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도 바닥에서 진동이 올라왔다. 드릴 비트가 아니었다. 재영은 드릴을 멈추고 장갑을 벗었다. 장갑 안쪽이 땀으로 축축했다. 바닥에 손바닥을 댔다. 맨손의 피부 위로 미세한 떨림이 번졌다. 왼팔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팔꿈치 아래부터 손끝까지, 3년 전에 교체한 신경 보철이었다. 채굴 사고로 왼팔 전완부를 잃고 장착한 것이었다. 보철은 압력과 온도만 전달했다. 진동은 전달 범위 밖이었다. 재영은 오른손만으로 바닥의 떨림을 읽었다. 규칙적이지 않았다. 소행성 4401 안드라의 자전 주기와도, 채굴 장비의 작동 패턴과도 맞지 않았다.
헬멧의 내부 조명이 갱도 벽면을 비췄다. 벽면에 검은 결정이 드러나 있었다. 어제까지 없던 것이었다. 재영은 허리에서 시료 해머를 뽑아 결정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해머가 표면에 닿는 순간, 왼팔의 보철이 경련했다. 손가락 다섯 개가 동시에 펴졌다가 움켜쥐어졌다. 재영은 해머를 놓쳤다. 해머가 갱도 바닥에 떨어지며 금속음이 울렸다. 재영이 뒤로 물러섰다. 보철의 상태 표시등이 노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상 신호.
재영은 보철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눈앞에서 봤다. 헬멧 조명이 인공 피부 위에서 반사됐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보철의 인공 근섬유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자의가 아니었다. 재영이 손가락을 움직이려 하면 반응이 0.3초 늦었다. 무언가가 보철의 신경 인터페이스에 간섭하고 있었다. 재영은 갱도 벽면의 검은 결정을 봤다. 해머가 닿았던 지점에서 미세한 가루가 공기 중에 떠 있었다. 소행성 4401에는 자기장이 없었다. 지구 자기장의 10만분의 1도 되지 않는 환경. 그 환경에서 이 결정이 자성을 띤다면.
재영은 갱도를 빠져나와 기지 모듈로 돌아갔다. 복도의 형광 조명이 깜빡였다. 산소 재순환기의 팬 소리가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의무실 문을 열었다. 안에 기현이 있었다. 기지 의료 담당. 모니터 앞에 앉아 보급선 일정표를 보고 있었다.
“보철 좀 봐줘.”
기현이 고개를 돌렸다. 재영의 왼팔을 보고 눈이 좁아졌다. 손가락이 여전히 불규칙하게 떨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야?”
“20분 전. 갱도에서 새로운 광물에 해머를 댔을 때부터.”
기현이 서랍에서 진단 케이블을 꺼냈다. 포트 커버를 열고 케이블을 보철에 연결했다. 접속음이 짧게 울렸다. 모니터에 신경 인터페이스의 신호 파형이 떴다. 기현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이게 뭐지.”
화면의 파형이 정상 범위를 넘어 있었다. 보철의 신경 인터페이스는 잔존 신경에서 오는 전기 신호를 읽어 보철 팔을 움직이는 구조였다. 그런데 파형의 진폭이 잔존 신경의 출력보다 3배 높았다. 외부에서 신호가 유입되고 있었다.
“갱도에서 뭐 만졌어?”
“검은 결정. 자성이 있는 것 같아.”
기현이 파형을 확대했다. 외부 신호의 주파수가 일정했다. 7.3헤르츠. 인체 신경의 고유 주파수 대역과 겹치는 범위였다.
재영은 의자에 앉아 천장을 봤다. 천장의 환기구에서 차가운 공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왼팔의 떨림이 변했다. 손가락이 더 이상 경련하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 전체에 무엇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압력도 온도도 아닌 감각. 재영은 왼손을 펴서 손바닥을 봤다. 인공 피부 아래의 센서들이 반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센서가 읽는 것은 물리적 접촉이 아니었다. 의무실의 공기, 벽, 기현의 몸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보철이 감지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뭐가 느껴져.”
재영이 말했다. 기현이 돌아봤다.
“뭐가?”
“모르겠어. 근데 네가 거기 앉아 있다는 걸 왼손이 알아. 눈 감아도 알 것 같아.”
