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님, 이 피고인의 가석방 적격 점수를 다시 산정해 주십시오.”
법정에 울린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방청석의 시선이 일제히 국선변호인 쪽으로 향했다. 변호인석에 서 있는 남자는 양복 소매가 약간 닳아 있었고, 넥타이 매듭은 비뚤어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정훈은 사건 기록을 들어 올렸다. 삼백 쪽이 넘는 서류 뭉치가 무겁게 흔들렸다.
“피고인 박재성은 절도 혐의로 복역 중이며, 가석방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판정의 근거가 된 AI 예측 시스템 '공정심'의 알고리즘에 중대한 결함이 있습니다.”
재판장이 안경 너머로 오정훈을 바라보았다.
“변호인,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죠.”
“'공정심' 시스템은 재범 위험도를 예측하여 가석방 적격 여부를 점수화합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입력 변수 중 하나가 피고인의 주거지 우편번호입니다. 특정 우편번호, 즉 저소득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피고인은 동일한 범죄 이력을 가진 다른 지역 거주자보다 체계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정훈이 지난 여덟 달 동안 추적해 온 문제의 핵심이었다.
오정훈은 사십오 세,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국선변호인이었다. 이십 년 가까이 형사 변호를 해왔고, 그중 십사 년을 국선변호인으로 일했다. 사선 변호사들이 기피하는 사건, 돈이 없어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는 피고인들의 사건이 그의 몫이었다. 월급은 박했고 사건은 넘쳤다. 한 달에 스물다섯 건에서 서른 건을 처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와중에도 오정훈은 모든 사건 기록을 직접 읽었다. 동료들이 효율을 위해 요약본만 보는 동안, 그는 전문을 읽었다. 하지만 누적된 피로가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왼쪽 어깨의 만성 통증, 불면, 소화 장애. 아내 수현은 걱정했지만, 오정훈은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누군가의 변호인이 사라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정심' 시스템의 문제를 처음 의심하게 된 것은 여덟 달 전이었다. 오정훈은 가석방 심사 결과를 검토하다가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비슷한 범죄 유형, 비슷한 복역 기간, 비슷한 교정 성적을 가진 재소자들인데, 가석방 적격 판정률이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다. 서울 강남구 거주자의 적격률은 78퍼센트였고, 서울 구로구 거주자의 적격률은 31퍼센트였다. 오정훈은 처음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표본을 넓힐수록, 패턴은 더 뚜렷해졌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오정훈은 사무실에서 혼잣말을 했다. 엑셀 시트에 정리한 데이터가 모니터 두 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국 교정시설의 가석방 심사 결과 삼천이백 건을 분석한 결과, 우편번호 상위 20퍼센트 지역과 하위 20퍼센트 지역 사이에 적격률 격차가 2.4배에 달했다. 범죄 유형, 형량, 교정 성적을 모두 통제한 뒤에도 격차는 유의미하게 남아 있었다.
오정훈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 자체가 전쟁이었다. 가석방 심사 결과는 공개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담당했거나 담당했던 사건들의 기록을 하나씩 추출하고, 동료 국선변호인들에게 부탁하여 추가 데이터를 확보했다. 어떤 동료는 흔쾌히 도와주었고, 어떤 동료는
“괜히 건드리면 다 같이 불이익 받는다”
며 거절했다. 오정훈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국선변호인의 위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했다. 계약직에 가까운 신분, 과중한 업무량, 기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 이 안에서 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자기 파괴에 가까운 행위였다.
오정훈이 데이터를 정리하던 어느 저녁, 박재성의 면회 요청이 들어왔다. 교도소 면회실의 투명 칸막이 너머로 박재성의 얼굴이 보였다. 반년 전보다 살이 빠져 있었다.
“변호사님, 가석방 결과 나왔는데... 부적격이래요.”
박재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 뭘 잘못한 거예요? 교도관님도 제가 모범 수형자라고 했는데.”
오정훈은 칸막이에 손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재성 씨가 잘못한 게 아닙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요. 제가 지금 그걸 밝히고 있습니다.”
