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너머로 남자의 손등 위를 푸른빛이 훑고 지나갔다. 빛은 혈관과 힘줄의 윤곽을 희미하게 비추며 손목을 타고 올라갔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심사대 위에 나란히 올려놓은 손을 미동도 없이 유지했다. 양자 DNA 완성 심사.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다.
벽 안쪽의 심사관, 김지혁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데이터 스트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두 사람의 게놈 정보가 실시간으로 해독되고, 예측 모델과 대조되었다. 30억 개의 염기쌍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불협화음 속에서 미래의 질병, 잠재적 결함, 통계적 위험을 찾아내는 과정. 지혁의 일은 그 결과를 판독하고, 최종적으로 ‘완성’ 또는 ‘미완성’ 판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몇 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관제실에는 냉각 팬이 돌아가는 낮은 소음만이 가득했다. 이윽고 데이터 스트림이 멎고, 화면 중앙에 녹색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COMPLETE’.
지혁이 인터컴 버튼을 눌렀다.
“심사 완료되었습니다. 2분 모두 완성 판정입니다.”
유리벽 너머의 남자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여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그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깨선이 미세하게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10분 전까지 그들의 미래를 짓누르고 있던 압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축하합니다. 증명서는 5분 내로 개인 단말기로 전송됩니다.”
두 사람이 일어나 심사대를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방 안의 조명이 소독을 위해 자외선으로 바뀌었다. 지혁은 로그를 저장하고 다음 예약을 확인했다. 오후 3시. 예약자 이름은 둘이었다. 그중 하나의 이름이 눈에 박혔다.
이수민.
심장이 내려앉는 감각은 아주 잠깐이었다. 지혁은 의식적으로 호흡을 골랐다. 3년간 만난 사람. 이제 그의 법적 배우자가 될 사람이었다. 오늘이 그들의 심사 날이었다.
정확히 3시, 수민이 심사 대기실로 들어섰다. 지혁은 관제실 모니터로 그녀를 봤다. 평소와 같은 옷차림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가방끈을 매만졌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관제실을 나섰다.
“많이 기다렸어?”
복도에서 마주친 수민이 옅게 웃었다.
“아니, 방금 왔어. 떨리네.”
“그냥 형식적인 절차야.”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겠지. 당신이 내 유전자를 속속들이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해.”
지혁은 수민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보는 건 데이터뿐이야. 당신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나잖아.”
수민의 말이 맞았다. 심사 시스템이 도입된 지 20년.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 정보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했다. 완성 판정은 사회적 신분이었고, 미완성 판정은 낙인이었다. 결혼, 출산, 특정 직업군으로의 진출, 심지어 거주 구역까지. 삶의 모든 단계에 ‘완성’ 증명서가 필요했다. 미완성자들은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들은 잠재적 위험, 관리 대상,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이 모든 것이 질병 없는 완벽한 사회를 만든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졌다.
지혁이 수민을 심사실로 안내했다. 함께 심사대에 앉아 손을 올려놓았다. 익숙한 절차였지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수민이라는 사실이 모든 감각을 낯설게 만들었다.
“시작할게.”
지혁이 원격으로 심사를 개시했다. 푸른빛이 수민의 손등을 훑었다. 그리고 지혁의 손등을. 두 사람의 유전 정보가 뒤섞이며 거대한 데이터의 강을 이뤄 서버로 흘러 들어갔다. 지혁은 다시 관제실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화면에는 자신과 수민의 게놈 지도가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데이터를 먼저 확인했다. 깨끗했다. 모든 항목이 녹색 허용 범위 안에 있었다. 다음은 수민의 데이터였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대부분의 항목은 지혁의 것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이었다. 심혈관계, 신경계, 대사 기능. 모두 정상. 지혁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마지막 염색체 분석 결과가 화면에 로딩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났다.
수십만 개의 녹색 지표들 사이에 떠 있는 단 하나의 붉은 점. 너무 작아서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을 법한 크기였다. 하지만 지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VAR_SOMA_17q21.31_BRCA1_MUT(PROB: 0.91)`
BRCA1 유전자 변이. 40대 이후 유방암 또는 난소암으로 발현할 확률 91%. 시스템은 이 변이를 ‘치명적 결함’으로 분류했다. 자동 판정 결과는 명확했다. 미완성(Incomplete).
