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의 입구는 좁았다. 은서는 헬멧의 램프를 켜고 몸을 옆으로 틀어 바위틈을 통과했다. 어깨가 벽에 긁혔다. 작업복의 섬유가 찢어지는 소리가 헬멧 안에서 울렸다. 통로가 넓어지는 지점에서 은서는 멈춰 섰다. 램프 불빛이 벽면을 비췄다. 황토색 바위 위에 검은 선이 뻗어 있었다. 들소의 등이었다. 선이 바위의 굴곡을 따라 휘어지면서 근육의 융기를 만들었다. 4만 년 전의 손이 그린 선이었다. 은서는 장갑을 벗고 벽면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닿지 않았다. 닿으면 안 됐다. 안료의 표면에는 산소가 접촉하지 않은 층이 남아 있었다. 은서가 지난 8개월간 이 동굴에서 지켜온 규칙이었다.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이 동굴은 강원도 영월의 석회암 지대에 있었다. 은서가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도로 확장 공사 중 굴착기가 석회암 벽을 깨뜨리면서 입구가 드러났다. 공사 감독이 사진을 찍어 시청에 보냈고, 시청이 문화재청에 연락했고, 문화재청이 은서에게 연락했다. 은서는 선사 시대 벽화의 보존 처리를 전공한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이 분야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은서를 포함해 4명이었다. 은서가 동굴에 처음 들어간 날, 벽면의 그림을 보고 무릎이 풀렸다. 들소, 사슴, 손바닥 도장, 기하학적 문양. 프랑스의 라스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에 비견할 규모였다. 한반도에서 이런 벽화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은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헬멧을 벗고 벽면을 올려다봤다. 램프를 끄고 캔들 랜턴을 켰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서 들소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4만 년 전의 사람도 이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서 그림을 봤을 것이었다. 은서는 그 자리에서 2시간을 앉아 있었다. 벽화의 면적을 추정했다. 최소 120제곱미터. 한반도 선사 미술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발견이었다. 은서는 다음 날 문화재청에 긴급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의 첫 줄에 적었다. 한반도 최초의 구석기 동굴 벽화 확인. 보고서를 전송하고 나서 은서는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은서는 벽화의 보존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 동굴에 기온과 습도 센서를 설치했다. 동굴 내부의 온도는 연중 12도를 유지했다. 습도는 94퍼센트. 석회암 벽면의 표면에 결로가 맺혔다 마르기를 반복했다. 결로가 안료에 닿으면 미세 균열이 생긴다. 은서는 결로 방지 패드를 벽면에 설치했다. 안료 시료를 채취해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가 돌아온 것은 3주 뒤였다. 분석을 맡은 대학의 생화학 교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은서 씨, 이 시료에 세포가 있습니다.”
은서는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안료일 텐데요. 산화철하고 숯 기반의…”
“성분은 알죠. 그런데 그 안에, 글쎄, 세포가 있어요. 죽은 게 아니라 살아있는 놈으로요.”
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구실 창 밖으로 영월의 산이 보였다. 석회암 산의 흰 절벽이 오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혐기 상태로 4만 년을 버틴 것 같아요. 산소가 차단된 안료 층 안에서.”
은서가 물었다.
“대체 어떤 세포인데요?”
교수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게… 문제예요. 지구상에 없던 놈입니다. 데이터베이스에 아무것도 안 떠요.”
은서는 그 뒤로 동굴 출입을 제한했다. 문화재청에 보고하고, 동굴 입구에 밀폐 도어를 설치했다. 동굴 내부의 공기를 질소로 치환했다. 산소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은서는 매일 동굴에 들어가 벽화의 상태를 점검했다. 안료 층의 미세 균열, 습도 변화, 석회암 표면의 결로. 기록을 파일에 정리하고 매주 문화재청에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의 제목은 항상 같았다. 영월 동굴 벽화 주간 보존 현황. 생화학 교수의 연구팀이 시료를 가져간 뒤로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은서는 매일 동굴에 들어갔다. 벽화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손바닥 도장 구역에서 새로운 문양을 발견했다. 두 개의 동심원이 겹쳐진 형태.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은서는 그 문양을 사진으로 찍고 보존 보고서에 추가했다. 밤에 숙소로 돌아가면 벽화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저녁을 먹었다. 연구팀에서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교수가 아니라 연구팀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다.
