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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를 기억하는 사람

2026. 2. 20. · 10,915자 · 약 13분

제주어를 기억하는 사람 썸네일
17

잉크 냄새. 손끝에 배어 있었다. 정확히는 오징어 먹물을 정제한 전통 잉크의 냄새였다. 이마니시 수아는 서울의 국립무형유산원 사무실에서 그 잉크로 마지막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기관의 규정에 따르면 사어 통역관은 분기마다 담당 언어의 보존 현황을 제도적 심사 양식에 맞춰 제출해야 했다. 위원회가 정한 행정 절차였다. 멈춤. 수아는 그 양식을 채우면서 생각했다. 그렇다. 언어의 죽음을 행정 서류로 기록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지를. 창밖으로 서울의 도시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빌딩 숲 사이로 차량의 불빛이 흘렀고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그 도시 어디에서도 제주어는 들리지 않았다. 절대. 멈춤. 수아는 펜을 내려놓고 두 눈을 감았다. 피로. 몸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건강 검진을 미룬 지 여섯 달이 넘었다. 질병의 징후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나도. 멈추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수아의 가족 관계는 복잡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았다. 어머니는 제주 출신이었고 외할머니가 제주어 모어 화자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서울에서 살면서 제주어를 잊었다. 가족 안에서 언어의 상실이 먼저 일어난 셈이었다, 그 결과 수아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듯 언어학을 전공했고 결국 사어 통역관이라는 독특한 직업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수아가 열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양육의 기억은 따뜻하지 않았다. 절대. 외로움, 그것은 수아의 일상이었고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익숙함이 편안함을 뜻하지는 않았다. 절대. 소득은 넉넉하지 않았다. 서울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살았고 주거 환경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하나도. 부채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수아는 느꼈다, 자신이 언어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라는 걸.

“할머니,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화상 통화 너머로 강순덕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백한 살. 제주어의 마지막 모어 화자. 유네스코 정책에 따라 극도로 위험한 언어로 분류된 제주어의 유일한 생존 증거였다. 할머니는 느꼈다, 자신의 말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이지만 그 두려움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침묵. 길었다. 화면 속 할머니의 눈가에 주름이 깊었다. 시간이 할머니의 몸 위를 지나간 흔적이었다. 돌봄 없이 혼자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기도 했다.

“선생님, 보고서 마감이 내일입니다.”

“알아.”

수아는 짧게 대답했다.

“혼저 왕 보난 좋쿠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반면 화면 속 표정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수아는 망설였다. 오래. 건강에 대해 물어야 할지 아니면 녹음을 시작해야 할지. 시간.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녹음 버튼을 눌렀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잠시 멈췄다. 심장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이 녹음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기억났다, 삼 년 전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 때 감귤 껍질을 까던 손의 움직임이. 그때 할머니는 말했었다. 말이 어떵 죽어 사름이 죽지. 그 말이 수아의 인생을 바꾸었다.

수아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할머니와의 정기 대화를 통해 제주어 구술 아카이브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기반 제주어 번역 시스템의 검수였다. 이 시스템은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국가 예산으로 개발되고 있었고 플랫폼 형태로 연구자들에게 공개될 예정이었다. 제도적으로는 완벽한 프로젝트였다. 기관의 지원과 위원회의 감사와 정기적 심사가 갖추어져 있었다. 아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완전히. 번역 인공지능의 정확도가 기관의 심사 기준인 구십오 퍼센트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원인은 데이터 부족이 아니었다. 전혀. 제주어의 뉘앙스 특히 감정을 담는 방식이 표준어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즉 기계가 번역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했다, 이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번역 플랫폼들은 효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지만 제주어에는 효율로 측정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그거 뭐랜 헤시냐.”

“이 프로젝트가 왜 중요한지 설명해주세요.”

“할머니가 있으니까요.”

“그걸로 충분합니까?”

“충분합니다.”

할머니가 화면 너머로 물었다. 수아가 번역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자 할머니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오래. 수아는 숨을 참았다.

“말이 기계 속에 들어가믄 그건 말이 아니주게.”

수아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심장이 조여왔다. 할머니의 말이 옳다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하지만 제도와 정책은 디지털 보존을 요구했다. 문화재위원회의 규정에 따르면 무형문화재의 보존은 반드시 기록 매체에 의해 이루어져야 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은 법적 보존 수단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행정의 논리와 삶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었다. 제도는 측정 가능한 것만 가치로 인정했다. 아. 수아는 생각했다. 그렇다. 할머니의 목소리에 담긴 떨림은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저장할 수 없는 것이라고.

