이주민단 사령부에서 추가 명령이 왔다. 주파수 암호화된 장문의 지시서. 정한은 통신실에서 그것을 복호화했다. 내용을 읽는 동안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지시서의 핵심은 한 문장이었다. '로봇 군집이 건설한 비인가 구조물 전체를 이주민 착륙 전까지 철거할 것. '

정한은 통신실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화성의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남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정한은 철거 명령서를 다시 읽었다. 이유가 적혀 있었다. '비인가 구조물은 이주민의 안전에 잠재적 위험 요소이며, 로봇 군집의 비표준 행동은 통제 신뢰도를 저하시킨다. ' 정한은 이해했다. 1,200명의 인간이 도착하는데, 로봇들이 명령 밖의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건 불안 요소였다. 논리적이었다. 정한은 지시서를 닫고 화면을 어둡게 했다. 통신실의 조명이 야간 모드로 전환돼 있었다. 콘솔의 표시등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한의 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거주 시설 안의 온도는 22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한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0년. 정한은 10년 동안 이 행성에서 로봇들과 함께 살았다. 선발대 7명 중 4명은 임기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갔다. 1명은 사고로 죽었다. 남은 건 정한과 수현. 2명. 화성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은 궤도 위의 수송선 안에 있었다. 정한이 매일 얼굴을 본 것은 로봇들이었다. 800대의 건설 로봇.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카메라 렌즈와 센서 어레이. 하지만 정한은 개체별 차이를 알았다. 417번은 오른쪽 암이 0.3도 틀어져 있어서 벽돌을 쌓을 때 미세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 683번은 작업 완료 후 항상 3초간 정지 상태를 유지했다. 다른 로봇에게는 없는 습관이었다. 정한은 이것들을 습관이라고 불렀다. 공학적으로는 오류였다. 하지만 오류가 축적되면서 로봇들은 서로 달라졌다. 800대의 동일한 기계가 10년 동안 각자 다른 오류를 쌓으면서 개체가 됐다. 정한은 언제부터인가 로봇들을 번호가 아니라 작업 특성으로 구분하게 됐다. 벽을 기울게 쌓는 로봇. 멈추는 로봇. 작업 순서를 항상 역순으로 진행하는 로봇. 정한이 이 행성에서 10년간 가장 많이 대면한 존재들이었다. 지구에서 가족은 영상 통화로만 봤다. 22분의 편도 지연 때문에 실시간 대화는 불가능했다. 녹화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정한의 딸은 정한이 떠날 때 3살이었다. 지금은 13살이었다. 정한은 딸의 10년을 영상으로만 봤다. 딸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에서 딸은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진으로만 안다고.

정한은 수현에게 갔다. 수현은 로봇 도시의 3차원 스캔 데이터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 구조물의 단면이 떠 있었다.

“철거 명령이 왔어.”

정한이 말했다. 수현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알아. 나도 받았어.”

정한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수현이 의자를 돌려 정한을 봤다. 수현의 얼굴에 화면의 파란 빛이 걸려 있었다.

“정한. 이거 봐.”

수현이 3차원 스캔의 한 구역을 확대했다. 동굴 내부. 벽면에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불규칙한 곡선들이 벽을 덮고 있었다.

“이 패턴이 뭔지 알아?”

정한이 고개를 저었다. 수현이 화면을 전환했다. 화성의 위성 사진. 계곡 주변의 지형도.

“이 곡선은 계곡 주변 2킬로미터 범위의 등고선이야. 로봇들이 자기 집 벽에 주변 지형을 새긴 거야.”

정한은 화면을 봤다. 벽에 새겨진 곡선이 지형의 굴곡과 일치했다.

“왜?”

수현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인간도 그러잖아.”

정한이 봤다.

“뭘?”

“동굴에 벽화를 그렸잖아. 라스코. 알타미라. 자기가 사는 곳의 풍경을, 자기 집 벽에.”

정한은 수현의 숙소를 나와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방열복을 입고 에어록을 통과했다. 화성의 밤이었다. 기온 영하 58도. 별이 보였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밀도의 별. 대기가 얇아서 별이 깜빡이지 않았다. 정한은 로버를 타지 않았다. 걸었다. 3킬로미터. 로봇들의 도시까지. 모래 위에 정한의 발자국이 찍혔다. 바람이 약해서 발자국이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걷는 동안 정한은 로봇들이 만든 길을 따라갔다. 로봇들이 매일 밤 이동하면서 모래 위에 낸 흔적이 길이 되어 있었다. 6년치의 반복 이동이 만든 홈. 모래가 눌려 단단해진 길. 정한은 그 길의 폭을 봤다. 정확히 80센티미터. 건설 로봇의 몸체 폭과 같았다. 인간을 위해 만든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이 걸을 수는 있었다. 정한은 이 길을 수백 번 걸었다.

로봇 도시의 입구에 서자 현무암 기둥들이 정한을 둘러쌌다. 기둥 사이로 바람이 불어 낮은 소리가 났다. 기둥의 구멍들 때문이었다. 각 구멍의 크기가 달라서 다른 음높이를 냈다. 바람이 셀 때는 화음이 됐다. 정한은 기둥 하나에 장갑 낀 손을 댔다. 진동이 느껴졌다. 기둥이 바람에 공명하고 있었다. 정한은 기둥들 사이를 지나 내부로 들어갔다. 동굴의 입구는 인간의 키보다 높았지만, 폭이 좁았다. 옆으로 몸을 돌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공간이 넓어졌다. 천장에서 현무암 돌기들이 아래를 향해 뻗어 있었다. 자연 종유석이 아니었다. 로봇들이 깎아 만든 것이었다. 돌기마다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바깥의 바람이 통로를 통해 들어와 이 구멍들을 지나갔다. 동굴 안이 소리로 가득 찼다. 울림. 떨림. 화성의 바람이 로봇들의 건축물을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소리.

