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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톱들

2026. 7. 10. · 9,470자 · 약 11분

작은 손톱들 썸네일
17

방 안에는 소독약 냄새와 톱밥 냄새가 섞여 있었다. 체온을 색으로 변환하는 모니터 속에서 수십 개의 작은 열원들이 웅크리거나 움직였다. 화면 한가운데, 가장 붉고 뜨거운 개체 위에 녹색 커서가 깜빡였다. ‘숙주 417’. 서혜진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유리벽 너머 사육실의 자동 급수기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흰 가운은 아니었다. 몸에 잘 맞는 회색 유니폼이었다. 그는 혜진 옆에 서서 모니터를 함께 들여다봤다.

“최종 동기화 준비되셨습니까, 서혜진 고객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온기가 없었다. 박선우, 지난 8개월간 모든 절차를 안내해 온 담당 매니저였다. 그의 셔츠 소매에는 회사 로고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리젠 라이프’. 두 개의 나선이 서로를 감싸 안은 모양이었다.

혜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417번 숙주의 생체 신호는 안정적입니다. 태아의 발육 상태도 예측 범위 내 최상위 수치를 보이고 있고요. 이제 고객님의 기억 패턴을 이식해 신경계의 초기 발화를 유도할 겁니다. 아이가 엄마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아이라고 했다. 혜진은 그 단어를 붙잡았다. 4년 전, 병원의 무균실에서 마지막으로 불렀던 단어. 혜진은 화면 속 붉은 덩어리를 봤다. 소윤이. 내 딸.

“따라오시죠.”

박선우가 안내한 곳은 동기화실이었다. 방은 작고 어두웠다. 가운데에 검은 가죽 안락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 옆에는 복잡한 케이블이 달린 헤드셋이 있었다. 박선우가 방의 조명을 조절하자, 맞은편 벽이 투명해지며 아까의 사육실보다 훨씬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단 하나의 투명한 사육 상자가 있었다.

혜진은 숨을 멈췄다. ‘숙주 417’이 거기 있었다. 모니터의 붉은 점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체였다. 거대했다. 보통의 실험용 쥐보다 몸집이 3배는 커 보였다. 털은 희고 깨끗했지만,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는 얇은 피부 아래로 푸른 혈관들이 비쳤다. 배 안의 무언가가 움직일 때마다 피부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쥐는 미동도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지 옆구리가 빠르게 오르내렸다.

“진정제를 투여한 상태라 움직임은 거의 없을 겁니다. 동기화 과정의 안정성을 위해서죠.”

박선우가 헤드셋을 집어 들었다. 혜진이 의자에 앉자, 그가 다가와 머리에 기기를 씌워주었다. 관자놀이에 닿는 금속의 감촉이 차가웠다.

“이제부터 고객님은 숙주의 기본 감각 일부를 공유하게 됩니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제한적인 촉각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시스템이 유해한 자극은 모두 필터링합니다. 고객님께서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 따님과의 유대감이 가장 깊었던 순간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특히 음성 기억이 중요합니다. 노래를 불러주시거나, 자주 했던 말을 속삭여주세요. 그 목소리가 생성될 아이의 첫 번째 세계가 될 겁니다.”

혜진이 눈을 감았다. 시야에 노이즈 같은 빛의 입자들이 떠다니다가, 이내 희미한 영상으로 바뀌었다. 흐릿하고 낮은 시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사육 상자의 반투명한 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동기화실의 실루엣이었다.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의자에 굳은 채 앉아있는 여자. 코로 낯선 냄새가 밀려들었다. 자신의 체취와는 다른, 동물의 냄새. 톱밥과 사료 냄새.

‘괜찮아. 이건 그냥 과정일 뿐이야. ’

혜진은 소윤이를 떠올리려 애썼다. 햇살 좋은 오후, 거실 소파에서 소윤이를 무릎에 앉히고 동화책을 읽어주던 기억. 작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 책장을 넘기는 아이의 작은 손가락. 혜진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소윤아… 엄마야.”

그 순간, 다른 감각이 끼어들었다. 뱃속에서 무언가 꿈틀하는 느낌. 자신의 배가 아니었다. 감각이 중첩됐다. 얇은 피부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언가 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태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부산스러웠다.

박선우의 목소리가 헤드셋의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좋습니다. 뇌파 동기화가 시작됐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혜진은 다시 소윤이에게 집중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자장가. ‘반짝반짝 작은 별…’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노랫소리가 자신의 입과, 헤드셋의 스피커 양쪽에서 동시에 들렸다. 기묘한 이중주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공유된 감각이 더 선명해졌다. 비좁은 공간에 갇힌 답답함. 제 몸을 가누기 힘든 무게감. 갈증. 희미한 공포. 혜진은 노래를 멈췄다. 이건 소윤이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건 쥐의 감정이었다.