“시스템이요?”
박재성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컴퓨터가 제 점수를 매긴다는 거예요?”
“네. 그리고 그 컴퓨터가 공정하지 않다는 증거를 모으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박재성은 고개를 숙였다.
“변호사님, 솔직히 말할게요. 여기서 하루하루가 너무 길어요. 밖에 나가면 일도 하고, 어머니 모시고 살려고 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오정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정확한 시간을 약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을 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면회실을 나오며 오정훈은 복도 벽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가슴이 무거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얼마나 무력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국선변호인의 현실이었다.
오정훈은 AI 시스템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학도 출신인 그에게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외국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도움을 구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의 김소라 교수였다. 김소라는 알고리즘 공정성 연구의 국내 권위자였고, 법원의 AI 도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온 학자였다.
“오 변호사님, 데이터를 보내주시면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김소라가 첫 만남에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교수님, 이 데이터를 외부에 공유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가석방 심사 결과는 비공개이지만, 개인 식별 정보를 제거하면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고요.”
오정훈은 두 가지 경로를 동시에 진행했다. 하나는 자신이 담당한 사건들의 데이터를 비식별화하여 김소라에게 전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법무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것이었다. 정보공개 청구는 예상대로 거부되었다. 사유는 '사법 행정의 공정성을 해할 우려'였다. 오정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공정성을 해치는 것은 자신의 청구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인데.
김소라의 분석 결과는 두 달 뒤에 나왔다. 결론은 오정훈의 직감을 확인해 주었다. 김소라는 보고서와 함께 시각화 자료를 준비해 왔다. 산점도 그래프에는 우편번호별 가석방 적격률이 색깔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서울 지도 위에 겹쳐 놓으면 소득 지도와 거의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부유한 동네는 녹색, 가난한 동네는 붉은색. 오정훈은 그 그래프를 오래 바라보았다. 숫자로만 보던 것이 지도 위에 펼쳐지니, 차별의 지리학이 눈앞에 펼쳐진 셈이었다.
“이 자료를 법정에 제출할 수 있을까요?”
오정훈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다만 법원이 통계적 증거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예요. 한국 법원은 미국에 비해 통계적 차별 증거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이게 아니면 방법이 없습니다.”
김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사실 저도 이 연구 때문에 학교에서 압박을 받고 있어요. 법무부 연구 용역을 많이 받는 학과라서, 교수들이 불편해하더라고요.”
“죄송합니다. 교수님까지 피해를 끼치게 되어서.”
“아닙니다. 이건 해야 할 연구예요. 학자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학자가 아니죠.”
김소라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공정심' 알고리즘은 피고인의 과거 범죄 이력, 교정 성적, 사회 복귀 계획 외에 '지역사회 안정성 지수'라는 변수를 사용합니다.”
김소라가 연구실에서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 지수는 피고인의 주거지 우편번호를 기반으로 산출됩니다. 해당 지역의 범죄율, 실업률, 복지 인프라 밀도 등을 종합한 점수인데, 문제는 이 지수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아무리 모범적으로 복역해도, 집 주소가 특정 지역이면 점수가 깎인다는 건가요?”
오정훈이 물었다.
“정확합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디지털 레드라이닝'입니다. 과거 미국에서 특정 인종이 밀집한 지역에 대출을 거부했던 것과 같은 구조예요. 우편번호가 사실상 사회경제적 계층의 대리 변수로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오정훈은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변호했던 수많은 피고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절도범 박재성, 스물여섯 살. 구로구의 반지하에서 살았고, 편의점에서 식료품을 훔친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 교도소에서 기술 교육을 이수하고, 출소 후 취업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공정심'은 그에게 가석방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같은 시기에 강남의 오피스텔에 거주하던 사기범은 적격 판정을 받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범죄의 경중이 아니라 우편번호였다.
