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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손가락

2026. 7. 10. · 9,037자 · 약 11분

일곱 번째 손가락 썸네일
17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크레용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진홍색 선이 데이터패드 화면을 가로질렀다. 아이는 선 긋는 소리를 입으로 따라 했다. 슈우, 슈우. 그 소리가 전부인 하얀 방이었다. 소현은 아이의 손을 보고 있었다. 네 번째 손가락 끝이 유난히 도톰했다. 누구도, 심지어 아이의 아버지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비대칭. 유전 표준화 이전 시대의 흔적처럼 남은, 소현 자신에게서 물려받은 작은 특징이었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손에 든 데이터패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유리가 금속에 닿는 차가운 소리가 났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제 그림 속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아이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소현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주름도, 점도 없었다. 표준 유전형이 제공하는 매끄러운 피부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의 목소리도 얼굴처럼 평탄했다. 소현은 대답 대신 테이블 위의 패드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이름과 소속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국민건강보장국, 표준 적합성 상담관 지원. 지난 세 번의 상담 내내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였다.

“유나 양의 최종 생체 데이터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지원이 자신의 패드를 소현 쪽으로 밀었다. 화면에 복잡한 그래프와 숫자들이 떠올랐다.

“보시다시피, 대부분의 항목은 허용 범위 내에 있습니다. 하지만 악성 형질 전환 가능성을 가진 유전자 마커가 17개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P53 유전자 변이 확률이 일반 표준형 대비 1,200% 높게 나타납니다.”

숫자들이 붉은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1,200%. 공포를 유발하도록 설계된 숫자였다. 소현은 그 숫자를 외면하고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이제 초록색 선을 긋고 있었다. 진홍색과 초록색이 뒤섞여 흙탕물 같은 색이 되었다.

“이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설명해 드렸습니다. 암을 포함한 7종의 중증 질환 발병률이 표준 인구 집단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뜻입니다. 현재 유나 양의 표준 적합성 지수는 87.4%입니다.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는 경계선이죠.”

“제약이라뇨.”

소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지원은 기다렸다는 듯 항목을 짚었다.

“국공립 교육기관 입학 불가. 단체 활동을 전제로 하는 모든 공공 프로그램 참여 제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국가 건강보험 1등급 적용 제외. 4등급 감마로 분류됩니다.”

“병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아플 때 더 많은 돈을 내라는 거군요.”

“시스템은 위험을 기반으로 작동하니까요.”

지원의 목소리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시대의 가장 확고한 사실. 통계와 확률. 그는 소현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 이건 처벌이 아닙니다. 기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표준화 편집에 동의하시면, 이 모든 위험은 0에 가깝게 수렴합니다. 유나 양의 P53 유전자는 가장 안정적인 시퀀스로 교체될 겁니다. 17개의 위험 마커는 모두 제거됩니다. 국가는 이 모든 과정을 지원합니다. 비용은 없습니다. 아이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이니까요.”

소현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안전한 미래. 그들이 말하는 안전은 표준과 동의어였다. 표준화된 유전자, 표준화된 건강, 표준화된 얼굴. 지원의 얼굴처럼 밋밋하고 예측 가능한 얼굴. 소현은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웃을 때 왼쪽 눈이 조금 더 작아지는 얼굴. 집중할 때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얼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불균형의 아름다움. 표준화 편집은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릴 터였다. 위험 마커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개성을 발현시키는 사소한 유전자들까지 함께 ‘교정’된다는 사실을 지원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표준화의 부수효과, 혹은 본질적인 목표였으니까.

“그 편집을 하면, 아이의 얼굴이 어떻게 되죠?”

지원의 표정에 처음으로 미세한 변화가 스쳤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기색이었다.

“얼굴이요? 물론, 골격 구조나 기본 특징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장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비대칭성, 피부 트러블, 색소 침착 등의 ‘결함’이 발생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더 조화롭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결함. 그는 소현의 딸이 가진 고유한 특징들을 그렇게 불렀다.

“제 눈엔 지금도 충분히 조화롭고 아름다운데요.”