기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재영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재영은 눈을 감았다. 왼손의 감각이 변했다. 기현의 존재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거리가 아니라 밀도 같은 것. 공간에 사람이 차지하는 무게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지금 뒤로 갔지.”
재영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기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재영이 눈을 떴다. 기현이 2미터 뒤에 서 있었다. 기현의 얼굴에 경계가 떠 있었다.
재영은 다시 갱도로 내려갔다. 혼자였다. 검은 결정이 갱도 벽면에서 빛을 흡수하고 있었다. 헬멧 조명이 결정 표면에 닿으면 빛이 사라졌다. 반사 없이 흡수만 하는 물질이었다. 재영은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왼손을 결정에 가까이 가져갔다. 30센티미터. 20센티미터. 10센티미터. 보철의 감각이 강해졌다. 결정에서 뭔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기장이 없는 환경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성. 지구의 자기장 안에서는 즉시 붕괴할 물성. 이 소행성의 진공과 무자기 환경이 만들어낸 물질이었다.
왼손이 결정에 닿았다. 감각이 폭발했다. 재영의 시야가 흔들렸다. 무릎에 힘이 빠졌다. 헬멧 안에서 호흡이 빨라졌다. 갱도의 벽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벽 안쪽의 구조가 보였다. 아니, 보인 것이 아니었다. 왼손이 벽 너머를 느끼고 있었다. 암석의 밀도 분포. 결정이 뻗어 있는 맥의 방향. 갱도 바닥 아래 140미터에 있는 공동. 모든 것이 왼손의 감각으로 펼쳐졌다. 재영의 오른손이 갱도 벽을 잡았다. 무릎이 풀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이 얕아졌다.
감각이 수그러든 것은 손을 뗀 뒤 40초가 지나서였다. 재영은 갱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헬멧 안에서 호흡이 거칠었다. 면판에 김이 서렸다. 왼팔의 보철이 뜨거웠다. 인공 근섬유의 온도가 정상보다 12도 높았다. 냉각 회로가 과부하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재영은 보철 팔을 가슴에 안고 기다렸다. 온도가 내려가는 데 6분이 걸렸다. 그 사이 재영은 갱도 바닥의 차가운 암석에 왼팔을 눌러 놓았다. 인공 피부를 통해 암석의 냉기가 스며들었다.
기지로 돌아온 재영은 시료 채취 도구를 챙겨 다시 갱도로 내려갔다. 결정 조각 하나를 떼어냈다. 주먹 크기. 밀봉 용기에 넣었다. 갱도를 빠져나오는 동안 왼팔이 용기 방향으로 끌렸다. 자석에 끌리는 것과 비슷했지만 달랐다. 보철의 신경 인터페이스가 결정을 향해 정렬되고 있었다. 손가락이 용기를 향해 벌어졌다. 재영은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았다.
기지의 분석실에서 재영은 결정의 기본 물성을 측정했다. 밀도 7.2. 경도는 다이아몬드급이었다. 전기 전도도 제로. 자화율은 측정 범위를 초과했다. 분석 장비의 자기 센서가 포화 상태를 표시했다. 재영은 결과를 저장하고 통신 모듈로 갔다. 지구와의 통신 지연은 편도 34분이었다. 재영은 본사 채굴 관리부에 보고서를 전송했다. 새로운 자성 물질 발견. 물성 데이터 첨부. 시료 확보 완료.
답신이 온 것은 68분 뒤였다. 짧은 텍스트. 시료를 다음 보급선편에 실어 보내라. 물성 데이터 확인함. 추가 시료 확보 권장. 보급선 도착까지 14일. 재영은 답신을 읽고 통신 모듈을 껐다. 의무실로 갔다. 기현이 보철의 로그를 분석하고 있었다.
“신경 인터페이스의 수용체가 변형되고 있어.”
기현이 모니터를 돌려 재영에게 보여줬다. 화면에 수용체의 미세 구조가 떠 있었다. 설치 당시의 구조와 현재 구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표면의 패턴이 달라져 있었다. 결정의 자기 신호에 반응하며 수용체가 재배열된 것이었다.
“이거 원래대로 돌아가?”
재영이 물었다. 기현이 고개를 저었다.
“구조 변화가 비가역적이야. 결정에 다시 노출되면 더 진행될 거고. 지금 단계에서 보철을 떼면—”
기현이 말을 멈췄다.