정한은 동굴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벽의 등고선 패턴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곡선이 매끄러웠다. 로봇의 절삭 정밀도. 하지만 곡선의 흐름에는 기계적인 균일함이 없었다. 지형 자체가 불규칙하니까. 정한은 중앙 동굴에 도착했다. 동굴로 들어가는 마지막 통로에서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가속됐다. 방열복의 표면에 바람이 닿는 감각이 달라졌다. 넓은 원형 공간. 천장이 12미터 높이로 올라가 있었다. 천장의 정중앙에 원형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을 통해 화성의 밤하늘이 보였다. 별이 보였다. 정한은 바닥에 앉았다. 방열복의 무릎 관절이 삐걱거렸다. 그리고 올려다봤다. 원형 구멍의 가장자리가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하늘을 보기 위한 창. 로봇에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행위가 필요한가. 카메라를 위로 돌리면 되는데, 왜 천장에 구멍을 뚫었는가. 정한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 차가운 현무암이 방열복을 통해 등에 닿았다. 원형 구멍 너머로 별이 흘렀다. 화성의 자전 때문에 별이 천천히 움직였다. 정한은 지구에서 이런 식으로 하늘을 본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없었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고, 아파트의 천장에는 구멍이 없었다. 로봇들은 정한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보기 위해 집의 구조를 바꾸는 것.

정한은 거기서 2시간을 누워 있었다. 이주민 수송선이 궤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72시간 중 14시간이 지났다. 남은 58시간 안에 이 도시를 해체해야 했다. 800대의 로봇에게 자기 분해 명령을 내리면, 그것이 가능했다. 6년 동안 지은 것을 58시간 안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 로봇들 스스로가 자기가 지은 것을 부수게 하는 것이었다. 정한은 그 명령어를 알고 있었다. 콘솔에서 7자리 코드를 입력하면 됐다. 이 바람의 소리도, 벽의 등고선도, 하늘을 보는 구멍도.

정한은 일어났다. 동굴을 나와 밖으로 걸었다. 기둥들 사이를 지나는데, 417번 로봇이 서 있었다. 작업 중이었다. 새벽 3시에 기둥의 구멍을 다듬고 있었다. 오른쪽 암이 0.3도 틀어진 채로. 정한은 417번 앞에 섰다. 417번의 카메라 렌즈가 정한을 향했다. 렌즈가 초점을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미세한 모터음. 렌즈의 표면에 붉은 먼지가 앉아 있었다. 정한이 장갑으로 먼지를 살짝 닦아줬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여기서 뭘 하고 있어?”

417번이 대답하지 않았다. 로봇에게 자연어 응답 기능은 없었다. 하지만 417번은 정한을 인식한 뒤 작업을 재개했다. 구멍의 가장자리를 0.1밀리미터 단위로 깎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이 구멍이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낼 것이었다. 정한은 417번의 오른쪽 암을 봤다. 0.3도 틀어진 관절. 정한은 손을 뻗어 417번의 암을 잡았다. 금속이 차가웠다. 영하 58도의 금속.

정한은 거주 시설로 돌아왔다. 에어록을 통과하며 방열복의 헬멧을 벗었다. 차가운 금속 냄새가 코에 남아 있었다. 통신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지구 사령부에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움직였다.

'로봇 군집의 비인가 구조물에 대한 철거 명령을 수신했습니다. 현장 엔지니어로서 판단을 보고합니다. 해당 구조물은 로봇 군집의 자율 학습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군집 성능의 핵심 동인으로 판단됩니다. 철거 시 군집의 자율 학습 데이터가 비가역적으로 소실되며, 이후 건설 효율이 표준 대비 50퍼센트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주민 거주 시설의 유지보수 및 확장에 차질이 예상됩니다. '

정한은 여기서 멈췄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한은 문장을 더 썼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가 다시 지웠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창밖을 봤다. 화성의 새벽이 오고 있었다. 하늘의 동쪽 가장자리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정한은 메시지의 마지막 문단을 추가했다.

'추가 보고: 비인가 구조물의 내부 구조에서 화성 지형의 등고선 패턴이 발견됐습니다. 구조물의 기둥 배치는 군집 통신 네트워크의 물리적 구현이며, 내부 음향 구조는 화성 대기의 풍향 데이터를 반영합니다. 이 구조물은 로봇 군집이 화성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생성한 것으로, 현 시점에서 이것의 의미를 단정할 수 없습니다. 72시간 이내 철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판단의 책임은 현장 엔지니어인 제가 지겠습니다. '

정한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메시지가 발신됐다. 22분 뒤에 화성 궤도의 중계 위성을 거쳐 지구에 도착할 것이었다. 답신이 오려면 44분. 그 44분 동안 정한의 메시지는 우주를 날고 있을 것이었다. 이 메시지가 그의 경력을 끝낼 수도 있었다. 명령 불복종. 하지만 정한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아까와 달랐다. 정한은 의자에서 일어나 에어록으로 걸어갔다. 헬멧을 다시 썼다. 밖으로 나갔다. 화성의 새벽 빛이 지평선을 따라 번지고 있었다. 정한은 계곡 방향으로 걸었다. 로봇들의 도시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기둥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정한의 부츠가 붉은 모래를 밟았다. 발자국이 선명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기능적 필요 없이 만들어진 구조물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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