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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산술

2026. 3. 24. · 9,025자 · 약 11분

따뜻한 산술 썸네일
17

관리실 온도계가 영하 12도를 찍고 있었다. 실내 온도였다. 바깥은 영하 41도. 관리실 창문에 성에가 끼어 있었다. 성에가 두께 2센티미터쯤 됐다. 손가락으로 긁으면 얼음 가루가 떨어졌다. 성에 너머로 아파트 주차장이 보였다. 차들이 눈에 묻혀 있었다. 3주째 움직이지 않는 차들. 3주 전에 한파가 왔다. 북극 제트기류가 붕괴했다고 뉴스에서 말했다. 뉴스가 나오던 날 전력망이 끊겼다. 도시가스는 그 전에 이미 끊겨 있었다. 서울 전체가 멈췄다. 눈 위에 또 눈이 쌓여서 차인지 눈덩이인지 구분이 안 됐다.

동호가 관리실 책상 위에 종이를 펼쳤다. 아파트 평면도. 32개 층. 한 층에 4가구. 128가구. 현재 거주 중인 가구: 87가구. 나머지 41가구는 비어 있었다. 서울을 떠난 사람들. 남쪽으로 내려간 사람들. 남쪽도 영하 20도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여기보다는 나았다. 고속도로는 얼어붙어서 차가 다닐 수 없었다. 4륜구동 경유차만 움직였다. 나머지는 주차장에서 얼어 있었다.

동호는 평면도 위에 빨간 점을 찍었다. 거주 가구 표시. 87개의 빨간 점. 총 인원 214명. 그중 영유아 12명. 70세 이상 노인 31명. 동호는 숫자들을 종이 구석에 적었다. 연필이 차가워서 손가락이 아팠다. 장갑을 끼고 쓰고 있었는데도.

문이 열렸다. 찬 바람이 들어왔다. 32층 대표가 들어왔다. 패딩 위에 이불을 두르고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32층에서 1층 관리실까지 걸어 내려온 것이었다. 엘리베이터는 5일 전에 멈췄다. 전력과 함께.

“아, 여기도 춥네.”

“보일러 안 틀었어요. 경유 아끼려고.”

“경유가 얼마나 남았는데?”

“480리터.”

“480리터면 뭘 할 수 있는데?”

“보일러 1대로 1개 층을 난방하면 4일 버텨요.”

32층 대표가 이불을 여몄다.

“1개 층.”

“1개 층이요.”

대표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계단을 걸어 내려온 사람들. 높은 층에서 온 사람일수록 얼굴이 더 빨갛고 숨이 더 찼다. 20층 이상에서 온 사람들은 입김이 유독 하얬다. 높은 층일수록 더 추웠다. 열은 아래로 가라앉고 찬 공기는 위로 올라갔다. 28층 대표는 헐떡이면서 들어왔다.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이었다. 관리실 의자에 앉으면서 무릎을 문질렀다.

“28층에서 1층까지 계단 걸어 내려왔더니 무릎이 나가네. 560계단.”

“세어봤어요?”

“세면서 내려왔지. 안 그러면 미쳐.”

“올라갈 때는 더 힘들어요.”

“올라가기 싫으니까 빨리 끝내자.”

관리실 탁자 위에 보온병이 있었다. 동호가 아침에 끓여놓은 물. 지금은 미지근할 것이었다. 종이컵에 물을 따라서 돌렸다. 미지근한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 온기가 위장에 닿았다.

관리실에 의자가 8개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서 있었다. 서 있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바닥이 차가웠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32명이 관리실에 모였다. 비어 있는 층을 제외하고 사람이 사는 층의 대표만 왔다. 총 26명. 빈 층 6개는 대표가 없었다. 빈 집들의 수도관은 이미 얼어 터져 있었다. 물이 얼면서 팽창해 파이프를 깨뜨렸다. 봄이 오면 수리비가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봄이 온다면.

동호가 일어섰다. 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 이 아파트에서 12년째 일하고 있었다. 혼자 살았다. 관리사무소 옆 쪽방에. 가족은 없었다. 보일러 수리, 엘리베이터 점검, 주차 관리. 지금은 그 중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회의를 진행하는 것뿐이었다.

“다 오셨으면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3층은?”

