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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정비하는 사람

2026. 3. 11. · 9,349자 · 약 11분

혼자 정비하는 사람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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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 일지 2,197일째 기록을 쓰려고 단말기를 켰을 때, 화면 가장자리에 경고 표시가 떠 있었다. 에너지 출력 편차 0.7퍼센트. 빨간 글씨였다. 수현은 경고를 눌러 세부 항목을 열었다. 3번 중계 패널의 출력이 설계 사양보다 0.7퍼센트 낮았다. 허용 범위는 0.5퍼센트였다. 수현은 단말기를 내려놓고 무릎에 손을 짚으며 일어났다. 작업복 지퍼를 올렸다. 거주 모듈의 조명이 야간 모드여서 복도가 어두웠다. 수현은 헤드램프를 켜고 중계 패널 구역으로 향했다.

에너지 중계 위성 해원-7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를 지나는 궤도에 떠 있었다. 태양광을 수집해 마이크로파로 변환한 뒤, 외행성 탐사선과 궤도 정거장에 에너지를 중계하는 시설이었다. 중계 패널 48장이 위성의 골격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전체 길이 1.2킬로미터. 패널 하나의 면적이 농구 코트 3개와 같았다. 수현은 6년째 이 위성에서 혼자 정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2년은 길었다. 3년째부터 시간의 감각이 흐려졌다. 지구의 교대 인원이 올 때까지 남은 기간은 214일. 가장 가까운 유인 시설은 세레스 기지였다. 편도 11일 거리.

수현은 3번 패널 구역에 도착했다. 에어록을 통해 선외로 나갔다. 자석 부츠가 위성의 외벽에 달라붙었다. 헤드램프 불빛이 패널 표면을 비췄다. 수현은 멈췄다. 발밑에서 위성의 미세 진동이 부츠를 통해 올라왔다. 3번 패널의 접합부에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먼지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미세 운석 충돌로 생긴 파편이 정전기로 달라붙는 경우가 있었다. 수현은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것을 떼어내려 했다.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에 힘을 줬다. 움직이지 않았다. 수현은 헤드램프의 밝기를 올리고 가까이 봤다. 먼지가 아니었다. 수현은 장갑의 손가락 끝으로 표면을 더듬었다. 패널의 접합부 금속 위에 미세한 구조물이 자라 있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섬유 형태의 것들이 수십 가닥 접합부의 틈을 따라 퍼져 있었다. 섬유의 색이 패널 금속과 같은 은회색이었다. 찾으려고 보지 않으면 구분이 되지 않을 색이었다. 금속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수현은 공구 벨트에서 확대경을 꺼내 섬유를 관찰했다. 섬유의 끝이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끝에서 더 가는 가지가 뻗어 있었다. 가지의 끝이 패널 표면에 닿아 있었다. 닿은 지점의 패널 표면이 미세하게 변색돼 있었다. 원래 은회색이어야 할 곳이 연한 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현은 확대경을 공구 벨트에 꽂고 3번 패널 전체를 봤다. 접합부뿐 아니라 패널의 가장자리를 따라 섬유가 퍼져 있었다. 태양 쪽을 향한 면에 더 많았다. 수현은 4번 패널 쪽으로 걸어갔다. 4번 패널에도 있었다. 5번에도. 수현은 6번까지 확인하고 멈췄다. 여섯 장의 패널 모두에 섬유가 자라 있었다. 수현은 7번 패널 방향을 봤다. 7번에는 없는 것 같았다. 섬유는 위성의 특정 구역만 선택한 것이었다.

수현은 에어록으로 돌아와 작업복을 벗었다. 거주 모듈의 단말기 앞에 앉았다. 위성의 에너지 출력 기록을 열었다. 6개월 전부터 3번 패널의 출력이 미세하게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0.1퍼센트, 0.2퍼센트, 0.3퍼센트. 달마다 0.1퍼센트씩. 수현은 6개월 전의 정비 일지를 열었다. 3번 패널 점검 기록이 있었다. 이상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현의 필적이었다. 그때는 섬유가 없었거나, 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못 본 것이었다. 수현은 6개월 전의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 패널을 점검하고 '이상 없음'을 적고, 거주 모듈로 돌아가 일지를 닫았을 그때의 자신.

수현은 통신 패널로 갔다. 지구 관제에 보고를 보냈다. 해원-7과 지구 사이의 통신 지연은 편도 23분이었다.