“저, 박은서 연구원님. 추가 시료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이번엔 다른 구역에서요.”
은서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연구원의 목소리가 잠겼다.
“이게… 암세포를 죽입니다.”
은서는 동굴 안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헬멧 램프의 불빛이 들소의 눈을 비추고 있었다. 검은 안료로 찍은 점 하나가 들소의 눈이었다. 4만 년 된 점이었다.
“어떤 암세포요?”
“지금까지 시험한 건 폐암, 간암, 유방암, 췌장암이에요. 실험실에서 배양한 암세포주 12종에 전부 효과가 있었어요. 정상 세포는 안 건드려요.”
은서는 벽면을 봤다. 들소의 눈이 램프 불빛에 반짝였다.
“시료를 더 채취하면 벽화가 영구적으로 손상됩니다.”
“압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이건…”
연구원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은서는 추가 시료를 채취했다. 들소 그림이 아닌 구역에서. 동굴 깊숙한 곳의 기하학적 문양 부분. 손톱 크기만 한 안료 조각을 떼어냈다. 떼어낸 자리의 바위가 하얗게 드러났다. 문양의 선 하나가 끊어졌다. 은서는 스크레이퍼를 내려놓고 끊어진 선을 봤다. 바위의 흰 속살이 헤드램프 불빛을 받아 검은 선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은서는 그 자리를 사진으로 찍고 기록에 남겼다. 채취 위치: 제4구역 기하학적 문양 3번. 채취량: 0.3그램. 손상 범위: 4밀리미터 × 6밀리미터.
연구팀의 결과는 2개월 뒤에 나왔다. 이번에는 교수가 직접 영월까지 내려왔다. 동굴 입구의 밀폐 도어 앞에서 만났다. 교수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지난번보다 수염이 길었다.
“재현됐어요. 두 번째 시료도… 똑같아. 암세포에 붙이면 48시간 안에 전멸시켜요.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도 않고.”
은서가 물었다.
“그래서, 그게 대체 뭔데요?”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유전체 분석까지 돌렸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에요. 원핵생물도, 진핵생물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야. 교과서에 없는 거라고요.”
은서는 밀폐 도어의 금속 표면에 등을 기댔다. 등에 금속의 차가움이 전해졌다.
“그러면 이 세포가 뭔지 모른다는 거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암세포를 죽이는 건 확실해요.”
교수가 말을 이었다.
“문제가 있어요. 이 세포는 산소에 노출되면 72시간 안에 죽어요. 배양을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혐기 조건에서도 안료 층 밖에서는 증식하지 않아요. 안료의 특정 성분이 배지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 성분을 합성하지 못했어요. 산화철의 결정 구조가 자연 환경에서만 만들어지는 배열이에요. 인공적으로 복제가 안 돼요.”
은서는 교수를 봤다.
“결국 이 세포를 얻는 방법은…”
“네. 벽화를… 뜯어내야 해요.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엔 없어요.”
은서는 밀폐 도어의 잠금 패널을 봤다. 패널의 녹색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벽화를 떼어내면 72시간 안에 써야 한다는 거죠.”
“네.”
교수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바람이 불어 교수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교수가 돌아간 뒤, 은서는 동굴에 들어갔다. 질소로 치환된 공기 속에서 산소 마스크를 쓰고 벽화 앞에 섰다. 램프를 끄고 암흑 속에 서 있었다. 눈을 감으나 뜨나 같은 어둠이었다. 4만 년 전에 누군가가 이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벽에 그림을 그렸다. 들소를 그리고, 사슴을 그리고, 손바닥을 찍었다. 안료를 만들면서 이 세포가 안료 속에 들어간 것인지, 이 세포를 넣기 위해 안료를 만든 것인지. 은서는 알 수 없었다. 질문은 동굴의 어둠만큼이나 무겁게 은서를 짓눌렀다. 램프를 다시 켰다. 들소의 눈이 빛났다. 은서는 동굴을 나왔다. 산소 마스크를 벗으면서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밀폐 도어를 닫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어둠이 도어 틈으로 좁아지다가 사라졌다. 밖은 낮이었다. 햇빛이 눈에 아팠다.