관제실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냉각 팬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지혁은 화면의 붉은 점을 보고 있었다. 단순한 데이터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민의 미래였고, 두 사람의 미래였다. 이 작은 점 하나가 그들이 함께 계획했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미완성 판정을 받으면 결혼은 불가능했다.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 불가능했다. 미완성자와 결혼하려는 완성자는 없었다. 그들의 자녀에게 결함이 유전될 수 있다는 공포가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미완성자는 미완성자끼리 만나거나, 혹은 평생 혼자 살아야 했다. 그들은 도시의 특정 구역에 모여 살았고, 그들의 삶은 언제나 감시와 통계 속에 있었다.
지혁은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췄다. 판정 보류. 심사관에게는 1시간의 재검토 시간이 주어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관제실 구석의 작은 창으로 밖을 내다봤다. 창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잿빛 도시 위로 빗줄기가 사선으로 그어졌다. 3년 전, 저 비 오는 거리에서 수민을 처음 만났다. 작은 서점에서 각자 같은 책을 집어 들다 손이 스쳤던, 이제 와 생각하면 영화처럼 진부한 첫 만남이었다. 그 진부함이 지혁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수민은 자신의 몸속에 이런 시한폭탄이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녀는 건강했고,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내일 아침 함께 먹을 빵을 고르며 웃던 얼굴, 주말에 갈 공원을 검색하며 설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모든 일상이 이 붉은 점 하나로 부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시스템의 관리자 모드로 접속했다. 심사관의 권한으로 원시 데이터에 접근했다. 화면 가득 알아볼 수 없는 코드들이 펼쳐졌다. 지혁은 수민의 게놈 데이터에서 변이가 기록된 정확한 위치를 찾아냈다. `VAR_SOMA_17q21.31_BRCA1_MUT(PROB: 0.91)`. 손가락이 떨렸다. 한 번, 두 번. 그는 심호흡을 하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사실대로 보고하고, 수민이 미완성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지켜본다. 아니면, 기록을 조작한다. 심사관의 직업윤리, 시스템의 근간, 사회적 합의. 그 모든 것을 저버리는 행위였다. 발각되면 그의 인생도 끝이었다. 심사관 자격 박탈은 물론, 중범죄자로 기소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편에는 수민의 인생이 있었다. 그녀가 짊어져야 할 부당한 굴레, 빼앗길 미래가 있었다. 아직 발현되지도 않은, 확률에 불과한 미래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가.
지혁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해당 데이터 라인을 선택했다. 그리고 명령어를 입력했다. 변이 정보를 무시하고 정상 범위 값으로 대체하는 명령어. 시스템에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자신의 상위 인증 키를 사용해 로그 생성 규칙을 일시적으로 비활성화했다. 몇 줄의 코드를 더 입력했다. 데이터의 무결성을 검증하는 체크섬 값을 새로운 데이터에 맞춰 재계산하는 과정이었다. 모든 것이 정교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했다. 지난 5년간 이 시스템을 관리하며 익힌 모든 지식을 동원했다.
마지막으로 엔터 키를 눌렀다. 화면의 붉은 점이 깜빡이더니, 이내 주변의 지표들처럼 평범한 녹색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는 관리자 모드를 빠져나와 일반 심사 화면으로 돌아왔다. 화면에는 깨끗한 게놈 지도 두 개가 나란히 떠 있었다.
최종 판정 버튼이 깜빡였다. 지혁은 마우스를 움직여 ‘완성’ 버튼을 눌렀다. 화면 중앙에 녹색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COMPLETE’.
지혁은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방금 자신의 손으로 진실을 덮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훔쳤다. 혹은, 지켜냈다고 해야 할까.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지혁의 작은 아파트에서 와인을 마셨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수민은 낮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그 푸른빛이 손 위를 지나갈 때.”
수민이 와인잔을 흔들며 말했다.
“다 끝났어.”
지혁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수민의 손목에 있던 단말기가 짧게 울렸다. 그녀가 화면을 확인했다. 완성 심사 증명서가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수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혁에게 다가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제 우리, 진짜 시작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작게 울렸다. 지혁은 그녀를 마주 안았다. 수민의 체온이, 심장 박동이 셔츠를 통해 전해져 왔다. 따뜻하고, 생생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지혁의 귀에는 그녀의 목소리보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수민의 어깨 너머로, 빗줄기가 어지럽게 흘러내리는 창밖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품 안의 온기는 현실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거짓말 속에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우리 이제 뭘 제일 먼저 할까? 혼인 신고부터? 아니면 ‘완성 가구’ 전용 주택 청약부터 알아볼까?”