“고객님, 집중하셔야 합니다. 불안정한 감정 패턴은 동기화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박선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혜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소윤이의 얼굴을, 웃음소리를, 마지막 순간의 가쁜 숨소리까지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엄마, 아파. ’ 그 기억을 지우고, 건강했던 모습만을 꺼내려 애썼다.

‘소윤아, 우리 놀이공원 갔던 날 기억나? 네가 솜사탕 구름보다 더 크다고 했잖아. ’

기억을 떠올리자, 뱃속의 움직임이 더 격렬해졌다. 무언가가 안에서 벽을 긁는 듯한 감각이 스쳤다. 날카로운 것으로 연한 살을 긋는 느낌. 혜진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복부를 감쌌다. 아무것도 없었다. 감각은 가상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했다.

“동기화율 73%입니다. 아주 안정적입니다.”

무엇이 안정적이라는 말인가. 혜진은 소리치고 싶었다. 이건 잘못됐다고. 이건 내 딸이 아니라고. 하지만 4년간의 기다림과 집을 팔아 마련한 비용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소윤이의 세포, 소윤이의 유전자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녀는 다시 자장가를 불렀다. 목소리는 이제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노래는 기억 속 소윤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주문처럼 들렸다. 뱃속의 존재는 여전히 발버둥 쳤다. 작은 손톱으로 자궁벽을 긁어대는 듯한 환상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나가고 싶어 했다. 이 어둡고 비좁은 감옥에서, 어미 쥐의 몸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다.

시야가 흐려졌다. 쥐의 시각과 자신의 눈물이 뒤섞였다. 의자에 앉은 자신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그때, 격렬하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그리고 아주 분명한 하나의 감각이 전달됐다. 혜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4년 전, 소윤이를 품에 안았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 살아있는 존재의 의지. 그러나 인간의 것이 아닌, 낯설고 원초적인 생명의 몸부림.

“동기화율 98%. 안정 구간에 진입했습니다.”

박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추출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고객님은 편안하게 계시면 됩니다.”

투명한 벽 너머, 사육 상자의 천장에서 가느다란 금속 팔 여러 개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레이저 메스와 흡입기, 미세 집게들이었다. 자동화된 수술 장비였다. 그것들이 진정된 쥐의 배 위로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혜진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신의 딸이, 저 기계들을 통해, 저 동물의 몸에서 꺼내질 터였다.

붉은 선이 쥐의 불룩한 배 위에 그어졌다. 고통은 없었다. 시스템이 차단한 감각의 공백을, 차가운 금속이 연한 살을 가르는 소름 끼치는 상상력이 채웠다. 혜진은 자신의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연결된 시야 속에서, 자신의 몸이었던 쥐의 피부가 꽃잎처럼 열렸다. 핏기 없는 절개면 너머로 얇은 막에 싸인 태궁이 드러났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깨끗했다. 피 한 방울 튀지 않는 무균의 해체 작업. 자동화된 기계팔들은 주저함도, 연민도 없이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였다. 혜진은 이제 자신이 인간인지, 저 사육 상자 안의 실험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딸이 태어나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감각 덩어리일 뿐이었다.

미세 집게가 태궁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자, 안에서 무언가 마지막으로 발버둥 쳤다. 그 순간, 혜진은 환상통을 넘어선 실제적인 감각을 느꼈다. 날카로운 손톱이 마지막 남은 벽을 찢고 나오는 듯한, 짧고 격렬한 충격. ‘아! ’ 혜진은 비명을 삼켰다. 그것은 생명의 환희가 아니었다. 탈출의 몸부림이었다. 쥐의 시야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진정제의 효과를 이겨낸 본능적인 공포가 시스템의 필터를 뚫고 파도처럼 밀려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것은 자신의 심장박동이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짐승의 것이었다.

“동기화 종료. 신경 연결을 해제합니다.”

박선우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암전했다.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끊겨나갔다. 혜진은 깊은 물속에서 수면으로 튕겨 나온 사람처럼 숨을 헐떡였다. 관자놀이의 차가운 감촉, 등 뒤의 딱딱한 가죽 의자, 자신의 거친 숨소리가 현실의 좌표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헤드셋을 벗어 던졌다. 동기화실의 어두운 조명 아래, 유리벽 너머의 사육실이 보였다. 기계팔들은 이미 작업을 마치고 천장으로 물러나 있었다. 배가 갈라진 숙주 417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작은 생명을 품었던 몸은 이제 목적을 다한 생물학적 폐기물에 불과했다.