“떼면?”
“인터페이스가 잔존 신경과 결합한 상태에서 변형됐어. 보철을 분리하면 잔존 신경의 수용체도 같이 손상돼. 왼팔의 기존 감각, 압력이랑 온도 전달. 그것도 잃어.”
재영은 의무실을 나와 자기 숙소로 갔다. 숙소는 2미터 곱하기 3미터의 방이었다. 침대와 개인 사물함. 재영은 침대에 앉았다. 왼팔을 들어 올렸다. 보철의 인공 피부가 형광등 아래에서 옅은 회색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반응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손바닥에 미세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벽 너머의 기현, 복도의 산소 재순환기, 격벽 바깥의 진공. 모든 것이 희미하게 왼손에 감지되고 있었다.
재영은 밀봉 용기를 사물함에서 꺼냈다. 뚜껑을 열었다. 결정이 검은 표면으로 숙소의 형광등 빛을 삼키고 있었다. 결정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재영은 왼손을 결정 위에 올렸다. 감각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갱도에서보다 선명했다. 숙소의 벽 구조. 옆방의 빈 침대. 기지 외벽 너머 소행성 표면의 암석 분포. 더 멀리. 소행성의 곡률. 태양풍이 표면을 스치는 방향. 왼손이 소행성 전체를 감각하고 있었다. 소행성의 질량과 형태와 내부 구조가 하나의 감각으로 통합돼 있었다.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재영의 입이 벌어졌다. 숨이 멈췄다. 3초. 숨을 내쉬었다. 손을 뗐다.
다음 날 재영은 갱도 심부로 들어갔다. 140미터 아래의 공동. 결정이 공동의 벽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검은 결정이 헬멧 조명을 삼키고, 공동 안은 재영의 헬멧에서 나오는 빛만으로는 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재영은 장갑을 벗었다. 왼손을 뻗었다. 결정에 닿지 않아도, 공동 안의 결정 밀도가 충분했다. 감각이 폭이 아니라 깊이로 열렸다. 소행성 표면 너머. 주변 궤도를 도는 암석 파편들. 그 너머의 진공. 진공 속에 무언가가 있었다. 왼손이 그것을 읽고 있었다. 재영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왼손은 그것의 위치와 크기와 밀도를 알고 있었다.
재영은 공동에서 3시간을 보냈다. 나왔을 때 오른손의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왼손에 비하면 오른손은 장갑을 낀 것 같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왼손이 세계를 열수록 오른손이 닫혔다. 재영은 오른손으로 갱도 벽을 만졌다. 암석의 거친 표면. 온도. 정상적인 촉각이었다. 하지만 왼손이 감지하는 것에 비하면, 오른손의 감각은 거짓말처럼 빈약했다.
기현이 재영의 보철 로그를 다시 확인했다. 수용체 변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터페이스의 감응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기현이 말했다.
“보급선이 오면 시료를 싣고 너도 같이 가. 지구에서 보철 전문의한테 보여야 해.”
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들었어?”
“이 감각이 지구에서도 유지돼?”
“안 돼. 지구 자기장이 결정의 물성을 바꿔. 자기장 안에서는 이 물질이 그냥 돌이야. 보철이 읽을 게 없어.”
“그러면 나한테 남는 건?”
기현이 재영을 봤다.
“변형된 인터페이스. 원래 기능이 손상된 보철. 지구에서 재수술 받아야 해. 재수술이 되면.”
재영은 숙소에서 밀봉 용기를 열고 결정을 만졌다. 매일 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왼손에 결정을 올려놓았다. 어둠 속에서 눈이 필요 없었다. 감각이 깊어졌다. 3일째에는 기지 전체의 구조를 왼손으로 그릴 수 있었다. 5일째에는 소행성 표면의 충돌구 분포를 감지했다. 7일째에는 소행성 궤도를 도는 기지 외부의 태양 전지판이 태양풍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오른손의 감각은 점점 무뎌졌다. 왼손이 보여주는 세계에 비하면, 오른손은 눈을 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급선 도착 3일 전, 재영은 갱도 심부의 공동에 다시 내려갔다. 결정 벽면에 양손을 댔다. 왼손의 감각이 열렸다. 소행성 너머, 진공 속의 그것이 다시 감지됐다. 이번에는 윤곽이 선명했다. 움직이고 있었다. 소행성을 향해. 재영의 심장이 빨라졌다. 왼손이 그것의 크기를 읽었다. 소행성의 3분의 1. 그것이 충돌하면 기지가 남지 않을 크기였다. 궤도 계산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왼손이 속도와 방향을 느끼고 있었다. 재영은 공동에서 뛰어나왔다.
