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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주파수

2026. 3. 26. · 9,014자 · 약 11분

깨어 있는 주파수 썸네일
17

관측소는 해발 4,200미터에 있었다. 밤이면 별이 쏟아졌다. 쏟아진다는 표현이 맞았다. 별이 너무 많아서 하늘이 검지 않았다. 회색이었다. 별들의 빛이 겹쳐서 하늘 자체가 발광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아는 관측실 창문 너머로 그 하늘을 봤다. 창문에 서리가 끼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서리를 긁으면 밖의 별이 더 선명해졌다. 수아는 서리를 긁지 않았다. 선명해지는 게 싫었다. 3년째 보는 하늘이었다. 3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그 하늘이 아름다웠다. 수아는 박사 논문을 쓰러 이곳에 왔다. 수소선 관측. 은하 간 가스 분포 연구. 평범한 연구였다. 우주의 나이를 추정하는 데 쓰이는 수소선 데이터를 모으는 일. 별을 세는 일. 아름다운 일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모니터에 파형이 떠 있었다. 초록색 선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주파수 1.42기가헤르츠. 수소선. 우주에서 가장 흔한 주파수. 하지만 이 파형은 수소선이 아니었다. 수소선 위에 얹혀 있는 변조 패턴이었다. 누군가가 수소선을 캐리어 삼아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수아는 그 패턴을 3개월째 분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잡음이라고 생각했다. 기계 오류라고 생각했다. 장비를 교체하고 다시 측정했다. 같은 패턴이 나왔다. 수아는 패턴을 뇌파 데이터베이스에 넣어봤다. 장난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일치율 97.3퍼센트가 화면에 떴을 때 수아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또 밤새야?”

기준이 관측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패딩 지퍼를 턱까지 올리고 있었다. 코가 빨갛게 얼어 있었다. 손에 종이컵 2개를 들고 있었다. 커피. 관측소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것은 커피뿐이었다. 인스턴트. 설탕 2개. 기준이 항상 타오는 방식이었다. 난방은 전력 부족으로 밤 10시에 꺼졌다. 지금 새벽 2시. 관측실 온도는 영하 3도.

“잠이 안 와.”

“신호 때문에?”

“꿈 때문에.”

기준이 커피를 수아의 책상 위에 놓았다. 수아는 컵을 잡았다. 따뜻했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돌아왔다.

“또 그 꿈?”

“응.”

“나도 꿨어.”

수아가 기준을 봤다. 기준의 얼굴이 창백했다. 관측소의 자외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내용이었어?”

“똑같아. 내가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데. 망원경 반대편에서 뭔가가 나를 보고 있어. 눈은 아니야. 눈이 없어. 근데 보고 있어. 시선이 느껴져.”

수아는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혀를 감쌌다.

“진아도 같은 꿈 꿨대.”

“진아도?”

“어제. 똑같은 꿈. 망원경 반대편에서 뭔가가 본다고.”

기준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모니터를 봤다. 초록색 파형.

“이거 뇌파 비교 결과 나왔어?”

“나왔어.”

수아가 키보드를 쳤다. 화면이 바뀌었다. 두 개의 파형이 나란히 표시됐다. 위쪽이 심우주 신호. 아래쪽이 인간 뇌파. 렘수면 단계의 뇌파.

“일치율.”

“97.3퍼센트.”

기준이 화면을 봤다. 두 파형이 거의 겹쳤다. 위쪽 선과 아래쪽 선 사이의 간격이 거의 없었다.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 0.6헤르츠.

“이건 우연이 아니야.”

“우연이면 좋겠어.”

수아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신호는 백조자리 방향에서 왔다. 발원지까지의 거리는 140억 광년. 빛의 속도로 140억 년이 걸리는 거리.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 이 신호는 우주가 태어난 직후부터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인간이 나타나기 137억 년 전부터. 지구가 생기기 90억 년 전부터. 이 신호가 먼저 있었다. 인간의 뇌파는 나중에 왔다.