“어머니의 눈은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지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패드를 쓸어 넘기자, 화면에 시뮬레이션 영상이 나타났다. 유나의 현재 얼굴 사진을 기반으로, 표준화 편집을 거쳤을 때와 거치지 않았을 때의 10년 후 예상 모습이 나란히 떠 있었다. 왼쪽의 ‘표준형’ 유나는 매끄러운 피부와 완벽한 대칭의 이목구비를 가진, 예쁘지만 낯선 아이였다. 오른쪽의 ‘비표준형’ 유나는 지금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자란 모습이었다. 왼쪽 뺨에 작은 주근깨가 생겨났고, 웃을 때의 비대칭이 좀 더 뚜렷해져 있었다. 소현은 오른쪽 아이에게서만 제 딸을 볼 수 있었다.

“왼쪽 아이는 내 딸이 아니에요.”

“생물학적으로는 더 완벽한 따님입니다.”

“완벽한 것과 내 것인 것은 달라요.”

대화는 평행선을 그렸다. 지원은 통계를 말했고, 소현은 아이의 얼굴을 말했다. 지원은 아이의 ‘삶’을 걱정했고, 소현은 아이의 ‘자신’을 지키려 했다.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이의 크레용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지원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카드를 꺼내려는 듯했다.

“어머니. 사회적 측면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유나는 곧 학교에 갈 나이가 됩니다. 친구를 사귀고, 세상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겠죠. 아이들의 세상이 얼마나 직설적인지 아실 겁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소현의 반응을 살폈다.

“비표준 아이들은 눈에 띕니다. 사소한 감기에도 더 오래 앓고, 피부 알레르기도 더 잦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런 아이를 ‘약하다’고 인식합니다. 그리고 ‘다르다’고 생각하죠.”

지원의 시선이 그림을 그리는 유나에게 향했다.

“혹시 ‘일곱 번째 손가락’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소현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들어본 적 있었다. 비표준 아이들을 조롱하는, 아이들 사이의 은어였다. 정상적인 손에는 없는, 불필요하고 기형적인 존재라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잔인합니다. 자신들과 다른 점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나의 얼굴에 있는 작은 점, 남들과 다른 웃는 모습, 병에 약한 몸. 그 모든 것이 ‘일곱 번째 손가락’이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선택이, 아이를 평생 놀림감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아이를 사랑하신다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보셔야 합니다. 어머니의 신념이 아니라요.”

그것은 설득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부드럽고 합리적인 목소리로 포장된, 세상의 폭력이었다. 소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느껴졌다. 지원이 마지막으로 테이블 중앙에 놓인 동의서 패드를 가리켰다.

“오늘이 국가 지원 표준화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문을 나서면, 유나 양은 공식적으로 ‘비표준 아동’으로 등록됩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소현의 시선이 동의서의 서명란과, 방구석에서 제 세상에 몰두한 채 그림을 그리는 딸 사이를 오갔다. 아이는 이제 막 완성한 그림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진홍색과 초록색이 마구 뒤섞인, 혼란스럽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 그 그림 위로, 아이의 비대칭적인 미소가 겹쳐졌다.

소현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네 번째 손가락 끝의 도톰한 살집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살아있는, 따뜻한 결함. 소현은 그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이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반대편 손으로, 테이블 위의 동의서 패드를 지원에게로 밀어냈다. 유리가 금속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방금 전보다 더 길고 날카롭게 울렸다.

“내 딸은,”

소현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더 이상 잠겨 있지 않았다. 단단하고 고요했다.

“숫자 꾸러미가 아닙니다. 확률의 대상도 아니고요. 이 아이는 그냥, 유나예요.”

지원은 아무 말 없이 소현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탄했지만, 눈빛은 미세하게 차가워져 있었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자신의 데이터패드를 들어 올렸다. 몇 번의 터치. 방 안에 낮고 짧은 전자음이 울렸다. 확인. 완료. 등록.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그는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처럼 들렸다.

“김유나 양, 비표준 아동 등록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유나 양의 시민 ID에는 ‘감마 등급’ 식별 코드가 영구적으로 기록됩니다. 이 기록은 유나 양이 성인이 된 후, 표준화 시술을 자비로 부담하여 적합성 지수를 95%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기 전까지 삭제되거나 변경될 수 없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상담할 내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망설임이나 불필요한 동작도 없었다. 완벽하게 표준화된 몸짓이었다.