수아는 후회했다. 많이. 더 일찍 할머니를 찾아왔어야 했다. 외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제주어를 배웠어야 했다. 가족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언어도 함께 끊어졌다. 그 상실은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었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숨을 삼켰다. 기억났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제주어로 자장가를 불러주던 밤. 그 목소리는 이미 사라졌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았다. 수아는 두려웠다. 몹시. 자신도 할머니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늙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수아는 제주로 내려갔다. 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수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구름 아래로 바다가 보였다. 제주도의 윤곽이 나타났을 때 심장이 빨라졌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구좌읍으로 향하는 동안 도시의 풍경이 시골로 바뀌어갔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시간이 느려졌다. 할머니의 주거 환경은 열악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낡은 집은 단열이 되지 않았고 난방은 구식 기름보일러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했지만 실제 집행은 미비했다. 할머니는 고립된 채 살고 있었다. 이웃도 거의 없었다. 하나도. 마을은 젊은 사람들이 떠난 이후 텅 비어 있었다.

“할머니, 서울로 오시면 안 될까요? 제가 돌봄을 도울 수 있어요.”

“수아 씨, 쉬어야 해요.”

“못 쉬어요.”

“왜요?”

“시간이 없으니까.”

“이 집에서 죽을 거라.”

할머니는 단호했다. 수아는 그 결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수아는 제주시 행정 복지센터를 찾아갔다. 돌봄 서비스의 확대를 요청했다.

“규정상 이미 배정된 돌봄 인력을 초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국가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같은 분이에요. 정책적 예외가 가능하지 않나요?”

“그런 조례는 아직 없습니다. 의결된 예산 범위 내에서만 집행이 가능합니다.”

수아는 생각했다. 그렇다. 제도가 존재하지만 집행되지 않는 현실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고. 법과 정책은 보존을 말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삶을 돌보지는 않았다. 시장 논리가 모든 것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아는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수아는 자비를 들여 간병인을 고용했다. 소득의 삼분의 일이 거기에 들어갔다. 부채가 쌓이기 시작했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질병의 징후를 무시하고 있었다. 양육해야 할 가족도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할머니의 목소리만이 수아를 붙들고 있었다. 신뢰라는 이름의 끈이었다. 끊어지면 수아도 무너질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문화재위원회가 제주어 보존 프로젝트의 감사를 실시한 것이다. 감사 결과 번역 인공지능의 정확도 미달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위원회는 프로젝트의 계속 여부를 의결에 부치겠다고 통보했다, 따라서 수아는 두 달 안에 번역 정확도를 끌어올려야 했다. 해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수아는 두려웠다. 몹시.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할머니와의 관계도 공식적으로 끊어지는 것이었다. 제도의 칼날이 관계를 향하고 있었다.

“어머니, 저예요.”

“수아야?”

“네. 오래 못 연락해서 죄송해요.”

“괜찮다. 전화해줘서 고맙다.”

수아는 밤을 새워 작업했다. 할머니와의 녹음 데이터를 추가로 정제하고 제주어의 감정 표현 패턴을 수작업으로 분류했다. 외로움. 깊다. 동료들은 이미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간 이후였다. 수아 혼자 남아 있었다. 불안이 새벽마다 찾아왔다. 갈등은 자기 자신과의 것이었다. 포기의 유혹과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 사이에서 수아는 매일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

오랜 친구이자 같은 기관의 연구원인 민지가 물었다. 점심시간 사무실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였다.

“이 언어가 사라지면 할머니가 살아온 세계가 통째로 사라지잖아.”

“하지만 네 건강은?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여.”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수아는 느꼈다, 자신의 몸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민지는 침묵했다. 오래. 민지가 물었다.

“진짜 괜찮아?”

수아가 대답했다.

“괜찮다고 했잖아.”

민지가 말했다.

“안 괜찮은 사람이 하는 말이야 그거.”

수아가 침묵했다. 오래.

“미안.”

민지가 말했다.

“미안하지 마.”

더 이상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결국 수아는 다른 접근을 선택했다. 번역 인공지능의 정확도를 올리는 대신 제주어의 번역 불가능성을 학술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위원회의 심사 기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수아는 망설였다. 오래. 이 선택이 자신의 경력을 끝낼 수도 있었다. 아, 하지만 결국 쓰기로 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첫 문장을 타이핑했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명확했다. 언어의 가치는 번역 가능성이 아니라 관계성에 있다.