“인간이 나오기 전부터 인간의 뇌파가 우주에 있었다.”

기준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인간이 복사한 거야. 우리 뇌가 이 신호를 따라 만들어진 거야.”

“아니면.”

수아가 말했다.

“우리가 이 신호의 수신기인 거지.”

관측실이 조용해졌다. 모니터의 팬 소리만 났다. 윙. 규칙적인 소리. 바깥에서 바람이 불었다. 해발 4,200미터의 바람. 관측소 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수아는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 응답 프로토콜. 국제천문연맹에서 정한 외계 지성 신호 응답 절차. 2031년에 만들어진 프로토콜이었다.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46년 동안 서류 속에만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가장자리가 말려 있었다. 수아가 이 서류를 처음 꺼낸 것은 2주 전이었다. 서류함 맨 아래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내일 응답 주파수 계산이 끝나.”

“그러면 보내는 거야?”

“프로토콜에 따르면 보내야 해.”

“프로토콜이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까?”

수아는 서류를 봤다. 제3항. '지성 신호로 판단될 경우, 수신 확인 응답을 보낸다. ' 지성 신호. 이것이 지성 신호인가. 지성이 보낸 것인가. 아니면 우주 자체의 구조가 뇌파와 같은 것인가. 지성과 구조의 차이가 있기는 한 것인가.

기준이 일어섰다.

“나 잠 자러 갈게.”

“잘 자.”

“꿈 안 꿨으면 좋겠다.”

기준이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졌다. 수아는 기준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듣고 있었다. 수아는 혼자 관측실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의 초록색 파형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오르내림. 규칙적이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수아는 파형의 주기를 셌다. 4.2초에 한 번 오르내림. 인간의 렘수면 뇌파 주기와 동일했다. 수아의 숨도 4초에 한 번이었다. 수아는 자기 호흡이 파형과 동기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의식적으로 숨을 빨리 쉬었다. 3초. 2초. 하지만 시선을 파형에 두는 순간 다시 4초로 돌아갔다.

수아는 헤드폰을 꺼냈다. 신호를 가청 주파수로 변환한 파일이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소리가 헤드폰을 채웠다. 웅. 낮은 웅. 그리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파도 소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파도가 아니었다. 파도보다 느렸다. 파도보다 깊었다. 수아의 몸 안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뼈가 공명하는 느낌. 흉골 뒤에서 무언가가 진동했다. 수아는 눈을 감았다.

소리를 듣고 있으면 졸음이 왔다. 항상 그랬다. 이 소리를 들으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꿈을 꿨다. 수아는 헤드폰을 벗었다. 손이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수아는 구분하지 못했다.

새벽 4시. 수아는 관측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관측소 복도는 좁았다. 콘크리트 벽. 형광등이 하나 걸러 하나씩 꺼져 있었다. 전력 절약. 복도의 절반이 어두웠다. 수아는 밝은 구간과 어두운 구간을 번갈아 걸었다. 밝음. 어둠. 밝음. 어둠. 수아의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콘크리트 위의 슬리퍼 소리. 관측소에 4명이 있었다. 수아, 기준, 진아, 그리고 장비 관리를 하는 현수. 현수는 신호 분석에 참여하지 않았다. 현수만 꿈을 꾸지 않았다. 수아는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했다. 신호를 분석한 사람만 꿈을 꾼다. 신호에 집중한 사람만. 수신 감도가 높아진 사람만.

진아의 방 앞을 지나갔다. 문 아래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진아도 자지 않고 있었다. 수아는 문을 두드렸다.

“진아?”

대답이 없었다. 수아는 문을 열었다. 진아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 파형이 떠 있었다. 같은 파형. 심우주 신호.

“진아.”

진아가 돌아봤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며칠째 잠을 못 자는 얼굴이었다.

“수아 언니.”

“왜 안 자?”

“잠들면 또 그 꿈을 꿔.”