2주 뒤, 문화재청에서 연락이 왔다. 보건복지부와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은서는 전화를 받으면서 책상 위의 보존 보고서를 봤다. 284페이지. 8개월간의 기록이 담긴 파일이었다.
“벽화 안료의 의학적 활용 가능성에 대해 관계 부처 합동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은서 씨도 참석해 주세요.”
은서가 물었다.
“벽화를 어떻게 할 건데요?”
“그건 회의에서 논의될 사항입니다.”
전화가 끊어진 뒤 은서는 보존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봤다. 어제 찍은 벽화 사진이 붙어 있었다. 들소의 몸통. 그 옆에 은서가 쓴 메모. 안료 층 두께 0.8밀리미터. 표면 미세 균열 23개.
회의는 서울에서 열렸다. 은서는 영월에서 차로 3시간을 운전해 갔다. 회의실에 14명이 앉아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 보건복지부 관계자, 국립암센터 연구원, 생화학 교수 연구팀, 법률 자문. 은서는 벽화 보존 현황을 발표했다. 목소리가 회의실의 넓은 공간에서 얇게 울렸다. 벽화의 총 면적은 127제곱미터. 안료가 도포된 면적은 43제곱미터. 안료 층의 두께는 평균 0.8밀리미터. 은서가 발표를 마쳤을 때 국립암센터의 연구원이 질문했다.
“안료 1그램당 유효 세포 200만. 환자 1인당 500만 필요. 다시 말해, 안료 2.5그램이 한 사람 목숨입니다. 벽화 전체 안료가 34킬로그램이니, 총 13,600명을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에어컨 소리만 들렸다. 은서는 발표 자료의 마지막 슬라이드를 봤다. 벽화의 사진이 프로젝터에 비치고 있었다. 들소의 눈이 화면에서 은서를 봤다.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말했다.
“현재 한국의 연간 암 사망자 수는 약 8만 2천 명입니다. 13,600명이면 그중 16퍼센트에 해당합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말했다.
“이 벽화는 한반도 최초의 구석기 벽화입니다. 세계 문화유산 등재 후보입니다. 복원 불가능한 인류 공동의 자산입니다.”
은서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두 사람 모두 은서를 보고 있지 않았다. 각자의 서류를 보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은서는 회의실 복도에서 교수를 만났다. 교수가 말했다.
“배양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배양에 성공할지는 모르겠어요. 안료 층의 환경을 복제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은서가 물었다.
“배양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기약 없어요.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아니, 애초에 성공할 수 있을지조차… 나도 모르겠어.”
은서의 시선이 복도 창밖, 빽빽한 서울의 건물들로 향했다.
“그럼… 그동안 환자들은요?”
교수는 대답 대신 입술만 깨물었다. 복도의 창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교수가 말했다.
“한 가지 더 알려드릴 게 있어요. 논문이 곧 나갈 거예요. 논문이 나가면 언론에 보도될 거예요. 보도가 되면 채취 압력이 훨씬 커질 거예요.”
은서가 물었다.
“논문을 멈출 수 있어요?”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벌써 투고했어요. 이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은서는 영월로 돌아왔다. 동굴에 들어갔다. 벽화 앞에 섰다. 제4구역의 기하학적 문양. 안료를 떼어낸 자리가 보였다. 4밀리미터 × 6밀리미터의 흰 점. 문양의 선이 끊어진 곳. 은서는 그 옆의 안료를 봤다. 검은 선이 바위를 따라 뻗어 있었다. 이 선 하나에 세포가 들어 있었다. 은서는 손가락을 문양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가져갔다. 닿지 않았다. 은서의 규칙이었다. 은서는 손가락을 내리고 동굴의 다른 벽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바닥 도장이 있었다. 5개. 크기가 달랐다. 어른의 손과 아이의 손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4만 년 전의 가족일 수도 있었다. 은서는 자기 손을 들어 도장과 나란히 놓아봤다. 닿지 않게. 은서의 손이 더 작았다. 아이의 손바닥 도장은 은서의 손보다도 작았다. 은서는 손을 내렸다. 이 안료 속에도 세포가 있었다. 아이의 손바닥 위에 4만 년 동안 살아 있는 세포. 은서는 손바닥 도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도장을 찍은 아이는 이 세포의 존재를 알았을까. 아이의 부모는 알았을까.
