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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된 저녁 식사

2026. 8. 1. · 9,479자 · 약 11분

조율된 저녁 식사 썸네일
17

현관문이 열리자 김치찌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발효된 김치의 시큼함과 돼지고기 기름의 고소함이 섞인,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냄새. 그는 신발을 벗으며 거실을 둘러봤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소파에는 주름 하나 없었고, 유리 탁자에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공기마저 필터를 여러 번 거친 듯 인공적인 청량감이 감돌았다.

주방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70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허리를 꼿꼿이 편 모습이었다.

“왔니.”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조율된 음성.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투를 벗었다. 식탁에는 이미 2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치찌개, 갓 지은 쌀밥, 그리고 서너 가지의 정갈한 밑반찬.

식탁 의자에 앉자 어머니의 손목에 감긴 얇은 밴드에서 녹색 불빛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조율기’의 상태 표시등.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신호. 그가 10년 전 세상을 바꾼 발명품이었다. 비만과 대사증후군을 뇌신경과 직접 연결된 임플란트로 ‘해결’하는 시스템. 조율기는 혈당, 콜레스테롤, 혈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식욕과 대사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했다. 출시 5년 만에 40세 이상 인구의 표준 시술이 되었고, 그는 천재라는 칭송을 들었다.

어머니가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숟가락을 들었다. 찌개를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혀끝에 익숙한 맛이 감겼다. 짜고, 맵고, 시고, 달았다. 뇌가 즉각적인 만족의 신호를 보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가 항상 끓여주던 바로 그 맛이었다.

“맛있네요.”

그가 말했다. 어머니는 대답 없이 숟가락을 움직였다. 밥을 뜨고, 국물을 적시고, 입으로 가져갔다. 씹는 동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마치 영양분을 섭취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 같았다. 그녀는 밥 한 공기를 비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인상을 쓰거나 입맛을 다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입에 맞으세요?”

그가 다시 물었다. 어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염도도 적당하고, 영양 균형도 잘 맞춘 것 같구나. 시스템에서도 경고가 뜨지 않았어.”

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시스템. 조율기는 식사의 영양 성분을 분석해 과도한 나트륨이나 지방 섭취 시 가벼운 경고 신호를 보냈다. 어머니는 맛이 아니라 데이터로 식사를 평가하고 있었다.

“아니, 제 말은… 맛있냐고요.”

어머니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맑았지만, 그 안에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맛있다는 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구나. 이건 그냥… 몸에 좋은 음식이야. 그걸로 충분하지 않니.”

그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조율기는 해로운 식욕을 억제한다. 고열량, 고지방 음식에 대한 갈망을 신경 단계에서부터 차단한다. 그것이 핵심 기능이었다. 그런데 그 ‘해로운 식욕’과 ‘음식에서 느끼는 즐거움’ 사이의 경계는 어디였을까. 그는 왜 한 번도 그 질문을 해보지 않았을까.

“수치는 전부 정상이라고 하더구나. 네 덕분에 병원 갈 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

어머니의 말은 칭찬이었지만, 그의 귀에는 비수처럼 들렸다. 그는 남은 밥을 억지로 삼켰다. 어릴 적 그토록 좋아했던 김치찌개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곧장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스크린을 켜고, 보안 등급을 최상위로 올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조율기 ID를 입력했다. ‘연희’라는 이름과 함께 그녀의 생체 데이터가 10년 치 그래프로 펼쳐졌다. 모든 선이 완벽했다. 혈압, 혈당, 중성지방 수치는 교과서적인 정상 범위를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질병의 ‘가능성’ 자체가 소거된 삶.

그는 로그 파일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뇌신경 활동 데이터. 조율기가 대뇌 변연계에 보내는 미세 신호와 그 피드백 기록이었다. 어머니가 저녁 식사를 하던 시간대의 로그를 찾아 확대했다.

화면에 뉴런 활동을 나타내는 3차원 맵이 떠올랐다. 김치찌개의 맛 분자가 혀의 미뢰를 자극했을 때, 후각 상피가 냄새를 감지했을 때의 신호 흐름. 신호는 편도체와 측좌핵으로 향했다. 쾌락과 보상을 담당하는 영역. 그러나 신호가 그곳에 도달하기 직전, 조율기가 개입했다. 미세한 역전압 펄스가 흘러나와 도파민 수용체의 활성화를 억제했다. [경고: 과도한 자극. 나트륨/캡사이신 수치 기반. 보상 회로 안정화 실행.]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맛있다’는 감각을 잠재적 건강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사전에 차단했다. 버그가 아니었다. 의도된 기능이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알고리즘이 어머니에게서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 중 하나를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통신 기록을 뒤져 오래된 번호를 찾아냈다.