“여기는 해원-7, 수현. 3번에서 6번까지의 중계 패널에서 이상 구조물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금속 표면에서 자라난 섬유 같은데… 이게 에너지 출력 편차의 원인인 것 같습니다. 제 장비로는 성분 분석이 힘드니, 지시를 부탁합니다.”

수현은 전송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 앉았다. 46분을 기다렸다. 관제 응답이 왔다.

“해원-7, 관제. 미확인 구조물 사진 전송 요망. 패널 출력 편차가 허용 범위를 초과하므로 구조물 제거를 우선 시행할 것. 제거 후 출력 변화 보고 요망.”

수현은 다음 날 다시 선외로 나갔다. 3번 패널의 섬유를 제거하기 위해 스크레이퍼를 가져갔다. 3번 패널 앞에 서서 스크레이퍼를 섬유에 댔다. 긁었다. 섬유가 떨어지지 않았다. 더 세게 긁었다. 섬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자리의 패널 표면이 드러났다. 수현은 멈췄다. 섬유가 있던 자리의 패널 표면이 이상할 정도로 매끄러웠다. 주변부와는 달랐다. 미세 운석 충돌로 생겼을 자잘한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수현은 확대경을 꺼내 들여다봤다. 패널의 미세한 구멍과 균열이, 마치 실로 꿰맨 것처럼 이어져 있었다. 섬유가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수현은 들고 있던 스크레이퍼를 천천히 내렸다.

수현은 거주 모듈로 돌아와 단말기 앞에 앉았다. 위성의 구조 진단 기록을 열었다. 3번 패널의 구조 강도 데이터. 6개월 전보다 패널의 미세 균열 수가 줄어 있었다. 1년 전에 47개였던 미세 균열이 현재 12개. 수현은 4번 패널을 확인했다. 같은 패턴이었다. 5번, 6번도. 섬유가 자란 패널들의 미세 균열이 감소하고 있었다. 섬유가 없는 패널들은 균열 수가 그대로이거나 증가해 있었다. 수현은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양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천장의 환기구에서 공기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두 개의 데이터 창을 번갈아 봤다. 왼쪽 화면에선 에너지 출력이 완만하게 하강 곡선을 그렸다. 오른쪽 화면에선 패널의 구조 강도 그래프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하나가 내려가면, 다른 하나가 올라갔다. 섬유는 패널의 에너지를 먹고, 그 힘으로 패널의 상처를 고치고 있었다. 이게 기생일까, 공생일까. 수현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수현은 관제에 추가 보고를 보냈다.

“해원-7 수현. 보고합니다. 구조물이 단순한 오염이 아닙니다. 패널의 미세 손상을 복구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세 균열 수가 줄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겁니다. 제거하면 출력은 돌아오겠지만, 이 복구 기능도 사라집니다. 어떻게 할까요? 추가 지시를 요청합니다.”

46분 후 관제 응답.

“해원-7, 관제. 에너지 출력 정상화가 최우선. 구조물 전면 제거 시행할 것. 표면 복구는 차기 교대 인원이 수동 보수 예정. 태양풍 시즌 전 출력 복원 필수.”

수현은 통신 패널을 끄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태양풍 시즌. 매 14개월마다 찾아오는 고에너지 입자 폭풍. 다음 태양풍 시즌까지 97일. 태양풍이 위성을 통과하면 패널 표면에 새로운 미세 손상이 생긴다. 지금까지는 수현이 수동으로 보수해왔다. 48장의 패널을 한 장씩. 선외 활동 한 번에 패널 2장. 48장을 보수하려면 24번의 선외 활동이 필요했다. 한 번에 6시간. 총 144시간. 현실적으로 태양풍 후 2개월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교대 인원이 214일 후에 온다. 태양풍 후 보수를 혼자 하면서 다음 교대까지 버텨야 했다. 섬유가 있으면 패널이 스스로 회복된다. 없으면 수현이 혼자 해야 한다.

