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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붙는 선체

2026. 3. 9. · 9,052자 · 약 11분

스스로 붙는 선체 썸네일
17

선체 외벽의 진동이 조타실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주파수가 달랐다. 엔진의 진동은 일정하고 낮았지만, 지금 발바닥에 닿는 것은 불규칙하고 높았다. 금속이 아닌 것이 금속 위를 기어가는 느낌. 경진은 조타석 팔걸이를 잡고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했다. 경진은 조타석에서 일어나 바닥에 손을 대봤다. 손바닥에 미세한 맥동이 전해졌다. 선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화물선 '석호'는 해왕성 궤도를 지난 지 47일째였다. 태양은 이미 밝은 별 하나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태양빛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다. 목적지는 카이퍼 벨트의 소행성 채굴 기지 케세드. 승무원 8명, 적재 화물 1,200톤. 석호의 선체는 자성유체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석호가 세 번째 항해를 시작한 지 47일. 경진은 이 합금의 표면이 온도에 따라 색이 미세하게 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노 단위의 자성 입자가 합금 기질 안에서 자기장에 반응해 배열을 바꿨다. 선체에 균열이 생기면 주변의 자성 입자들이 균열 부위로 이동해 틈을 메웠다. 자가 수복 선체. 3년 전 지구의 소재 연구소에서 출시된 신소재였고, 석호는 이 합금을 사용한 네 번째 화물선이었다.

16시간 전, 직경 40센티미터의 소행성 파편이 석호의 좌현 하부를 관통했다. 충돌 순간 선체가 찢기는 소리가 2초 동안 울렸다. 2번 화물칸의 기압이 4초 만에 제로로 떨어졌다. 격벽이 자동으로 닫혔다. 경보음이 30초 동안 울렸다. 경진이 경보를 끈 뒤에도 귓속에 잔상이 남았다. 부기관장 태수가 2번 칸의 외벽 영상을 띄웠을 때, 관통공은 직경 60센티미터로 벌어져 있었다. 파편이 관통한 자리에서 합금의 단면이 드러났다. 단면에 자성 입자들의 배열이 촘촘한 격자무늬로 빛나고 있었다. 파편이 들어간 쪽보다 나간 쪽이 더 컸다.

자성유체 합금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충돌 12분 뒤였다. 관통공 주변의 선체 표면에서 합금의 표면이 물결처럼 움직였다. 자성 입자들이 균열 경계로 모여들며 틈을 메워갔다. 2시간 뒤 관통공은 절반으로 줄었다. 4시간 뒤 완전히 막혔다. 설계대로였다. 경진은 2번 칸이 완전히 복원된 것을 확인하고 재가압을 지시했다. 기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40분이 걸렸다. 태수에게 선체 수복 상태를 모니터링하라고 했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수복 완료 6시간 뒤였다. 태수가 조타실로 뛰어 들어왔다. 화면을 넘기는 손이 빨랐다.

“관통공은 막혔는데, 합금이 멈추지 않아요.”

모니터에 선체의 실시간 형상 데이터가 떠 있었다. 관통공이 있던 좌현 하부에서 선체 표면이 바깥쪽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원래의 평평한 선체 외벽 위에 돌기가 자라고 있었다. 길이 30센티미터, 폭 15센티미터의 돌기가 여섯 개. 1시간에 2센티미터씩 성장 중이었다.

경진이 모니터 앞에 섰다. 돌기의 단면 영상을 확대했다. 내부 구조가 보였다. 균일한 합금이 아니었다. 자성 입자들이 촘촘한 나선형으로 배열돼 있었다. 석호의 설계 사양 어디에도 없는 패턴이었다. 경진이 태수를 봤다.

“자기장 제어 모듈이 이 패턴을 지시한 거야?”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모듈은 수복 완료 후 대기 상태로 넘어갔어요. 지금 자기장 명령을 내리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합금이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자기장 모듈 로그에는 아무 기록도 없어요.”

경진은 엔진실로 내려갔다. 자기장 제어 모듈은 선체의 자성 입자에 방향을 지시하는 장치였다. 수복 명령, 형상 유지, 강도 조절. 모든 변형은 이 모듈의 명령으로 이뤄져야 했다. 경진이 모듈의 로그를 열었다. 마지막 명령은 6시간 12분 전, 관통공 수복 완료 확인 후 대기 모드 전환이었다. 그 이후로 모듈은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선체의 변형은 명령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경진이 엔진실의 기름 냄새를 뒤에 두고 사다리를 올라왔을 때 통신사 민지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장, 외벽 온도가 올라가고 있어요.”