“3층 김 씨 가족은 어제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떠났어? 이 날씨에?”

“차가 있대요. 경유 차.”

“경유 있으면 우리한테 줬어야지.”

“자기 차 경유를 왜 줍니까.”

웃음이 나왔다. 작은 웃음. 관리실 안의 온도가 0.1도쯤 올라간 느낌이었다.

동호가 설명을 시작했다.

“상황 정리하겠습니다. 경유 480리터. 보일러 1대. 보일러를 돌리면 1개 층만 난방 가능합니다. 4일분입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한파가 풀리는 건 5일 뒤입니다. 영하 10도까지 올라간다고 했어요.”

“4일치인데 한파가 5일이면 1일 모자라잖아.”

“맞습니다. 그래서 난방 온도를 18도 대신 15도로 낮추면 5일 버틸 수 있습니다.”

“15도면 좀 추운데.”

“영하 12도보다는 낫죠.”

“그건 그렇지.”

동호가 평면도를 들어 보였다.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난방을 받을 층 1개를 정합니다. 난방 층의 면적은 264평방미터입니다. 1인당 최소 1.2평방미터로 계산하면 최대 수용 인원은 220명입니다.”

“잠깐. 우리 전체가 214명이니까 다 들어가잖아?”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야?”

“짐이요.”

“짐?”

“사람만 들어가면 220명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불, 음식, 물, 생필품을 가져가면 공간이 줄어요. 현실적으로는 120명에서 130명 정도입니다.”

“절반이네.”

“네. 절반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자기 집에서 이불을 덮고 버텨야 합니다.”

관리실이 조용해졌다. 하얀 김만 피어올랐다. 26명의 숨소리가 관리실을 채웠다. 동호는 그 침묵의 온도를 느꼈다. 영하 12도보다 더 차가운 침묵이었다.

15층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파트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다. 이사 온 지 23년. 입주 때부터 있었다. 목소리가 굵었다. 회의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렸다.

“어느 층으로 할 건데?”

“투표로 정합니다.”

“투표 전에 하나만 묻자. 누가 들어가고 누가 밖에 남는 건 어떻게 정하는 거야?”

“그것도 이 회의에서 정해야 합니다.”

“아이들 먼저 아니야?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야지.”

7층 대표가 말했다. 7층에 영유아가 3명 있었다. 자기 층 아이들이었다.

“노인분들도요.”

22층 대표가 말했다. 22층에 80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아이 12명, 노인 31명을 먼저 넣으면 43명. 남은 자리가 80명 안팎이에요. 214명 중 나머지 171명에서 80명을 뽑아야 합니다.”

“뽑는 기준이 뭔데?”

“그걸 지금 정하는 겁니다.”

“아, 머리 아프다.”

23층 대표가 손을 들었다. 대머리에 검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안경에 김이 서리고 있었다. 관리실 안이 바깥보다 따뜻해서 생긴 김이었다.

“하나 제안할게요.”

“네.”

“관리비 완납자 우선.”

관리실이 웅성거렸다.

“관리비가 지금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죠. 경유는 관리비로 산 거예요. 관리비 안 낸 사람이 그 경유로 난방 받는 건 말이 안 되죠.”

“그 논리면 관리비 많이 낸 사람이 우선이야?”

“밀린 사람은 빠지라는 거야?”

“밀린 사람이 몇 가구나 돼? 나 밀렸는데.”

옆에 있던 9층 대표가 말했다.

“나도.”

11층 대표도 말했다.

동호가 확인했다. 서류를 뒤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모르겠었다.

“관리비 3개월 이상 연체 가구가 14가구입니다.”

“14가구면 몇 명이야?”

“38명입니다.”

“38명 빼면 176명. 아이 노인 43명 빼면 133명. 130자리에 거의 맞네.”

“잠깐잠깐잠깐.”

동호가 손을 들었다. 모두가 동호를 봤다.

“저 관리비 3개월 연체입니다.”

관리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웃음이 터졌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관리비를 연체해?”

“월급이 3개월째 안 나왔으니까요. 보일러 수리도 제 돈으로 했습니다. 부품값 17만 원.”

“월급은 관리비에서 나오는데?”

“관리비가 안 걷히니까 월급이 안 나오고, 월급이 안 나오니까 관리비를 못 내는 겁니다.”