진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무서워. 언니. 꿈에서 그게 나를 봐. 근데 눈이 없어. 눈이 없는데 봐. 그리고 내가 그걸 보면. 그게 웃어. 입도 없는데 웃어. 느낌으로 알아. 웃고 있다는 걸.”

수아는 진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아가 컵을 잡고 있었다. 물컵. 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진아의 손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진아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똑같아. 나도 그래.”

“세 명이 같은 꿈을 꾸는 게 정상이야? 같은 관측소에서 같은 신호를 듣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일종의 집단 암시 같은 거.”

“정상은 아니지.”

“신호 때문이야?”

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신호 때문이라고 말하면 그 다음 질문이 올 것이었다. 신호가 우리 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냐고.

수아는 진아의 방을 나왔다. 자기 방으로 갔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관측소의 천장은 콘크리트였다. 균열이 있었다. 물이 스며든 자국. 수아는 천장의 균열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잠이 들지 않으려고 했다. 잠이 들면 꿈을 꿀 것이었다. 꿈에서 그것을 볼 것이었다.

잠이 들었다.

꿈이었다. 수아는 망원경 앞에 서 있었다. 망원경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아는 접안렌즈에 눈을 대봤다. 별이 보였다. 별들 사이에 어둠이 있었다. 그 어둠이 움직였다. 어둠이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크기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 있었다. 수아는 그것을 봤다.

그것도 수아를 봤다. 수아의 척추가 차가워졌다. 꿈속인데 체온을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것이 내려갔다. 수아는 접안렌즈에서 물러나려 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이 수아의 발을 잡고 있었다. 바닥이 아니었다. 중력이었다. 그것의 중력이었다. 수아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눈이 없었다. 얼굴이 없었다. 몸도 없었다. 하지만 보고 있었다. 수아는 그것의 시선을 느꼈다. 시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시선이 아니었다. 인식이었다. 수아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처럼 그것도 수아를 인식하고 있었다. 수아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려 했다. 떼지지 않았다. 눈이 렌즈에 붙어 있었다. 아니, 눈이 렌즈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가까워졌다. 140억 광년의 거리가 접혔다. 공간이 종이처럼 구겨졌다. 수아의 눈앞에 그것이 있었다. 가까웠다. 숨결이 닿을 만큼. 그것에게 숨결이 있다면. 수아의 피부가 서늘해졌다. 소름이 돋았다. 팔 전체에. 그것의 크기를 알 수 없었다. 원자보다 작을 수도 있었고 은하보다 클 수도 있었다. 수아는 그것의 표면을 봤다. 표면이 있다면. 그것의 표면에 패턴이 있었다. 파형. 오르내림. 수아가 3개월째 분석하던 그 파형이 그것의 표면 위를 흐르고 있었다. 뇌파. 그것은 뇌파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니. 뇌파가 그것의 일부였다. 인간의 뇌파가 그것에서 왔다.

수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공명. 수아의 뇌파와 그것의 파형이 동조하고 있었다. 97.3퍼센트의 일치가 100퍼센트를 향해 좁혀지고 있었다. 나머지 2.7퍼센트. 0.6헤르츠의 차이. 그 차이가 줄어들고 있었다. 수아는 자기 뇌가 조율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라디오 다이얼이 맞춰지는 것처럼. 잡음이 줄고 신호가 선명해졌다. 수아는 자기 자신이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유리가 되는 느낌. 그것이 수아를 통해 보고 있었다. 수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수아를 통해 수아 뒤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수아는 깨어났다. 새벽 6시 14분.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베개가 젖어 있었다. 침대 시트를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 수아는 손가락을 폈다. 감각이 돌아왔다. 심장이 빨랐다. 수아는 천장을 봤다. 콘크리트 천장. 균열. 수아는 일어나 세면대로 갔다.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차가운 물. 거울을 봤다. 수아의 눈이 거울에 비쳤다. 평범한 눈. 갈색 홍채. 충혈이 심했다. 흰자위에 실핏줄이 퍼져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흔적. 수아는 자기 눈을 봤다. 이 눈으로 그것을 봤다. 꿈에서. 이 눈이 그것의 시선을 받았다.