수현은 다음 날 다시 선외로 나갔다. 이번에는 스크레이퍼 대신 채집 도구를 가져갔다. 3번 패널의 섬유 일부를 채집해 거주 모듈의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섬유의 내부 구조가 화면에 나타났다. 단순한 금속 결정이 아니었다. 섬유 내부에 미세한 통로가 있었다. 통로를 따라 전자기 신호가 흐르고 있었다. 수현은 오실로스코프를 연결했다. 신호의 파형이 화면에 나타났다. 불규칙한 것 같으면서도 패턴이 있었다. 무작위가 아니었다. 3초 간격으로 반복되는 기본 패턴 위에 변주가 겹쳐져 있었다. 수현은 의자를 끌어와 앉아 30분간 파형을 기록했다. 파형이 변했다. 수현이 관찰을 시작한 뒤부터 파형의 진폭이 커지고 있었다. 섬유가 수현의 존재에 반응하고 있었다. 수현의 체온인지, 장비의 전자기 간섭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다.

수현은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채집한 섬유를 봤다. 섬유가 채집 용기의 벽면을 따라 퍼지고 있었다. 용기의 금속 표면에 닿은 부분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나고 있었다. 수현은 용기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6년간 혼자 위성을 돌보면서 낯선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소행성대의 미세 유성우, 통신 두절, 산소 발생기 고장. 다 겪었다. 수현은 의자를 천천히 돌려 거주 모듈의 창을 봤다. 해원-7의 패널들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1.2킬로미터의 금속 날개. 그 위에 무언가가 살고 있었다.

수현은 관제에 다시 보고했다.

“해원-7 수현. 긴급 보고. 구조물에서 명확한 전자기 신호 패턴을 확인했습니다. 단순한 노이즈가 아닙니다. 제가 관찰하자 신호가 바뀌었습니다. 이건… 지능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거 명령을 보류하고 추가 조사를 허가해 주십시오.”

46분 후 관제.

“해원-7, 관제. 비인가 생체 또는 지능체 판정은 관제 소관. 현장 판단 불가. 에너지 출력 편차가 0.9퍼센트로 상승. 즉시 제거 시행. 지연 시 정비사 계약 위반으로 처리. 태양풍 시즌 전 출력 복원이 최우선 과제임을 재확인.”

수현은 통신 기록을 저장하고 단말기를 껐다. 화면이 꺼지면서 거주 모듈이 어두워졌다. 거주 모듈의 조명이 주간 모드로 바뀌었다. 타이머가 0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얀 불빛이 좁은 공간을 채웠다. 수현은 침대에 앉았다. 벽에 붙은 사진을 봤다. 6년 전 세레스 기지에서 찍은 사진. 교육 동기 4명과 함께 찍은 것이었다. 4명 중 2명은 이미 다른 위성으로 교대해 갔다. 1명은 지구로 돌아갔다. 나머지 2명의 소식은 몰랐다. 수현은 사진에서 눈을 떼고 창을 봤다. 패널 위의 섬유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태양빛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거기 있었다. 3초 간격으로 신호를 보내면서.

수현은 다음 날 선외로 나가 7번 패널부터 12번 패널까지 점검했다. 섬유가 없었다. 13번에서 18번. 없었다. 수현은 위성의 태양 반대쪽을 점검했다. 없었다. 섬유는 3번에서 6번 패널에만 자라 있었다. 태양풍이 가장 먼저 닿는 구역이었다. 태양풍의 고에너지 입자가 패널 표면을 침식하는 구역. 손상이 가장 심한 곳에 섬유가 자라 있었다. 수현은 패널 사이의 구조물 틈에 앉아 해원-7의 골격을 봤다. 위성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태양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었다. 궤도 수정용 추력기의 연료가 2년 전부터 잔량 경고를 내고 있었다. 교대 인원이 올 때 연료도 함께 온다. 그때까지 궤도를 유지해야 했다.

수현은 거주 모듈로 돌아왔다. 오실로스코프에 저장된 섬유의 신호 패턴을 다시 재생했다. 3초 간격의 기본 패턴. 수현은 위성의 시스템 로그에서 해원-7의 구조 진동 데이터를 불러왔다. 위성의 골격이 태양 쪽과 그림자 쪽의 온도 차이로 열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내는 미세 진동. 진동의 주기가 화면에 나타났다. 수현은 두 데이터를 나란히 놓았다. 섬유의 신호 패턴 그래프와 위성 구조 진동 그래프. 파형이 거의 겹쳐졌다. 섬유의 주기는 3초, 위성의 주기는 3.1초. 수현은 의자에서 등을 뗐다.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섬유는 위성의 미세한 맥박에 맞춰,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수현은 단말기에 정비 일지를 열었다. 2,198일째. 관제 지시: 구조물 전면 제거. 수현은 커서를 일지 입력란에 놓고 손가락을 멈췄다. 제거를 시행하면 3번에서 6번 패널의 자가 복구 기능이 사라진다. 태양풍 시즌이 오면 이 4장의 패널이 가장 먼저 손상된다. 손상된 패널의 출력이 떨어지면 중계 에너지가 감소한다. 중계 에너지가 감소하면 외행성 정거장들의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그리고 해원-7의 궤도 유지에 필요한 최소 출력도 확보가 불안정해진다. 궤도가 불안정해지면 수현의 귀환 경로가 바뀐다. 교대 인원이 214일 후에 세레스 기지에서 출발할 때, 해원-7의 궤도가 예정 위치에 있어야 한다. 궤도가 벗어나면 교대선이 도착하지 못한다. 수현이 여기 남는다. 혼자.