민지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돌기가 자라는 구역의 외벽 온도가 주변보다 4도 높았다. 자성 입자들이 재배열되면서 열을 방출하고 있었다. 입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경진이 물었다.

“돌기 성장 속도는?”

민지가 답했다.

“시간당 3센티미터로 가속됐어요. 1시간 전보다 빨라졌어요.”

경진은 조타실로 돌아가 전체 선체의 정밀 스캔을 지시했다. 결과가 나오는 데 20분이 걸렸다. 좌현 하부만이 아니었다. 우현 상부에서도 미세한 표면 변형이 시작되고 있었다. 높이 3밀리미터의 융기가 열두 군데. 아직 돌기라고 부르기에는 작았지만, 좌현과 같은 나선형 내부 구조를 보이고 있었다. 선체 전체가 변하고 있었다. 경진은 손바닥으로 조타실 벽면을 짚었다. 자성유체 합금은 조타실까지 연결돼 있었다. 벽면에서도 미세한 진동이 올라오고 있었다.

승무원 회의를 소집한 것은 충돌 22시간 뒤였다. 조타실에 8명이 모였다. 경진이 선체 스캔 결과를 화면에 띄웠다. 좌현의 돌기는 여섯 개에서 열한 개로 늘었고, 길이가 가장 긴 것은 48센티미터에 달했다. 돌기 사이에 얇은 막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갈비뼈 사이의 막처럼 돌기를 연결하는 구조였다.

기관장 혜원이 먼저 말했다.

“자기장 모듈을 완전 차단하면 어때요? 입자들에 외부 자기장이 없으면 움직임이 멈출 수 있어요.”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모듈은 이미 대기 상태예요. 차단해도 달라질 게 없어요. 입자들이 자체 자기장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혜원이 태수를 봤다.

“자체 자기장? 합금에 그런 기능은 없어.”

태수가 화면을 가리켰다.

“설계에는 없어요.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잖아요.”

경진이 끼어들었다.

“선체를 해체할 수 있어?”

혜원이 답했다.

“변형 부위만 절단할 수 있어요. 플라스마 토치로 잘라내고, 예비 패널로 교체하면 돼요. 하지만 합금이 자가 수복 중이면 자른 부위가 다시 자랄 수 있어요.”

경진이 물었다.

“합금 전체를 비활성화할 방법은 없어?”

혜원이 잠깐 생각했다.

“퀴리 온도까지 가열하면 자성이 사라져요. 하지만 선체 전체를 그 온도까지 올리면 구조 강도가 무너져요. 부분 가열은 가능하지만, 변형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면 전부 쫓아다닐 수 없어요.”

항해사 준이 말했다.

“선체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건 아니에요. 2번 칸 기압은 정상이고, 구조 강도도 허용 범위 안이에요. 돌기가 자라는 건 맞지만, 선체가 약해지는 건 아니에요.”

경진이 준을 봤다.

“지금은. 하지만 통제 밖의 변형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잖아.”

준이 끄덕이면서도 말했다.

“케세드까지 61일 남았어요. 지금 선체를 절단하면 수리 기간 동안 항해가 늦어져요. 보급 일정이 틀어지면 기지에 영향이 가요.”

회의는 결론 없이 끝났다. 조타실을 나가는 승무원들의 발소리가 금속 바닥에 울렸다. 경진이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부족했다. 변형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절단도 방치도 도박이었다. 경진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선체 스캔 데이터를 들여다본 뒤 파일을 닫았다.

그날 밤 경진은 2번 화물칸으로 내려갔다. 격벽을 열고 들어서자 공기가 달랐다. 온도가 복도보다 2도 높았다. 선체의 열 방출 때문이었다. 경진은 손전등을 켜고 좁은 통로를 지나 좌현 하부로 갔다. 손전등 불빛에 돌기들이 드러났다. 처음 봤을 때보다 달라져 있었다. 돌기 사이의 막이 두꺼워졌고, 전체 구조가 날개뼈처럼 보였다. 경진은 장갑을 낀 손으로 돌기 하나를 만졌다. 단단했다. 일반 선체보다 표면이 매끄러웠다. 손가락을 대고 있자 돌기 내부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자성 입자들이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경진은 손을 뗐다.