오정훈은 이 문제를 법정에 가져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국 법률에는 AI 시스템의 편향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었다. 헌법의 평등권 조항, 형사소송법의 적법 절차 원칙, 그리고 최근 제정된 AI 기본법의 공정성 조항을 조합하여 논리를 구성해야 했다. 오정훈은 밤마다 판례를 뒤졌다. 미국의 '스테이트 대 루미스' 판례, 유럽연합의 AI 규제법, 캐나다의 알고리즘 영향 평가 제도를 참고했다.
아내 수현이 새벽 두 시에 서재로 들어왔다.
“여보, 또 이러고 있어?”
“조금만 더 할게. 이 부분만 정리하면 돼.”
“당신 몸이 먼저야. 어깨 통증 또 심해진 거 알아. 병원 가야 해.”
오정훈은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 수현의 눈에 걱정과 피로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결혼 십칠 년, 국선변호인의 아내로 살아온 세월이 그녀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오정훈은 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건 중요한 사건이야. 지금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해.”
수현은 한숨을 쉬고 물 한 잔을 책상 위에 놓았다.
“알지. 당신이 그런 사람인 거. 근데 쓰러지면 그 사람들 누가 변호해?”
그 말이 오정훈의 마음에 못처럼 박혔다. 그녀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박재성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면회실에서
“변호사님, 저 언제 나갈 수 있어요?”
라고 물었던 그 눈빛.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스물여섯 살의 눈.
법정 공방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검찰은 '공정심' 시스템이 법무부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공동 개발한 것으로, 검증된 통계 모델에 기반해 있다고 반박했다.
“이 시스템은 재범 예측 정확도 82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변호인의 주장은 시스템의 전체적 신뢰도를 무시한 채 일부 변수에 대한 과도한 해석입니다.”
오정훈이 일어섰다.
“재판장님, 82퍼센트의 정확도라는 것은 전체 평균입니다. 하지만 그 정확도가 지역별로 균등하게 분포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희가 제출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소득 지역에서의 정확도는 89퍼센트인 반면, 하위 소득 지역에서의 정확도는 68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즉, 이 시스템은 가난한 지역의 피고인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부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법정이 잠시 술렁였다. 재판장이 손을 들어 정숙을 요청했다.
“변호인, 그 분석 보고서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까?”
“서울대 김소라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이며, 방법론에 대해 동료 심사를 거쳤습니다. 필요하시면 교수를 전문가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재판장은 잠시 생각했다.
“전문가 증인 신청을 허가합니다.”
김소라 교수의 법정 증언은 사건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녀는 알고리즘의 구조를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공정심'의 '지역사회 안정성 지수'는 기술적으로 말하면 프록시 변수입니다.”
김소라가 증언석에서 말했다.
“직접적으로 개인의 재범 위험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통계적 특성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계학에서 '생태학적 오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지역의 범죄율이 높다고 해서 그 지역의 모든 개인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책 당국은 이 변수가 재범 예측에 유의미한 기여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검사가 반대 심문에서 물었다.
“통계적 유의미성과 윤리적 정당성은 다른 문제입니다.”
김소라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인종을 변수로 사용하면 범죄 예측 정확도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편번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경제적 계층을 대리하는 변수를 형사 사법에 사용하는 것은, 가난을 죄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오정훈은 김소라의 증언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직감적으로 느꼈던 부당함이 학문적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도 있었다. 판사가 이 논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한국 법원은 기술적 쟁점에 대해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고, 행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를 꺼렸다.
판결 선고일까지 삼 주가 남아 있었다. 그 사이에 예상치 못한 압력이 시작되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오정훈의 소속 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에 공문을 보냈다. '국선변호인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활동에 대한 확인 요청'이라는 제목이었다. 오정훈의 상사인 김 부장이 그를 불렀다.
“정훈아, 이거 뭐야. 법무부에서 공문이 왔어.”
“보셨으면 아시잖아요. 제가 가석방 심사 시스템에 문제 제기한 건에 대한 압력입니다.”
“압력이든 뭐든, 공단 입장이 곤란해져. 우리 예산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잖아.”
