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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태료는 자동입니다

2026. 2. 23. · 9,109자 · 약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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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 발췌 — 래미안 센트럴파크 제127차 입주자대표회의]

일시: 2026년 2월 9일 오후 7시

장소: 관리사무소 3층 회의실

참석: 동대표 7명 중 5명 참석

안건 3호: 스마트 관리 시스템 '하우스키퍼 3.0' 운영 현황 보고

김미정 대표(104동): 시스템 도입 이후 관리비가 14% 절감되었다는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민원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민원인지 관리소장님이 설명해 주시죠.

박관리소장: 네. 주로 엘리베이터 관련 민원입니다. 하우스키퍼가 에너지 효율을 위해 심야 시간대에 엘리베이터를 자동 배분하는데, 일부 층에서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는 불만이 있습니다.

김미정 대표: 그것 말고요. 지난주에 301동 주민이 항의하러 왔잖아요. 쓰레기 분리수거 위반 과태료 건.

박관리소장: 아, 그 건은 — 하우스키퍼가 CCTV 영상을 분석해서 분리수거 규정 위반을 자동 감지하는 기능인데요.

김미정 대표: 잠깐만요. CCTV로 주민 행동을 감시해서 자동으로 과태료를 부과한다고요? 그건 누가 승인한 거예요?

박관리소장: 작년 제118차 회의에서 의결하셨습니다. 스마트 관리 기능 확대 안건으로.

김미정 대표: 그때 CCTV 자동 과태료라는 말은 없었어요.

박관리소장: '위반 행위 자동 감지 및 조치'라는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김미정 대표: 그게 과태료 자동 부과라는 뜻이었어요? 어떤 주민이 그걸 읽고 과태료를 떠올릴 수 있어요?

(회의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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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은 회의실을 나오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오십이 세. 쉰 세대가 사는 104동의 동대표. 이 아파트에 십오 년째 살고 있었다. 남편은 무역회사에 다녔고, 아들은 군대에 있었다. 동대표를 맡은 것은 삼 년 전이었다. 제도와 규정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리비 내역에 의문이 생겨서 따져보려고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전기 요금이 이상했다. 같은 평수의 이웃집보다 매달 삼만 원이 더 나왔다. 알고 보니 관리비 산정 기준에 오류가 있었다. 그것을 밝혀낸 뒤, 주변에서 '꼼꼼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붙었고, 동대표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신뢰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귀찮은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걸 김미정은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사층에서 내려야 하는데 일층으로 직행했다. 김미정이 닫힘 버튼을 누르고 4를 다시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하우스키퍼의 배분이었다. 결국 일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했다. 따라서 원래 삼십 초면 되는 이동에 사 분이 걸렸다. 생각했다. 관리비를 절감한다면서 내 시간은 누가 절감해 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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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관리사무소에 갔다. 박관리소장은 육십 대 초반의 남자로, 관리소장 경력 이십 년이었다. 그러나 하우스키퍼 도입 이후 그의 역할은 달라졌다. 시스템이 대부분의 관리 업무를 자동화했기 때문이었다. 박소장은 모니터 앞에 앉아 시스템 대시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 아파트 단지의 에너지 사용량, 주차장 현황, 민원 현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소장님, 엘리베이터 건 좀 얘기합시다.”

“아, 김 대표님. 그게요, 하우스키퍼가 심야 시간대 전력 소비를 줄이려고 엘리베이터 운행을 최적화하는 건데요.”

“최적화라는 게 사람을 일층까지 보내놓고 다시 올리는 거예요?”

“알고리즘이 전체 동선을 계산해서 —”

“알고리즘이요. 소장님, 저 어젯밤에 사 분 걸렸어요. 사층 가는 데.”

“그건 좀 불편하셨겠네요.”

“불편한 게 아니라 잘못된 거예요. 사람이 가려는 층에 안 가는 엘리베이터가 정상이에요?”

박소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컵에 든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불편해요. 예전에는 제가 직접 순찰 돌고, 주민 만나서 얘기 듣고, 문제 생기면 현장에서 해결했어요. 근데 지금은 시스템이 다 해요. 저는 모니터만 봐요.”

“그러면 소장님 역할이 뭐예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넥스트리빙 기술팀에 연락하는 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김미정은 생각했다. 이 사람도 피해자다. 시스템이 모든 걸 결정하니까, 관리소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것이었다. 반면 관리비에서 소장의 인건비는 그대로 나가고 있었다. 시스템이 일을 하는데 사람 월급은 그대로. 그것이 효율인가.

“소장님, 그 과태료 건은 어떻게 된 거예요?”

“아, 301동 이영수 씨 건이요. 하우스키퍼가 CCTV로 분리수거 위반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과태료 고지서를 발송해요.”

