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미터의 푸른 빛이 팔 안쪽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서진은 숨을 참았다. 혈관 속을 흐르는 미세한 표지자들이 빛에 반응해 제각각의 형광 신호를 보냈다. 화면에 수백만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강이 펼쳐졌다. 녹색과 붉은색, 그리고 그녀가 가장 주시하는 주황색의 점들. 종양 활성 마커 TK1. 그녀의 화성행 티켓이었다.
분석이 끝나자 기계가 낮은 신호음을 냈다. 의료 기술사가 화면의 수치를 확인하더니 무표정하게 서진을 돌아봤다.
“안정적이네요.”
그 한마디가 서진의 심장을 차갑게 식혔다. 안정적. 지난 3개월 동안 계속 들어온 말. 지구에 남겨질 사람들에게는 축복일 그 단어는, 그녀에게는 사형 선고와 같았다. 기술사는 데이터를 전송하고 다음 절차를 안내했다. 서진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팔에 남은 소독용 젤의 차가운 감촉이 선명했다.
개인실로 돌아온 서진은 벽면 전체를 차지한 디스플레이를 켰다. 붉은 모래 언덕과 희박한 대기가 만들어내는 연분홍빛 하늘. 화성의 올림푸스 화산 정상에서 촬영된 파노라마 이미지였다. 그녀가 4년 전 박사 과정 중에 논문 주제로 삼았던 바로 그 장소. 그때는 스크린 속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자였지만, 이제는 그곳에 직접 발을 디딜 최초의 지질학자가 될 예정이었다. 6개월의 시한부 판정이란 자격만 유지한다면.
아레스 7. 인류 최초의 화성 편도 이주 임무. 지원 자격은 단 하나였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일 것, 그리고 기대 수명이 6개월 미만일 것. 지구의 자원으로 왕복선을 보낼 여력은 없었다. 대신 인류는 가장 효율적인 자원을 보내기로 했다. 돌아올 필요가 없는 사람들. 사회는 그들의 마지막을 ‘숭고한 희생’이라 불렀고, 미디어는 ‘인류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며 찬사를 보냈다. 서진에게는 그저, 병실 침대에서 꺼져가는 대신 붉은 행성에서 타오를 기회였다.
뇌종양 4기. 1년 전, 의사는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 평균 6개월. 길어야 8개월. 절망의 바닥에서 서진은 아레스 7의 모집 공고를 보았다. 그것은 구원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더 이상 무의미한 소멸이 아니었다. 목적지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지난 10년간의 연구 자료를 모두 쏟아부어 지원했고, 7개월의 혹독한 심사와 훈련 끝에 지질 연구 책임자, 즉 임무 사령관으로 최종 선발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몸이 그 계약을 위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서진은 손목 단말기를 개인 의료 데이터베이스에 연결했다. 방금 전 검사 결과가 동기화되어 있었다. TK1 마커 수치가 그래프의 맨 끝점에서 아래로 꺾여 있었다. 0.8. 지난달은 1.1, 그 전달은 1.9였다. 정상인의 수치는 0.1 미만.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방향이 문제였다. 그래프는 명백한 관해(寛解) 추세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그녀의 꿈을 배신하고 있었다.
“완벽한 오작동이군.”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건강한 면역 체계가 멋대로 종양 세포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주선 발사까지 남은 시간은 3주. 그 안에 이 추세를 되돌리지 못하면 그녀는 자격을 박탈당하고 지구에 남겨질 것이다. 다시, 시한부 암 환자로. 그러나 화성이라는 목적지를 잃어버린.
* * *
다음 날, 서진은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식당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던 사람들이었다. 저명한 생화학자, 최고의 파일럿, 식물학의 대가. 그리고 모두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들 사이에 기묘한 평온함과 동지애를 만들었다. 죽음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니라, 공유된 자격 요건이었다.
“어제 본 오로라 시뮬레이션 봤어? 자기장 생성기가 만들어내는 인공 오로라. 정말 아름답던데.”
맞은편에 앉은 미나가 말했다. 그녀는 임무의 생명 유지 시스템 책임자였다. 췌장암 말기. 그녀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했지만, 눈은 항상 무언가를 꿈꾸는 듯 빛났다.
“화성에 도착하면 진짜 오로라를 보게 될 거야. 지구와는 전혀 다른 푸른빛 오로라.”