오정훈은 이를 악물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예산은 법무부 산하에서 나왔다. 법무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국선변호인은 자기 밥줄을 스스로 위협하는 셈이었다. 이것이 제도의 구조적 모순이었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선변호인이, 국가 기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부장님, 저는 제 직무를 수행한 것뿐입니다. 피고인의 권리를 변호하는 것이 국선변호인의 일이고, 시스템의 편향은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김 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근데 현실은 현실이야.”
오정훈은 김 부장의 방을 나오면서 복도에서 동료 국선변호인 이태호를 만났다.
“정훈이 형, 법무부 공문 왔다면서? 괜찮아요?”
“괜찮아. 공문 하나로 사건을 포기할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어.”
이태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형, 나도 돕고 싶은데... 솔직히 무서워요. 계약 갱신 앞두고 있어서.”
“태호야, 무서운 게 정상이야. 나도 무서워.”
오정훈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무서워서 안 하면, 이 시스템은 계속 돌아가. 그리고 계속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
이태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갈등이 보였다. 오정훈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각자의 싸움이 있었다.
오정훈은 사무실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회색 하늘 아래로 법원 건물이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이 건물 안에서 매일 수백 건의 재판이 열리고, 수천 명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 중 얼마나 많은 결정이 알고리즘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알고리즘은 보이지 않는다. 판사의 얼굴은 보이지만, 판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코드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보이는 적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판결 선고일이 왔다. 법정은 만석이었다.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AI 가석방 시스템에 대한 첫 번째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이 재판은 선례가 될 수 있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오정훈은 심장이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본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공정심' 시스템의 '지역사회 안정성 지수'는 피고인의 개인적 특성이 아닌 거주 지역의 통계적 특성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헌법 제11조의 평등 원칙 및 AI 기본법 제12조의 공정성 조항에 비추어 합리적 차별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오정훈의 손이 떨렸다.
“따라서 피고인 박재성에 대한 가석방 적격 심사는 해당 변수를 제외한 상태에서 재실시되어야 하며, 법무부는 '공정심' 시스템의 입력 변수 전반에 대해 공정성 영향 평가를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
법정이 웅성거렸다. 오정훈은 눈을 감았다. 승소였다. 하지만 그 순간 오정훈의 머릿속에는 승리의 환희가 아니라, 이 판결이 미치지 못하는 곳들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공정심' 시스템은 전국 교정시설에서 가동 중이었다. 이 판결은 박재성 한 사람의 재심사를 명했을 뿐, 같은 편향의 피해를 받은 수천 명의 다른 재소자들에게는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제도의 변화는 한 건의 판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복된 판례, 입법적 대응, 시민사회의 감시가 겹겹이 쌓여야 했다. 오정훈은 그 과정이 얼마나 길고 지난한지 알고 있었다. 완전한 승소는 아니었다. 시스템 전체를 폐기하라는 판결은 아니었고, 해당 변수의 제외와 재심사를 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이었다. 판례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법정을 나서는 길에 박재성의 어머니가 오정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십 대 초반의 여성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어머님. 재심사에서 적격 판정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도요. 누군가 우리 아들 편에서 싸워줬다는 게... 그것만으로도요.”
오정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법원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 아래에서 수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오정훈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따뜻했다. 오정훈은 생각했다. 이 온기가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라고. 제도와 싸우는 일은 외롭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결국 사람이 사람을 지키는 것이었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수현이 물었다.
“이긴 거야?”
“이겼어. 그런데 이상하게 기쁘지가 않아.”
“왜?”
“이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거든.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판결 하나로는 부족해.”
수현은 오정훈의 팔을 잡았다.
“당신이 다 할 필요 없어. 시작했으면 됐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도 할 거야.”
오정훈은 아내의 말에 위로를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있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해줄까. 국선변호인 중에 이런 사건을 맡으려는 사람이 또 있을까. 오정훈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인가.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하니까. 그리고 그것은 슬픈 대답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오정훈은 전화기를 꺼냈다. 다음 사건 파일이 이미 와 있었다. 또 다른 가석방 심사 건이었다. 우편번호는 달랐지만 구조는 같았다. 오정훈은 파일을 열었다. 싸움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것이 국선변호인 오정훈이 선택한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