신호가 네 번 울리고 나서야 상대가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누구세요.”

날카롭고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 5년 전, ‘비인도적 기술’이라며 회사를 떠난 동료 지수의 목소리였다.

“나야. 민준.”

순간 침묵이 흘렀다. 음악 소리가 멀어지는 걸 보니 다른 방으로 이동한 듯했다.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조율기 신경 억제 알고리즘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

“10년이나 지난 걸 이제 와서? 난 당신네 기술이랑 연 끊은 지 오래야.”

지수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흘렀다.

“긍정적 보상 회로의 역치 값 말이야. 우리가 설정한 기본값이… 너무 높았던 걸까?”

“높아? 하.”

지수가 코웃음을 쳤다.

“넌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네. 값의 높낮이가 중요한 게 아니야, 민준아. 그걸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거지. 넌 세상을 치료한 게 아니야. 마취한 거지. 배고픔, 갈망, 그걸 채웠을 때의 기쁨까지 전부. 사람들은 이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정확한 연료를 주입하고 있어.”

“어머니가… 아무것도 맛있어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럴 줄 알았어. 당신 어머니도 결국 당신의 완벽한 시스템에 갇힌 거네.”

“방법이 없을까? 일시적으로라도 억제 기능을 비활성화할… 방법.”

“공식적으로는 없지.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조율기를 끄는 건 생명유지장치를 떼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의료 행위니까. 불법 말고는.”

“불법?”

“세상 모든 통제에는 저항이 따르는 법이야. 사람들은 다시 느끼고 싶어 해. 진짜 배고픔을, 허겁지겁 먹는 즐거움을.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어. ‘재밍’ 장치를 팔거나, 구형 펌웨어로 롤백해주는 기술자들이 있지. 물론 걸리면 네 경력은 그걸로 끝장이고.”

지수는 주소 하나를 불러주었다. 구도심의 버려진 공업지구였다.

“내 이름은 절대 말하지 마. 그리고 명심해. 한 번 마취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어.”

통화가 끊겼다.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스크린의 데이터만 바라봤다. 완벽하게 안정된 녹색 그래프들. 그 선들이 이제는 거대한 감옥의 창살처럼 보였다.

다음 날 저녁, 그는 지수가 알려준 주소 앞에 서 있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낡은 건물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금성 기계 공업사’라는, 페인트가 다 벗겨진 간판이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문틈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름 냄새와 함께,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음식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늘과 고추기름이 뜨겁게 달궈지는, 자극적이고 규제되지 않은 냄새.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녹슨 철문을 여는 순간, 그의 완벽한 세계에 균열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망설이다, 차갑고 축축한 문고리를 잡았다.

끼익, 하고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문 안쪽의 공기는 바깥과는 전혀 다른 밀도와 온도를 가졌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짙은 파기름 냄새, 무언가 타는 듯한 매캐한 향, 그리고 사람의 땀 냄새가 한데 뒤엉켜 그의 폐부를 찔렀다. 정제되지 않은, 살아있는 것들의 혼란스러운 냄새였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내부의 풍경이 드러났다. 선반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 부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바닥에는 전선들이 뱀처럼 엉켜 있었다. 작업대 위에는 분해된 조율기 몇 개가 내장을 드러낸 채 놓여 있었다.

가장 안쪽, 붉은 백열등이 켜진 곳에 누군가 있었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그는 용접용 고글을 이마로 밀어 올리며 민준을 쳐다봤다. 깊게 팬 주름과 날카로운 눈빛이 그의 연륜을 짐작게 했다.

“여긴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닌데.”

노인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듯 탁하고 거칠었다. 민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석의 작은 테이블에는 남자 2명이 앉아 김이 나는 국수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후루룩,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 쩝쩝거리며 국물을 마시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 남자는 너무 급하게 먹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심하게 기침을 했다. 민준은 그런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조율된 세상에서 식사는 조용하고 우아한 행위였다. 저렇게 원초적인 소음은 무례함, 혹은 통제되지 않은 욕망의 증거로 여겨졌다.