서진이 건조하게 답했다. 미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서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가끔 사령관님은 꼭 데이터베이스가 말하는 것 같아. 정확하고, 빈틈없고. 하지만 조금도 설레지 않는 것 같달까.”
“설렘은 임무 수행에 불필요한 변수일 뿐이야.”
“그럴까? 난 설레서 죽을 것 같은데. 어차피 죽을 거라면, 화성의 푸른 오로라 아래서 먼지가 되는 게 훨씬 근사하잖아. 내 몸을 이루던 탄소가 훗날 화성의 식물을 키우는 거름이 될 수도 있고.”
미나의 목소리에는 어떤 체념도, 슬픔도 없었다. 오직 순수한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서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자신의 초조함을 감췄다. 미나는 자신의 죽음을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착실하게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서진은 그녀가 부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윤 박사와 마주쳤다. 아레스 7 프로젝트의 의료 총책임자. 그는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서진 사령관님.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의무실은 차가운 기계음과 약품 냄새로 가득했다. 윤 박사는 서진의 의료 데이터를 대형 화면에 띄웠다.
“최근 TK1 마커 수치의 하향세가 좀 눈에 띄는군요.”
그가 그래프의 끝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진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지만, 표정을 유지했다.
“오차 범위 내의 변동 아닙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3개월 연속 같은 방향으로의 변동은 단순한 오차로 보기 어렵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아주 긍정적인 신호죠.”
윤 박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내용은 칼날 같았다. ‘긍정적인 신호.’ 미나의 말과 똑같이, 그 단어는 서진의 세계를 부정하고 있었다.
“매우 드물지만, 말기 암에서 자연적 관해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종의 기적이죠.”
윤 박사는 서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단순한 의사의 것이 아니었다. 자격 심사관의 눈빛이었다.
“최종 탑승 승인 전에 정밀 검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일 오전, 뇌 심부 조직 검사를 하죠. 그걸 보면 확실해질 겁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혈액 마커는 어떻게든 변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뇌 조직을 직접 떼어내 분석하는 검사는 속일 수 없다. 종양의 활동성이 줄어든 것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알겠습니다.”
서진은 짧게 대답하고 의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걷는 내내 다리가 떨렸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지금, 이기려고 드는가. 지난 1년간 그녀를 괴롭히던 통증과 싸우던 그 모든 시간은 무엇이었나. 이제 와서 살아남으려는 이 생명의지가, 그녀의 마지막 희망을 앗아가고 있었다.
* * *
그날 밤, 서진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해결책을 찾았다. 그녀의 모든 과학적 지식이 총동원되었다. 면역 체계를 인위적으로 교란하는 방법. 스트레스 호르몬을 극단적으로 분비시키는 약물. 방사선에 의도적으로 노출되어 세포 분열을 촉진하는 방법. 모두 너무 위험하고, 너무 뻔했다. 윤 박사는 그런 조잡한 속임수를 금방 알아챌 것이다.
그녀는 접근 방식을 바꿨다. 몸을 속일 수 없다면, 기계를 속여야 했다. 뇌 심부 조직 검사기는 채취된 샘플을 광학적으로 분석해 종양 세포의 대사 활동을 측정했다. 그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다면. 하지만 검사 시스템은 외부 네트워크와 완벽히 분리된 폐쇄망이었다. 물리적인 접근 없이는 불가능했다.
서진은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훈련 교범을 바라보았다. ‘아레스 7 임무 사령관 행동 지침’. 그 안에는 비상 상황 시 통제 시스템에 접근하는 각종 프로토콜이 담겨 있었다. 의료 시스템의 마스터 코드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코드를 안다고 해도,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변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간이 흘렀다. 벽면의 화성 풍경 위로 지구의 밤이 깊어졌다. 서진은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하나씩 지워나갔다.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그녀는 디스플레이를 껐다. 붉은 행성이 사라지자, 암흑 속에서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병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도 건강해 보이는 얼굴. 그 얼굴 위로 눈물이 흘렀다.
그때였다. 단말기로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의무실 서버실. 3분.’
발신자는 없었다.