충돌 48시간 뒤, 선체 변형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돌기와 막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좌현과 우현에서 대칭적으로 자라고 있었다. 선체의 본래 원통형 윤곽이 달라지고 있었다. 태수가 3차원 모델링을 돌렸다. 변형된 선체의 형상을 시뮬레이션에 입력했다. 결과가 나왔을 때 태수의 표정이 바뀌었다.

태수가 조타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장, 이거 보셔야 해요.”

화면에 두 개의 모델이 나란히 떠 있었다. 왼쪽은 석호의 현재 변형 선체. 오른쪽은 태수가 비교 대상으로 찾아낸 학술 모델이었다. 태수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른쪽은 케세드 소행성의 중력장에서 최적 궤도 진입을 위한 이론적 선체 형상이에요. 3년 전 우주항공연구원에서 발표한 논문에 있는 모델이에요.”

경진이 두 모델을 번갈아 봤다. 형상이 비슷했다. 돌기의 위치, 막의 각도, 대칭 구조.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방향이 같았다.

“일치율이 얼마야?”

태수가 답했다.

“72퍼센트. 변형이 진행 중이니까 올라갈 수 있어요.”

경진이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봤다. 합금이 목적지의 중력장을 알 리가 없었다. 자성유체 합금은 소재였다. 항해 데이터를 읽을 수 없었고, 궤도 계산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행성 충돌의 운동 에너지가 합금에 흡수됐을 때, 입자들의 배열이 바뀌었다. 그 배열이 연쇄적으로 확장되면서, 합금 전체가 하나의 패턴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그 패턴이 우연히 케세드의 중력장에 맞는 것인지, 아니면 합금이 어떤 방식으로든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인지.

경진은 혜원을 불렀다. 엔진실에서 올라온 혜원의 손에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변형 부위 절단 준비는 돼 있어?”

혜원이 끄덕였다.

“토치 세팅 끝났어요. 명령만 내리면 2시간 안에 좌현 돌기 전부 잘라낼 수 있어요.”

경진이 말했다.

“태수가 분석한 거 봤어?”

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환기 장치의 바람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경진이 답하지 않았다. 혜원이 말했다.

“선장, 이건 소재예요. 의도가 없어요.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어요.”

경진이 봤다.

“72퍼센트가 우연이야?”

혜원이 답했다.

“28퍼센트는 아니잖아요.”

경진은 그 밤 잠을 자지 못했다. 선실의 천장에 선체의 진동이 미세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합금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경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어두운 복도를 지나 조타실로 갔다. 야간 당직인 준이 항법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경진이 물었다.

“현재 항로에서 변형 선체의 항력 변화가 있어?”

준이 데이터를 확인했다.

“미미해요. 0.3퍼센트 감소. 변형 구조가 오히려 항력을 줄이고 있어요.”

경진이 물었다.

“감속 궤도 진입 시 선체 형상이 영향을 줘?”

준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변형이 현재 속도로 진행되면, 케세드 접근 시점에 감속 효율이 7퍼센트 높아져요. 연료 절감이 가능해요.”

경진이 준의 모니터를 봤다. 숫자가 말하고 있었다. 변형된 선체가 원래 설계보다 효율적이었다.

충돌 72시간째. 경진은 결정을 내렸다. 전체 승무원에게 통보했다.

“선체 변형을 방치한다. 단, 구조 강도가 허용 범위의 80퍼센트 아래로 떨어지면 즉시 절단한다. 모니터링 주기를 1시간에서 15분으로 줄인다. 2번 화물칸은 접근 제한.”

혜원이 물었다.

“선체를 합금에게 맡기는 거예요?”

경진이 답했다.

“맡기는 게 아니야. 지켜보는 거야.”

이후 2주 동안 석호는 변해갔다. 원통형이던 선체에 돌기와 막으로 이루어진 날개 구조가 양쪽으로 뻗었다. 길이가 가장 긴 돌기는 1.2미터에 달했다. 선체 표면 전체에서 미세한 주름이 나타났고, 그 주름들은 불규칙해 보였지만 분석하면 유체역학적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태수는 매일 형상 데이터를 업데이트하며 케세드 궤도 모델과 비교했다. 일치율은 72퍼센트에서 81퍼센트, 85퍼센트, 89퍼센트로 올라갔다.