“성공입니다, 고객님. 태아는 안전하게 회수되어 현재 신생아 인큐베이터로 이송 중입니다. 잠시 후 안정화 절차가 끝나면 바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박선우가 다가와 혜진의 어깨를 가볍게 부축했다. 그의 손길은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혜진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방금… 그건 뭐였죠?”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마지막에… 그 느낌은….”

“신경계의 급격한 분리로 인한 일시적인 감각 교란입니다. 동기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선우는 준비된 답변을 막힘없이 읊었다.

“고객님의 기억과 감정은 태아의 뇌에 성공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고객님을 완벽한 ‘어머니’로 인식하게 될 겁니다.”

완벽한 어머니. 혜진은 그 말을 곱씹었다. 자신은 지금 딸의 탄생을 지켜본 것이 아니었다. 끔찍한 절도 행각을 목격한 공범이었다. 혜진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보여주세요. 내 딸… 소윤이, 보여주세요.”

박선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부축해 동기화실을 나섰다. 복도는 병원처럼 하얗고 길었다. 발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 개의 문을 지나자, ‘회복 및 관찰실’이라는 표지판이 붙은 방 앞에 섰다. 박선우가 지문으로 잠금을 해제하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방은 동기화실보다 밝고 따뜻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살아있는 것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기계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온도였다. 방 중앙에 놓인 최첨단 인큐베이터 안에서, 작은 생명체가 담요에 싸여 누워 있었다. 4년 만에 다시 만나는 딸이었다.

혜진은 홀린 듯 인큐베이터로 다가갔다. 유리 너머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감은 눈, 오똑한 코, 작고 붉은 입술. 4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소윤이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유전 정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죄책감도, 공포도, 방금 전의 끔찍한 기억도 모두 잊어야 했다.

“안녕, 소윤아. 엄마야.”

혜진이 유리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그때였다. 아이가 미세하게 몸을 뒤척였다. 담요 밖으로 작은 손 하나가 빠져나왔다. 혜진은 숨을 멈췄다. 너무나 작고 하얀 손.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손가락 끝. 손톱이 있어야 할 자리가 유난히 뾰족하고 길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희고 날카로운 각질. 그것은 마치 덜 자란 동물의 발톱 같았다.

아이가 다시 꿈틀거렸다. 그러자 그 작은 손톱들이 부드러운 담요의 표면을 파고들며 긁었다. 사각, 사각.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소리. 동기화 중에 느꼈던 바로 그 감각, 연한 살을 파고들던 그 끔찍한 환상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저건… 저 손톱은 뭐죠?”

혜진의 목소리가 얼어붙었다.

박선우는 인큐베이터의 상태를 확인하는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그 부분은 초기 발육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이상 형성입니다. 숙주 동물의 유전자가 미미하게 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퇴화되거나 간단한 시술로 제거 가능합니다. 제품의 완성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제품. 그는 방금 아이를 제품이라고 불렀다. 혜진의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유리창에 이마를 기댔다. 아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맑고 검은 눈동자. 그 눈이 혜진을 정확히 응시했다. 엄마를 알아보는 걸까. 혜진이 애써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아이의 눈에 기묘한 빛이 스쳤다. 그것은 신뢰나 애정이 아니었다. 낯선 환경을 경계하는 짐승의 눈빛. 굶주리고, 날것 그대로의 원초적인 생명력. 그 눈빛은 혜진의 영혼 깊은 곳을 꿰뚫어 보며 묻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끌어낸 자인가. 나의 어두운 감옥을 부수고, 이 차가운 빛 속으로 던져 넣은 자인가.

혜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선우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의 슬픔과 감격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눈만이 그를 향했다.

“제품이라니요.”

“오해가 있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고객님.”

박선우의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생명 공학적 절차의 결과물을 지칭하는 내부 용어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아이는 유전적으로 고객님의 따님과 100% 일치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죠.”

“아니요.”

혜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가장 중요한 건, 저 안에 있는 게 정말 내 딸이냐는 거죠.”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인큐베이터를 가리켰다.

“저 눈빛은 뭐죠? 동기화 때 내가 느꼈던 그 공포, 그 쥐의 마지막 발버둥… 그게 왜 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거냐고 묻고 있습니다.”

박선우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는 손에 든 태블릿의 화면을 내리다보며 말했다.

“말씀드렸듯이,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태아는 숙주의 생체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일종의 ‘환경 기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 ‘리젠 라이프’의 후속 케어 프로그램을 통해 완벽하게 교정될 수 있는 부분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후속 케어 프로그램. 그 단어가 혜진의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그것은 마치 불량품을 수리하는 절차처럼 들렸다. 혜진은 박선우를 밀치듯 지나쳐 인큐베이터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유리에 이마를 댄 채, 그녀는 아이를 향해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소윤아, 엄마 말 들리니? 제발… 소윤이라고 말해줘.”