다음 주, 국립암센터에서 은서에게 직접 연락이 왔다.
“안료 채취 일정을 협의하고 싶습니다. 1차로 500그램을 요청합니다.”
은서가 계산했다. 500그램이면 환자 200명. 벽화 안료 총량의 1.5퍼센트. 은서는 동굴의 벽화 지도를 펼쳤다. 500그램을 어디서 떼어낼 것인가. 들소의 몸통. 사슴의 다리. 손바닥 도장. 기하학적 문양의 연결선. 어디를 떼어내도 그림이 잘렸다. 은서는 지도 위에 펜을 올렸다.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도 위의 들소가 은서를 봤다. 들소의 눈은 실물보다 작았지만, 같은 검은 점이었다.
은서는 동굴에 들어가 벽면 전체를 다시 촬영했다. 초고해상도 카메라로 벽화의 모든 구역을 기록했다. 3일이 걸렸다. 17,000장의 사진. 은서는 사진을 외장 하드에 저장하고, 복사본을 3개 만들었다. 하나는 문화재청에, 하나는 대학에, 하나는 은서의 책상 서랍에 넣었다. 사진을 복사하는 동안 은서는 모니터에 뜬 벽화 이미지를 봤다. 화면 속의 들소가 실물과 같았다. 하지만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러도 바위의 울퉁불퉁한 감촉이 없었다. 안료의 두께가 없었다. 4만 년의 시간이 없었다. 은서는 모니터를 끄고 외장 하드를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이 작은 금속 상자. 어쩌면 이것이 동굴의 전부가 될지도 모른다.
은서는 채취 일정을 통보받았다. 2주 뒤. 국립암센터의 기술팀이 영월로 온다. 은서가 채취 위치를 지정하고, 기술팀이 안료를 분리한다. 분리된 안료는 밀봉 용기에 담겨 질소 환경으로 운송된다. 산소 접촉 시점부터 72시간. 병원까지 운송 8시간. 세포 추출과 투여 준비 12시간. 실제 투여 가능 시간은 52시간. 은서는 숫자들을 종이에 적었다. 숫자를 적는 동안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은서의 손은 8개월간 벽화를 다루면서 미세한 작업에 익숙해져 있었다.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52시간. 벽화가 사라지는 시간과 환자가 살아나는 시간이 같은 숫자에 묶여 있었다.
채취 전날, 은서는 동굴에 들어갔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벽화 앞에 앉았다. 램프를 들소의 몸통에 비췄다. 내일 이 부분에서 안료 200그램을 떼어낸다. 들소의 앞다리와 몸통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었다. 은서는 램프를 내리고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동굴의 온도는 12도. 마스크 안에서 은서의 호흡이 울렸다. 은서는 눈을 감았다. 4만 년 전의 어둠과 지금의 어둠이 같았다. 그때도 누군가가 이 어둠 속에 앉아 있었을 것이었다. 그 사람이 이 안료에 세포를 넣었는지, 세포가 자연히 들어간 것인지, 은서는 알 수 없었다. 이 벽화가 그림인지 약인지, 예술인지 처방인지. 4만 년 전의 사람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은서는 눈을 뜨고 램프를 켰다. 벽화의 가장자리, 그림이 없는 구역을 비췄다. 안료가 묻어 있었다. 그림의 일부가 아닌, 안료를 섞다가 튄 자국 같은 것들. 은서는 확대경을 꺼냈다. 자국의 크기를 쟀다. 이 자국들을 모으면 그림을 손상시키지 않고 안료를 채취할 수 있었다. 양은 적을 것이었다. 은서는 동굴 전체를 돌며 그림 외곽의 안료 자국을 표시했다. 47곳. 추정 총량 80그램. 환자 32명분. 국립암센터가 요청한 500그램에는 한참 못 미쳤다.