“뫼비우스 관리비네.”

웃음이 더 커졌다. 동호도 웃었다. 웃으니까 하얀 김이 더 많이 피어올랐다. 관리실이 구름 속 같았다.

“진지하게 합시다.”

15층 대표가 말했다. 웃음이 멈췄다.

“관리비 기준은 안 돼요. 돈으로 생존을 나눌 수 없어요.”

“그러면 뭘로 나눠?”

“추첨.”

“추첨?”

“공평하잖아. 아이, 노인 먼저 넣고 나머지는 제비뽑기.”

“운에 맡기자고? 이건 복불복 문제가 아니잖아.”

“다른 기준이 있어? 나이? 건강? 직업? 뭘로 하든 누군가는 불만이야.”

“추첨이 공평하긴 하지.”

“근데 추첨에서 떨어지면? 영하 41도에서 5일을 버텨?”

“이불 덮고 가만히 있으면 저체온증까지 48시간은 버텨요.”

“그걸 어떻게 알아?”

“인터넷에서 봤어.”

“인터넷이 되나?”

“안 되지. 끊기기 전에 봤어.”

동호는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130자리. 214명. 84명이 밖에 남는다. 밖에 남는다는 것은 영하 41도에서 이불만으로 5일을 버틴다는 뜻이었다. 가능한가. 동호는 몰랐다.

“제 의견 내도 될까요?”

동호가 말했다. 대표들이 동호를 봤다.

“저는 대표가 아니라 관리사무소 직원이지만. 보일러를 제가 돌려야 하니까.”

“말해.”

“난방 층을 1층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왜?”

“1층이 지하 저장고랑 가장 가깝습니다. 경유를 나르기 쉽고, 보일러 연결도 가장 짧아요. 그리고 1층은 출입이 편해서 사람들이 오가기 쉽습니다.”

“1층 대표는 찬성이겠네.”

1층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근데 1층이면 우리 집 앞이잖아. 문 열어놔야 해?”

“공용 공간만 쓰면 됩니다. 복도랑 거실.”

“복도에 130명이 눕는 거야?”

“교대라니까요. 71명이요.”

“다른 층은?”

“1층이 합리적이긴 해.”

“높은 층에서 짐 들고 내려오는 게 문제지.”

“32층에서 이불 들고 1층까지 걸어 내려가?”

“한 번 내려오면 다시 올라가기 싫을 거야.”

“올라갈 일 없지. 5일 동안 1층에 있으면 되니까.”

“그럼 층은 1층으로 하고. 인원을 정합시다.”

동호가 말했다.

“아이 12명. 노인 31명. 우선 입주. 보호자 포함 약 60명. 남은 자리 70명.”

“154명 중에 70명.”

“절반도 안 되네.”

“추첨으로 하자.”

“추첨 반대. 가족 단위로 해야지. 추첨으로 아빠만 당첨되고 엄마는 탈락하면 어떡해?”

“가족 단위 추첨.”

“가족이 큰 집이 유리하잖아.”

“그럼 1인당 추첨?”

“1인당 하면 가족이 갈라져.”

“뭘 해도 문제야.”

한참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27층 대표가 조용히 말했다. 안경을 벗어서 김을 닦고 있었다.

“야간 교대는 어때요?”

“야간 교대?”

“130명이 24시간 있는 게 아니라. 낮에 130명, 밤에 130명. 교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12시간씩.”

“그러면 260명이 돌아가면서 쓸 수 있잖아.”

“우리 214명이니까 전원 수용 가능하고.”

“12시간은 난방, 12시간은 자기 집에서 이불. 그 정도면 버틸 수 있지 않아?”

“나쁘지 않은데?”

“근데 영하 41도에서 12시간은 좀 길지 않아?”

“8시간이면?”

“8시간이면 3교대. 214명을 3그룹으로 나누면 한 그룹 71명. 충분히 들어가.”

“교대 시간에 맞춰서 나오고 들어가야 하는 거지?”

“그렇죠. 시간 되면 나오고 다음 그룹이 들어가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계산해야 하는 거 아니야?”

“8시간 난방, 16시간 냉방이면. 16시간을 어떻게 버텨?”

“이불이랑 핫팩이랑.”

“핫팩 남은 거 있어?”