수민이 그의 품에서 살짝 몸을 떼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눈에는 미래에 대한 순수한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의심의 티끌 하나 없는 맑은 눈이었다. 지혁은 그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천천히 해. 급할 거 없잖아.”
“급하지. 난 당신 닮은 아이도 빨리 낳고 싶은데.”
그 말이 심장을 찔렀다. 아이. 지혁은 순간 호흡을 멈췄다. BRCA1 유전자 변이는 50%의 확률로 자녀에게 유전된다. 그가 덮어버린 붉은 점은 수민의 몸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아이에게로 이어질 수 있는 저주였다. 그는 수민의 미래뿐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미래까지 제멋대로 결정해버린 셈이었다. 만약 딸이라면, 그 아이 역시 평생 암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할 터였다.
“아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혁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잠겨 나왔다. 수민은 그의 표정에서 미묘한 그늘을 읽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오늘 너무 긴장해서 피곤해?”
“응, 조금. 그냥… 이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
그는 서툰 변명을 하며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늪처럼 그를 잠식해 들어왔다. 품 안의 수민은 따뜻했지만, 지혁은 깊고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고독감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야말로 시스템이 걸러내야 할 가장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미완성’ 인간인지도 몰랐다.
다음 날, 지혁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눈 밑이 퀭했다. 관제실의 익숙한 공기가 어쩐지 폐부를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단말기를 켜고 어젯밤 자신과 수민의 심사 로그에 접속했다. 조작된 데이터는 완벽해 보였다. 체크섬 값은 일치했고, 접근 기록에는 어떠한 이상 징후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완전 범죄였다.
하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스템은 인간보다 정직했다. 그가 지운 것은 하나의 데이터 라인이었지만, 그 라인과 연결된 수천, 수만 개의 다른 미세한 데이터들 사이에 미세한 불일치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시스템의 자가 진단 프로토콜이 그 미세한 균열을 발견해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김지혁 심사관, 표정이 왜 그래? 어제 좋은 일 있었다더니.”
옆자리의 박 팀장이 커피를 들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이 센터의 최고참 베테랑으로, 시스템의 허점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인물이었다.
“아닙니다, 팀장님. 그냥 어제 좀 무리해서요.”
“결혼할 사람이랑 심사받는 건 어떤 기분이야? 나도 15년 전에 해봐서 아는데, 자기 패를 다 보여주는 기분이라 영 찝찝하지.”
박 팀장은 농담처럼 말하며 지혁의 어깨를 툭 쳤다. 지혁은 마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심장이 얼음 조각처럼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오전 내내 그는 다른 커플들의 심사를 진행했다. 모니터 위로 쏟아지는 유전자 데이터를 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자신의 범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모든 녹색 ‘COMPLETE’ 사인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들 중 누군가는, 어쩌면 사소한 결함 때문에 ‘미완성’ 판정을 받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연인을 제 손으로 ‘완성’시켰다. 이 시스템의 신뢰를,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였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심사관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지혁이 다음 예약을 확인하기 위해 시스템에 로그인한 순간,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작은 경고 아이콘이 깜빡였다. 평소에는 볼 수 없던, 붉은색의 시스템 관리자 전용 알림이었다.
‘알림: 정기 데이터 무결성 검사 중 이상 패턴 감지. 케이스 ID: A7B-4938-C221. 상세 보고서 확인 요망.’
지혁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굳었다. A7B-4938-C221. 어제 그가 수민과 함께 심사를 받았을 때 부여된 고유 ID였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는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다행히 박 팀장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은 모두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알림을 클릭했다. 보안 인증을 요구하는 창이 떴다. 지혁은 자신의 홍채와 지문을 스캔했다. 화면에 암호화된 보고서가 나타났다.