은서는 동굴을 나와 국립암센터에 전화했다.
“채취 위치를 바꾸겠습니다. 벽화 본체는 건드리지 않고, 주변에 흩어진 안료만 긁어낼 겁니다. 그림 손상은 없어요. 대신 양이… 80그램 정도밖에 안 나올 겁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80그램이면 서른두 명입니다. 지금 대기 중인 환자만 200명입니다.”
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기를 잡은 손에 석회암 먼지가 묻어 있었다.
“박은서 씨. 그림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지만, 사람은 사진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은서는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먼저 끊었다. 전화가 끊어진 뒤에도 은서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화면에 통화 시간이 떠 있었다. 2분 47초. 은서는 전화기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의 석회암 먼지가 화면에 묻었다.
채취 당일, 기술팀이 영월에 도착했다. 3명이었다. 흰색 방진복을 입고 있었다. 밀봉 용기 50개와 미세 분리 도구 세트를 운반 상자에서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은서는 기술팀을 동굴 입구에서 만났다.
“채취 위치는 제가 지정합니다. 벽화 외곽에 있는 잔여 안료만 뗄 겁니다. 예상 채취량은 80그램.”
기술팀장이 은서를 쳐다봤다.
“저희가 듣기로는 500그램인데요. 본체에서 채취하는 걸로…”
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본체는 안 됩니다. 훼손은 복원할 수 없어요.”
기술팀장이 잠시 은서를 보다가 밀봉 용기를 챙겼다.
“일단 80그램으로 진행하죠.”
은서는 기술팀을 동굴 안으로 안내했다. 47곳의 외곽 잔여 안료를 하나씩 분리했다. 미세 스크레이퍼로 안료를 긁어 밀봉 용기에 담았다. 한 곳당 평균 1.7그램. 용기의 뚜껑이 닫힐 때마다 딸깍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렸다. 은서의 손이 스크레이퍼를 잡고 있었다. 안료가 벽에서 떨어질 때마다 미세한 가루가 날렸다. 헤드램프 불빛에 가루가 빛나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은서는 가루가 사라지는 것을 매번 눈으로 따라갔다. 가루 하나하나에 세포가 들어 있었다. 공기 중에 흩어진 가루의 세포는 72시간 안에 죽을 것이었다. 은서는 스크레이퍼를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작업이 끝났을 때 밀봉 용기 47개에 총 79.8그램의 안료가 담겨 있었다. 벽화의 그림은 손상되지 않았다. 외곽의 자국들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은서는 한 발 물러서서 벽화를 봤다. 들소가 그대로 있었다. 눈이 그대로 있었다.
기술팀이 용기를 운송 컨테이너에 넣고 차량으로 향했다. 은서는 동굴 입구에 서서 차량이 떠나는 것을 봤다. 72시간이 시작됐다. 32명의 환자에게 세포가 갈 것이었다. 나머지 168명은 기다려야 했다. 배양이 성공할 때까지. 성공하지 못하면 은서가 다시 동굴에 들어가야 했다. 그때는 외곽 자국이 없었다. 들소의 몸통에서 떼어내야 했다. 은서는 동굴 입구의 밀폐 도어를 닫았다. 잠금 패널의 녹색 불빛이 켜졌다. 질소 환경 유지 정상. 온도 12도. 습도 94퍼센트. 은서는 도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영월의 석회암 산이 저녁 햇살에 희게 빛나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국립암센터'였다. 은서는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진동이 허벅지를 일곱 번 울리고 멈췄다. 은서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밀폐 도어의 금속 표면에 손바닥을 대봤다. 차가웠다. 4만 년 전의 손바닥 도장이 동굴 안에 있었다. 은서의 손바닥이 도어 위에 있었다. 은서는 손을 뗐다. 금속 위에 손자국이 남았다. 저녁 이슬이 내리면 사라질 자국이었다. 은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영월의 산을 봤다. 석회암 산의 흰색이 저녁 하늘의 주황빛을 받아 따뜻하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