“편의점에 있을 걸.”

“편의점도 문 닫았잖아.”

“문 닫은 편의점에서 가져오면 되지.”

“그건 도둑질 아니야?”

“비상상황인데.”

“비상상황이면 도둑질이 괜찮아?”

“살려고 하는 건데.”

“편의점 주인도 어디선가 살려고 하고 있을 거야.”

“그건 그렇네.”

동호가 종이에 계산을 했다. 연필이 종이 위에서 사각거렸다. 3교대. 8시간. 그룹 71명. 보일러 24시간 가동. 경유 소모량: 하루 96리터. 480리터면 5일. 딱 맞았다. 여유분이 0이었다. 0리터의 여유. 동호는 그 숫자를 두 번 확인했다.

“됩니다. 3교대 8시간이면 경유가 5일 버텨요.”

“전원 수용이야?”

“네. 214명 전원.”

관리실에 잠시 안도의 숨소리가 돌았다.

“근데.”

15층 대표가 말했다.

“교대 순서는 어떻게 정해? 첫 번째 그룹이 가장 좋잖아. 지금 당장 따뜻해지니까.”

“추첨.”

“또 추첨이야. 오늘 추첨을 몇 번 하는 거야.”

“공평하잖아.”

“맨 마지막 그룹은 8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잖아.”

“16시간. 지금부터 첫 번째 그룹이 들어가면 세 번째 그룹은 16시간 뒤야.”

“영하 41도에서 16시간.”

“이불 덮고 있으면.”

“이불 덮고 영하 41도에서 16시간이면 저체온증 올 수 있어.”

동호가 생각했다. 머리가 아팠다. 추위 때문인지 계산 때문인지 모르겠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말해.”

“첫 번째 그룹을 아이와 노인이 포함된 그룹으로 합니다. 약해서가 아니라 이동이 오래 걸리니까 먼저 자리를 잡는 겁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추첨으로.”

“첫 번째 그룹 인원이 초과하면?”

“아이 12명. 노인 31명. 보호자 합치면 60명 안팎. 71명 정원에 넉넉합니다.”

“나머지 154명을 둘로 나눠서 77명씩.”

“77명이면 1층에 들어가?”

“들어갑니다. 짐을 좀 줄이면.”

“짐을 얼마나 줄여야 해?”

“1인당 배낭 1개 정도.”

“좋아. 그러면 투표하자.”

15층 대표가 말했다.

“안건: 1층 난방, 3교대 8시간, 첫 그룹 영유아·노인 우선. 찬성하시면 손 들어주세요.”

손이 올라갔다. 동호가 세었다. 23명.

“반대?”

2명.

“기권?”

1명.

“23 대 2로 통과입니다.”

동호는 결과를 종이에 적었다. 손이 떨렸다. 추위인지 안도인지 구분이 안 됐다.

반대 2명 중 하나가 4층 대표였다.

“왜 반대했어요?”

“난 1층에 사는데. 1층이 난방 층이면 내 집에 130명이 들어오잖아. 내 화장실을 130명이 쓴다고.”

“비상상황인데요.”

“비상상황은 알겠는데 내 변기가 130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비상이야.”

웃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큰 웃음이었다. 4층 대표도 웃었다. 관리실 창문의 성에가 웃음소리의 진동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나머지 반대 1명은 17층 대표였다.

“왜 반대하셨어요?”

“반대는 아닌데. 기권 눌러야 했는데 잘못 눌렀어.”

“진지하게 합시다.”

“추워서 손이 떨려.”

동호가 시계를 봤다. 오후 8시 14분. 회의가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나 있었다. 관리실 온도가 영하 14도로 떨어져 있었다.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사람들의 코가 빨갛고, 입술이 파랬다.

“지금 바로 시작합시다. 보일러 가동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동호 씨.”

“관리비는 나중에 내겠습니다.”

또 웃음.

동호는 관리실을 나와 지하 저장고로 내려갔다. 계단이 어두웠다. 손전등을 켰다. 경유통 4개가 보였다. 120리터짜리 4개. 480리터. 5일치. 동호는 첫 번째 경유통의 밸브를 열었다. 경유가 파이프를 타고 보일러로 흘러갔다. 동호는 보일러 스위치를 올렸다. 웅 하는 소리가 났다. 보일러가 돌아갔다. 3주 만에 처음 듣는 기계 소리였다. 동호는 그 소리를 듣고 잠시 서 있었다. 지하 저장고의 벽에 손을 대봤다. 파이프가 지나가는 벽이었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경유가 파이프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따뜻한 소리였다.