수현은 일지에 적었다. 구조물 제거 준비 중. 내일 시행 예정. 적고 나서 단말기를 껐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환기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위성 밖의 섬유들이 3초 간격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을 것이었다. 위성의 진동에 맞춰. 수현은 한참 동안 잠들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 한 가지 더 생각했다. 3번 패널의 빈 구멍들.

다음 날 수현은 선외로 나갔다. 스크레이퍼와 용제를 가져갔다. 3번 패널 앞에 섰다. 섬유가 어제보다 퍼져 있었다. 접합부에서 패널 중앙으로 5센티미터 넘게 확장돼 있었다. 수현은 스크레이퍼를 들었다. 섬유에 댔다. 긁기 시작했다. 섬유가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섬유가 진공 속에서 천천히 흩어졌다. 헤드램프 불빛에 은색 가루처럼 반짝였다. 수현은 3번 패널의 접합부 전체를 긁었다. 스크레이퍼가 금속 위를 긁는 진동이 장갑을 통해 손목까지 전해졌다. 20분이 걸렸다. 장갑 안의 손이 뜨거웠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3번 패널의 섬유가 사라졌다. 그 자리엔 수리되었던 표면이 아닌, 흉터처럼 패인 미세 구멍들이 다시 드러나 있었다. 헤드램프 불빛이 구멍마다 작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현은 장갑 낀 손으로 그 표면을 쓸었다. 살아있던 피부를 벗겨낸 듯, 손끝에 거친 감각이 전해졌다.

수현은 4번 패널로 이동했다. 스크레이퍼를 들었다. 4번 패널의 섬유에 댔다. 긁으려는 순간 오실로스코프가 진동했다. 작업복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용 장비였다. 수현은 스크레이퍼를 멈추고 오실로스코프를 꺼냈다. 화면을 봤다. 섬유의 신호 패턴이 바뀌어 있었다. 3초 간격의 기본 패턴이 사라져 있었다. 화면을 채운 것은 비명 같은 고진폭 신호였다. 수현은 고개를 들어 3번 패널 쪽을 봤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4번 패널의 섬유들이 제거된 경계선에서부터 움츠러들고 있었다. 수현은 4번 패널의 섬유를 봤다. 섬유의 가지 끝이 떨리고 있었다. 진공에서는 바람이 없다. 떨림은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수현은 장갑 낀 손가락을 섬유 가까이 가져갔다. 1센티미터 거리에서 멈췄다. 섬유의 떨림이 미세하게 빨라졌다.

수현은 스크레이퍼를 내렸다. 오실로스코프의 신호를 30초간 지켜봤다. 불규칙했던 신호가 서서히 변했다. 고진폭이 줄어들고, 새로운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7초 간격. 이전의 3초와 달랐다. 위성의 구조 진동 주기 3.1초와의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동기화가 깨지고 있었다. 3번 패널에서 섬유를 긁어낸 충격이 남은 섬유에 전해진 것이었다. 수현은 오실로스코프를 주머니에 넣고 4번 패널 앞에 서 있었다. 자석 부츠가 위성 표면에 붙어 있었다. 태양이 위성 너머로 비치고 있었다. 패널의 가장자리에서 태양빛이 산란되어 얇은 무지개빛 띠가 보였다. 섬유의 은색 표면이 빛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수현은 스크레이퍼를 공구 벨트에 꽂았다.

수현은 거주 모듈로 돌아왔다. 단말기 앞에 앉았다. 정비 일지를 열었다. 2,199일째. 3번 패널 구조물 제거 완료. 4번 패널 제거 중단. 이유: 추가 관찰 필요. 수현은 일지를 저장하고 관제에 보고를 보냈다.