아침 회의. 관측실에 세 사람이 모였다. 수아, 기준, 진아. 책상 위에 서류가 놓여 있었다. 응답 프로토콜. 그리고 응답 주파수 계산 결과.

“계산이 끝났어.”

수아가 서류를 폈다. 커피가 식어 있었다.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응답 주파수: 1.42기가헤르츠. 변조 패턴: 수신된 신호의 역위상.

“역위상이면 뭐야?”

진아가 물었다.

“받은 파형을 뒤집는 거야. 양이면 음, 음이면 양. 거울상.”

“왜 거울상?”

“'우리가 받았다'는 가장 단순한 표현이야. 네가 보낸 걸 뒤집어서 돌려보내면, 수신했다는 확인이 되니까. 박쥐가 초음파를 쏘고 되돌아오는 메아리로 위치를 파악하는 것처럼. 우리가 메아리를 보내는 거야.”

기준이 의자에 기대앉았다. 팔짱을 꼈다.

“근데 이걸 보내면 어떻게 돼?”

“모르지.”

“140억 광년 거리면 응답이 오려면 140억 년 걸리잖아.”

“응답이 온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면 왜 보내?”

수아가 기준을 봤다.

“프로토콜이니까.”

“프로토콜 무시하면 안 돼?”

“안 되지는 않아. 하지만 이 발견을 보고하면 국제천문연맹에서 보내라고 할 거야.”

“보고 안 하면?”

“3개월치 관측 데이터를 삭제하고 없던 일로 하는 거지.”

기준이 수아를 봤다.

“그건 과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데이터를 지우는 건.”

“과학자로서 해야 할 일이 인류를 위험에 넣는 건가?”

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아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수아와 기준이 진아를 봤다.

“꿈 때문이야. 우리 셋이 같은 꿈을 꾸고 있어. 이 신호가 우리 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야. 응답을 보내면 연결이 강해질 수 있어.”

“연결?”

“수아 언니가 말했잖아. 우리가 수신기라고. 지금은 수신만 하고 있잖아. 일방향이야. 근데 응답을 보내면.”

수아는 진아의 얼굴을 봤다. 진아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미세한 떨림. 공포. 수아는 자기 안에서도 같은 것을 느꼈다.

“수신기가 응답을 보내면 뭐가 돼?”

진아가 말했다.

“송수신기가 돼.”

관측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모니터의 초록색 파형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르내림. 규칙적. 숨쉬는 것처럼.

기준이 말했다.

“나도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이유?”

“이유 같은 거 없어. 무서워. 그냥 무서워. 어제 꿈에서 그거 봤을 때. 내가 나한테 없어지는 느낌이었어. 내가 나인 게 사라지는 느낌.”

수아는 모니터를 봤다. 파형. 140억 년 동안 우주를 횡단한 파형. 인간의 뇌파와 97.3퍼센트 일치하는 파형. 이것이 무엇인지 수아는 알지 못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수아는 한 가지를 알았다. 이 신호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뇌는 이것을 수신하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매일 밤 렘수면에 빠질 때마다. 인간은 이미 수신기였다.

응답을 보내면 송수신기가 된다. 진아의 말이 수아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송수신기. 양방향. 그것이 우리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통해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인가.

수아는 서류를 봤다. 응답 주파수 계산 결과. 숫자들. 수아의 손이 서류 위에 놓여 있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수아는 서류를 접었다. 반으로. 다시 반으로.

“보고하지 말자.”

수아가 말했다. 기준과 진아가 수아를 봤다.

“신호도, 뇌파 일치도, 응답 계산도. 보고하지 말자.”

“그러면 이 발견은.”

“묻히겠지.”

“3개월 동안 한 작업을.”

“묻는 거야.”

“3개월이야. 논문 하나는 나올 데이터야.”

“논문보다 중요한 게 있어.”