기지 관제실. 재영이 문을 열었을 때 관제실에는 수진이 있었다. 야간 궤도 모니터링 당번이었다. 모니터 세 대가 소행성 주변의 궤도 데이터를 표시하고 있었다.
“수진. 궤도 스캔 범위 밖에 뭐가 있어.”
수진이 돌아봤다.
“범위 밖? 스캔은 200킬로미터까지야. 그 밖은 안 잡혀.”
“200킬로미터 밖에 소행성 3분의 1 크기 물체가 접근하고 있어.”
수진의 눈이 좁아졌다.
“그걸 어떻게 알아?”
재영은 왼손을 들어 보였다.
“이걸로 느꼈어.”
수진이 재영의 보철 팔을 봤다. 인공 피부 아래에서 센서등이 비정상 패턴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관제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보철의 열이 작은 아지랑이를 만들고 있었다. 수진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수진이 궤도 스캔 범위를 최대로 확장했다. 200킬로미터. 300킬로미터. 400킬로미터. 500킬로미터까지 억지로 해상도를 낮춰 스캔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스캐너의 물리적 한계였다. 수진이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본사에 긴급 통신 보내.”
재영이 말했다.
“뭐라고? 보철로 느꼈다고?”
수진의 목소리에 날이 있었다.
“장비에 안 잡히는 걸 보철이 잡았다고 하면, 본사가 뭐라고 하겠어.”
재영은 수진 옆의 의자에 앉았다. 왼손을 모니터 위에 올려놓았다. 모니터 표면을 통해 기지의 전자 장비들이 감지됐다. 그 너머, 소행성 표면. 그 너머, 진공. 물체는 여전히 접근하고 있었다.
“72시간.”
재영이 말했다. 목소리가 건조했다.
“72시간 안에 여기 도착해. 충돌 각도로 봤을 때 기지 직접 타격은 아니야. 하지만 지반이 버틸지 모르겠어.”
수진이 의자를 돌려 재영을 봤다. 재영의 왼팔이 모니터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수진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모니터를 봤다. 궤도 스캐너의 데이터는 여전히 깨끗했다. 위협 없음.
재영은 관제실을 나와 갱도로 내려갔다. 심부 공동. 결정 벽면에 왼손을 댔다. 물체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더 가까워져 있었다. 재영은 결정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왼손이 소행성의 내부 구조를 읽었다. 공동 아래 80미터에 더 큰 공간이 있었다. 결정이 아니라 빈 공간. 소행성의 구조적 약점이었다. 충돌이 오면 그 지점에서 소행성이 갈라질 것이었다.
재영은 손을 뗐다. 손바닥이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보철의 냉각 회로가 경고음을 냈다. 재영은 경고음을 무시하고 갱도를 올라갔다. 기현을 찾아갔다.
“보철이 얼마나 더 버텨?”
기현이 로그를 확인했다.
“냉각 회로가 한계야. 과부하가 3번 더 오면 인터페이스가 타. 잔존 신경이랑 같이.”
“잔존 신경이 타면?”
“왼팔 감각 전부 영구 소실. 보철 재장착도 불가능해. 신경 말단이 소실되면 새 인터페이스가 결합할 조직이 없어.”
재영은 숙소로 돌아갔다. 침대에 앉았다. 왼손을 봤다. 인공 피부 아래에서 센서등이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이 감각을 잃으면 보이지 않던 세계가 다시 닫힌다. 이 감각을 유지하면 남은 신경이 탄다. 보급선이 오면 시료를 싣고 지구로 가야 했다. 지구의 자기장 안에서 결정은 자성을 잃고, 보철은 읽을 것이 없어지고, 변형된 인터페이스만 남는다. 소행성에 남으면 감각은 유지되지만 보철이 파괴된다. 어느 쪽을 택해도 왼팔은 돌아오지 않았다.