승무원들의 반응은 갈렸다. 식당에서의 대화가 줄었다. 침묵 속에서 선체의 진동만 들렸다. 준과 태수는 데이터에 매료됐다. 혜원은 매일 플라스마 토치의 세팅을 확인했다. 민지는 한밤중에 복도에서 선체의 진동을 듣고 잠을 설쳤다. 경진은 매 15분마다 구조 강도 수치를 확인했다. 숫자는 허용 범위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범위의 상한이 아니라 하한 쪽으로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충돌 31일째, 문제가 터졌다. 새벽 4시, 경보가 울렸다. 3번 화물칸의 격벽에 균열이 감지됐다. 격벽은 자성유체 합금이 아닌 일반 강철이었다. 합금과 강철의 접합부에서 응력이 집중된 것이었다. 합금이 변형하면서 접합부에 힘이 가해졌다. 격벽 균열은 소행성 충돌 손상이 아니었다. 합금의 변형이 만든 것이었다.

혜원이 격벽을 용접하는 동안 경진은 접합부를 살폈다. 합금 표면이 강철 격벽 위로 밀려 올라와 있었다. 합금이 선체를 넘어 내부 구조물까지 침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진의 손이 벽에 걸린 플라스마 토치의 트리거 위로 갔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혜원이 용접을 마치고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 접합부도 시간문제예요. 합금이 원래 선체 영역을 벗어나고 있어요.”

경진이 물었다.

“격벽 전체를 합금에서 분리할 수 있어?”

혜원이 답했다.

“접합부를 다 자르면 선체와 내부 구조가 분리돼요. 배가 두 조각 나는 거예요.”

경진은 조타실로 돌아갔다. 태수가 최신 일치율을 보여줬다. 91퍼센트. 경진이 물었다.

“변형이 100퍼센트에 도달하면 뭐가 달라져?”

태수가 답했다.

“이론상 케세드 궤도 진입 시 연료 소비가 38퍼센트 줄어요. 감속 기동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경진이 말했다.

“그리고 그 전에 격벽이 무너지면?”

태수가 입을 다물었다. 조타실에 엔진 소음만 채워졌다.

경진은 2번 화물칸으로 내려갔다. 혼자였다. 손전등을 끄고 어둠 속에 섰다. 선체의 진동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날개 구조가 만드는 진동은 이제 단순한 맥동이 아니었다. 리듬이 있었다. 느리게, 빠르게, 다시 느리게. 엔진의 진동과는 완전히 다른 박자였다. 경진은 등을 선체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합금의 열이 등을 통해 전해졌다. 선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경진의 등 뒤에서 합금의 열이 방호복을 뚫고 피부에 닿았다. 경진은 눈을 떴다. 감상에 빠질 시간이 아니었다.

충돌 34일째. 4번 화물칸의 접합부에서도 응력 경고가 떴다. 경진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합금의 변형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내부 격벽이 무너진다. 격벽이 무너지면 화물칸 사이의 기밀이 깨진다. 승무원의 생존 공간이 줄어든다. 경진은 식당에서 커피를 내려놓고 승무원을 다시 모았다. 커피는 식었다.

경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좌현과 우현의 돌기 구조를 절단한다. 내부 격벽과의 접합부도 분리한다. 선체 외벽은 합금이 유지하되, 성장을 물리적으로 차단한다.”

혜원이 끄덕였다. 준이 물었다.

“전부 자르는 거예요? 91퍼센트 일치율은요?”

경진이 준을 봤다.

“91퍼센트짜리 연료 절감보다 격벽이 먼저야.”

준이 입을 다물었다.