그 순간, 아이가 입을 벌렸다. 울음소리를 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터져 나온 것은 아기의 울음이 아니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긁혀 나오는 듯한, 짧고 마찰음 섞인 소리. ‘칵. ’ 마치 작은 동물이 무언가를 경계하며 내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그 맑고 짐승 같은 눈으로 혜진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눈동자 속에는 그리움이나 유대감 대신, 오직 낯선 존재에 대한 차가운 호기심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칵. ’ 그 소리는 혜진의 귓가에 맴돌며 그녀가 쌓아 올린 4년간의 희망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박선우가 내뱉는 ‘환경 기억’, ‘후속 케어 프로그램’ 같은 단어들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끔찍한 진실을 가리기 위한 정교한 포장지에 불과했다. 그녀의 시선은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에게 못 박혔다. 아이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맑고 검은 눈으로 혜진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빛에는 어미를 향한 애착이나 의존이 없었다. 미지의 대상을 관찰하는 듯한 서늘한 탐색, 그뿐이었다.

박선우가 데이터패드를 들고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고객님, 최종 인수 확인서입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모든 절차는 마무리되고,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 혜진은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이것이 과연 자신이 꿈꾸던 새로운 삶일까. 그녀는 데이터패드를 외면한 채 유리벽에 이마를 기댔다. 기억 속 소윤이는 따뜻했다. 솜털 같은 머리카락, 분유와 아기 로션이 섞인 달콤한 냄새,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파고들던 부드러운 살결. 그 모든 감각이 생생했다. 하지만 유리 너머의 아이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유리와 기계가 내뿜는 인공의 온기, 그리고 저 원초적인 눈빛뿐이었다.

“이 아이는… 대체 무엇을 기억하게 되나요?”

혜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고객님께서 동기화하신 모든 것을요.”

박선우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고객님이 불러주시던 자장가, 햇살 좋은 오후의 동화책, 놀이공원의 솜사탕… 그 모든 행복한 기억이 아이의 첫 번째 세계로 각인되었습니다. 아이는 고객님을 사랑하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설계’. 그 단어가 비수처럼 혜진의 심장을 찔렀다. 사랑은 설계되는 것이 아니었다. 소윤이와의 사랑은 함께 웃고, 울고, 밥을 먹고, 잠이 들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기적이었다. 이 아이에게는 그 시간이 없다. 어미 쥐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혜진의 기억을 강제로 주입받아 급조된 존재. 그것은 사랑의 재현이 아니라 모조품에 불과했다.

그때, 아이가 다시 움직였다. 작은 손을 들어 인큐베이터 유리를 긁기 시작했다. 사각. 그 미세한 소리가 혜진의 머릿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동기화 중에 느꼈던 바로 그 감각. 얇은 자궁벽을 안에서부터 긁어대던 그 필사적인 몸부림. 그것은 세상에 대한 첫인사도, 엄마를 향한 애틋한 손짓도 아니었다. 자신을 가둔 투명한 감옥의 벽을 긁는, 이름 없는 존재의 본능이었다.

혜진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딸을 되찾은 것이 아니었다. 딸의 기억을 미끼로, 이름 없는 생명을 이 세상에 붙잡아 둔 교도관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고객님? 서명, 부탁드립니다.”

박선우가 부드럽게 재촉했다.

혜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눈물도, 절망도 없었다. 남은 것은 모든 것을 체념한 자의 텅 빈 공허와 차가운 결심뿐이었다. 그녀는 박선우에게서 말없이 데이터패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서명란에 한 글자씩,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서. 혜. 진.

박선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데이터패드를 회수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따님은 고객님의 법적 자녀입니다. 인큐베이터 잠금을 해제해 드리겠습니다.”

혜진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인큐베이터의 잠금 해제 버튼을 직접 눌렀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전면부 유리가 위로 열렸다. 따뜻하고 소독된 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아이는 유리벽을 긁던 것을 멈추고 혜진을 올려다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에 혜진의 무표정한 얼굴이 비쳤다. 혜진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이를 안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아이의 작고 하얀 손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짐승의 흔적처럼 희고 날카로운 손톱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혜진은 눈을 감았다. 이것은 소윤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자신의 지독한 그리움이 빚어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은 생명체.

혜진은 아이의 손가락을 가만히 잡은 채,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것은 자장가도, 사랑의 고백도, 사과의 말도 아니었다.

“괜찮아.”

그녀는 자신의 손톱 끝으로, 아이의 작은 손톱을 아주 천천히, 가만히 긁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욕망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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