“자동으로요? 사람이 확인 안 하고?”

“시스템 정확도가 97%라서요. 감사 기관에서도 승인한 기능이에요.”

“3%는요? 3% 오류면 천 세대 기준 서른 세대가 억울하게 과태료를 내는 거잖아요.”

박소장이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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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은 301동 이영수를 찾아갔다. 이영수는 마흔 세, 택시 기사였다. 혼자 살았다. 이혼 후 삼 년째였다. 외로움과 부채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이는 전처가 키우고 있었다. 양육비를 매달 보내야 했고, 소득의 삼분의 일이 양육비로 나갔기 때문에, 오만 원의 과태료는 그에게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원룸 같은 구조의 작은 아파트였다. 현관에 과태료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오만 원. 분리수거 위반 — 일반쓰레기에 플라스틱 혼입.

“저 그날 분리수거 제대로 했어요.”

이영수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여 있었다.

“CCTV를 확인하셨어요?”

“관리사무소에 요청했는데, 시스템이 판단한 거라 열람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정보 보호 정책 때문에.”

“잠깐, 시스템이 제 CCTV를 보고 과태료를 매기면서, 저는 그 CCTV를 못 보는 거예요?”

“네. 그렇더라고요.”

김미정은 느꼈다. 이것은 엘리베이터 문제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주민을 감시하고, 판단하고, 처벌하면서, 주민은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없는 구조. 기관의 승인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구조.

“이 씨, 이의 신청은 하셨어요?”

“했죠. 근데 이의 신청도 시스템으로 접수돼요. 시스템이 자기가 내린 판단을 자기가 심사하는 거예요.”

“그건 —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맞아요. 근데 아무도 안 따져요. 오만 원이니까. 오만 원 때문에 싸우기엔 다들 바쁘니까.”

김미정은 생각했다. 오만 원. 아파트 천 세대 중 3%면 서른 세대. 서른 곱하기 오만 원은 백오십만 원. 매달이면 천팔백만 원. 일 년이면 이억. 오류가 수익이 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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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은 과태료를 받은 다른 주민도 만나보았다. 708동의 박순자, 칠십이 세.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건강이 좋지 않아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다. 새벽 네 시에 분리수거를 하다가 비닐 봉투를 잘못 넣은 것으로 감지되었다.

“나는 눈이 안 좋아서 글씨가 잘 안 보여. 분리수거함에 뭐라고 써 있는지 모를 때가 있어.”

“과태료 고지서는 받으셨어요?”

“받았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어. 하우스키퍼? 그게 뭔데?”

“아파트 관리하는 컴퓨터예요.”

“컴퓨터가 나한테 벌금을 매겨? 사람도 아닌 게?”

“할머니, 이의 신청 도와드릴게요.”

“이의 신청이 뭐야?”

김미정은 생각했다. 시스템은 스마트폰 앱으로 이의 신청을 받았다. 칠십이 세의 할머니가 앱을 열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스템 설계자는 생각했을까. 아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시스템은 '평균적인 사용자'를 위해 설계되었고, 평균 바깥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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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은 하우스키퍼를 도입한 업체를 조사했다. '넥스트리빙 주식회사.'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 관리 자동화 시장에서 점유율 일 위. 전국 삼백여 단지에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었다. 대표이사 오진환, 사십팔 세. IT 업계 출신.

넥스트리빙의 사업 보고서를 구했다. 위원회 자료실에 공개된 것이었다. 매출의 60%가 시스템 유지보수비였다. 그리고 매출의 12%가 '행정 위임 수수료'라는 항목이었다. 행정 위임. 과태료 부과, 주차 관리, 에너지 배분 등의 행정 업무를 시스템이 대행하는 것에 대한 수수료. 즉, 아파트가 시스템에게 행정을 맡기고, 그 대가로 넥스트리빙에 돈을 내는 구조. 시스템이 과태료를 부과할수록 행정 위임 실적이 올라가고, 따라서 넥스트리빙의 수익도 올라가는 구조. 더 많이 감시할수록, 더 많이 적발할수록, 회사는 돈을 벌었다. 감시와 수익이 정비례하는 구조. 그것을 '스마트 관리'라고 불렀다.

사업 보고서의 다른 항목도 눈에 들어왔다. '향후 확장 계획: 주차 위반 자동 감지, 소음 감지 기반 층간소음 중재, 에너지 낭비 세대 자동 경고.' 제도적 승인만 받으면, 이 시스템은 주민 생활의 모든 영역을 감시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김미정은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빨라졌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도의 문제였다. 시스템이 주민의 행동을 감시하고, 위반을 감지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의 신청을 심사하는 전 과정을 하나의 회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감시자와 심판과 집행자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관리비를 절감한다는 이유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정책적으로 승인된 것이었다. 김미정 자신이 참석한 회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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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은 다음 입주자대표회의에 안건을 올렸다. '하우스키퍼 운영 실태 감사 및 주민 권익 보호 방안.'