보고서는 전문 용어와 코드로 가득했지만, 핵심은 명확했다. 원시 게놈 시퀀싱 데이터와 최종 처리된 데이터베이스 기록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불일치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변이가 발생한 17번 염색체의 특정 구간에서, 데이터의 엔트로피 값이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시스템은 이것을 외부 요인에 의한 ‘데이터 오염(Data Contamination)’ 가능성으로 분류하고, 해당 심사를 담당했던 심사관에게 재검토 및 소명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었다. 기한은 24시간이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는 데이터를 완벽하게 조작했다고 생각했지만, 시스템은 그가 남긴 미세한 ‘티끌’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명백한 증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의심의 씨앗은 뿌려졌다. 이제 시스템은, 그리고 어쩌면 박 팀장 같은 상급자는 이 작은 티끌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지혁은 차갑게 식어가는 손으로 마우스를 쥔 채, 깜빡이는 커서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24시간. 디지털 시계의 숫자는 사형 집행 예고처럼 느껴졌다. 지혁은 보고서 창을 닫았다. 소명을 할 수도, 재검토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스템이 자신의 거짓말을 어떻게 분해하고 진실을 재구성하는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가 덮어버린 수민의 작은 티끌은, 이제 그의 세계 전체를 집어삼킬 거대한 균열이 되어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기 직전, 박 팀장이 그의 자리로 다가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지혁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 손길에는 질책도, 동정도 아닌 그저 시스템의 일부로서 다음 절차를 집행하는 자의 건조한 무게만이 실려 있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었다.
지혁은 집으로 향하는 길에 일부러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비는 그쳤지만, 거리는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번지는 도시의 불빛이 흐릿한 유화처럼 보였다. 3년 전 수민을 처음 만났던 서점 앞을 지날 때,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지만, 정작 그 결과로 자신이 어떤 괴물이 되었는지 그는 깨닫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따뜻한 음식 냄새가 그를 맞았다. 수민은 주방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완성 가구 특별 공급 주택’ 안내 책자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지혁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안겼다.
“왔어? 마침 다 됐는데. 우리 오늘 여기 모델하우스 얘기 좀 해볼까? 전망이 그렇게 좋대.”
수민의 목소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순수한 신뢰가 칼날이 되어 지혁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는 수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그녀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
“수민아.”
그의 목소리는 젖은 아스팔트처럼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 할 얘기가 있어.”
지혁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어제 심사실에서 있었던 일. 그녀의 유전자 데이터에서 발견된 붉은 점.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지웠는지. 그리고 오늘, 시스템이 그 거짓말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사실을 나열할 뿐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수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표정이 하얗게 굳어갔다. 그녀의 시선은 지혁의 얼굴을 지나, 허공의 한 점에 머물렀다. 마지막 단어가 지혁의 입에서 떨어졌을 때,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남았다.
“암… 이라고?”
수민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배신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가능성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였다.
“아직은 아니야.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거지.”
“그래서 당신 마음대로 내 운명을 결정했어? 내가 알 권리도, 선택할 기회도 전부 빼앗고?”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흐르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배신감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게 아니야. 당신이 만든 완벽한 미래의 일부로 내가 필요했을 뿐이지. 작은 티끌이라도 있으면 안 되는, 흠 없는 인형처럼.”
“아니야, 수민아. 나는 그냥…”
“닥쳐.”
그 순간, 식탁 위에 놓인 수민의 개인 단말기가 날카로운 알림음을 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시스템이 보낸 공식 통지문이 떠 있었다.
[이수민 님, 양자 DNA 완성 심사 결과가 재심의를 통해 ‘미완성(Incomplete)’으로 정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존에 발급된 증명서는 효력을 상실합니다.]
녹색의 ‘COMPLETE’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선명한 붉은색 ‘INCOMPLETE’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식탁 위에 펼쳐진 주택 안내 책자들이 일순간 의미 없는 폐지로 변했다. 그들이 꿈꾸던 모든 미래가, 그 한 단어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수민은 한참 동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혁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분노나 공포가 없었다. 텅 빈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지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거짓말이 만든 잔해 속에서 그녀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도망치거나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녀는 식탁을 가로질러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거짓말로 모든 것을 망쳐버린 남자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올려놓았다.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손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지도, 뿌리치지도 않은 채, 그저 그 위에 자기 손의 무게를 얹었다. 지혁은 손등을 짓누르는 그 희미한 압력 속에서, 자신이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의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그는 그 손을 마주 잡을 수도, 빼낼 수도 없었다. 그저 어둠이 내리는 창밖을 배경으로, 두 개의 불완전한 손이 만들어내는 위태로운 정물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