“지수에게 소개받고 왔습니다.”

민준이 입을 열자 노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손에 든 공구를 내려놓고 민준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손톱 밑에는 검은 기름때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노인은 민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잘 맞는 코트, 비싼 시계,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이질적인 깨끗함. 노인은 코웃음을 쳤다.

“지수가 여기까지 당신을 보냈다고? 그 깐깐한 애가? 당신 같은 사람을?”

노인은 ‘당신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했다.

“세상을 조율하신 위대한 발명가께서 이런 시궁창엔 어쩐 일로 오셨을까.”

민준은 자신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조율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 특정 기능을 억제하고 싶습니다.”

“특정 기능이라. ‘과도한 식욕 억제’ 기능을 말하는 거겠지.”

노인은 비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당신들이 건강한 삶이라 포장한 그 기능 말이야. 우리가 보기엔 그냥 감각의 거세지만.”

그는 테이블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들, 조율기를 처음 달았을 땐 당신처럼 말끔했어. 그러다 어느 날 깨달은 거지. 배가 고프지 않은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당신네 시스템은 병을 없앤 게 아니야. 그냥 배고픔이라는 경고등을 꺼버린 거지. 엔진이 망가지고 있어도 운전자는 모르게.”

노인은 다시 작업대로 돌아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낡은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금연 역시 조율기의 기본 권장 사항이었다. 니코틴 의존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어머니가… 웃는 법을 잊어버리신 것 같습니다. 식사하실 때마다.”

민준의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애처로웠다. 노인은 말없이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의 날카롭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부드러워졌다.

“자식이 부모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뭔지 아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걸 강요하는 거야. 당신은 어머니에게 건강을 선물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 대가로 뭘 앗아갔는지는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고.”

노인은 서랍을 열어 투박한 회로 기판이 덕지덕지 붙은 손바닥만 한 장치를 꺼냈다.

“재머(Jammer)야. 조율기가 뇌로 보내는 신경 억제 신호를 교란시키지. 이걸 근처에 두면, 한두 시간 정도는 시스템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잊었던 감각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날 걸세.”

민준의 눈이 빛났다. 그가 찾던 것이었다. 그가 손을 뻗자, 노인이 장치를 뒤로 뺐다.

“하지만 경고하는데, 이건 마약이나 마찬가지야.”

노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 앞에 갑자기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것과 같아. 대부분은 이성을 잃고 폭식하게 돼. 어떤 이는 혀가 마비될 정도의 매운맛을 찾고, 어떤 이는 혈관이 막힐 만큼의 기름진 음식을 탐하지. 억눌렸던 욕망이 터져 나오는 걸 뇌가 감당하지 못하는 거야. 당신 어머니는 연세도 있으신데… 이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그의 말은 민준의 심장에 차가운 얼음덩이를 던져 넣었다. 그는 어머니가 맛을 잃은 표정으로 식사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공허한 눈에 만약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이 들어찬다면? 건강을 되찾아준 아들을 원망하게 된다면? 지수의 경고가 귓가에 다시 울렸다. ‘한 번 마취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어. ’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지.”

노인이 말을 이었다.

“특히 당신에겐 비싼 값을 받아야겠어.”

“얼마를 원하십니까.”

“돈은 필요 없어.”

노인은 작업대에 놓인 분해된 조율기를 가리켰다.

“최신 버전의 보안 프로토콜.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 영 쉽지가 않아서 말이야. 창조주께서 직접 도와주시면 수월해지겠지. 당신 시스템의 심장에 작은 뒷문을 하나 열어달란 소리야.”

민준의 전신이 굳었다. 그것은 단순한 불법을 넘어선 배신 행위였다. 자신이 만든 세계의 보안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라는 요구. 수백만, 수천만 명의 데이터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 한 사람의 잃어버린 미각을 되찾기 위해,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위협하는 열쇠를 넘겨줘야 했다.