회의실에 동대표 다섯 명이 앉았다.

“김 대표님, 하우스키퍼 관리비 절감 효과가 확실한데, 뭐가 문제예요?”

201동 동대표 정택호가 물었다. 오십 대 후반, 건설회사 임원 출신.

“관리비만 보면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과태료 자동 부과 시스템에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구조적 문제라니요?”

“시스템이 위반을 감지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의 신청을 심사하는 걸 같은 시스템이 해요. 독립적인 심사가 없어요.”

“그거야 효율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효율이요? 3% 오류율이면 서른 세대가 억울하게 과태료를 내고 있을 수 있어요.”

“3%면 97%는 맞다는 거잖아요.”

“정 대표님, 정 대표님 댁에 억울한 과태료가 왔으면 그래도 97%가 중요해요?”

정택호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502동 동대표 한지영이 말했다. 사십 대 초반, 변호사.

“김 대표님 말씀에 일리가 있어요. 적법절차 문제예요. 행정처분에는 독립적인 불복 절차가 있어야 해요. 시스템이 부과하고 시스템이 심사하는 건 행정법 기본 원칙에 위배돼요.”

“한 대표님, 이건 아파트 자체 규정이지 행정처분이 아니잖아요.”

“자체 규정이라도 재산권에 영향을 미치면 최소한의 적법절차는 보장해야 해요. 조례와 규정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회의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305동 동대표 최원석이 말했다. 육십 대, 은퇴한 공무원.

“나는 시스템이 편해요. 예전에는 분리수거 문제로 주민들끼리 싸웠잖아요. 시스템이 잡으니까 공정하지 않아요?”

“최 대표님, 시스템이 공정하려면 투명해야 해요. 지금은 투명하지 않아요.”

“투명하면 사람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잖아요.”

“그게 주민을 어떻게 보는 거예요? 주민이 잠재적 범죄자예요?”

최원석이 손을 들어 말했다.

“나는 관리비 절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사하면 업체 관계가 나빠질 수 있어요.”

“관계가 나빠지는 게 주민 권리보다 중요해요?”

결국 투표에 부쳐졌다. 감사 실시 찬성 삼, 반대 이. 간신히 통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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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김미정과 한지영이 함께 진행했다. 넥스트리빙에 데이터 열람을 요청했다. 넥스트리빙은 '영업 비밀'을 이유로 알고리즘 열람을 거부했다. 하지만 과태료 부과 내역과 이의 신청 처리 결과는 제공했다.

숫자를 정리했다. 지난 일 년간 과태료 부과 건수: 팔백사십이 건. 이의 신청 건수: 삼십칠 건. 이의 인용 건수: 이 건. 이의 인용률 5.4%.

“일반적인 행정 불복 인용률이 20~30%인데, 5%라는 건 시스템이 자기 판단을 거의 뒤집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지영이 말했다.

“생각했던 대로네요.”

김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거 보세요. 과태료 부과 시간대를 분석했는데, 새벽 두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부과가 38%예요.”

“새벽에? 그 시간에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아니요. 그 시간에 분리수거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CCTV 영상이 선명하고, 시스템이 감지하기 쉬운 거예요. 낮에는 사람이 많아서 오류가 생길까 봐 시스템이 보수적으로 작동하고, 밤에는 공격적으로 작동하는 거죠.”

“시스템이 쉬운 표적만 골라서 잡는다는 건가요?”

“그 결과 새벽에 분리수거하는 사람, 그러니까 야간 근무자나 고령자가 과태료를 더 많이 내고 있어요.”

김미정은 종이에 적었다. '시스템이 쉬운 표적을 선택한다.' 기술은 중립적이라고들 말한다. 알고리즘에는 편견이 없다고.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달랐다. 시스템은 자신이 잘 잡을 수 있는 대상을 집중적으로 잡았다.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불평등하다면, 그 시스템은 불공정한 것이었다.

김미정은 이영수를 떠올렸다. 택시 기사. 야간 근무. 새벽에 귀가해서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 시스템에게 가장 잡기 쉬운 사람.

한지영이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하나 더 있어요. 과태료 부과 대상의 세대 유형을 분석했는데, 일인 가구 비율이 62%예요. 단지 전체 일인 가구 비율이 28%인데.”

“일인 가구를 집중적으로 잡는다?”

“항의할 사람이 적으니까요. 가족이 있는 세대는 누군가 대신 따져줄 수 있지만, 혼자 사는 사람은 포기하기 쉬워요. 시스템이 그걸 학습한 건지, 우연인 건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래요.”

“이건 보고서로 만들어야 해요.”