“국가와 사회는 개인의 선택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선택이 공동체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관리할 뿐입니다. 유나 양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말은 악의 없는 저주처럼 들렸다. 소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나가 그림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엄마, 이거 봐! 무지개 괴물이야!”

뒤섞인 색깔 덩어리가 화면 가득했다. 소현은 아이의 눈높이로 몸을 낮추고 속삭였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괴물이네.”

그 말을 하는 동안, 등 뒤에서 지원이 방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닫히고, 방은 다시 완벽한 하얀색의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그 침묵은 처음과는 달랐다. 모든 것이 결정된 후의, 돌이킬 수 없는 무게를 가진 침묵이었다.

소현은 유나를 데리고 상담실을 나왔다. 복도는 들어올 때와 같은 복도였지만,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공기 중의 습도, 조명의 색, 발소리를 흡수하는 바닥의 재질까지도 자신들을 이질적인 존재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 복도 끝 자동문 앞에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유나의 아버지, 소현의 남편인 민준이었다.

그 역시 표준 유전형의 혜택을 받은 세대였다. 지원처럼 매끄러운 피부와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시스템이 지우지 못한 불안이라는 주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소현과 유나를 보자마자 다가왔다. 그의 시선은 소현의 얼굴을 스쳐 지나, 곧바로 유나에게 향했다. 마치 아이의 얼굴에서 ‘비표준’이라는 낙인을 찾으려는 듯했다.

“어떻게 됐어?”

민준의 목소리는 낮고 급했다.

“서명했지? 당연히 했겠지. 그게 유나를 위한 길이니까.”

소현은 대답 대신 민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소현은 지원의 눈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논리를 보았다. 공포를 기반으로 한 합리성.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욕. 그것이 민준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보?”

민준이 소현의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재촉했다. 유나가 아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데이터패드를 들어 보였다.

“아빠, 무지개 괴물!”

민준은 아이의 그림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모든 신경은 소현의 입에 쏠려 있었다. 소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짧은 움직임이 민준의 얼굴에서 핏기를 앗아갔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안 했다고? 지금… 제정신이야? 당신, 저 안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 우리 유나가 앞으로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정말 모르는 거냐고!”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복도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시선들 속에는 경계심과 약간의 경멸이 섞여 있었다. 비표준 아동과 그 부모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이었다. 민준은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목소리를 낮췄지만, 분노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당신 그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낡아빠진 시대의 감상 때문에 애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 일곱 번째 손가락! 사람들이 우리 유나를 그렇게 부를 거라고! 당신 때문에 내 딸이 평생 손가락질 받게 생겼다고!”

‘내 딸’. 그는 분명히 ‘내 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소현이 말한 ‘내 딸’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민준에게 딸은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소유물이었고, 그 가치는 사회적 표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로 결정되었다.

“유나는 손가락질 받을 아이가 아니야.”

소현이 차갑게 말했다.

“그렇게 만드는 건 당신 같은 사람들이지.”

“뭐?”

“유나의 다름을 결함으로 보고, 아이의 얼굴에서 낙인을 찾으려 드는 시선들. 그게 아이를 괴물로 만드는 거야. 시스템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말은 칼이 되어 두 사람 사이에 날아들었다. 민준은 상처 입은 표정으로 소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난 그냥… 유나가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살길 바랐을 뿐이야. 아프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그게 아빠로서 잘못된 건가?”

“평범한 게 뭔데?”

소현이 되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남편의 매끄러운 얼굴과, 그 뒤로 보이는 복도의 반듯한 벽과, 모든 것이 규격화된 이 세계 전체를 향해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정해진 확률에 따라 늙어가는 거? 난 유나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주근깨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웃을 때 얼굴이 짝짝이가 되면 되는 대로, 아프면 함께 울어주고 나으면 함께 웃어줄 거야. 그게 내가 유나에게 줄 수 있는 전부야.”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이었지만, 그들이 서 있는 세계는 완전히 달랐다. 유나는 어른들의 대화가 자아내는 냉랭한 공기를 느꼈는지, 그림을 보여주던 손을 내리고 소현의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우리 이제 집에 가?”