서진은 망설였다.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앉아서 자격 박탈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녀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어두운 복도로 나섰다. 심야의 훈련 시설은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오직 비상 유도등의 녹색 빛만이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의무실 구역은 한산했다. 서버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카드 리더기 옆에 작은 메모리가 붙어 있었다. 서진이 그것을 자신의 단말기에 꽂자, 익명의 프로토콜이 실행되며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서버실 내부는 수십 개의 데이터 서버가 내는 팬 소음과 서늘한 공기로 가득했다. 1쪽 구석에 누군가 서 있었다.
윤 박사였다.
그는 서진을 보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역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게 무슨….”
“사령관님은 거짓말에 서투시더군요. 표정은 완벽했지만, 손을 계속 감추고 있었어요. 떨고 있다는 걸 들키기 싫었겠죠.”
윤 박사는 가장 안쪽의 의료 데이터 서버로 걸어갔다. 화면에는 내일 진행될 뇌 심부 조직 검사의 시퀀스 프로파일이 떠 있었다.
“이 시스템은 검사 직전에 과거의 데이터를 참조해 비교 기준선을 설정합니다. 만약 과거의 데이터가… 약간의 노이즈를 포함하고 있다면, 시스템은 내일의 검사 결과를 그 노이즈가 낀 기준선 위에서 해석하게 되죠.”
그는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몇 개의 명령어를 입력했다. 서진의 과거 혈액 마커 데이터가 화면에 나타났다. 윤 박사는 지난 3개월간의 TK1 수치를 가리켰다.
“이 하향세는 너무… 완벽합니다.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그래프 같죠. 실제 생체 데이터는 이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항상 불규칙한 노이즈가 끼기 마련인데.”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는 그래프에 미세한 변동 값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수치가 조금씩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갑자기 폭등했다가 안정되는, 예측 불가능한 패턴을 만들어냈다. 전체적인 추세는 여전히 하향이었지만, 그 과정은 혼돈 그 자체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시스템은 내일의 낮은 수치를 ‘일시적인 안정기’로 판단할 겁니다. 과거 데이터에 비추어 볼 때, 언제든 다시 폭등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라고 결론 내리겠죠. 프로토콜상, ‘불안정 말기 상태’는 여전히 자격 요건에 부합합니다.”
서진은 숨을 죽인 채 그의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의사이자 심사관인 그가, 스스로 규정을 우회하고 있었다.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윤 박사는 입력을 멈추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제 아내도 뇌종양으로 떠났습니다. 3년 전이었죠. 아레스 프로그램이 조금만 더 일찍 시작되었더라면, 아내도 지원했을 겁니다. 그녀는 천문학자였거든요. 평생 별을 보던 사람이었으니, 마지막은 별이 되고 싶어 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희미하게 떨렸다.
“저는 의사로서 당신을 지구에 남겨 치료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사람의 마지막 꿈이 데이터 몇 줄 때문에 좌절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레스 7에는 지질학자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암 환자가 아니라.”
그는 엔터 키를 눌러 조작된 데이터를 저장했다. 그리고 서버에서 로그아웃했다. 그가 만들어낸 ‘완벽한 오작동’이었다.
“내일 검사실에서 뵙겠습니다, 사령관님.”
윤 박사는 서진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 서버실을 나갔다. 서진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왜곡된 생체 데이터 그래프를 바라보았다. 살아남으려는 몸과 떠나려는 의지 사이의 모순. 그 모순을 끌어안고 그녀는 거짓된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다음 날, 뇌 심부 조직 검사가 진행되었다. 서진은 차가운 검사대 위에 누워 모든 것을 기계에 맡겼다. 채취된 조직이 분석기로 들어갔다. 윤 박사는 모니터에 떠오르는 결과를 확인했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검사 완료됐습니다. 결과는… 이전 데이터와 일관성을 보입니다. 불안정 상태 유지. 탑승에 문제없습니다.”
그는 서진을 보지 않고 말했다.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서진은 눈을 감았다. 안도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속이고, 동료들을 속이고, 인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위대한 임무 자체를 속이고 있었다.
발사일이 다가왔다. 후보생들은 마지막 신체검사를 통과하고, 개인 물품을 정리하고, 지구에 남길 마지막 메시지를 녹화했다. 서진은 아무에게도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것은 화성에 있었다.
발사 D-1. 모든 승무원이 이주선 ‘오디세우스’에 탑승했다. 좁은 통로를 지나 각자의 좌석에 몸을 고정했다. 서진은 사령관석에 앉아 관제 센터와의 마지막 통신을 연결했다. 헤드셋 너머로 미나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가네요, 사령관님. 저 푸른 오로라를 보러.”