논문은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반면 위원회 내부에서는 반발이 거셌다. 행정적 기준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법원에 소송이 접수된 것이다. 시민단체가 제주어 보존 프로젝트의 존속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도시의 시민들이 언어의 죽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여파는 컸다. 전국적인 뉴스가 되었고 국회에서도 질의가 이루어졌다. 정책 변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아는 법원에 증인으로 섰다. 할머니의 녹음을 재생했다. 법정에 제주어가 울려 퍼졌다. 판사도 변호사도 방청객도 침묵했다. 아무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저히.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과 숨을 쉬는 간격 속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기억났다, 자신들도 언젠가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는 것을. 상실의 감각이 법정을 가득 채웠다. 수아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후 법원은 프로젝트 존속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수아에게 진짜 중요한 소식은 다른 곳에서 왔다. 할머니가 입원했다는 연락이었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수아는 제주로 달려갔다. 병원 복도의 형광등 아래에서 할머니는 작아져 있었다. 수아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가 눈을 떴다.

“수아야.”

표준어였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수아의 이름을 표준어로 부른 것이었다. 제주어의 마지막 화자가 표준어로 이름을 부르는 순간. 수아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할머니, 제주어로 말해주세요.”

할머니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후 입술이 움직였다.

“이녁이 와시난 나 말 안 죽을 거라.”

수아는 울었다. 많이. 그 말을 녹음하지 않았다. 어떤 기록도 이 순간을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도도 정책도 기관의 규정도 이 순간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관계. 오직 그것만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만이.

할머니는 일주일 뒤 퇴원했다. 완쾌는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신뢰가 수아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수아는 돌아와서 보고서를 완성했다.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언어는 제도로 보존되지 않는다 관계로 보존된다.

문화재위원회는 그 보고서를 채택했다. 제주어 보존 정책은 기존의 디지털 중심에서 인간 중심 보존으로 전환되었다. 마침내 새로운 조례가 제정되어 사어 화자와 통역관의 관계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게 되었다. 수아는 그 여파를 실감했다. 전국의 다른 사어 보존 프로젝트에서도 같은 방식의 전환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해고 위기에 있던 다른 통역관들도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제도가 사람을 위해 바뀌는 순간이었다.

수아의 삶도 조금씩 바뀌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래 끊어졌던 가족의 관계를 다시 잇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울었다. 많이. 눈물. 수아도 울었다. 많이. 상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건강 검진도 받기로 했다. 돌봄은 타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전혀. 자기 자신에게도 필요했다.

수아는 다시 할머니를 찾았다. 감귤나무 아래에서 수아가 물었다.

“할머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

할머니가 말했다.

“귤.”

수아가 말했다.

“귤 가져올게요.”

할머니가 웃었다.

“좋다.”

할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다. 수아는 오징어 먹물 잉크가 든 펜을 꺼냈다. 할머니가 말하고 수아가 적었다. 바람이 돌담 사이로 불어왔다. 그날 이후에도 그 일은 계속되었다.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은 죽지 않는다. 돌봄을 멈추지 않는 한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수아는 생각했다. 죽은 언어의 마지막 통역사라는 직함이 무겁지만 그 무게가 자신을 살아 있게 한다고. 고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관계 속에서만 언어는 숨을 쉬었다.

처음 수아가 이 직업에 지원했을 때 면접관은 물었다. 왜 죽은 언어를 살리려고 하느냐고. 수아는 대답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든 것이라고. 면접관은 기관의 심사 기준에 따르면 화자가 한 명 이하인 언어는 사실상 사어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수아는 그 규정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제주어로 된 시 한 편을 읽었다. 면접관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수아는 합격했다.

입사 후 첫 일 년은 자료 정리의 연속이었다. 기존에 수집된 제주어 음성 데이터 삼천 시간 분량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행정적으로 지루한 일이었지만 수아에게는 보물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녹음 속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화자들의 목소리가 살아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바다 이야기를 하고 할머니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 목소리 하나하나가 제주어라는 세계의 조각이었다. 수아는 느꼈다, 이 조각들을 맞추면 하나의 세계가 완성될 것이라는 희망을.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기관의 예산은 매년 삭감되었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사어 보존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전혀. 시장 논리에 따르면 사용자가 없는 언어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수아는 그 논리에 분노했지만 제도를 바꿀 힘은 없었다, 따라서 주어진 자원 안에서 최대한을 끌어내야 했다.

강순덕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삼 년 전이었다. 제주시 구좌읍의 작은 마을. 돌담이 바람을 막아주는 낮은 집 안에서 할머니는 감귤 껍질을 까고 있었다. 수아가 명함을 내밀자 할머니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혼저 옵서. 표준어 섞임 없는 순수한 제주어였다. 수아의 심장이 요동쳤다. 학술 녹음으로만 듣던 억양이 살아 있는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할머니, 저는 제주어를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존? 게 뭐꽈?”

“할머니의 말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이요.”

할머니가 감귤 한 쪽을 수아에게 내밀었다.

“말이 죽으쿠다 하는 소리 들을 때마다 우스꽝. 말이 어떵 죽어. 사름이 죽지.”