그 순진한 물음이 민준의 마지막 이성을 무너뜨렸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집이라… 당신이 만든 그 ‘집’이 유나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 같아?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소현아. 당신은 곧 후회하게 될 거야. 당신의 신념이 아니라, 이 세상이 옳았다는 걸 깨닫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민준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은 소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한 타인의 것이었다. 그는 유나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차가운 공기 속에 남겨진 것은 소현과, 엄마의 다리를 꼭 붙잡은 유나, 그리고 아이의 손에 들린 무지개 괴물 그림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했다. 민준이 운전대를 잡았지만, 그는 소현과 유나가 없는 사람인 듯 앞만 보고 달렸다. 그의 표준화된 얼굴은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가면 같았다. 유나는 뒷좌석에서 아빠와 엄마의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아이의 무릎 위에는 여전히 데이터패드가 놓여 있었다. 뒤섞인 색채의 괴물이 위태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집은 조용한 전쟁터가 되었다. 민준은 유나에게 전보다 더 다정하게 굴었지만, 그 다정함 속에는 늘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었다. 아이가 작은 기침이라도 하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소현을 쏘아보았다. 아이의 뺨에 작은 뾰루지가 올라온 날에는, 그는 보란 듯이 소독약과 연고를 한가득 사 들고 왔다. 그의 모든 행동은 소리 없는 비난이었다. ‘이것 봐. 내가 경고했잖아. 이게 다 당신 탓이야. ’

시간이 흘러 유나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다. 국공립 기관은 당연히 입학이 거부되었다. 소현은 수소문 끝에, 자신들처럼 비표준 아동을 받아주는 작은 사설 교육기관을 찾아냈다. 등원 첫날, 소현은 유나의 손을 잡고 유치원 놀이터에 섰다.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떤 아이는 피부색이 균일하지 않았고, 어떤 아이는 걸음걸이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표준의 틀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작은 섬. 하지만 그곳 역시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한 아이가 모래성을 쌓던 유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는 왜 웃을 때 얼굴이 찌그러져?”

아이는 악의 없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유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몰라 멀뚱멀뚱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유나에게로 쏠렸다. 소현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지원의 목소리가, 민준의 저주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렸다. ‘일곱 번째 손가락. ’

소현은 숨을 참고 유나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감싸고 이곳을 떠나야 할까. 아니면 대신 화를 내주어야 할까. 소현이 입을 떼려는 순간, 유나가 제 얼굴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질문을 던진 아이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왼쪽 눈이 더 작게 휘어지고, 오른쪽 입꼬리가 더 높이 올라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불균형의 미소였다.

“내 얼굴은 웃을 때 춤추는 거야!”

유나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아이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갸우뚱거렸다. 유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얼굴을 찡긋하며 웃었다. 정말로 아이의 얼굴 근육들이 제멋대로 즐거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러자 질문을 던졌던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 제 얼굴을 마구 찡그려 보았다.

“나는 춤 안 춰지는데?”

몇몇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유나의 ‘춤추는 얼굴’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소현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울지 않았다. 아이는 스스로 길을 찾고 있었다. 다름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세상에서, 자신의 다름을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법을. 그것은 소현이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유나 자신이, 유나의 고유함이 스스로를 지켜낸 순간이었다.

그날 밤, 소현은 잠든 유나의 곁에 누웠다. 작은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아이의 얼굴에는 이제 희미한 주근깨들이 별처럼 떠올라 있었다. 소현은 가만히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잡았다. 네 번째 손가락 끝의 도톰한 살집. 자신에게서 물려받은, 세상이 결함이라 부르는 작은 유산. 소현은 후회하지 않았다. 민준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유나에게 가혹할 것이다. 아이는 수없이 상처받고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춤을 추고,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일어설 것이다. 소현은 딸이 살아갈 그 모든 순간을 믿기로 했다. 확률과 통계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이라는 이름의 무지개 괴물을.

소현은 딸의 네 번째 손가락 끝, 유난히 도톰한 그 살을 제 손가락으로 아주 천천히, 한 번 더 쓸어주었다.

당신을 당신이게 하는, 그러나 세상의 표준과는 다른 ‘일곱 번째 손가락’은 무엇인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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