노인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담배 연기 너머로 민준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 시선은 마치 ‘네가 만든 완벽한 세상과 너의 죄책감 중에 무엇이 더 무거운가? ’라고 묻는 듯했다. 민준은 차갑고 투박한 재머와, 그 너머에서 국수 그릇에 얼굴을 박고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남자들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침묵은 짧았지만, 그 무게는 민준의 어깨를 짓눌렀다. 한쪽에는 어머니의 텅 빈 눈동자가, 다른 한쪽에는 자신이 창조한 완벽하고 거대한 시스템이 있었다. 그는 시스템을 치료라 믿었지만, 지수의 말처럼 그것은 마취에 불과했다. 통증 없는 삶, 그러나 기쁨 또한 없는 삶. 그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잃어버린 시간을, 그 공허한 식사를 단 한 번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노인의 작업대에 놓인 낡은 키보드로 다가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때마다, 10년간 쌓아 올린 자신의 세계에 스스로 균열을 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암호가 아니었다.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 신경망의 정맥과도 같은 곳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였다. 마지막 엔터 키를 누르자, 노인의 낡은 모니터에 복잡한 시스템 구조도가 펼쳐졌다. 노인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재머를 민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죄책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도망치듯 공업사를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빗줄기는 굵어졌고, 도시의 네온사인이 젖은 길 위에서 번지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재머는 이 세상의 질서에 반하는 이물질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환기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언제나처럼 청결하고 무균 상태의 공간.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홀로그램 뉴스를 보고 있었다. 민준은 외투를 벗고 어머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재머를 꺼내 유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니?”

어머니가 처음 보는 물건에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율된 채 평온했다. 민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자신의 오만과 실수를, 어머니에게서 빼앗아간 것들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어머니의 건강만 생각했어요.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저는… 어머니의 시간을 훔쳤어요. 김치찌개를 드실 때의 즐거움을, 비 오는 날의 그 맛을… 제가 만든 기계가 앗아가도록 내버려 뒀어요.”

그는 재머를 어머니 쪽으로 밀었다.

“이건 그 기계를 잠시 멈추는 장치예요. 아주 잠깐이지만… 예전처럼 모든 걸 느낄 수 있게 해줘요.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어요. 오랫동안 잊었던 감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힘드실 수도 있고요.”

그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강요가 아닌, 허락을 구했다.

“어머니. 다시… 맛보고 싶지 않으세요?”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과 탁자 위의 투박한 장치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맑고 공허한 눈동자에 아주 오랜만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민준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천천히 손을 뻗어 재머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느린 움직임 속에 수많은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는 듯했다.

민준은 주방으로 들어가 다시 김치찌개를 끓였다. 어제와 똑같은 재료, 똑같은 순서였지만 그의 마음은 완전히 달랐다. 찌개가 끓는 소리가 마치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그는 뚝배기를 조심스럽게 식탁으로 옮겼다. 어머니는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 바로 옆에 재머가 놓여 있었다.

민준이 맞은편에 앉자, 어머니는 재머의 작은 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딸깍,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장치에서 붉은 불빛이 희미하게 켜졌다.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민준은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을 지배하던 인공적인 청량감이 사라지고, 김치찌개의 맵고 시큼한 냄새가 훨씬 더 농밀하게 코를 파고들었다. 공기의 입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손목에 감긴 조율기의 녹색 불빛이 깜박거리다, 이내 꺼져버렸다. 통제가 사라진 것이다.

어머니는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뚝배기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붉은 국물을 한술 떴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그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국물이 혀에 닿는 순간,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굳게 닫혀 있던 미각의 수문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했다. 짜고, 맵고, 시고, 달고, 감칠맛 나는 모든 감각이 뇌리를 강타했다. 억눌렸던 뉴런들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어머니의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녀는 숟가락을 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노인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 감각의 폭풍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에 가까운 혼란이었다.

민준은 숨을 죽인 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괴물을 깨운 것은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때, 어머니의 맑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뒤이어 또 한 방울. 주름진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은 턱 끝에 매달렸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표정도 거의 변하지 않은 채, 그저 눈물만을 끝없이 흘려보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잊고 있던 살아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다시 겪어내는 거대한 통증이었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숟가락을 움직여 밥을 한술 떴다. 그리고 찌개에 푹 적셨다. 입 안으로 가져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들썩였다. 뜨거운 국물 위로, 투명한 소금 방울 하나가 떨어져 파문을 일으켰다.

완벽하게 통제된 평온함과 고통스러울 수 있는 생생한 감각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저녁 식사를 선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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