1층으로 올라갔다. 1층 복도가 이미 미지근해지고 있었다. 바닥에 손을 대봤다. 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동호의 손이 따뜻해졌다. 오른손을 바닥에 대고 있었다. 왼손도 대봤다. 양쪽 손에 온기가 올라왔다. 손가락의 감각이 돌아왔다. 2시간 넘게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첫 번째 그룹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쿵. 쿵쿵. 계단이 울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이를 안은 사람. 노인을 부축하는 사람. 이불 보따리를 맨 사람. 1층 복도가 사람들로 채워졌다. 누군가 바닥에 앉으면서 말했다.

“바닥이 따뜻해.”

어딘가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1층 바닥에 내려놓자 아이가 울음을 멈췄다. 아이가 바닥에 손을 대봤다. 작은 손바닥이 바닥 위에 펼쳐졌다.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바닥의 온기를 느낀 것일 수도 있었고, 사람들의 체온이 모인 것일 수도 있었다. 동호는 복도 끝에 서서 사람들을 봤다. 71명의 첫 번째 그룹. 이불을 깔고 눕는 사람, 벽에 기대앉는 사람,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사람. 복도가 좁았지만 따뜻했다.

동호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3교대 명단. 첫 번째 그룹, 두 번째 그룹, 세 번째 그룹. 두 번째 그룹은 내일 오전 4시 14분에 교대. 세 번째 그룹은 내일 낮 12시 14분. 동호는 명단의 이름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214명. 빠진 사람이 없는지. 7층의 쌍둥이도 적혀 있었다. 22층의 80대 부부도. 동호 자신의 이름도 세 번째 그룹 맨 아래에 있었다. 동호는 명단을 벽에 테이프로 붙였다. 테이프가 차가워서 잘 붙지 않았다. 3번 눌러서 붙였다.

동호는 1층 로비 구석에 앉았다. 등을 벽에 기댔다. 벽이 미지근했다. 보일러 열이 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동호는 눈을 감았다. 3주 만에 따뜻한 벽이었다. 동호는 세 번째 그룹이었다. 관리비를 연체한 관리사무소 직원은 세 번째가 맞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다. 16시간 뒤에 이 자리에 다시 올 것이었다. 지금은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웅. 규칙적인 소리. 480리터의 경유가 열로 바뀌는 소리. 동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종이가 만져졌다. 관리비 고지서. 3개월치. 동호는 고지서를 꺼내지 않았다. 주머니 안에서 종이를 접었다. 작게. 더 작게. 손가락 끝에서 종이의 모서리가 느껴졌다. 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영하 41도의 바람. 하지만 벽은 따뜻했고, 보일러는 돌아가고 있었고, 480리터는 아직 충분했다. 첫 번째 8시간이 시작됐다. 나머지 143명은 각자의 층으로 돌아갔다. 이불을 덮고 기다릴 것이었다. 교대 시간까지. 동호도 일어서야 했다. 관리사무소 쪽방으로 돌아가서 이불을 덮어야 했다. 16시간을. 동호는 벽에서 등을 뗐다. 따뜻함이 등에서 사라졌다. 관리실 쪽방까지 30미터. 복도를 걸었다. 발이 차가웠다. 보일러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쪽방 문을 열었다. 이불이 있었다. 이불이 차가웠다. 이불 안에 들어가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체온이 이불을 데울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동호는 이불을 덮고 누웠다. 천장이 보였다. 어두운 천장. 어딘가에서 보일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웅. 480리터가 열로 바뀌는 소리. 동호는 주머니 속의 관리비 고지서를 만졌다. 작게 접은 종이. 3개월치. 동호는 눈을 감았다. 16시간 뒤에 따뜻해질 것이었다. 동호는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아직 감각이 있었다. 벽 너머 보일러 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동호는 그 소리를 세면서 잠이 들었다.

생존 자원이 부족할 때, 공평한 배분이란 존재하는가 — 그리고 공평함을 설계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디에 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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