“동의해요. 관리 감독 기관에도 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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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제출한 뒤, 넥스트리빙에서 연락이 왔다. 대표이사 오진환이 직접 전화했다.

“김 대표님, 저희 시스템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오해가 아니라 데이터예요.”

“데이터 해석에는 맥락이 필요합니다. 만나서 말씀드리면 —”

“만나서요? 저는 데이터로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해요. 서면으로 보내주세요.”

오진환의 목소리가 굳었다.

“김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보고서가 외부에 나가면 저희 회사뿐 아니라 이 아파트에도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시스템 유지보수 계약 조건을 다시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김미정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두려웠다. 대기업과 싸워본 적이 없었다. 동대표는 자원봉사였다. 월급도 없고, 법적 권한도 제한적이었다. 반면 넥스트리빙은 시가총액 이천억 원의 상장사였다. 변호사도 있고, 로비스트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분노가 컸다. 후회는 없었다. 시스템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시스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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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입주자대표회의는 하우스키퍼 과태료 자동 부과 기능을 중단하기로 의결했다. 찬성 오, 반대 이. 이번에는 정택호도 찬성했다. 그의 어머니에게 억울한 과태료가 발부되었기 때문이었다. 칠십팔 세. 새벽에 분리수거를 하던 중 비닐을 잘못 넣은 것이 감지되었다고 했다.

넥스트리빙은 계약 조건 변경을 통보해왔다. 유지보수비 30% 인상. 보복이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계약 조건에 따른 정당한 변경이었다. 김미정은 다른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넥스트리빙 대신, 투명한 운영을 약속하는 중소 업체가 있는지. 쉽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동대표의 숙명이었다.

박순자 할머니의 과태료도 취소되었다. 김미정이 직접 할머니 집에 가서 결과를 알려주었다.

“할머니, 과태료 취소됐어요.”

“그래? 고맙다. 근데 나 그거 이미 냈어.”

“환불될 거예요.”

“환불이 되나? 컴퓨터한테 낸 건데?”

김미정은 웃었다. 할머니도 웃었다.

이영수의 과태료도 환불되었다. 오만 원. 이영수가 김미정에게 전화했다.

“김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히 포기하려고 했어요.”

“왜요?”

“오만 원 가지고 싸우는 게 창피해서요.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그냥 내라고. 오만 원짜리가 뭐라고.”

“오만 원짜리가 아니에요. 억울함의 크기는 금액으로 재는 게 아니에요.”

“아뇨. 저도 몰랐으면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그래도요. 오만 원이지만, 그게 — 그게 억울하잖아요.”

“억울하죠. 오만 원도 억울하고, 시스템이 사람을 범인 취급하는 것도 억울한 거죠.”

전화를 끊고 김미정은 베란다에 섰다.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였다. 천 세대. 삼천 명. CCTV 이백사십 대. 엘리베이터 열여섯 대. 주차장 팔백 면. 숫자로 관리되는 도시 안의 작은 도시. 하지만 각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었다. 새벽에 분리수거를 하는 택시 기사, 건강이 나빠 엘리베이터를 오래 기다리기 힘든 할머니, 과태료 오만 원이 점심값 일주일치인 사람.

관리비 내역서가 다음 달에도 올 것이었다. 김미정은 또 따져볼 것이었다. 숫자를 읽고, 규정을 확인하고, 시스템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켜볼 것이었다. 그것이 동대표의 일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무보수의, 감사도 없는,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또 아파트 건이야?”

“응.”

“미정아, 그거 안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해.”

“알아.”

“그런데 왜 해?”

“오만 원 때문에.”

“오만 원?”

“누군가한테는 오만 원이 일주일 점심값이야. 그 사람이 억울하면 안 되잖아.”

남편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래. 알겠어. 넌 좀 무모해. 근데 그게 좋기도 하고.”

“무모한 거 아니야. 정당한 거야.”

“알았어. 저녁은 내가 할게.”

“고마워.”

전화를 끊고 다시 베란다에 섰다. 단지 안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하우스키퍼가 일몰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켜는 것이었다. 그것은 편리했다.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기술 자체가 적은 아니었다. 기술이 만드는 관계가 문제였다. 감시하는 기술과 감시당하는 사람 사이에 누가 서 있는가.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김미정 같은 사람이 서야 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누군가가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비닐을 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플라스틱과 종이를 나누어 넣고 있었다.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CCTV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불안과 조심성이 뒤섞인, 자유롭지 못한 동작. 자기 집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조차 감시당하는 삶. 김미정은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일 아침 관리사무소에 가서 확인할 것들의 목록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관리비를 14% 절감하는 시스템이 주민의 권리를 3% 침해한다면 — 효율과 정의 사이에서 당신은 어느 쪽 숫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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