서진은 창밖의 지구를 바라보았다. 푸른 대리석 같은 행성. 그녀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 그녀는 자신의 몸이 만들어낸 기적을 거부하고, 한 의사의 침묵에 기댄 채 이곳을 떠나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답을 알 수 없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 9, 8…. 거대한 진동이 선체 전체를 뒤흔들었다. 서진은 조종간을 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림 하나 없이 견고한 손. 너무나도 건강한 손. 그 손으로 그녀는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야 했다.
발사체를 밀어 올리는 굉음과 함께, 몸이 시트에 깊게 파묻혔다. 창밖의 풍경이 맹렬한 속도로 멀어졌다. 푸른 행성이 시야에서 점점 작아졌다. 그 순간, 서진의 머릿속에서 희미한 통증이 번개처럼 스쳤다. 진짜 통증인지, 아니면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윤 박사가 만들어준 거짓 그래프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디세우스 호는 7개월 동안 침묵 속을 날았다. 우주의 적막은 서진의 내면을 닮아 있었다. 그녀는 완벽한 사령관이었다. 모든 돌발 상황에 냉철하게 대처했고, 승무원들의 신체 및 정신 상태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관리했다. 임무에 몰두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몸이 벌이는 조용한 반역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죄책감은 일상적인 프로토콜의 무게 아래 옅어져 갔다.
하지만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3개월에 한 번씩 진행되는 자가 건강 검진의 날, 서진은 홀로 의료 모듈에 들어갔다. 자신의 팔에 직접 사이토미터를 갖다 댔다. 화면에 펼쳐진 수백만 개의 점들. 주황색 TK1 마커는 이제 강이 아니라 희미한 시냇물처럼 보였다. 수치는 0.2. 지구의 의학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의 완벽한 관해 상태였다. 윤 박사가 심어놓은 데이터의 망령만이 그녀의 탑승 자격을 위태롭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화면을 껐다. 기적은 형벌의 다른 이름이었다.
화성이 거대한 붉은 눈처럼 창밖을 가득 채웠을 때, 미나가 서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여전히 우주를 담은 듯 빛났다.
“보세요, 사령관님. 저기 우리가 잠들 곳이에요.”
미나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한 점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 마지막 목적지를 사랑하고 있었다. 서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미나는 자신의 몸을 이루던 원소들이 화성의 일부가 될 거라며 설레어 했다. 하지만 서진은, 건강한 몸으로 저 붉은 행성에 영원히 유배될 운명이었다.
“사령관님은… 꼭 영원히 사실 것 같아요. 단 한 번도 아프다는 말을 안 하시잖아요.”
미나의 순수한 감탄이 비수처럼 서진의 심장에 박혔다. 그녀는 대답 대신 미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착륙은 교과서처럼 정확했다. 아르시아 몬스 남쪽의 평원, 예정된 착륙 지점에 오디세우스 호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인류가 보낸 축하 메시지가 함선 전체에 울려 퍼졌지만, 서진에게는 멀고 공허한 소음일 뿐이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마침내 해치가 열렸다. 인류 최초의 화성 이주민이 첫발을 내디딜 순간. 사령관인 그녀의 몫이었다.
우주복의 헬멧을 통해 연분홍빛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붉은 대지가 보였다. 그녀가 수천 번이나 이미지와 데이터로만 보았던 풍경. 하지만 스크린으로 보던 경이로움은 없었다. 대신, 거대한 무덤의 입구에 선 듯한 압도적인 고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위해 이곳에 왔지만, 이제 그녀의 삶이 이곳에 갇히게 될 터였다.
“사령관님, 역사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관제 센터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다. 서진은 천천히 트랩을 내려갔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미세한 붉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역사적인 첫 발자국.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끝없는 끝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허리를 숙였다. 장갑을 낀 손으로 화성의 차가운 흙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녀가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미지의 광물과 고대의 흔적을 품은 흙. 그녀는 이 흙을 분석하고, 이 행성의 비밀을 파헤치며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할 것이다. 병실 침대보다 훨씬 더 광활하고, 훨씬 더 외로운 감옥에서.
서진은 손을 천천히 폈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모래가 바람에 흩날리며 무심하게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