기준이 수아를 봤다. 수아의 눈. 수아의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도 끄덕였다.

수아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분석 파일을 열었다. 3개월치 데이터. 그래프. 파형. 비교 결과. 수아는 삭제 버튼에 커서를 올렸다. 3개월. 이 데이터를 학계에 보고하면 노벨상감이었다. 인류 역사를 바꿀 발견이었다. 수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 지우려고 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마우스 위의 검지가. 클릭하면 끝이었다. 3개월의 작업이 사라졌다. 발견이 사라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발견이.

수아는 클릭했다. 확인 창이 떴다. '이 작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 수아는 다시 클릭했다. 파일이 사라졌다. 화면이 비었다. 모니터에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화면.

수아는 의자에 기대앉았다. 모니터의 빛이 수아의 얼굴에 반사되고 있었다. 초록빛. 등이 등받이에 닿았다. 차가운 플라스틱. 수아는 숨을 내쉬었다. 길게. 3개월의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니터 옆의 수신기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초록색 파형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르내림. 신호는 계속 오고 있었다. 수아가 파일을 삭제해도, 발견을 묻어도, 응답을 보내지 않아도. 140억 광년 너머에서 신호는 계속 오고 있었다.

수아는 수신기를 봤다. 초록색 파형.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르내림. 숨쉬는 것처럼. 수아는 수신기의 전원 버튼에 손을 올렸다. 버튼이 차가웠다. 수아는 누르지 않았다. 수신기를 꺼도 다른 관측소에서 같은 신호를 잡을 것이었다. 칠레에서. 하와이에서. 호주에서. 수아가 묻어도 누군가 다시 파낼 것이었다. 끌까. 수신기를 끄면 신호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수아의 뇌는 계속 받고 있었다. 매일 밤. 잠들 때마다. 수신기를 꺼도 수아의 뇌는 꺼지지 않았다.

밤이 왔다. 수아는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잠들지 않으려고 했다. 잠들면 꿈을 꿀 것이었다. 꿈에서 그것을 볼 것이었다. 그것도 수아를 볼 것이었다. 수아는 눈을 떴다. 천장을 봤다. 콘크리트. 균열. 수아는 균열의 패턴을 봤다. 균열이 가지를 치고 있었다. 나뭇가지처럼. 뉴런처럼. 파형처럼. 수아는 천장의 균열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꼈다. 움직이지 않았다. 콘크리트였다. 하지만 눈을 가늘게 뜨면 균열의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수아의 뇌가 패턴을 찾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파형을 찾고 있었다. 수신기가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수아는 눈을 감았다. 헤드폰은 책상 위에 있었다. 신호 파일은 삭제했다. 하지만 수아의 귀에 그 소리가 남아 있었다. 웅. 낮은 웅. 기억 속의 소리. 삭제할 수 없는 소리. 잠이 올 것이었다. 잠은 막을 수 없었다. 렘수면은 막을 수 없었다. 수아의 뇌파가 그것의 주파수에 맞춰질 것이었다. 오늘 밤도. 97.3퍼센트가 조금 더 좁혀질 것이었다. 매일 밤. 조금씩. 수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해발 4,200미터의 바람.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별들 사이의 어둠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아는 눈을 감았다. 감아도 별이 보였다. 망막에 남은 잔상. 잔상 사이의 어둠도 남아 있었다. 수아는 그 어둠 속에서 잠이 들었다. 잠이 드는 순간 수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는 것이 아니었다. 수아의 근육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관측소의 시계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해발 4,200미터의 밤은 고요했다. 바람 소리와 수신기의 팬 소리만 있었다. 수아의 숨소리가 느려졌다. 깊어졌다. 렘수면이 시작됐다. 수아의 뇌파가 달라지고 있었다. 오르내림. 140억 광년 너머의 파형과 같은 리듬으로.

매일 밤 잠들 때마다 우주의 신호를 수신하는 뇌를 가지고 있다면, 잠드는 것은 관측인가 항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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