재영은 밀봉 용기를 열었다. 결정을 꺼냈다. 왼손에 올려놓았다. 감각이 열렸다. 물체가 더 가까이 와 있었다. 48시간. 재영은 결정을 쥔 채 관제실로 갔다. 수진이 모니터 앞에 있었다. 기현도 와 있었다.
“스캐너에 뭔가 잡혔어.”
수진이 말했다. 모니터 가장자리에 희미한 점이 하나 떠 있었다. 수진이 재영을 봤다. 입술이 굳어 있었다.
“네 말이 맞았어. 궤도 계산 돌릴게.”
기현이 물체의 궤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재영은 관제실의 의자에 앉아 결정을 쥐고 있었다. 왼손이 물체의 궤도를 읽었다. 충돌 지점. 기지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지표면. 직접 충돌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격파가 공동 아래의 빈 공간을 무너뜨릴 것이었다. 기지가 서 있는 지반이 갈라진다. 모듈의 기밀이 깨진다. 재영은 결정에서 손을 뗐다. 보철의 냉각 경고가 다시 울렸다.
“기지를 옮겨야 해.”
재영이 말했다. 기현과 수진이 돌아봤다.
“충돌 지점이 직접 타격은 아니야. 근데 지하 80미터에 빈 공간이 있어. 충격파가 그걸 무너뜨리면 기지가 내려앉아.”
수진이 물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아.”
재영은 왼손을 들어 보였다. 보철의 냉각 회로에서 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급선 도착까지 3일. 물체 도착까지 48시간. 기지 모듈은 표면에 고정돼 있었다. 이전에 필요한 해체 장비는 보급선에 있었다. 기지 이전은 불가능했다. 대피만이 가능했다. 재영은 결정을 다시 쥐었다. 냉각 경고가 연속으로 울렸다. 과부하 2회째. 남은 횟수 1회. 왼손이 물체의 정확한 충돌 각도를 읽었다. 충격파의 전파 방향을 읽었다. 기지의 어느 구역이 무너지고 어느 구역이 남는지를 읽었다. 재영은 결정에서 손을 뗐다. 보철 팔이 뜨거워서 가슴에 안을 수 없었다. 팔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인공 피부 표면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재영은 오른손으로 왼팔을 만졌다. 인공 피부의 질감이 거칠어져 있었다. 열 때문에 표면이 미세하게 변성된 것이었다.
“3번 격벽 너머가 안전 구역이야.”
재영이 말했다. 기현이 재영의 보철을 봤다. 센서등이 적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번 더 쓰면 끝이야.”
기현이 말했다. 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14시간 뒤, 수진의 궤도 계산이 완료됐다. 충돌 지점: 기지에서 4.2킬로미터. 재영이 왼손으로 읽은 것과 200미터 차이였다. 수진이 재영을 봤다.
“보급선에 긴급 메시지 보냈어. 도착을 앞당길 수 있는지.”
기현이 기지 내부 통신을 열었다. 전 인원 대피. 3번 격벽 너머로. 통신에서 목소리들이 겹쳤다. 질문과 항의. 기현이 하나씩 응답했다. 3번 격벽 너머. 재영이 왼손으로 읽은 안전 구역.
대피가 완료됐을 때, 재영은 3번 격벽 앞에 서 있었다. 격벽 너머에서 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들어와.”
재영은 왼손을 격벽에 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격벽 너머의 사람들. 기현, 수진, 나머지 5명의 체온과 밀도와 위치가 왼손에 펼쳐졌다. 소행성 전체의 구조가 한 번 더 열렸다. 물체가 18시간 뒤에 도착할 것이었다. 충격파의 전파 경로. 3번 격벽이 버틸 것이었다. 재영의 왼손은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왼손이 마지막으로 읽은 정보였다.
냉각 회로가 마지막 경고음을 냈다. 보철 내부에서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났다. 인공 피부 사이로 열기가 새어 나왔다. 재영은 손을 뗐다. 왼팔 전체의 감각이 사라졌다. 압력도, 온도도, 결정이 열어 준 감각도. 아무것도 없었다. 재영은 왼팔을 들어 올려 봤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센서등이 꺼져 있었다. 재영은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고 격벽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기현이 재영의 왼팔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격벽이 닫혔다. 격벽 너머 갱도 어딘가에서 암석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행성의 진동이 발바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