절단 작업은 6시간이 걸렸다. 혜원과 태수가 선외 활동복을 입고 에어록을 통해 외벽으로 나갔다. 플라스마 토치가 돌기를 잘라낼 때마다 합금 표면이 출렁였다. 잘린 돌기가 우주 공간으로 떨어져 나갔다. 돌기의 표면에서 자성 입자들이 마지막으로 한 번 반짝이고, 태양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2미터짜리 돌기가 잘릴 때 선체 전체가 한 번 경련했다. 진동이 조타실까지 올라왔다. 민지가 통신 패널을 움켜쥐었다. 경진의 턱이 굳었다. 경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구조 강도 수치가 흔들렸다가 3초 뒤 안정됐다. 그 3초 동안 경진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절단이 끝났을 때 석호의 외벽에는 잘린 돌기의 밑동이 남아 있었다. 표면이 울퉁불퉁했다. 혜원이 선내로 돌아와 에어록 안에서 헬멧을 벗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6시간의 선외 활동이 남긴 피로가 눈가에 드러났다. 혜원이 말했다.

“잘린 부위에서 합금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어요. 속도는 이전보다 느려요. 시간당 0.5센티미터.”

경진이 물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혜원이 답했다.

“절단 부위에 단열재를 씌우면 성장을 억제할 수 있어요. 완전히 멈추지는 못하지만, 케세드 도착까지는 버틸 수 있어요.”

경진이 끄덕였다. 단열재로 성장을 억제하면 선체는 원래 형상에 가깝게 유지된다. 케세드 궤도 진입은 원래 항법 계획대로 수행한다. 연료 절감은 없다. 하지만 격벽은 무사하다. 8명 전원이 안전하다. 그것이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었다.

태수가 조타실에서 마지막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경진이 태수의 의자 옆에 서며 물었다.

“일치율 최종 기록은?”

태수가 답했다.

“절단 전 91퍼센트. 절단 후 23퍼센트.”

경진이 모니터를 봤다. 23퍼센트. 합금이 30일 넘게 만들어온 구조가 6시간 만에 잘려 나갔다. 태수가 물었다.

“후회하세요?”

경진은 답하지 않았다. 모니터를 끄고 조타석 뒤편의 작은 창으로 갔다. 석호의 외벽이 보였다. 절단면에서 합금 입자들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별빛을 받은 자성 입자들이 아직 정렬을 시도하는 것처럼. 경진은 창에서 눈을 돌렸다.

케세드까지 27일이 남아 있었다. 석호는 울퉁불퉁한 외벽과 단열재로 감싼 절단면을 달고 항해를 계속했다. 매 시간 선체를 스캔했다. 경진은 야간 당직 때마다 2번 화물칸 벽에 귀를 대는 습관이 생겼다. 합금의 진동은 밤에 더 또렷했다. 단열재 아래에서 합금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당 0.5센티미터. 느렸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도착 5일 전의 야간 당직. 민지가 장거리 센서 데이터를 들고 조타실에 들어왔다. 케세드 소행성의 중력장 실측 데이터였다. 기존 모델과 달랐다. 케세드의 질량 분포가 비대칭이었다. 실측 중력장에 맞는 최적 궤도 진입 형상을 다시 계산해 달라고 태수에게 요청했다. 태수가 새 모델을 돌렸다. 결과가 나왔을 때 태수가 경진을 불렀다.

“선장. 실측 데이터로 다시 계산했어요. 최적 형상이 바뀌었어요.”

경진이 화면을 봤다. 새 최적 형상은 이전 학술 모델과 달랐다. 비대칭이었다. 그리고 석호의 절단된 선체—잘린 돌기의 밑동과 단열재의 불균형한 배치—가 새 최적 형상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태수가 일치율을 말했다.

“41퍼센트. 절단 전 원래 대칭 구조의 91퍼센트보다 낮아요. 하지만 합금이 처음 만들려던 게 이 비대칭 형상이었을 가능성도 있어요. 학술 모델이 아니라 실측 데이터에 맞는 형상을요.”

경진은 모니터를 오래 봤다. 합금이 정말 케세드의 실제 중력장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소행성 충돌의 에너지가 우연히 그런 패턴을 만든 것인지. 답은 알 수 없었다. 경진이 조타석에 앉아 감속 기동 시퀀스를 입력했다.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 아래로 합금의 미세한 떨림이 올라왔다. 원래 항법 계획대로. 연료 절감 없이. 석호의 엔진이 점화됐고, 단열재 아래에서 합금의 진동이 한 번 강하게 올라왔다가 엔진 소음 속에 천천히 묻혔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통제보다 나은 답을 줄 때, 그것을 잘라내는 선택은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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