수아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오징어 먹물 잉크로. 그날부터 매달 제주를 찾았다. 비행기로 한 시간. 소득의 상당 부분이 교통비로 들어갔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집에 도착하면 먼저 마당의 감귤나무를 확인했다. 할머니가 그 나무의 상태로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하곤 했다. 나무가 건강하면 할머니도 괜찮은 날이었고 잎이 시들어 있으면 건강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할머니와의 대화는 녹음되었고 기관의 아카이브에 저장되었다. 하지만 녹음되지 않는 순간들이 더 중요했다. 함께 밥을 먹는 시간. 마당에 앉아 바람을 맞는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있는 시간. 관계는 그런 시간 속에서 깊어졌다. 수아는 생각했다. 이것이 언어보다 먼저인 것이라고. 신뢰가 쌓이자 할머니는 이전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의 기억. 사월삼의 비극. 가족을 잃은 상실. 그 이야기들은 어떤 기관의 아카이브에도 기록된 적 없는 것들이었다. 수아는 두려웠다. 몹시. 이 이야기들이 할머니와 함께 사라질까봐.

번역 인공지능 프로젝트는 이 대화들을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할머니의 음성 데이터가 핵심 학습 자료였다. 하지만 기계는 할머니의 떨림을 학습할 수 없었다. 침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간격에 담긴 감정을 해석할 수 없었다. 수아는 그것을 보고서에 정직하게 기술했다. 이후 위원회의 심사에서 그 정직함이 문제가 되었다.

위원회의 감사관은 말했다. 정확도 미달은 곧 예산 낭비라고. 수아는 반박했다. 언어의 가치를 정확도로 측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행정의 세계에서 수치 없는 주장은 힘을 갖지 못했다. 도저히, 결국 수아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달이었다. 그 두 달 동안 수아는 사무실과 제주를 오가며 데이터를 정제하고 논문을 쓰고 할머니를 돌보았다.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수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는 상실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수아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논문의 제목은 이랬다. 번역 불가능성과 언어적 존재론. 학술적으로 엄밀한 논문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아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었다.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발견한 것들. 제주어의 독특한 감정 표현 체계. 표준어로 옮길 수 없는 뉘앙스들. 수아는 그것을 과학적 언어로 번역하면서 동시에 느꼈다. 자신도 번역 불가능한 것을 번역하려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민지가 마지막으로 충고한 것은 법원 증언 전날이었다. 내일 증언대에 서면 돌아올 수 없어.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만 가고 싶었다. 할머니의 말이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법정에서의 증언은 이십 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십 분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법정을 채웠을 때 판사는 안경을 벗고 눈을 닦았다. 방청석에서 누군가 울기 시작했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목소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히, 그것이 수아가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언어는 의미 이전에 관계다. 목소리 이전에 존재다.

그날 이후의 이야기는 느리게 진행되었다. 법원 판결의 여파로 문화재위원회는 내부 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어 보존에 관한 새로운 규정이 논의되었고 기존의 정량적 심사 기준에 정성적 평가 항목이 추가되었다. 행정의 변화는 더뎠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수아는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제도는 사람보다 느리지만 한번 바뀌면 오래 간다고.

수아가 물었다.

“할머니는 외롭지 않으세요?”

할머니가 대답했다.

“외롭다. 하지만 이녁이 오면 안 외롭다.”

수아가 말했다.

“매주 올게요.”

할머니가 웃었다. 조금.

“약속이가?”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이에요.”

할머니가 말했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라.”

수아가 대답했다.

“지킬게요.”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고맙다.”

수아가 말했다.

“제가 더 고마워요.”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잡아.”

수아가 잡았다.

“따뜻하네요.”

할머니가 말했다.

“살아 있으니까.”

수아가 울었다.

“오래 살아주세요.”

할머니가 대답했다.

“그러마.”

할머니의 건강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하지만 수아의 돌봄이 계속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간병인은 매일 할머니를 돌보았고 수아는 매주 화상 통화를 했다. 매달 한 번은 직접 제주를 방문했다. 관계가 제도화된 이후 교통비와 체재비를 기관에서 지원받게 되었다. 부채의 증가가 멈추었다. 소득은 여전히 넉넉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생존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회복되고 있었다. 제주에서 함께 할머니를 만난 이후 어머니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제주어 단어들을 하나둘 떠올리기 시작했다. 상실이 영원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가족 사이에서 끊어졌던 언어의 실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수아는 기억났다, 외할머니의 자장가를. 어머니도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세 세대를 잇는 목소리였다.

인공지능이 사멸 언어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그 언어는 살아 있는 것인가—그리고 마지막 화자의 목소리를 복제하는 것은 보존인가 모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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