“해원-7 수현. 3번 패널 구조물 제거 완료. 4번에서 6번 패널 제거는 보류. 구조물의 전자기 신호 패턴이 제거 작업에 반응하여 변화. 위성 구조 진동과의 동기화가 이탈. 추가 제거 시 위성 시스템에 예측 불가한 영향 우려. 추가 지시 요청.”

46분 후 관제.

“해원-7, 관제. 현장 판단으로 관제 지시를 보류하는 것은 계약 위반. 4번에서 6번 패널 구조물 즉시 제거할 것. 태양풍 시즌까지 92일. 출력 복원 기한 엄수. 정비사 교체 사유 발생 시 계약 해지 및 귀환 일정 재조정 통보.”

수현은 통신 기록을 두 번 읽었다. 단말기를 껐다. '귀환 일정 재조정'. 그 문장이 망막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교대 인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주 모듈의 식량 재고를 확인했다. 247일분. 손가락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교대가 33일만 늦어져도, 여기서 끝이었다. 수현은 재고 화면을 닫았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앉았다.

수현은 다음 날 선외로 나가지 않았다. 거주 모듈에서 위성의 센서 데이터를 분석했다. 3번 패널의 출력을 확인했다. 섬유를 제거한 3번 패널의 출력이 0.7퍼센트에서 0.0퍼센트 편차로 복원돼 있었다. 정상. 하지만 3번 패널의 구조 강도 데이터를 보니, 섬유가 메웠던 미세 구멍들이 다시 열려 있었다. 다음 태양풍에 3번 패널이 가장 취약해질 것이었다. 4번에서 6번은 섬유가 남아 있었다. 출력은 0.7에서 0.9퍼센트 낮았지만 구조 강도는 유지되고 있었다. 수현은 두 개의 숫자를 노려봤다. 출력과 강도. 관제가 원하는 숫자와 위성이 필요로 하는 숫자. 둘 다 가질 수는 없었다. 어떤 쪽을 선택해도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수현은 통신 패널 앞에 섰다. 관제에 보고를 보내야 했다. 수현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고 내용을 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수현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창을 봤다. 패널들이 태양빛을 받고 있었다. 3번 패널의 표면이 다른 패널보다 거칠어 보였다. 섬유를 긁어낸 자리. 수현은 창에서 눈을 돌리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오실로스코프를 켰다. 4번 패널의 섬유 신호가 화면에 나타났다. 2.7초 간격이었던 패턴이 2.9초로 변해 있었다. 위성의 구조 진동 3.1초에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섬유가 동기화를 회복하려 하고 있었다.

수현은 오실로스코프의 화면을 한참 보다가 끄고 관제에 보고를 보냈다.

“해원-7 수현. 3번 패널 구조물 제거 완료했고, 출력 정상 복원 확인했습니다. 나머지 4번에서 6번 패널도 제거 완료. 곧 출력 정상화될 겁니다.”

수현의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잠시 멈췄다. 거주 모듈의 환기 소음만이 귓가에 울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뜨고, 버튼을 눌렀다. 짧고 높은 전자음이 울렸다. 관제는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믿을 것이다. 4번에서 6번의 섬유는 제거하지 않았다. 수현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주 모듈의 조명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수현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어제 스크레이퍼를 잡았던 오른손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물집의 표면이 거주 모듈의 조명을 반사했다. 수현은 물집을 건드리지 않았다. 3번 패널의 섬유를 긁어낼 때 생긴 것이었다.

수현은 단말기를 열어 정비 일지를 적었다. 2,200일째. 4번에서 6번 패널 구조물 존치. 관제에는 제거 완료 보고. 수현은 일지를 저장하고 단말기를 껐다. 침대에 누웠다. 오실로스코프를 침대 옆 선반에 올려놓았다. 화면을 켜뒀다. 4번 패널 섬유의 신호가 작은 화면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2.9초. 3.0초. 조금씩 위성의 리듬에 다가가고 있었다. 수현은 오실로스코프의 작은 화면을 보며 누워 있었다. 거주 모듈 밖에서 위성의 골격이 열팽창과 수축으로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3.1초 간격이었다. 수현은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태양풍 시즌까지 92일. 교대 인원까지 214일. 섬유의 신호가 3.0초를 찍었다. 0.1초.

혼자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장의 관찰과 본사의 지시가 충돌할 때 거짓 보고로 생명을 지키는 것은 정당한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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